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38
레날드의 제안은 유현에게 있어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플레이어들이 서로 힘을 합쳐 라비락을 토벌한다라.’
파티 단위로 움직이며 그 동안 서로 무시하고 지내던 플레이어들이 라비락을 잡기 위해 모이기 시작한 건 어떻게 보면 기념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레날드가 있다.
말하는 어조로 볼 때 지금의 일을 꾸미고 있는 건 레날드였다.
잠시 고민하듯 말이 없던 유현이 힐끗 레날드의 눈을 마주했다.
“플레이어를 얼마나 모을 생각입니까?”
11개의 파티. 이 세계에서 무언가를 위해 이 정도로 힘을 합친 건 이번이 처음이겠지.
유현의 물음에 레날드는 차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 능력이 되는 한 최대한 많이 모을 생각이다. 이번 토벌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니까. 라비락 놈들을 계속해서 설치게 놔둔다면 그 피해는 힘없는 플레이어들에게 누적된다.”
“힘없는 플레이어들에게 누적 된다···.”
유현의 중얼거림에 레날드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현재 게시판에 올라오는 퀘스트들은 전부 라비락을 사냥하는 퀘스트들 뿐이다. 전투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조금 벅찬 상황인 거지. 라비락 놈들은 어수룩한 이들에게 당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녀석들은 비열하고 지능적이다.”
그 말에 유현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욱이 비전투 플레이어들도 있으니까요.”
“벌써부터 자신들이 수행할 수 있을 만한 퀘스트들이 없어 돈에 허덕이는 이들이 있다. 아직은 소수지만 이런 상황이 오래되면 상당한 숫자로 불어나겠지.”
“흐음. 레날드 씨는 결국 그런 플레이어들을 위해서라도 라비락을 빠르게 처리하고 싶다는 거군요.”
“···그렇게 되는 건가? 잘 모르겠군. 나는 그저 지금 상황이 싫을 뿐이다.”
레날드가 뒤를 돌아보며 퀘스트 게시판 앞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쳐다봤다.
유현은 레날드와의 대화에서 그에 대해 무언가 좀 더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쁜 인간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정의로운 쪽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그 정의로움에 혹해 그의 제안을 무작정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라비락들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는 파악이 된 겁니까? 숫자를 모아봤자 녀석들의 위치를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텐데요.”
레날드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고민 중이다. 이미 많은 파티가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지만 라비락들이 어디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지 쉽게 파악이 안 되더군.”
라비락은 생존력이 강한 녀석들이었다. 이질적인 환경에서도 빠르게 녹아들며 적응해 버린다. 미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런 능력은 필수.
그런 점에서 로렐라이의 에이리어는 그들에게 천국 같은 곳이겠지.
녀석들은 지금 쯤 어디에 숨어 있을까.
지금도 미궁에서 살아남은 라비락들이 슬금슬금 들어오고 있는 걸까. 일단 확실한 건 로렐라이의 에이리어에 상당한 숫자의 라비락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쯤에서 유현은 레날드의 제안을 거절도 찬성도 아닌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레날드 씨의 제안은 잠시 생각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로렐라이에 온 지 하루 밖에 안되서 그런지 조금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군요.”
레날드는 유현의 말에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거절하지 않고 생각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시간은 2주일 정도로 그다지 길게 줄 수는 없다. 어떻게든 빠른 시간 안에 끝낼 생각이니까.”
그건 즉 2주 안에 라비락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낼 자신이 있다는 걸까. 아니면 막연한 각오인 걸까. 유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을 돌렸다.
그런 유현의 뒷모습을 레날드는 한 동안 계속 쳐다봤다.
*
로렐라이의 상황이 어떠한지 단순히 보기만 해서는 크게 동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에이리어에 직접 나와 봐야 했다.
유현의 일행은 충분한 식사 후 곧 바로 움직였다. 사기는 최고조. 오랫동안 훈련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직업이 생기고서 얻은 힘을 대충이나마 다룰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쉬운 일이었다.
현재 그들이 마력에 관하여 할 수 있는 건 느낄 수 있는 정도뿐.
마력을 이용한 신체 강화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개방된 마력을 차금차금 느끼기 시작하면 나중에 스스로도 잘 다룰 수 있게 될 터.
마을에서 나와 에이리어를 가로지르듯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일단 발견인가? 정말 많기는 많나 보네.”
수풀을 조심스레 제치며 길유미가 중얼거린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그곳에는 라비락들이 옹기종기 모여 모닥불 앞에 쐬고 있었다. 녹아들 것같은 표정으로 모닥불의 온기에 쐬는 그 모습이 몬스터들 같지가 않다.
“저러니까 마치 사람 같다.”
이서연이 쓰게 웃었다.
한 놈은 아예 온기에 녹아 졸고 있었다. 무슨 가죽인지 알 수 없는 넝마 같은 옷을 입은 채 옆구리에는 나무 몽둥이를 걸고 있다. 게다가 어디서 주웠는지 모르겠지만 투구까지 머리에 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저분해서 그런지 그 모습이 마치 패잔병 같다.
아니, 실제로 패잔병이라 할 수 있을 거다.
미궁에서 우두머리를 잃고 늑대들에게 쫓겨 다녔을 테니까.
저들은 늑대들에게 패배했다.
“뭐야, 저것들. 너무 경계가 풀려 있는 거 아니야?”
분명 그럴 텐데도 지금 보이는 라비락들의 모습이 워낙 태평해 보여서 기분이 나쁜 건지 길유미가 투덜거렸다. 창을 쥐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뭐, 어때. 그럴수록 우리야 편하지.”
남궁민이 쿡, 웃으며 라비락 무리를 쳐다봤다.
아직 아침 공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숲의 기온은 상당히 낮았다. 가끔씩 스치는 식물의 감촉에서 아침 이슬의 축축함을 느낄 수 있다. 모닥불을 피운 건 아마 이것 때문이겠지.
“벌써 여기에 적응한 듯 싶군요.”
모닥불 앞에 모여 있는 라비락들을 흥미롭게 관찰하던 류트가 턱을 간질이며 웃는다.
벌써부터 자기 땅이라는 것처럼 태평하게 있는 그 모습이 재미있나 보다.
“오빠 어떻게 할 거에요?”
차분한 눈으로 라비락들을 지켜보고 있던 송가연이 나직이 묻는다.
그녀의 말에 다른 일행도 모두 유현을 쳐다봤다.
말만하면 곧 바로 뛰쳐나가 라비락들을 칠 것만 같은 모습이다.
기세는 좋다. 실제로 그만한 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라비락들을 몇 마리 잡겠다고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일단 기다려봐. 저 녀석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좀 지켜보고 싶으니까.”
“에? 어째서요?”
“저거 몇 마리 잡아서 뭐 할 건데?”
유현의 말에 따라 일행은 참을성 있게 라비락들을 기다렸다.
대략 점심 쯤 돼서야 라비락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좋아. 드디어 움직이는 건가?”
따분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하품을 하던 남궁민이 눈을 반짝인다.
계속 한 곳에 자리 잡아 라비락들을 관찰하는 일은 상당히 지겨운 일이었다.
그건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기대하는 눈초리로 일행은 라비락들을 쫓기 시작했다.
“뭐야, 저게.”
그런데 그 후로 라비락들이 보여준 모습은 일행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녀석들은 사냥을 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
사슴과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인 루가르를 사냥하고서 기분이 좋아진 건지 괴성을 지르고는 사이좋게 힘을 합쳐 루가르의 시체를 옮긴다. 그리고서 모닥불을 피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결국 원위치 잖아.”
결국 일행은 원래 위치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날아가자 길유미가 한숨을 쉬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들을 열심히 쫓아다닌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수풀 저편으로 고기를 신나게 물어뜯고 있는 라비락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에 자신들을 훔쳐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싶다.
“저걸 보고 있자니 배가 고프네요.”
남궁민이 자신의 배를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이미 길유미는 육포를 물어뜯고 있었다. 라비락들을 노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길유미는 자신들을 조롱하는 듯한 라비락들이 미워졌다.
“···계속 저 녀석들을 관찰하고 있을 거예요?”
육포를 꿀꺽 삼키며 길유미가 유현에게 물었다.
몸이 근질근질해 보이는 모습에서 유현은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기다려봐. 녀석들이라고 여기에 계속 죽치고 앉아 있지는 않을 테니까.”
유현의 말에 길유미가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서 얼마나 지났을 까.
녀석들은 배를 채우고서 숲을 돌아다니더니 땅을 파기 시작했다. 구덩이 함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또는 바닥에 덫 같은 걸 만드는 등 모든 시간을 함정을 만드는 것에 사용했다.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그러한 작업을 하니 순식간에 주위에는 엄청난 수의 함정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별 볼일 없지만 숫자가 많으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신나게 함정을 깔고 있는 그 모습을 모두 질린 듯한 표정을 하며 쳐다봤다.
그러다가 라비락들도 지친 건지 다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른다.
녀석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저녁이 다 되어 갈 때 쯤이었다.
어둠이 숲에 나지막이 가라앉아 주위가 어둑어둑하게 변해가던 중.
“···이제야 움직이네요.”
라비락들이 갑자기 짐을 챙기며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어둠이 내려앉는 지금 시간이야 말로 자신들의 활동 시간이라는 것처럼 움직임이 재빠르다. 낮 동안 밍기적거렸던 모습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라비락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일행들도 바빠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지금 시간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라비락들을 쫓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송가연이 정령을 소환했다.
송가연의 부탁을 받아 라비락들을 쫓는 바람의 정령의 뒤를 일행이 뒤 따른다.
“도대체 이번에는 뭘 하려는 걸까요.”
송가연이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말했다.
어둠 속을 움직이는 건 라비락들이 더 민첩했다. 밤눈이 밝아서 그런지 쉽게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걸 모두가 알기에 끈질길 게 따라 붙고 있을 때였다.
파아앙!
“꺄아악!”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갑자기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이서연이 비명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