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87
벌써 미궁에 들어오고서 열 두 번째 밤을 가뿐히 넘었다. 시간으로 치면 로렐라이에서 나온지 열흘 정도 되지 않았을까, 유현은 대충 그 정도 짐작했다.
그 동안 유현이 일행을 이끌고 미궁에서 한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모험가의 흔적이 발견되면 조심스레 쫓아 모험가를 사냥했고, 처음 보는 몬스터들과도 지겹도록 싸웠다. 일행의 무기에는 언제나 몬스터나 모험가의 피가 묻어 있었다.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알 수 있는 건 역시 레벨의 변화였다. 이틀에 한 번꼴로 레벨이 올랐으니 일행의 전투 경험이 얼마나 빠르게 쌓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경험치는 곧 전투 경험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유현은 일행을 이끌고 미궁 안을 돌아다녔다. 며칠 간 계속되는 반복적인 흐름에 일행은 익숙해졌는지 어느새 여유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있었다.
“야, 그걸 나한테 떠넘기는 게 어디 있어!?”
“그래서 아까 오늘 저녁에는 내 육포를 양보해 주겠다고 했잖아.”
“헐. 지금 육포 따위로 방금 일을 무마하겠다는 소리야? 남자라면 좀 더 뭔가 걸어봐. 그래야 내가 봐줄까, 말까 생각을 좀 해보지.”
뒤에서 남궁민과 길유미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방금 전 싸움 때문에 그러는 듯 싶었다. 처음부터 보지는 못했지만 정황상 남궁민이 길유미에게 몬스터를 떠넘긴 듯 싶다.
물론 악의적으로 한 행위는 아니었을 것이다. 유현이 소란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을 때는 남궁민의 다급한 표정이 보였었다. 그 얼굴은 명백히 실수 했다는 표정이었다.
아마, 제대로 어그로 관리를 하지 못해 몬스터 한 마리가 빠져나가 길유미의 뒤통수를 쳤던 듯 싶었다. 다행히 랑샤셴이 이상함을 눈치 채고 길유미를 도왔다.
“쟤네들 또 싸우는 군요. 정말이지.. 뭐하는 건지.”
유현의 옆에 있던 송가연은 어이없다듯이 이마를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저 말싸움이 몇 분 동안 이어졌는지 아까부터 시간을 재고 있던 그녀는 머리가 아파왔다.
활기 찬 건 좋은데 그래도 미궁을 탐사할 때만큼은 어느 정도 분위기를 갖추었으면 한다.
하지만 송가연의 이야기를 들은 류트가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뭐, 어떻습니까? 즐겁고 좋은데요. 나름 미궁에 길게 있었는데도 저렇게 활기가 있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 둘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류트. 나는 가끔씩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
송가연은 눈을 약간 치켜뜬 채 류트를 노려봤다. 일행 중에서도 제일 생각을 읽기 어려운 사람 중 하나였다. 첫 번째는 유현이었고, 두 번째는 류트였다.
얼마나 움직였을까.
10분이 넘도록 남궁민과 길유미의 말싸움이 끊이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앞에서 걷고 있던 유현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유현은 자신의 마력에 감지된 것들을 느끼며 일행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했다.
“오빠. 뭔가 발견하신 건가요?”
“아, 그런 거 같아.”
송가연의 물음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익숙한 기척들이었다. 미궁에서 이미 여러 번 싸워 본 놈들로 우라켄이라는 바퀴벌레를 닮은 곤충형 몬스터였다.
녀석들은 미궁의 암석 뒤에 몰래 몸을 숨기고는 했는데 마력을 퍼뜨리면 쉽게 감지되는 놈들이었다. 다만 단순히 눈으로 보면 찾기 어려웠다.
몇 번이나 확인하며 유현은 마력을 거두었다. 위치와 숫자는 대략 파악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암석 뒤에 숨어 있을 테니 먼저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 우라켄인거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가연이 네가 한 번 확인해 볼래?”
“우라켄이요..? 으음..”
우라켄이라는 단어에 송가연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다지 곤충을 혐오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바퀴벌레만큼은 어떻게 참기가 힘들었다. 녀석들의 생태는 물론이고 생긴 것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웠다.
실제로 우라켄은 바퀴벌레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게다가 위험을 느낄 때는 날개를 피며 도망까지 치려고 하니, 날갯짓을 할 때면 모두들 표정을 찡그릴 정도였다.
유현의 말에 정령을 소환하면서도 송가연은 조심스레 물었다.
“꼭 싸워야 할까요? 녀석들과 싸우면 옷만 더러워지는데요.”
게다가 더 혐오스러운 건 녀석들을 죽일 때면 툭툭 뿜어져 나오는 녹색의 체액이었다. 옷에 묻으면 쉽게 떨어지지도 않아 근접전을 하는 남궁민과 길유미가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실제로 이미 우라켄이라는 단어에 남궁민과 길유미 사이에 있던 말싸움이 멈춘 상태였다.
말싸움을 하던 둘은 우라켄이라는 단어에 움찔하고는 서로 눈을 잠시 마주쳤다.
짧은 순간, 서로의 시선 사이에서 많은 것들이 오고갔다.
“…형. 그냥 우리 피해 갑시다.”
“오빠. 꼭 녀석들이랑 싸워야 할까요? 녀석들 말고도 다른 놈들 많은데… 으…”
갑자기 사이가 좋아진 건지 동시에 설득하려 드는 둘의 모습에 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그리고 보면 남궁민 같은 경우는 힘이 강해서 그런지 한 번 체액이 뿜어질 때마다 그 양이 상당했다.
거기서 유현은 다른 일행을 바라보았다.
류트는 지금 상황이 즐거운지 눈이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었고, 활을 다루는 랑샤셴은 우라켄의 체액에서 관계가 없는 입장인지라 담담한 얼굴이었다.
이서연은 그저 남궁민과 길유미를 불쌍하듯이 쳐다봤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이서연은 둘에게 말을 걸었다.
“정 안되면 내가 보호막을 걸어 줄 수도 있는데. 그래줄까?”
“정말? 그럴 수 있어?”
길유미가 이서연에게 매달렸다. 마치 구세주를 바라보는 듯한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 이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려고 할 때 유현이 그녀를 말렸다.
“마력 아까운 일이야. 안 그래도 서연이, 너는 어젯밤에 바로 뻗었는데 그런 식으로 쓸데없는 마력 소비를 하는 건 그다지 좋지 않아.”
“음…네. 유미야, 미안해. 안 될 거 같네.”
“그..그런…”
유현의 말에 곧 바로 설득된 이서연의 모습에 길유미의 표정은 죽어만 갔다. 이서연도 마음이 아픈지 길유미를 살포시 껴안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길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겨우 바퀴벌레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간다는 것도 상당히 웃긴 일이었다.
“그러면 녀석들과 싸우는 걸로 결정한 겁니까?”
지금까지 상황을 방관하고 있던 랑샤셴이 담담히 묻자.
유현은 검을 뽑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빠의 선택이 그렇다면야.”
유현의 선택에 송가연은 어쩔 수 없이 정령을 소환해 우라켄의 위치를 세세히 보고했다.
“…..젠장. 또 갑옷이 더러워졌어.”
“아아아아! 뭔 이런 놈들이 있어! 어째서 미궁에 이런 것들이 돌아다니는 건데!”
풍선이 터지는 것처럼 체액을 터뜨리는 녀석들과의 싸움이 끝나자 길유미와 남궁민이 서로 비명을 지르며 울상을 지었다. 그들의 갑옷에 달라붙어 있는 녹색의 액체들.
얼핏 보면 누군가 녹색 페인트로 장난이라도 친 게 아닐까 싶었다.
다른 일행은 둘의 꼬라지를 보며 안타깝다듯이 쳐다보기만 했다. 냄새도 고약했는지라 가까이 가는 것도 뭔가 꺼려지는 일이었다. 10m 넘게 떨어져 있어도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할 수 있는 건 무언가 닦을 만한 천을 던져주는 것뿐. 이서연이 배낭에서 두 장의 천을 꺼내 남궁민과 길유미에게 차례대로 건넸다.
유현은 바닥에 널려 있는 우라켄들의 내장과 갑각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감지에 걸렸던 것들은 전부 우라켄이었다.
송가연이 먼저 정령을 보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후 일행이 먼저 선공을 가했다. 공격력 자체는 엄청난 놈들이 아니었기에 녀석들을 잡아 죽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우라켄들은 미궁 안에서 몬스터들의 먹잇감 같은 존재들이었다.
바퀴벌레가 단백질이 풍부하다고 하듯, 녀석들도 그러한 듯 여러 몬스터들이 우라켄들을 즐겨 사냥하고는 했다. 가끔씩 미궁 바닥에서 우라켄들의 시체가 발견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쉬운 상대라도 녀석들은 싸움 후가 제일 까다로웠다.
“…냄새 한 번 고약하네.”
유현도 어깨 쪽에 묻은 녀석들의 체액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최대한 깔끔하게 죽인다고 하지만 풍선 터지듯이 체액이 터져나오는 놈들이니 유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류트는 아예 검을 뽑지도 않고 마법만 사용해 학살했다.
어쨌든 필요한 일이었다.
이쪽 길을 계속해서 가야하는데 녀석들을 피해서 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고 갈 수도 없었다. 녀석들도 몬스터인지라 공격 본능은 엄청났으니까.
통로를 가득 채운 채 검은 곤충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는 광경은 떠올리는 것도 싫다. 남궁민과 길유미가 싸우기 싫다고 애절하게 빌었지만 유현도 내심 꺼려지는 상대였다.
“갑옷에 묻은 체액 정령으로 씻겨 드릴 까요?”
유현도 갑옷에 묻은 체액을 닦아내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옆에서 송가연이 구경하듯이 쳐다보고 있더니 말을 걸어왔다.
유현은 그녀의 물음에 깊은 근심에 잠긴 듯한 신음을 얕게 흘렸다.
미궁에 있는 시간이 오래 될수록 마력 관리가 중요했다. 마력은 하룻밤을 잔다고 모두 회복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쓰면 쓸수록 피로는 더욱 누적된다.
단순히 얼굴을 씻는 게 아닌 몬스터의 체액이 깊게 스며든 걸 씻어내는 건 조금 난이도가 있는 일이었다. 그건 즉 마력 소모가 크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더더욱 남궁민과 길유미가 우라켄과 싸우는 걸 싫어했다. 마력 소모가 크다는 걸 아니까 싸울 때마다 계속해서 갑옷과 옷을 씻겨달라고 할 수 없던 것이다.
유현은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남궁민과 길유미, 둘이서 박박 천을 문질러 자신의 갑옷과 옷을 닦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닦는다고 이미 스며든 체액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저걸 보니 뭔가 미안해지는 일이다.
“…..몰래 가능하겠어?”
“아마요.”
유현의 말에 송가연은 믿음직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 작품 후기 ==========
어느새 200화가 멀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