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6
10.하루의 시작은 식사부터
예성은 아침이 되자 부리나케 몸을 일으켰다. 슈스케에 대해 생각하느라 늦게 잠이 들었지만 깊게 자지는 못했다. 여전히 불안한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건 모든 고등학생의 고민일거야. 앞으로 뭐해 먹고 살지? 그런 고민이랑 같은 거야.”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나오니 조용하다. 여동생은 아마 아직도 한 밤중일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어제 집에 데려다 줄 때 이미 컴퓨터 삼매경이었다. 아마 주말이니 팬 카페 회원들과 채팅하느라 밤을 샜을 것이다.
주의를 주고 싶지만 동생은 공부를 잘한다. 공부와 취미, 두 마리의 토끼를 다잡은 능력자였다. 뒤에서 네 번째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조용히 부엌으로 가 동생이 일어나 밥을 먹을 수 있게 준비를 해두었다. 어차피 반찬이 있으니 차려놓기만 하면 됐다. 동생은 자신의 과한 사랑에 질색을 하지만 자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건 자기만의 반성이기 때문이다.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이제 곧 여름이건만 아직 날씨가 쌀쌀했다.
‘슈스케라, 어제는 뜻 깊은 날이었어. 사상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정말 자신의 인생이 뭔가 되려는 느낌이다. 꿈에서 깨어난 후 이상한 일 많다. 노래를 만들고, 내가 알던 음악선생님은 연예기획사의 본부장 부인이고, 거기다 어제는 방송국 높은 사람까지.
자신은 이제껏 혼자만의 스펙터클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꿈을 꾸고 난 후 세상 속에서 스펙터클한 삶을 살고 있었다.
마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마치 내가 주인공인 듯한 느낌. 왠지 왼손에서 시꺼먼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이는 느낌이다.
“다 늦은(?) 나이에 중이 병인가? 곤란한데······.히히!”
드드드르르르륵.
식당에 셔터를 올리고 들어가니 여기도 한 밤중이다. 조용히 부엌으로 들어가 뼈 해장국을 가스 불에 올렸다. 그리고 쪽방으로 들어가니 엉켜서 자고 있는 엄마와 선생님이 보였다.
예성의 입에서 절로 미소가 나왔다.
‘엄마와 선생님이라, 깨어나면 어찌될까?’
절로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엄마, 엄마, 일어나. 아침이야. 식당 준비해야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던 엄마는 식당준비라는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아주 오랜시간을 보내며 체득한 마법의 단어다. 자식인 예성으로서는 마음 아픈 엄마의 반응이다.
“예성아, 지금 몇 시?”
“8시 30분. 일어나.”
“그래. 다행이다. 엄마, 못 일어나겠어. 뭔가가 내 몸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아.”
“응. 누르고 있는 거 맞아. 이불 위를 봐.”
이 여사는 예성의 말에 시선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 위에 올라와 있는 족발(?) 한짝.
“에구머니나!”
엄마는 놀라 족발(?)을 휙 내던졌다.
“아야! 아이씨, 여보, 아침부터 혼난다. 음냐음냐”
평소 이기호본부장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한 마디가 아닐 수 없었다.
“크크큭!”
엄마도 몸을 일으키고는 그런 선생님을 보았다. 엄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선생님을 내려다 봤다. 한참을 쳐다보시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이 왜 여기에서 주무시니?”
“기억 안나?”
“뭐가? 아니, 그건 좀 있다 말해주고, 엄마 물 좀. 누가 엄마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아.”
“그러게 작작 좀 마시지 그랬어?”
예성은 물을 건네주며 안쓰러운 눈으로 엄마를 봤다. 이제 일어나서 엄마는 또 식당일을 할 것이다. 쉬라고 해도 안 쉰다. 엄마가 물을 마시며 딴청을 부렸다.
“해장국 올렸니? 냄새 좋다.”
“하여간에 식당 사장님 아니랄까? 완전 개코야. 어서 일어나. 오픈 준비해야지.”
“그래.”
“그리고 선생님! 눈치 보지 말고 그냥 일어나세요. 눈꺼풀 떨리는 거 다 표시나요.”
예성의 말에 선생님이 슬그머니 눈을 뜨며 눈길을 피했다.
“나 여기 왜 이러고 있어?”
선생님의 물음에 예성은 할 말을 잃었다.
“그걸 저에게 물어보면 어떡해요? 선생님이 아시지 제가 알까요?”
“그렇지. 네가 알 리가 없지.”
선생님은 예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예성은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정말 선생님의 필름이 끊긴 것이다.
‘내가 있었던 것도 기억을 못하다니······.’
예성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네. 분명 남편이 찾아왔을 텐데.”
“그래요? 왔으면 데리고 가셨겠지. 두고 갔을까요?”
“그렇지. 자기 와이프를 방치 한다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
“어서 일어나세요. 속 쓰릴 텐데.”
“아니, 괜찮은데? 이상하네. 남의 집에서 잠을 자게 될 때까지 술을 마셨으면 일어나기도 힘들 텐데.”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예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좋은 값을 하는 술을 드셔서 그런가 봐요. 선생님 어제 인삼주를 들이 부었어요. 인삼주가 선생님을 먹는지, 선생님이 인삼주를 먹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어요.”
“그······.그랬어?”
연정이 볼을 멋쩍은 표정으로 긁적였다. 그러다 ‘어’ 하면서 깨달았다.
“야!! 네가 어떻게 내가 인삼주를 퍼먹었는지 들이 부었는지 기억해? 너 어제 가지 않고 계속 있었구나.”
예성은 아차 했다. 자신은 역시 거짓말에 소질이 없는 것일까?
“헤, 들켰네요. 그런데 가지 않은 게 아니라 못간 거죠. 어서 나오세요. 그런데 선생님 몸은 괜찮으세요?”
“내 몸 말이야?”
연정은 예성의 말에 몸을 일으키니 몸의 이 곳 저 곳 쑤시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리고 고통도 고통이지만 몸에 고통이 생기게 된 원인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짧은 순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젊을 시절의 기억이 머리에 스쳤다.
연정의 손은 저절로 얼굴을 덮었다. 어디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성아, 어제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헐, 일단 저질렀다는 것 자체가 가정인건가요? 안심하세요. 별일 없었어요.”
“그럼 이 몸의 고통은?”
“그거야 선생님이 화장실 못 찾아서 헤매다가 여기 저기 부딪치신 겁니다.”
“그래?”
나의 말에도 선생님은 의심을 버리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도대체 술 먹으면 무슨 짓을 저지르기에 저리도 꼼꼼하게 살피는 걸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행동이지만 물어 보기에는 그 뒤가 무서웠다.
퐁.
병 따는 소리가 들렸다. 문자 알림음이다. 선생님은 문자를 확인하더니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몇 번 눌렀다. 그리고는 들려오는 소리
“우헤헤 현정 동생, 마셔. 우리의 밤은 낮보다 길다고, 자, 한잔 쭈욱 들이켜,”
“네. 언니 하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어요. 우리 예성이 보통 귀한 아들이 아니에요. 우리 예성이는 평산 신…..”
소리가 뚜욱 그쳤다. 그리고 나의 몸도 굳어졌다.
‘이기호 본부장님, 이건 시기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나가야 해.’
위기감이 엄습했다.
“아차, 가스 불에 해장국을 올려놨네. 끓어 넘치겠어. 선생님, 얼른 씻으세요. 해장국 드시고 속 푸셔야죠.”
예성은 쏜살같이 문을 닫고 나갔다. 그리고 다시 빼꼼이 열고서는,
“선생님, 추억이에요. 어디서 그런 명장면을 얻을 수 있겠어요. 참고로 본부장님은 그걸 보시고는 무려 레어 아이템도 아니고 레전드리 아이템을 득템했다고 소리쳤어요.“
예성의 말에 선생님의 얼굴이 붉어지며 핸드폰을 쥔 손은 부르르 떨렸다.
“이….이 기호!! 부셔버리겠어.“
♬빠라 라라라라랄라라~ 빠라 라라라라랄라라~♬예성은 왠지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리는 듯 했지만 작곡했을 때의 느낌은 아니었다.
주방에 들어가 해장국과 깍두기를 꺼내 식당테이블에 놓았다. 이것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 아 공기 밥도 꺼내야지. 어제 장사를 일찍 접어 남는 것이 밥이었다.
“예성이! 엄마가 자꾸 부엌 들락거리지 말라고 했지?”
“엄마, 요즘 남자가 부엌에 안 들어가면 밥 얻어먹기 힘들어.”
“그건 아들이 결혼 했을 때 이야기고, 아직은 아니야. 그런데 아들,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엄마는 한숨을 쉬며 잠시 먼 지평선(?)을 쳐다봤다.
“글쎄. 그건 이 아들도 장담을 못하겠다.”
나도 덩달아 먼 지평선을 쳐다봤다.
사나이 신 예성, 17세, 연애 경험 무, 발렌타인 초콜릿 고백용을 받은 것 무, 우정용으로는 셀 수없이 많음.
“하아, 이게 다 김상우 때문이지. 잘 생긴 놈 옆에 있으면 나정도 생겨도 그냥 친구1이야.”
“그럼 우리 아들 장가 못가면 상우 원망하면 되니? 그런데 요즘 상우 안 데리고 오네.”
상우와 나는 중학교 동창이라 중학교 때만 해도 상우가 자주 우리 집에 놀러왔다. 마찬가지로 나도 자주 놀러갔다. 엄마는 바쁘고 시간 때울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상우는 늘 바쁘지.”
“바쁘기는, 상우 이번에 몇 등?”
예성은 엄마의 물음에 활짝 웃음을 보였다.
“이번에는 내가 이겼어.”
예성의 말에 엄마가 피식 웃었다.
“뒤에서 세 번째인 상우는 얼마나 바쁠까? 네 번째인 아들도 이리 바쁜데?”
“엄마, 고등학생은 뒤에 있는 아이들이라고 한가하지 않거든?”
“그래. 바쁘신 아드님, 밥이나 먹자. 하 선생님, 식사하세요.”
“네. 지금 나가요.”
선생님이 쭈뼛쭈뼛거리며 식탁에 앉았다.
예성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마치 코메디를 보는 느낌이었다. 언니 동생 하던 사람들이 이런 모습이라니. 말해 줘야 할까? 말까?
‘에이, 그냥 있어야지. 왠지 나중에 재밌을거 같아.’
달그락, 달그락.
조용하고 어색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조용한 눈치 싸움. 마치 포커판의 히든카드를 받고 레이스를 걸기 전 모습을 방불케 하는 눈치 싸움이었다.
“어제 은태 왔었다며?”
선생님이 침묵을 견디기 힘이 들었는지 말을 꺼냈다.
“네. 선생님, 그런데 진짜 발 넓으시네요. 방송국 CP도 아시고.”
“뭐? 방송국 사람이 우리 가게에 어제 왔었어? 그런데 난 왜 기억이 없지?”
“엄마는 그전에 잠이 들었으니까 없지.”
굳이 흑역사를 밝히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생님을 보자 선생님도 그 의견에 동의 하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은태가 왔으면 슈스케 이야기 했겠네? 걔가 예전에 그거 처음으로 제작했었거든.”
“네. 들었어요. 3시즌까지 하셨다고 하던데요.”
“그래. 걔가 그 때 고생이 많았지. 일반인들 데리고 방송하느라, 그 당시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많았어.”
“그래요? 어제 그런 이야기는 안하던데?”
“그럼 네 앞에서 그런 이야기 할까?”
“그건 그래요. 어린 아이 앞에서 할 말은 아니겠죠. 그 대신 슈스케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김동욱PD에게 잘 말해준다고 하던데요.”
예성의 말에 연정은 인상을 찡그렸다.
“걔 너무 믿지 마라. 사람은 좋은데 방송은 아니야. 인정사정없어. 직업이니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알지만 은태의 최선이 너에게도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어.”
“그렇게 보이지 않던데······.”
“그러니까 말했잖아. 사람은 좋은데 방송은 아니라고. 애초에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나 은태니까.”
“헐, 그 말이 거기서 나온 거였어요? 예능에서 나온 건줄 알았는데?
“그래. 슈스케에서 나왔어. 그것도 은태가 만든 시즌에서.”
“헐, 그 아저씨 진짜 유명한 사람이었네요.”
“한 때 방송국의 전설이었지.”
“히야! 제가 그럼 어제 엄청난 사람을 만난 거네요.”
“그러네. 좋겠다. 엄청난 사람 만나서.”
선생님이 삐딱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아마도 어제 새로 만든 추억(?)이 맘에 걸리시는 것 같았다.
‘이럴 땐 가만있는 것이 상책이지.’
예성은 이 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나 밥 먹고 외출할거야.”
“응? 어디 가는데?”
“상우 집에 갔다 올게.”
“상우 걔 바쁘다며?”
“응. 그냥 오랜만에 인사나 하고 오려고. 과일도 먹고 싶고.”
“그래라. 가면 안부 전하고. 그런데 의사선생님은 잘 계시지?”
“그렇겠지. 상우에게 다른 말 못 들었으니 별일 없겠지.”
상우의 아버지는 대일병원의 외과 과장님이시다. 그리고 어머님은 그 병원장의 따님. 즉 잘 생긴데다 수저도 금수저로 물고 태어난 것이다.
상우의 집안 사정을 처음 알았을 때 예성은 부럽기도 했고 안 부럽기도 했다. 예성이 상우의 집을 처음 갔을 때 그 크기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신사 같은 아버지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상우는 학대(?)를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상우 어머니의 요상한 입맛 때문이었다. 상우 어머니는 채식 주의자였다. 그래서 상우는 늘 집에서 채소와 과일 위주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상우가 우리 성린 식당에 놀러와 뼈 해장국을 먹고 눈물을 흘릴 때 나도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예성은 상우의 집에 자주 갔다. 상우의 집에는 늘 듣도 보도 못한 과일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우는 항상 예성의 집에 왔다. 고기, 꼬기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상우와 예성의 절친이 되었다.
그리고 난 오늘 오랜만에 상우의 집에 간다. 상우가 집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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