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became the strongest Alba RAW novel - Chapter 72
72화-지금이다
“와! 형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이런 거 먹어 본 적 있어요?”
권호창은 짜장라면 뽀글이를 먹으면서 연신 감탄하고 나에게까지 권했다.
아무거나 받아먹지 말라고 했는데, 하루 만에 경계심이 풀려서 병사들한테 라면을 받아먹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그래, 맛있게 먹어라.”
점심을 먹고 이동 중에 잠깐 쉬는 사이에 뽀글이 해 먹는 걸 배운 모양이다.
국물 라면보다 짜장라면 뽀글이가 더 빨리 먹고 정리하기도 편하긴 하다.
군대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지금 세상이다.
분명히 맛은 있을 거다.
불과 몇 개월 전 내 모습이다.
누가 보면 너도 똑같지 않았냐며 코웃음을 칠 것 같다.
잠시 뒤 나연제의 명령으로 다시 출발했다.
어디를 가는 건지 몰라도 꼬불꼬불 산길로만 계속 이동했다.
일행을 이끄는 나연제는 간호장교이고 각성 직업은 힐러 계열의 마법사라고 한다.
다른 병사들 7명은 모두 소총을 쓰는 총사들이다.
이건 병사들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권호창은 자기가 얻어온 정보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사실 소총을 든 병사들의 직업인 총사는 전사나 기사보다 더 단순한 직업이라 비밀이랄게 없었다.
나연제만 힐러 계열의 마법사라고 모호하게 말했을 뿐이다.
간호장교이자 힐러가 왜 나왔을까 싶었다.
방심하라고 그런 건가 싶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야. 그냥 안내에 적당한 사람을 보낸 거겠지.’
쓸만한 사람이 부족한 세상이다.
적당히 능력 있으면 쓰는 거지 하나하나 따지는 시대가 아니었다.
나연제 말마따나 좀비가 거의 없어서 가는 길은 편했다.
그러니 힐러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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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지는 시간이었다.
일행은 일찍 어두워진 산길을 걸었다.
나연제 일행들이 오면서 머물렀던 작은 마을이 멀지 않았다.
“아우~우~”
컹! 컹! 컹!
늑대 울음소리다.
나흘 전 만났다가 도망갔던 늑대들이 한두 번 우릴 쫓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나연제 일행을 만난 뒤에는 느껴지지 않아서 영역을 벗어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게 무슨 소리야?”
“개야?”
“허스키 뭐 그런 건가?”
이들은 늑대를 본 적 없는 모양이다.
나는 앞으로 나서며 나연제에게 소리쳤다.
“좀비 늑대입니다. 전투 준비하세요. 빠르고 강해요!”
“늑대요?”
내 말에 깜짝 놀란 나연제는 바로 정신 차리고 병사들에게 빠르게 지시했다.
“전투 준비! 길 양쪽에 나무 뒤에 숨어! 지시에 따라 일제히 사격한다!”
지시하며 나연제 자신도 인벤토리에서 소총을 꺼내며 나무 뒤로 숨었다.
컹! 컹! 컹!
나는 도로 가운데 섰다.
“갑옷소환-!”
빠르게 달려오는 늑대가 보였다.
7마리 정도의 늑대가 점점 가까워져 오는 걸 보면 지난번에 도망쳤던 놈들이 맞는 것 같다.
의아했다.
우리 쪽에 인원이 늘어났는데 늑대들은 원군도 없이 왔다.
‘어?’
달려오는 7마리 중 한 마리의 덩치가 조금 더 커 보였다.
한 마리는 늑대가 아니었다.
‘곰이네? 곰이 원군이야?’
“크와아아앙-!!”
가까워지자 좀비 곰은 몸을 일으켜 두 발로 섰다.
2.5m의 곰돌이 갑옷을 입은 나를 내려다볼 정도로 큰 곰이었다.
컹! 컹! 컹! 컹!
늑대들이 입을 벌리고 달려들고 동시에 곰은 커다란 손을 휘둘렀다.
후아아악-!
나는 몸을 낮추고 한발 먼저 뛰어들었다.
곰의 손을 피하고 어깨로 그대로 부딪혔다.
콰앙-!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늑대의 배를 손톱으로 확 긁었다.
콰아악-!
몸이 부딪혀 휘청인 곰은 품 안에 들어 온 나를 팔로 찍으려고 하는데 손톱을 들어 올려 팔뚝을 찌르고 그 상태로 살점을 한 뭉텅이 뜯어냈다.
꽈드드득-!
그 와중에 늑대들은 계속 나를 물려고 이빨을 들이댔다.
“크앙-!”
병사들은 계속 위치를 바꾸며 소총을 쏘고 다시 숨었다.
탕탕탕-! 탕탕탕-!
아무래도 이런 숲에서의 싸움을 많이 해본 것 같다.
소총이 늑대나 곰에게 큰 충격을 주지는 못하지만, 귀찮게는 해주고 있었다.
“크아앙-!”
늑대들은 총알을 맞으며 머리를 흔들고 짜증 부렸다.
늑대나 곰이 덩치도 크고 강해서 그렇지, 숫자로 밀어붙이는 일반 좀비들을 대상으로 싸웠다면 훨씬 더 잘 통했을 것이다.
아무튼 덕분에 늑대들은 총알을 맞으며 멈칫했다.
그때마다 난 빠르게 손톱을 찔러넣고.
콰악-!
늑대의 팔다리는 자르고 살점을 뜯어냈다.
꽈드드득-!
“크허엉-!”
곰이 나에게 몸으로 부딪쳐왔다.
콰아아악-!
곰이 생각보다 빠르긴 하지만 저런 몸통 박치기에 당할 리 없다.
휘리릭-!
몸을 한 바퀴 돌아 피하고 그대로 등에 손톱을 찔러 넣고 등가죽을 확 뜯어냈다.
콰악-! 쫘아아악-!
“크와아앙-!”
등가죽과 근육들이 뜯어진 곰은 피를 철철 흘렸다.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손톱을 찔러넣고 등에 올라탔다.
콰득-!
올라탄 채로 근육과 살점들을 계속 뜯어냈다.
찌이익-!
곰은 손에 잡히지 않는 나를 떼어내려고 몸을 흔들어댔지만, 나는 한 손을 어깨뼈에 박아 넣고 등을 계속 후벼팠다.
꽈드득-!
곰은 나를 떼어내지 못하자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렸다.
“크허어어엉-!”
나무나 바위에 몸을 부딪쳐서 나를 떼어낼 생각으로 커다란 바위를 향해 달렸다.
콰아앙-!
나는 당연히 바위에 부딪히기 직전에 뛰어내렸고, 부딪혀서 정신 못 차리는 곰의 목에 손톱을 박아넣고 그대로 찢었다.
쫘아악-!
“크어엉-!”
비명을 지른 곰은 그대로 쓰러졌다.
나연제와 병사들은 내가 손발을 잘라놓은 늑대들의 숨통을 끊어놓고 내가 곰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와! 진짜 곰 두 마리가 싸우는 것 같지 말입니다.”
“착각할 정도 분홍 곰의 움직임이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분홍색이 좋았습니다.”
“역시, 남자는 핑크지 말입니다.”
“다른 중대 아저씨들이 많이 당했을 만하지 말입니다.”
“그럼, 우리 적인 거 아닙니까?”
“우리가 안내하는 거 보면 그것도 아닌 거 아닙니까?”
곰을 쓰러트리고 갑옷소환을 해제했다.
어디서 잘 숨어 있던 권호창이 쪼르르 나왔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응, 뭐. 다친 사람 없지?”
“예, 제가 다 봤는데, 없습니다.”
“음, 다행이네.”
예전 헤카톤의 경우처럼 처음 만나게 되면 알림음이 울리는데 곰은 그러지 않은 것 보면 어디선가 이미 나타난 적 있다는 이야기다.
좀비나 자이언트, 헤카톤 같은 괴물은 그렇다 쳐도 애니멀은 까마귀나. 개, 고양이 수준이었는데 늑대와 곰들의 맹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중엔 좀비 사자나, 호랑이, 코끼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나연제는 병사들과 주변을 정리하고 출발했다.
난 권호창과 뒤를 따랐다.
곧 숙소로 삼을 만한 빈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 늦은 저녁을 먹고 쉬었다.
***
다음날 출발하고부터는 큰 문제 없이 산만 탔다.
6월 중순인데 지대가 높아서인지 서늘했다.
나연제의 말에 의하면 화천과 철원 사이에 어디쯤으로 간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산이 높아지면서 점점 바위가 많아졌다.
계속 바위가 많은 쪽으로 가는 걸 보면서 어쩌다가 이런 바위산까지 와서 게이트를 찾았는지 궁금했다.
‘애초에 여길 왜 온 거야? 여기 뭐가 있다고?’
오후 늦게 정상 근처에 군용천막들이 쳐진 장소에 도착했다.
나연제는 우리에게 12인용 천막 하나를 안내해줬다.
천막 안에는 군용 야전침대 4개만 놓여있어서 그냥 휑했다.
“잠시만 쉬고 계십시오. 곧 자리를 옮겨 게이트에 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나연제는 인사를 꾸벅하고 밖으로 나갔다.
“형님, 이거 하나 가져가도 될까요?”
“야전침대? 왜?”
“침낭 같은 건 있는데 침대가 없습니다. 원래 침대 생활을 했었어요. 그동안 좀 불편했거든요.”
“이따 나 중위한테 물어보던가, 그게 싫으면 나중에 갈 때 하나 슬쩍 챙기던가.”
“아무래도 물어봐야겠죠?”
“알아서 해.”
나는 야전침대에 누웠다.
누워보니 권호창 말대로 좀 편했다.
‘나도 하나 챙겨가고 싶은데.’
여기에 침낭만 있으면 아주 쾌적한 잠자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살짝 잠이 들었다.
“형님, 가시죠.”
바로 눈을 떴다.
“음, 내가 많이 잤나?”
“아뇨. 얼마 안 됐어요.”
“다행이네.”
낮잠은 짧게 자도 달고 개운했다.
나는 일어나서 천막 밖으로 나왔다.
나연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시죠.”
나연제의 안내를 따라가니 다른 12인용 천막으로 날 이끌었다.
“안에 들어가 보시죠. 저희 지휘관께서 기다리십니다.”
“지휘관요?”
“예, 진웅 씨를 독대하고 싶으시다고 합니다. 들어가셔서 말씀 나눠보십시오.”
중대 정도의 인원이 있어서 당연히 중대장이 있을 줄 알았는데 분위기를 보니 이 강원도 군을 지휘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야기해 볼 만하다.
나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야전침대는 많이 보고 방금도 누워서 자고 왔는데 야전 책상은 처음 본다.
접이식 책상 위에 서류들이 많았고 접이식 의자에 앉은 50대의 군인 그 서류들을 보고 있었다.
장교나 부사관 같은 군인들이 대부분 원래 나이보다 조금 노안이어서 보이는 것보다, 조금 적게 잡아야 맞는 나이가 된다.
눈앞의 군인은 적게 잡아도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군대에서 한두 번 본 장군들과 비슷한 나이였다.
그 50대 군인이 내가 들어가도 나를 보지도 않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간 것도 모를 정도로 집중했나?
아니면 대화 전에 우위를 선점하려고 일부러 무시하는 걸까?
내가 보기엔 후자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뒤돌아서 나가려고 천막 입구를 열었다.
“잠깐!”
나는 한 손으로 입구를 걷은 상태로 고개만 살짝 돌렸고, 50대 남자는 나를 보면 계속 이야기했다.
“성격이 급하군.”
“손님 응대가 별로라서.”
남자는 내 반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응대가 별로라도 나이가 있는데.”
“예의는 주고받는 거야.”
50대 남자는 나를 노려봤고 나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자주 이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하고는 했는데 이번엔 역효과가 났어요. 난 염재섭 대령이고 임시로 강원도 군을 이끄는 사람이오.”
염재섭은 계속 내 눈을 보면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야기했고, 나도 적당히 대답했다.
“난 진웅입니다. 요청받고 왔습니다.”
자기 부하들이 나한테 많이 당했다고 기선제압을 하려던 것 같은데, 예비군한테 함부로 그러는 거 아니다.
대부분 예비군은 병사들에게는 동질감을 느끼지만, 간부나 장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만 해도 누가 내려온다는 소리가 들리면 주변 정리하느라고 불필요한 작업을 많이 다녔다.
그래서 원래도 장교들을 보면 말이 삐딱하게 나오는데 염재섭의 수작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아무리 내 나이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사람이더라도 처음부터 반말은 예의가 없는 거다.
예의는 상호적이라고 배웠다.
특히 지금 같은 세상은 더 그렇다.
“우리가 본 건 처음이지만, 내 부하들이 그 쪽에게 많이 당했잖소. 말이 좋게 나오진 않지.”
“서로 할 일을 한 거죠. 지난 이야기를 하자면 나도 좋은 감정은 아닙니다.”
염재섭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끙, 그 일들은 일단 묻어 둡시다. 어쩌면 이제 할 일이 더 중요 할 수도 있으니까.”
“예, 그러죠.”
“내일 아침에 보면 알겠지만, 게이트는 바로 앞 바위 더미 사이에서 보이오. 바위 사이에서 생기는 거라 불 완전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보이는 것 같소. 오전 9시에 나타나서 5분 안에 사라지고, 가까이 접근하기 힘든 압력이 느껴져서 맨몸으로는 접근이 힘드오.”
“그 압력이 대단한 모양이군요.”
“우리도 엑소슈트를 입은 병사들을 투입 시켜 봤는데 중간에 기절하기 바로 직전까지 갈 정도요. 유지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어떻게 접근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짧았고.”
“결국 실제로 보기 전에는 모르겠네요.”
“내일은 가볍게 살펴보고 그다음에 조금씩 접근해 보는 게 좋겠소.”
“계속 여기에 계시나요?”
“아니, 그쪽 얼굴 보러 온 거요. 한 사흘 정도는 여기 머물 생각이오.”
“알겠습니다. 아침에 보도록 하죠.”
“그러시오.”
나는 천막을 나왔다.
나와서 배정받은 천막으로 가는 동안 다른 병사들의 시선을 느꼈다.
누구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봤고, 누구는 적대감이 느껴지는 얼굴로 나를 슬쩍 봤다.
여기 나와 있는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내 이야기가 알려진 모양이다.
나를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은 일반 소총수가 많겠고, 적대적으로 본 사람들은 엑소슈트나 무동력 슈트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염재섭에게 말한 것처럼, 서로 일하느라 그런 거라 난 신경 쓰지 않는다.
난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지나갔다.
천막으로 찾아 들어가서 아침 일찍 일어나려고 푹 쉬었다.
***
다음날 나는 군인들이 기상하기도 전에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형님?”
“응, 충분히 쉬어서.”
“형님도 게이트가 궁금하시죠? 저는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당연히 궁금하지.”
“그걸 파괴할 수만 있으면 이제는 좀비 걱정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만 되면 좋겠다.”
우리가 일어나서 잠깐 대화하는 사이에 병사들은 기상해서 점호하고 있었다.
천막 사이로 점호하는 걸 보는데 병사들 군기가 바짝 들어 보였다.
염재섭이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점호가 끝나고 병사들이 식사할 때 우리도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형님은 그 솔잎 음료가 정말 맛있습니까?”
“이거? 마시기 시작한 지 몇 개월 안 됐는데, 마실수록 괜찮더라.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야.”
“저는 솔향은 그냥 냄새로만 맡을게요.”
잠시 후 천막 밖에서 나연제가 우릴 불렀다.
“이제 곧 게이트가 보입니다.”
우린 천막 밖으로 나왔다.
나연제가 안내한 곳은 연병장처럼 쓰는 산 중턱 공터였다.
못 보던 간부들과 엑소슈트를 입고 있는 병사들이 바로 앞에 보였고 일반 소총수들은 뒤에 모여 있었다.
염재섭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염재섭은 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커피 한잔하시겠소?”
“아니요. 음료는 충분히 마셨습니다.”
염재섭을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공터 끝을 가리켰다.
“저 공터 끝에 바위 사이에서 게이트가 나타난다오. 나타나자마자 출발하시오.”
“예.”
나연제가 옆에서 거들었다.
“몇 분 안 남았습니다.”
문득 시계도 없는데 정확한 시간을 어떻게 알지 싶었는데 나연제는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었다.
시계는 초침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핸드폰 시계도 안되고 디지털시계도 안 되지만 아날로그 시계는 되는 것 같다.
예전에 동그란 리튬건전지 시계도 작동이 안 되는 걸 확인 했다.
태엽이든 뭐든 건전지 없이 움직이는 시계는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다.
‘일 년 만에 알았네.’
몰랐던 걸 알게 돼서 기분이 좋았다.
시계는 찾아보면 어딘가엔 있을 테니까 앞으로 잘 찾아보면 될 것 같다.
바보같이 이제야 알았지만, 기분이 좋았다.
게이트도 잘 해결될 것 같은 기분이다.
“갑옷소환-!”
슈우웅-! 쿠웅-!
나는 갑옷을 입고 공터에 섰다.
“오!”
“분홍색이다!”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은데?”
“에? 저게 안 이상하다고?”
“저는 괜찮은데 말입니다.”
“저놈이 우리 중대 절반을 날려버린 놈이야?”
“바보같이 생겼는데?”
“생긴 거하고는, 다르다고 하지 말입니다.”
내 갑옷을 본 병사들이 어젯밤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호기심과 적대감이었다.
많이 겪은 반응이다.
무시하며 공터 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공터 끝 바위 사이에 작은 빛이 살짝 나기 시작했다.
후아앙-!
빛은 원을 그리는가 싶더니 원이 커졌다.
후아아악-!
원은 5m 정도의 크기로 커졌다.
빛의 원 안은 시커먼 색이었고 그 안에서 좀비의 형체가 보이더니 좀비들이 밖으로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
하지만 빛의 원, 게이트 자체가 바위 사이에 생겼기 때문에 좀비는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몸이 반이 잘리고 찢어지면서 나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키에엑-!”
‘어쩐지 바위 아래가 빨갛다 싶더니만, 좀비들이 저기서 나오지도 못하고 바로 죽네.’
좀비들은 시체만, 그것도 절반의 시체만 넘어오고 있었고, 바닥에는 피와 체액이 흥건했다.
나는 게이트가 처음 생길 때부터 게이트를 향해 한 걸음씩 걷고 있었다.
쿵! 쿵!
처음에는 문제없이 걸어가다가 원이 완전히 커지자 조금씩 밀어내는듯한 압력을 느꼈다.
쿵! 쿵!
그리고 원 안에서 좀비들이 시체가 되어 나오면서부터 압력이 강해졌다.
‘크윽!’
바람이 분 것도 아닌 데 자칫하면 날아갈 것 같이 밀리는 느낌이었다.
몸을 앞으로 굽히며 한 걸음씩 걸었다.
쿵! 쿵! 쿵!
더 다가가자 앞에서뿐만 아니라 뒤, 좌우 그리고 위아래에서 강한 압력이 가해졌다.
‘이, 이렇게까지 압박된다고?’
깊은 물 속에서나 느껴질 법한 전방위적인 압박에 한 걸음 걷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쿵! 쿵! 쿵!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온몸을 누르는 압력에 숨이 막혀왔다.
‘큭!’
하지만 왠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몇 걸음 남지 않았다.
오늘 꼭 저기에 닿아야 할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한 걸음 더 걸었다.
쿠웅-!
코에서 뜨끈한 액체가 주룩 흐른 느낌이 들었다.
‘코피인가? 설마 콧물은 아니겠지?’
다시 한 걸음을 걸었다.
쿵-!
아까부터 먹먹하던 귀에서도 뜨거운 액체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한걸음 남았다.
손톱을 뽑았다.
스릉-!
‘지금이다!’
동시에 한 걸음 내디디며 빛나는 게이트에다 손톱을 내려그었다.
슈카카칵-!
자르는 느낌이 났다.
슈우욱-!
나를 꽉 누르던 압력들이 한순간 확 사라졌다.
화아아아악-!
압박은 사라졌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진동에 공명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