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58
숲을 가로지르는 유현의 움직임은 엄청났다.
주위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작은 질풍이 숲속을 내달리는 것처럼 유현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스쳐지나갔다. 마력을 이용한 신체 강화로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우우우우우웅.
유현은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마검의 떨림에 작게 혀를 찼다.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마검은 더욱 울부짖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듯한 두개골을 울리는 새된 소리에 유현은 힘을 주며 말했다.
“알겠으니까. 닥쳐.”
그러자 마검이 조용해졌다. 유현의 생각을 알았다는 것처럼.
마검이 잠잠해지자 유현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생각했다.
마검이 울고 있다는 건 주변에 마수가 있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하지만 로렐라이에 마수가 있다고?’
마수는 일반적으로 불가해의 영역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얄팍하게 알고 있는 유현의 지식으로는 그렇다.
실제로 미궁을 탐사하면서 마수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지금 로렐라이에 마수가 있다.
그리고 녀석은-.
‘마을을 공격하고 있는 건가.’
공격이 시작된 건지 아직 시작되기 전인지 유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랑샤셴이 보았다는 미래를 생각하면 이미 공격당한 게 아닐까 싶다.
유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물처럼 난잡하게 뻗어 있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엿볼 수 있는 하늘은 붉게 변해 있다. 황혼의 시간이 지나면 이제 곧 밤이 찾아온다.
어둑어둑해지는 시야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에 유현은 표정을 흐렸다.
‘조금 늦은 건가.’
마을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어야 할 방벽이 엉망진창으로 부서져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들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바닥에 흘러 다니는 핏물과 형체를 알 수 없는 고깃덩어리. 바닥에 나돌아 다니는 무기를 볼 때 경비병의 시체가 아닐까 싶다.
이미 핏물이 딱딱하게 굳어 흙바닥에 눌러 붙은 걸 보며 유현은 작게 혀를 찼다.
죽은 지 오래된 시체였다. 아무리 못해 반나절은 지났다.
그 시간은 유현이 라비락 샤먼을 죽인 시간 때.
라비락들을 토벌하고 있는 사이 마을을 습격을 한 건가.
솔직히 말해서 전력을 다해 달려와서 이 정도였다.
토벌을 위해 모인 플레이어들이 이틀 동안 움직인 거리였다.
아무리 따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그런 거리를 반나절 만에 돌파하는 건 유현으로서도 조금 힘든 일이었다. 턱 선을 따라 흐르는 뜨거운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유현은 다리를 멈추었다.
마을의 입구에서 유현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을 내려다봤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이곳이 자신이 알던 마을임을 깨닫는다.
랑샤셴이 보았다는 풍경은 틀린 게 없다.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아직 황혼의 시간이다.
단지 밤이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지만 주위의 풍경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흘러나오는 피와 마치 그것을 비추는 듯한 새빨간 하늘.
그 둘의 조화에 유현은 무심코 헛웃음을 터뜨렸다.
마을 안은 시체로 가득 차 있었다. 짐승들에게 물어 뜯겨 형체도 온전치 않다.
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려 있는 주인 모를 팔과 다리.
짐승의 이빨자국들이 선명히 남아 있는 인간의 몸통을 보며 유현은 안으로 진입했다.
지독한 피냄새가 주변을 돌아다닌다.
뇌 속마저 피 냄새로 회칠하는 듯한 느낌은 유현으로서도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벌써 싸움은 끝난 듯 싶은데.’
마을 안은 조용했다. 수많은 죽음으로 만들어진 침묵 속을 유현은 가로질렀다.
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바닥을 밟자 핏물이 신발 바닥을 뚫고 발목을 적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바닥에는 엄청난 양의 핏물이 흘러 다니고 있었다.
유현은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수십구가 넘는 플레이어들과 병사들의 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드문드문 거주민들의 시체도 보였다.
유현은 시체들을 보며 마을을 습격한 상대가 짐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녀석은 혼자가 아니다. 상당한 숫자의 무리를 짓고 있다.
지천을 뒤덮듯 바닥에 새겨져 있는 짐승의 발자국들.
그게 늑대들의 발자국이라는 걸 유현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녀석들인가.”
발자국을 보며 곧 바로 떠오르는 건 라비락들과 싸우던 늑대들이었다.
다른 발자국들 보다 몇 배는 커 보이는 커다란 발자국은 그럼 그 녀석의 것이겠지.
좀 더 마을 깊숙이 들어가 보니 실제로 늑대의 사체가 여러 구 모습을 드러냈다.
늑대들의 일방적인 학살인 건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저항은 격렬히 한 듯 싶다.
내장을 드러낸 채 죽어 있는 늑대의 사체.
죽어서도 짐승은 섬뜩한 눈빛을 남기고 있었다.
잿빛의 눈동자로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미궁에서 살아온 짐승들은 이렇다. 일반적인 짐승들보다 더 흉악하고 강력했다.
그렇지만 뭔가 조금 이상했다.
“생각보다 시체는 많이 없군.”
마을에 있는 인구수가 대략 어느 정도 되는지 알고 있는 유현으로서는 시체의 숫자 조금 적게 느껴졌다. 분명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일부분에 불과했다.
도망이라도 친 건가.
그 생각을 할 때 쯤 유현은 로렐라이의 게이트웨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게이트웨이는 피투성이였다. 핏물로 손자국들이 덕지덕지 잔뜩 찍혀 있다.
아마 몇몇 이들이 게이트웨이를 통해 도망치려고 했던 듯 싶다.
하지만 실패한 듯 게이트웨이 뒤로 여러 구의 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게이트웨이를 제대로 활성화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게이트웨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거대한 마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안정화 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드는 것이다.
유현은 게이트웨이를 지나쳐 좀 더 깊숙이 들어갔다.
안으로 좀 더 들어와 보니 늑대들의 시체도 상당했다.
그걸 보니 대충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예측은 된다.
초입부분에서는 갑작스러운 늑대들의 공격에 아무런 대처를 못한 거겠지.
뒤늦게 무장을 갖추고서 늑대들에게 반격을 했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이미 꺾인 승패를 되돌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가는 길 도중에는 유현도 조금 눈에 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여관을 사용하던 플레이어들이었다.
꽤나 오랜 시간 똑같은 곳에 머물고 있었으니 의도하지 않아도 얼굴 정도는 기억하게 된다.
하지만 큰 친분은 없었기에 그들의 죽음에도 별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방금 전 본 시체와 멀지 않은 곳에서 유현은 일행이 머물던 여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심스레 여관에 들어가 안을 살펴본다. 역시나 여관 안은 참혹했다.
늑대들은 철저했는지 여관에 머물고 있던 이들까지 전부 깔끔하게 죽였다.
허름했지만 나름 오랜 세월이 느껴져 보기 좋았던 테이블들이 격렬한 싸움의 여파로 전부 부서져 있었다. 그 중에는 일행들이 옹기종기 모여 매일 아침 사용하던 것들도 있다.
그리고 부서진 탁상 위에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있다.
복부가 찢겨져 안에 있던 장기들이 바닥에 흘러넘친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기들은 옆에서 흘러나오는 무기의 주인으로 생각되는 플레이어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보아하니 그다지 저항은 하지 못한 듯 싶다.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유현은 여관에서 나왔다.
여전히 마을은 침묵이다. 정말 다 죽은 걸까.
지금으로서는 남은 곳은 요정이 있는 신전.
유현은 곧 바로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그 어느 곳보다 시체들이 많았다.
사람들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믿을 게 요정 밖에 없다는 걸 알았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발에 밟히는 시체들을 무심히 넘어가며 유현은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과연. 그런 건가.”
신전에 도착하고 나서야 유현은 어째서 생각보다 시체가 많이 안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신전에서 일정 거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손을 뻗는다.
타닥, 하고 허공을 향해 뻗어지던 유현의 손이 무형의 힘에 의해 튕겨났다.
이건 결계였다. 유현의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결계가 만들어져 있었다.
요정의 신전은 어느 정도 크기를 가지고 있으니 사람들이 대피하기에 딱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아마 지금 같은 상황을 고려해서 크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지구로 치면 일종의 방공호인 것이다.
그 동안 본 시체의 숫자를 생각할 때 분명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전부 죽은 건 아니다. 아마 절반 정도는 살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든 결계 안에 있는 이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결계 안에서 무언가 눈치 챘는지 반응이 있었다.
-…토벌대가 돌아온 건가요?
끔찍한 주위의 풍경에서도 흐르는 냇물 같은 청아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요정의 목소리는 아니다.
로렐라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반응하자 유현은 의아한 얼굴로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아직 토벌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당신은 뭐죠?
“마을에 무언가 이상이 생긴 걸 알고 걱정되어 토벌대보다 먼저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토벌대가 돌아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요?
“이틀이겠죠. 라비락 토벌로 인해 쌓인 피로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오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도 당신의 말을 들어보니 라비락 토벌은 성공적으로 끝난 듯 싶군요.
마지막 결과를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어 유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샤먼을 잃은 라비락들이 플레이어들에게 얼마나 저항할 수 있었을까.
그 상태에서 실패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 후로 한 동안 침묵이 지속되자 유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현재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는 겁니까? 요정과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건가요. 현재 제 주위로는 늑대들이 없는 거 같으니 결계를 잠시 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던전의 상황은 요정이 제일 잘 안다. 그래서 유현은 요정과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결계는 열 수 없습니다.
생각지 못한 대답에 유현은 눈썹을 찡그렸다.
-현재 제 힘으로는 결계를 유지하는 게 저의 한계입니다. 한 번 결계를 풀 경우 다시 결계를 구성하는 건 무리라는 이야기죠.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 말에 유현은 요정에게 무언가 일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건 신전의 사제인 걸까.
‘좋지 않군.’
유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 동안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해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