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27
리아나가 훈련을 도와주기 시작한지 벌써 1주일이 되었다.
오늘 하루 유현은 길거리에서 여유롭게 흔들거릴 생각이었다. 일행에게는 휴식을 취하라고 말한 상태. 훈련이 없는 오늘이 지루하다면 알아서 할 걸 찾아 움직일 것이다.
특히 송가연 같은 경우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러 간 상태였다. 그녀가 빌려오는 책들은 유현도 평상시에 관심 있게 읽으니 이번에는 무엇을 빌려 올지 기대되는 일이었다.
유현은 일단 플레이어들의 휴식터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여관에서 나오고 오래 걸리지 않아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에게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로렐라이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드디어 알아챈 건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알아챈 건데 유현은 주위로 몇몇 눈에 익은 플레이어들이 돌아다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신규 플레이어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신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그들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먼저 소환되었던 플레이어들은 당연스럽게도 신규 플레이어들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장비를 차고 있었다.
유현이 보기에는 여전히 빈약한 장비 상태지만 신규 플레이어들에게는 다르다.
-저, 저기 왜 그러세요?
자신들과 달리 제대로 전투 장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접근하자 그 위압감에 주눅이 든 건지 신규 여성 플레이어들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겁을 먹어 가늘게 떨고 있는 목소리.
말을 걸었던 플레이어는 그게 마음에 든 걸까.
-우리 파티에 들어오는 게 어때? 보아하니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거 같던데. 도와주지.
팔을 붙잡으며 구석으로 유도하고는 천박한 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에서 도와준다는 말이 제대로 된 의미가 아님을 누구든지 알 수 있었다.
-뭐야 저 녀석들···.
-참아. 저 자식들 우리보다 먼저 소환된 놈들이야.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었다. 신규 플레이어들이 대다수인 지금 여기서 자신들 보다 앞서 소환된 이들에게 맞설 수 있는 이들은 많이 없었다.
욕망어린 눈동자지만 거기에 어느 정도 살기가 배어 있다. 주위로 방해하지 말라고 눈을 부라리는 모습에서 대다수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린다. 신규 여성 플레이어의 표정이 시꺼멓게 변하고 있다.
그걸 보며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유현은 호오, 하고 눈을 빛냈다.
비록 신규 플레이어들이 대다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에는 로베리아에서 급하게 건너온 몇몇 레벨 높은 플레이어들이 있다. 지금 여성을 희롱하고 있는 이가 길거리에서 유일한 고렙은 아니었다.
‘구할 생각인건가.’
신규 여성 플레이어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무리를 발견하고서 유현은 조심스레 그들을 관찰했다. 장비 상태는 꽤나 양호하다. 보아하니 실력 좀 있는 무리인 듯 싶다.
신규 플레이어를 희롱하는 플레이어의 팔을 한 여인이 붙잡는다.
“그런 양아치 짓 그만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 플레이어를 그렇게 괴롭히는 걸 보면 질이 나빠도 너무 나빠 보이는 군. 재활용도 안 될 것 같은 쓰레기.”
“넌 또 뭐야. 지금 파티원 영입하는 거 안 보여?”
사늘한 목소리가 늠름하게 주위를 울린다. 살기가 깊게 묻어나오는 여인의 말에 희롱하던 플레이어가 미간을 찌푸리며 여인을 째려봤다.
두 인간의 살기에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며 쳐다본다. 희롱 당하던 여성 플레이어들은 오들오들 떨며 둘의 싸움을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었다.
“영입? 지랄도 적당히 하지.”
여인은 남자의 시선이 전혀 무섭지 않은 지 오히려 은은한 미소를 짓고는 남자의 팔을 붙잡는 손에 힘을 더했다. 남자의 눈썹이 약간 찡그려진다. 아무래도 아픈 듯 싶다.
신음은 내지 않고 그저 입술을 약간 깨문다. 남자는 여인을 노려보는 눈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아픔을 참기 위해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무언가 분간하기 어렵다.
‘생각보다 힘이 높은가 보군.’
겉으로 봐서는 능력치를 제대로 헤아리기 어렵다.
얼핏 보면 어디선가 탤런트라도 할 것 같은 얇은 체형이었다. 밸런스 좋은 몸매에 깨끗한 피부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그런 여인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길거기를 돌아다니다가 한 번쯤 시선이 갈 것 같은 미모 좋은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인의 힘을 남자는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인이 싱긋 웃는다.
“지금 이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있잖아. 그리고 내가 보기엔 그냥 성희롱 하는 걸로 밖에 안 보여. 그러니까 사과하고 당장 꺼지는 게 어떨까?”
“···좇까네. 이 년이.”
그 순간 남자의 손이 움직였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숏소드가 쥐어져 여성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반듯하게 그어지는 섬광이 여성의 얼굴을 벤다.
-꺄아아아악!
-미, 미친!
그것에 일순-.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모두의 비명과 달리 핏물이 흩날리는 잔혹한 결말은 없었다.
여인은 유연성 좋게 등줄기를 휘며 바로 코앞에서 남자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흥!”
남자의 검이 벤 건 여인의 앞머리뿐이었다. 잘려나간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나직이 떨어질 때 쯤 여인이 입 꼬리를 당겼다.
“···그리고 보니 너 그 놈 맞지? 전에도 여자들 희롱하던 쓰레기 말이야. 탐사 중간에 같은 파티원을 강간하려고 했던 쓰레기가 여기에 있다니 정말로 행운이군.”
“지금 여기서 죽여주마!”
거리를 벌리며 자세를 추스르던 남자가 땅을 박찬다. 움직임이 좋다. 하는 행동은 전형적인 양아치였지만 어느 정도 기본이 되어 있는 남자였다. 유현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플레이어들 끼리 일어나는 싸움은 그다지 구경한 적이 없었다. 로렐라이에서 언제나 탐사와 휴식만을 반복해 에이리어에 있던 시간이 많은 탓이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이나 흐름 같은 건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유현이 관심 있는 건 일행의 성장이었다.
빠르게 성장하여 그 누구보다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목표는 심계. 그곳을 위해서는 소수의 정예만이 필요했다.
그래도 아예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유용한 인재라면, 필요한 힘이라고 생각하면,
게다가 무엇보다 플레이어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 놓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을 들고 달려드는 남자를 보고도 여전히 여인은 맨 몸이었다. 그 어떤 무기도 손에 쥐지 않은 채 자세만 취하고는 남자를 노려본다. 남자가 캬캬캬, 하고 웃었다.
“겁에 질린 거냐!”
사고가 무척이나 단순한 놈이다. 유현이 그렇게 생각할 때.
길게 숨을 내쉬며 남자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노려보던 여인이 땅을 박찼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이라도 하는 건지 남자가 기세 좋게 검을 내지른다.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들어오고 있는 찌르기를 보고도 여인은 접근을 멈추지 않고는 둘 사이에 벌어져 있던 간격을 단숨에 좁히고 들어와 한 쪽 발로 바닥을 탕, 하고 내려찍었다.
한 쪽 다리가 달린 기세 그대로 치솟는다.
그리고 싸움이 끝난 건 수초도 안 돼서였다.
뻗어오는 찌르기를 가볍게 피한 채, 보기 좋은 곡선을 그리며 휘둘러지는 여인의 다리가 그대로 남자의 머리 옆에 작렬한 것이다. 빠각, 하는 소리가 선명하다.
머리에 박혀든 일격이 안에 있는 뇌까지 흔든 건지 남자의 눈이 흰자를 드러내며 뒤집혀졌다. 흔들거리는 몸으로 본증적인 건지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무의미하다.
털썩.
입에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지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련하다.
남자는 바닥에 쓰러지고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는 움직임이 멈추었다. 모두가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신규 플레이어들에게는 굉장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무기를 들고 있는 남자를 맨몸으로 제압했다.
그것도 가냘퍼 보이는 여인이 공격을 가볍게 피해내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여인은 모여든 모두의 시선이 부끄럽지 않은 건지 훗, 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고는 등을 돌렸다.
유현은 끝난 상황을 보고는 그대로 무심히 등을 돌렸다.
얼마 안 있어 시끄럽게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 꽤나 거리가 있음에도 선명히 들려온다. 그 모습이 마치 잘 짜인 극장의 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유현은 기분이 나빠졌다.
역시나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인기척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 유현은 길거리를 돌아다닐 생각이다.
그래서 유현은 이렇게 여유롭게 플레이어들의 휴식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목표가 없는 건 아니었다.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사람을 찾는 것.
대정령 파레디아에게 받은 퀘스트를 위해 천설화를 찾아야 했다.
다만 문제는 그녀가 언제 소환되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첫 번째 목표는 막연하게 설정한 목표일뿐이었다. 이루어져도, 안 이루어져도 상관없는.
이번에 소환되지 않은 거라면 다음에 찾으면 된다.
중요한 건 두 번째 부터였다.
‘여관에서 나오는 건 확인했고.’
유현은 아무것도 없을 허공을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어 보았다.
그러자 무언가 닿았다. 아니, 정확히는 유현의 손등 위로 내려앉았다고 하는 게 옳았다.
직후-.
‘제 목소리 들려요?’
호수면 위로 얕은 파장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청아한 송가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은 만족스러운 결과에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잘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