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84
79. 행사! 행사! >
“아! 레이카 누님, 자꾸 이러시면 곤란해요.”
내가 참다못해 한소리 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연습을 하다 보면 꼭 블랙홀이 존재한다. 그래 이 레이카 누나처럼. 그리고 이 누나는 상당히 뻔뻔하다.
마치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니? 한코쿠 와 니혼고 또 니떼이마스가 무즈가시끄.”
이 누나가 지금 뭐라는 거야? 한국어 일본어 나오는 거 보니 못 알아듣겠다는 소린데 어디서 약을 파는 거야?
이 몸은 이미 베트남인의 탈을 쓴 한국인인 띠용 씨를 봐온 지가 몇 년인가? 툭하면 한국어 어려워서 잘 몰라요 라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스킬에는 도가 통한 몸이지. 누나 사람 잘못 골랐어요.
“되지도 않는 일본어 하지 말고 한국말 써요. 이미 한국에 오래 있어서 일본어 아는 것도 몇 개 없으면서, 꼭 불리할 때만 일본어를 써요.
그런 머리 굴릴 생각 말고 박자에 신경을 쓰라고요. 쯧,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몹쓸 것만 배워와서는······.”
띠용 씨가 그랬다.
다문화의 베트남 친구가 놀러 왔는데 베트남어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베트남어를 한국어로 물어보면서 대화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걸 보며 자기 나라말도 안 쓰면 까먹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 말에 다른 일본인인 미나 누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킥킥, 애송이 너무 웃겨. 레이카 집에 전화할 때 생각나서 더 웃겨.”
미나 누나의 말에 다른 누나들도 기억이 떠오르는지 웃음을 지었다.
”누나도 남의 이름 바꿔 부르지 말고요. 그런데 어땠기에요?“
“마마, 파파 이렇게 말하더니 한참 말이 없다가 우리에게 ‘집에 별일 없지가 일본어로 뭐지?’ 이렇게 묻는 거야. 크크크”
“아, 이 누나 못쓰겠네요. 그러면서 뭐래? 한국어가 어려워?”
내가 레이카 누나를 보면서 한심하게 보자 누나는 혀를 찼다.
“쳇! 당황하지도 않네. 재미없게시리.”
“그 재미, 제발 노래에서 찾아요. 이미 다른 외국인이 너무 써먹어서 개그 소재로까지 쓰이고 있는걸 뒤늦게 뭐하는 행동이에요? 제발 프로답게 사세요.”
“아~ 배고프다. 피자는 아직이니?”
레이카 누나는 짧은 티셔츠로 인해 드러난 배꼽주위를 손으로 슬슬 문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게 걸그룹이라니. 앨범을 두 개나 낸 걸그룹이라니, 이건 그냥 동네 백수형이다. 형’
이게 시작이었다.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털썩, 털썩 주저앉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막노동하다가 점심 먹는 것도 아니고 맨바닥에 빙 둘러앉아서 뭐하자는 건데?’
나는 이들의 행동에 드디어 숙소가 왜 그 꼬락서니로 변해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눈은 유일하게 서 있는 요원 누나에게 향했다.
누나는 나의 시선을 피하면서 변명이랍시고 말했다.
“하···. 항상 이렇지는 않아.”
“네. 숙소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네.”
“너 보기 부끄럽다야.”
누나가 전혀 부끄럽지 않은 표정으로 말만 그렇게 했다. 동생의 말이 이해가 된다. 스타는 그냥 스타로 멀리서 보는 게 정답이다. 진실을 알면 덕질할 마음이 사라진다.
비록 팬은 아니지만, 이슬만 먹고살 것 같은 아이돌이 이런 동네 백수형들이라니···.
나중에 아이돌로 변신(?)해서 노래를 불러도 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터질지도 모르겠다.
‘분위기가 피자 먹기 전에는 할 마음이 없구나.’
이런 분위기를 알았는지 석태 형과 군보 형이 문을 밀고 들어 왔다. 그리고 양손에는 피자 네 판이 들려 있었다.
“잘 돼 가고 있냐?”
“이게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석태 형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애들이 너무 긴장한 모습이네. 편해야 연습이 될 텐데.”
“네?”
이게 말이야? 방귀야? 누가 긴장을 해. 말을 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일어났는지 내 뒤에 일렬로 줄을 맞춰서 서 있는 누나들이다.
군인들도 아닌 사람들이 줄도 칼각이다.
“헐, 누나들의 연습생 시절을 보지 않아도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람은 역시 거리를 두고 사귀어야 한다는 것을.
피자가 앞에 놓이자 누나들은 다시 야성의 본 모습을 드러냈다.
피자 한 판이면 되겠죠? 라고 물었을 때 누나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그 한판 받고 한 판 더, 그럼 나도 질 수 없지. 한 판 더, 난 올인이야. 한 판 더를 외쳐 4판이 되었다.
남으면 싸서 가져가 먹을 거라고 말해서 시켰다. 하지만 남을 것 같지 않다.
사는 처지에서야 잘 먹으니 좋기는 하지만 이 누나들 괜찮은 건가?
“그렇게 먹어도 돼요?”
“괜찮아. 먹고, 뛰고, 노래하면 돼.”
“그냥 적당히 먹고 쉬는 게 좋지 않아요?”
“아니야. 한 번 먹을 때 질릴 때까지 먹어야 생각이 안 나지. 그런데 물리지 않아. 큰일이야.”
요원 누나가 손에 피자를 쥐고 있으면서도 피자 판을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네. 제가 봐도 큰일인 것 같아요.”
나는 한 조각을 먹고 말았다. 광고 촬영 때 제대로 물리도록 먹었기 때문이다.
석태 형은 피자를 내려놓고 태블릿만 쳐다보고 있었다.
“형, 재밌는 거라도 있어요? 너무 집중해서 보네요.”
“아니, 공부 중이야.”
“무슨 공부요?”
“지리공부.”
그러면서 나에게 자신이 보고 있던 화면을 보여주었다.
“도로 지도네요.”
“그래. 내가 이번에 행사를 뛰는 게 처음이거든.”
“그래요? 그래도 뭐 길 찾기가 어렵진 않잖아요? 우리에게는 친절한 네비양이 있잖아요.”
내 말에 석태 형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그렇지가 않아. 행사는 매니저의 역량을 시험당하는 자리야.”
“그래요?”
“그래. 넌 그냥 행사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매니저는 긴장의 연속이야. 시간 엄수가 걸렸지. 거기다 도로의 상황은 항상 똑같지 않으니까.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위약금이 생겨. 그러니 과속을 해서라도 제시간에 도착을 해야 해. 위약금보다는 벌금이니까.”
“서···. 설마 이번에 저 목숨 걸어야 하는 상황인가요?”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공부하고 있잖아? 걱정하지 마. 처음이지만 잘 될 거야.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라니 그런 말은 입에 담으시면 안 돼요. 그런데 시간 엄수라 그런 쪽은 생각을 전혀 안 했네요.”
“넌 할 필요 없어. 내가 할 테니까. 그저 내 지시에 잘 따라주기만 하면 돼. 내가 최적의 길로 안내 할 테니까. 이야기 나온 김에 말하자.
운전뿐만이 아니야. 노래가 끝나면 바로 내 지시대로 움직여 줘야 해. 그게 빠져나갈 때 최선의 길이니까.
잘못하다 사람들에게 걸려서 붙잡히면 그만큼 시간이 소모되고 그러면 무리를 할 수밖에 없어. 그러고도 늦을 수도 있어. 괜히 팬서비스 차원이라니 이런 말은 입에 담지도 마.”
“그래도 불러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왔다 갔다는 흔적은······.”
“남기지 마. 예성아, 행사가 하나만 잡히면 그래도 돼. 하지만 두 개 이상이 잡히면 스케줄에 노래 부르고 이동하는 시간에 따라 행사가 잡혀.
그러니 머뭇거리면 늦는 게 당연해져 버려. 돈 벌자고 하는 일에 돈을 쓸 수는 없잖아.”
석태 형은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긴장한 표정이다.
“그렇긴 하죠.”
“내가 미리 말하는데. 너 공연하는 동안 나는 네가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차도 주차장의 상황에 따라 멀리 주차해야 할 수도 있어.
차가 많이 주차되어 주차장이 복잡하면 걷는 것이 더 빠르게 빠져 나갈 수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네. 그런데 넉넉하게 잡으면 좋을 텐데.”
“그게 되겠어? 자기들도 다 정한 시간이 있는데. 대부분 겹치게 잡지. 나에게 좋은 시간은 남들에게도 좋은 시간이니까. 그리고 본부장님이 이번에 최대한 많이 잡을 생각이신가 봐.”
“그래요? 아! 갑자기 왜 그러신데요?”
“이게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기업행사는 평소 행사보다 돈을 더 주나 봐.”
“그래요?”
“그래. 많게는 두 배, 적게는 한 배 반이라고 하더라.”
들으니 자연히 궁금해졌다.
“제 몸값은 얼마나 될까요?”
“너, 1500으로 올라가 있을걸?”
“뭐요? 그렇게 비싸서 누가 써요? 축가에 천만 원이라고 했는데?”
천만 원도 많다고 생각한다. 난 혼자 먹지 않은가? 기획사와 나눠도 600이다. 아! 세금도 있나?
“그거야 축가니까 축가는 행사비용 중에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 축가는 오히려 너 많이 받는 거야. 아마 인원 때문에 그렇게 받는 거지만.”
“그래요?”
‘헐, 돈을 더 준다고 했으니 적게 잡아서 이천만 원이라고 쳐도 다섯 개만 뛰어도 1억이다. 헐, 장난이 아니네.’
기획사와 나누고 하면 더 적겠지만 그래도 남들이 그 돈을 주면서 나를 부른다는 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내 고개가 슬며시 누나들에게로 돌아갔다. 내 눈빛을 받은 요원 누나가 먹던 피자를 삼키며 말했다.
“우리는 얼마냐고?”
“네. 비밀이 아니라면요.”
“뭐 비밀까지야. 2,300만 원인가?”
“많네요. 나누면 적겠지만 그래도 듣기에는 많아요.”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놀고 있는 거야. 그 값에는 차라리 다른 그룹 부르겠다는 거지. 군부대 공연이야 본래 싸니까 그냥 나갈 수 있지만 다른 데서는 가격 협상 자체도 들어오지 않나 봐.”
“그렇군요. 그런데 누나들 이번에 저랑 하면 돈은 준대요?”
“아마 주겠지. 그래도 명색이 코러스잖아.”
“그런데 누나들 먹는 거 보니 밥값도 안 될 것 같은데.”
요원 누나는 내 말에 쥐고 있던 피자를 슬며시 놓으면서 약속된 대사를 그대로 내뱉었다.
“하···. 항상 이렇지는 않아.”
“네. 물론 그러시겠죠.”
피자를 먹고 다시 연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하다가 빠졌다. 나는 아직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3시간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로 누나도 빠지기를 바랐지만, 누나는 올포원 정신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같이 노래를 불렀다.
이런 하루가 저물고 또다시 하루가 지나갔다.
****
행사, 행사하기에 기대가 무척 컸다.
하지만 그 행사는 말 그대로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휑~사였다.
9인승 카니발 리무진을 타고 움직이는데 사람은 11명이다. 레드엔젤 매니저와 심영 누나가 합류했다.
나 혼자 움직이는 거면 모르지만, 여자들은 수시로 메이크업을 손봐야 하기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분명 큰 차지만 유난히 좁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동시간이 빠듯하기에 비좁은 차 안에서 밥을 먹으며 행사를 뛰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xx사의 송년회 자리에 아직 새내기인 제가 초대가수로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모두 가는 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내년에는 더 인기 있는 가수가 되어 다시 이 자리에 초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노래 들려드리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다시 길에 오르기를 반복했다. 어느 곳에서는 두 곡을, 어디에서는 한 곡을 불렀다. 고작 몇 분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몇 분간의 집중력은 정말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항상 기사를 보면 행사에서 욕먹는 이들이 나온다.
큰돈을 들여 불렀는데, 립싱크하고, 춤도 대충이라니. 복장이 평상복이라니. 이런 문제들로 욕을 먹는 이들이 나온다.
그런 사람의 하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런 이를 보고 말았다.
AR(all recorded) 같은 MR(music recorded).
정말 기가 찼다.
한 창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이 그러다니. 피곤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 무성의함이라니.
‘나보다 비싸게 받았을 텐데.’
이게 중요했다. 나보다 비싼 몸들이 대충하는 것을 보니. 배가 아파져 왔다. 너무 날로 먹는 것 같아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명장면이다.
그런 일도 있고, 다른 일도 있었다. 행사장에서 걸스패밀리와 마주쳤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하면 할 수 있었다. 고작 두~세팀이 참여하는 행사에서 만나게 되다니.
일단 아는 사람인 우주 누나가 있기에, 사람이 많아 눈으로만 인사를 건넸는데 누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다시 자신을 가리키며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걸리면 뒤진다. 이런 뜻인가? 라디오 들었나 보네.’
하지만 솔직히 누나와 내가 다신 만날 일이 있을까? 이런 자리에서 설마 나를 어떻게 할 리는 없으니. 그냥 공갈포나 다름없다.
나는 오히려 손을 흔들어 주면서 상큼한 미소를 날려 주었다.
‘분통 터져서 실수는 않으면 좋으련만.’
오후의 늦은 시간이 되자 점점 피곤이 몰려왔다.
노래로 치면 고작 몇 곡이지만 피로감이 장난이 아니다. 마치 오디션을 하루에 몇 번을 보는 느낌이다.
관객들 앞에서 긴장하고 노래하고, 다시 내려와 차에 오르면 긴장이 풀리고, 이런 반복을 하다 보니 쉽게 지치는 것이다.
누나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나보다 더 심해 보였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노래가 아니다 보니 오히려 더 긴장한 느낌이었다.
자신들의 노래면 실수해도 서로 이해하지만 이건 나의 노래다 보니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힘들죠?”
“그래. 그래도 좋아. 가수에게는 박수와 환호 관심이 보약이지.”
요원 누나가 피곤에 절은 얼굴에 미소를 띤다.
“보약 먹은 거치고는 눈이 퀭한데요.”
“이거야 잠을 많이 못 자서 그런 거지.”
“부담감 때문에요?”
“아니, 기대지. 비록 우리가 주가 아니지만, 무대에 서는 건 정말 좋아. 거기다 노래가 정말 좋잖니?”
“그렇긴 하죠.”
“넌 좋겠다.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있으니. ‘그 한걸음’ 정말 좋더라.”
“솔직히 얻어걸린 거죠.”
내 말에 요원 누나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너, 이미 네 앨범 곡을 다 만들었다면서?”
“그냥 멜로디만 그렇죠. 지금 한창 군보 형이 작업하고 있을 거예요.”
군보 형이 고생이 많다. 내가 녹음실에 들려 생각하는 주제와 분위기를 이야기하면 군보 형은 거기에 맞는 악기 소스를 찾아 반주를 만든다.
그리고 곡에 입혀 나에게 들려준다. 그러면 나는 또 추가하거나 고개를 흔들어 다시 부탁하고를 반복하고 있다.
솔직히 불러들이자마자 일을 너무 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군보 형은 편곡자로 이름이 올라가는 그 사실 하나에 만족한다면서 정말 혼을 불사르고 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열성적이라서 걱정이 된다.
“다음에 이 누나에게도 곡을 하나 줘라. 내가 멋지게 불러줄게.”
“…그건 아니죠. 언니. 나부터죠. 내가 그래도 듀엣 멤버인데.”
미로 누나답지 않게 짧은 버퍼링을 거치고 말이 나왔다.
“야, 너희들만 생각해? 차라리 그룹의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
“허, 누나들 일단 회사에서 시켜주지 않을 걸요?”
내 말에 누나들의 입이 약속한 듯 다물어졌다.
“하긴 그렇지?”
누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석태 형을 쳐다봤다.
우리가 이런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석태 형은 혼자 심각했다.
운전하면서 수시로 기획사와 연락을 하고 있었다.
도로 상황 때문이었다.
기획사에서는 지금 실시간으로 우리가 움직이는 도로 상황을 체크하면서 알려주고 있었다. 기획사 입장에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행사를 펑크내면 행사금액의 3~5배의 위약금이 물린다고 한다. 조금 늦는 거야 순서를 조정해주지만, 많이 늦게 되면 그냥 하루 공치는 것이다.
‘하루에 행사가 5개라니, 내가 가성비가 짱이긴 짱인 모양이야.’
아마 누나들의 도움도 크다고 생각했다. 내 잘생긴 외모와 아름다운 누나들의 조합, 거기다 풍성한 노래.
오늘 누나들은 마치 드림걸즈에 나오는 빤짝이 미니 드레스를 입었다.
그것도 형형색색의 색깔별로 입고 있어, 날씬한 다리와 쇄골을 맘껏 뽐내고 있는 차림새다. 그러다 보니 숙소에서 봤던 동내 백수형들과는 차원이 다른 성숙한 여성의 화려함이 있었다.
그런 옷차림 덕분인지 가는 곳마다 노래를 하기전인데도 아저씨들의 흐뭇한 미소가 누나들에게 쏟아졌다.
그런 상황에 누나들과 내가 ‘두고 봐’를 부르자 누나들과 나에게 환호가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 모습을 보자 내 머릿속에서는 이 누나들의 센 언니 콘셉트가 문제인 것 같았다. 짙은 화장과 파워풀한 안무는 아무래도 NG라는 생각이 든다.
‘기획사에서 몰라서 그러는 건가? 알면서 내버려 두는 건가?’
아마 후자이지 않을까 싶다. 대체자원이 많은 기획사가 아닌가?
머릿속에 누나들의 노래를 재편곡해서 센 언니 말고 섹시 콘셉트로 다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해보자.’
나 혼자일 때는 엄두가 안 나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군보 형이 있지 않은가?
‘이건 나에게 또 다른 배움이 될 수 있을 거야.’
음악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발라드는 감성을 노래하고, 댄스는 흥을 노래한다. 그리고 힙합은 이야기를 노래에 담는다.
그리고 작곡이나 편곡이 모두 다르다. 발라드의 멜로디 댄스는 리듬, 힙합은 비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다른 장르를 생각해본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다.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
만드는데 돈이 들지 않는다. 남에게 들려주는데 돈이 들 뿐이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또 차가 멈춘다. 다시 일할 시간이다.
“예성아, 다 왔다. 내려.”
자, 돈을 벌 시간이다.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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