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90
-우우우우우웅.
멀리서 미궁의 괴물이 울부짖는 것처럼 괴상한 소리가 넓게 울려 퍼진다. 한 번씩 그 소리가 크게 울릴 때마다 일행은 가만히 있다가도 몸을 움찔거렸다.
미궁이 비틀리며 내는 소리는 사람의 공포를 자극하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유현은 나름 익숙한 소리였기에 자장가처럼 들려왔지만 다른 사람은 조금 무리인 듯싶다.
…그런데 왜 하필 밤이 되었을 때 소변동이 일어난 걸까.
꽤나 타이밍이 안 좋다. 안 그래도 미궁이 비틀리는 과정을 직접 겪는 건 이번이 처음일 텐데. 밤에 소변동이 일어나는 것만큼 짜증나는 일은 없다.
일행이 소변동에 놀라듯 그건 몬스터들도 똑같았다.
소변동이 일어나면 잠을 자던 몬스터들도 모두 눈을 뜨며 주위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진다. 또는 공포를 느끼며 주위를 뛰어다니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은 두려움 그 자체다. 특히 본능에 충실한 몬스터들에게는 소변동은 끔찍한 재해 같은 존재였다.
소변동이 일어날 때면 주위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야 했다. 특히 밤에 일어나면 잠을 자는 건 완전히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덕분에 소변동이 밤에 일어난다는 건 그 날 밤은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예요? 벌써 10분은 넘게 이러고 있는데.”
계속되는 흔들림이 짜증이 나는지 길유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벌써, 라는 단어를 쓰는 걸로 보아 그녀는 지금도 길게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알까. 아직 이건 시작점에서 겨우 출발한 정도였다.
“소변동이 언제 끝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 하지만 보통은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서 소변동이 끝나는 편이야.”
“네? 30분에에서.. 1시간이요? 그게 정말이에요?”
유현의 대답에 길유미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녀에게는 지금 말한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는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서연도 살짝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겁에 질려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5분 정도가 더 지나며 흔들림의 강도가 심해지자 둘에게서 반응이 나왔다.
“우욱.. 토할 거 같아…”
계속되는 흔들림에 끝내 길유미가 패배를 인정하며 허리를 굽혔다. 손으로 입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그녀의 눈이 핑핑 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서연아.. 나 치료 마법 좀..”
고통스러운 건지 길유미는 이서연을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이서연 또한 길유미와 비슷한 상태였다. 치유 주문을 외우고 싶어도 새파랗게 지린 얼굴을 보면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멀미인가.
소변동에 멀미를 했던 기억이 없기에 유현으로서는 그다지 공감이 가는 모습들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도 흔히 멀미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던 건 길유미와 이서연 뿐만이 아니었다.
좀 더 주위를 둘러보자 구석에서 벽에 기댄 채 호흡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송가연과 랑샤셴의 모습이 들어왔다. 둘도 이서연과 길유미처럼 멀미를 하는 듯하다.
소변동에 여성진들이 전부 전멸하자 보고 있던 남궁민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했다.
“…이거 원래 여자들만 이래요?”
“글쎄.. 아마, 아닐 거야. 그런데 너는 괜찮은가 보네.”
“음. 그런 거 같아요. 원래 멀미를 하는 체질도 아니었고. 실제로 배 같은 걸 타도 전 언제나 괜찮았거든요. 다행히 지금도 멀쩡하나 보네요. 하하.”
남궁민은 웃으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멀미를 하고 있는 여자들을 불쌍하다듯이 쳐다봤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긴 시간 동안 멀미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남궁민은 여자들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남궁민이 여자들을 불쌍한 눈으로 보고 있을 때 류트는 한숨 쉬며 보고 있었다.
“이거 큰일이군요. 설마 여성분들이 전부 저렇게 진동에 약할 줄이야.”
소변동에 온 몸이 휘청휘청 거리는 여자들을 보며 류트는 신음을 흘렸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저들이 저렇게 전투불능 상태가 되면 곤란했다.
이제 곧 몬스터들이 공격을 해올 것이다.
소변동은 몬스터들을 광분하게 만든다. 지금쯤이면 몬스터들이 큰 혼란을 느끼며 여기저기 뛰쳐 다니고 있을 텐데.
류트는 흔들림 속에서도 라이트 마법을 문제없이 유지한 채 비틀리고 있는 통로를 쳐다봤다. 비틀림은 이제 여기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쭉 뻗어져 있던 길이 갑자기 굽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처음 보는 갈림길 같은 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걸 또 한 동안 쳐다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바로 코앞에서 벽이 생겨나 류트의 시야를 가렸다.
갑자기 생겨난 벽과 류트의 거리가 30cm도 안되지만 류트는 놀란 얼굴 하나 없이 생겨난 벽을 관찰하고 있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이렇게 멍 때리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이때 쯤 되면 모두들 모여 있어야 한다. 그걸 류트가 말하려고 할 때 유현도 근처까지 다가 온 비틀림을 눈치 챘는지 일행을 모으고 있었다.
“모두들 힘든 건 알겠는데 가까이 와 주겠어?”
“으읍….”
근처에 있던 길유미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보아하니 말을 할 상황이 아닌 듯싶다. 유현은 활기 없는 길유미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다행히 힘없이 끌려와 주었다. 유현은 길유미를 류트에게 맡긴 채 차례대로 일행을 모았다. 일행을 동그랗게 원 모양으로 모은 유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슬슬 때가 되었는데.”
말이 끝나는 동시에 진동이 한 층 더 심해졌다.
이제는 바로 밑바닥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밑바닥에서 시작된 비틀림은 거미줄처럼 주위로 뻗어나가 주위의 지형을 바꾸고 있었다.
일행이 걸어왔던 길들도 완전히 사라져 전혀 다른 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근처에 있던 샘물도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유현은 혹시라도 지금의 비틀림에 일행이 흩어질까봐 좀 더 조밀하게 모이라고 했다.
사람이 모이자 멀미하던 여성진들이 더욱 괴로워했지만 참으라고 말 밖에 하지 못했다.
미궁이 비틀리는 과정에서 같이 있던 파티원들이 서로 나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걸 유현은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파티원을 잃은 이들을 본 적도 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건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이윽고 한참 동안 진행되던 진동이 잠잠해졌다. 진동이 멈춘 것만으로도 속이 나아진 건지 길유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끝난 건가?”
그녀의 말에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더 남았다.”
“네?”
유현의 말에 그녀가 반문하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준비해 주세요. 녀석들이 옵니다!”
어느새 검을 뽑은 채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던 류트가 소리쳤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 쪽에는 어둠 안에서도 흉흉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는 몬스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달려오고 있는 건 우라켄들이었다.
몇몇 녀석은 아예 날개를 펼쳐 천장에 달라붙은 것마냥 날아오고 있었다.
한 밤중에 우라켄과 싸울 생각을 하니 마치 지독한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다가오는 우라켄들을 보며 길유미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멍한 눈을 여러 번 깜박이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 멍했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시간에 녀석들과 싸울 생각을 하니 머리에 현기증이 났다.
어느새 랑샤셴과 송가연은 멀미를 하던 창백한 얼굴 그대로 다가오는 우라켄들을 공격했다. 쏘아지는 화살과 마법이 우라켄의 딱딱한 등갑을 박살냈지만 수가 많아서 그런지 죽여도 티가 안 나고 있었다. 동족의 시체를 짓밟고 녀석들은 달렸다.
“흠. 아무래도 근처에 우라켄들의 둥지가 있던 거 같네.”
달려오는 우라켄 무리를 보며 유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짜증도, 불쾌함도, 경악도 없는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길유미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오빠. 이거 꿈 아니죠?”
“왜? 볼이라도 꼬집어 줄까?”
유현이 정말로 손을 내밀고 있자 길유미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거절했다.
꿈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다만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그렇지.
길유미는 볼 근처를 씰룩이며 웃음을 흘렸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려고만 한다.
“….망할 바퀴벌레 자식들.”
끝내 모든 걸 포기한 길유미는 창을 꼬악 쥔 채 땅을 박찼다. 이미 그녀의 앞에서 남궁민은 쾌적한 밤을 보내는 건 포기한 듯 하염없는 얼굴로 우라켄들을 박살내고 있었다.
*
미궁 안에서는 밤중에 진행된 소변동으로 인해 소란스러운 반면 고블린 도시 헤이라는 어느 때나 다름없는 평온한 낮을 유지하고 있었다.
헤이라 모험가 길드-.
헤이라 안에 있는 모든 모험가들을 관리하는 곳으로 미궁 도시마다 모험가 길드는 하나씩 있는 게 정상이었다.
언제나 모험가들로 북적이는 길드지만 제일 꼭대기에 있는 층은 언제나 한적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길드를 관리하는 길드장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니 일반적인 모험가는 접근 할 수 없는 특별한 장소였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장소에 한 고블린 모험가가 길드장을 만나고 있었다.
“키릭. 오랜 만이군 카를란.”
“키릭. 오랜 만입니다. 길드장님.”
“거기 편하게 앉아도 좋다. 너는 훌륭한 모험가니까.”
“감사합니다.”
카를란은 길드장의 말에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아무리 클랜장을 맡고 있는 카를란이지만 모험가 길드장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존재였다. 길드장은 그 미궁 도시 안에서 모험가들을 지휘하는 존재.
길드장이 편하게 앉으라고 했지만 카를란은 긴장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모험가 길드장은 커다란 집무용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길게 째진 눈꼬리가 고블린으로서 남자다움을 더하고 있었고, 엘프 못지않게 길쭉한 귀는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예전에 꽤나 경력이 화려했던 양반이라는 걸 카를란은 잘 알고 있다. 눈앞에 있는 고블린은 그저 운 좋게 길드장의 자리에 앉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자신을 부른 걸까. 카를란은 몇 번이나 생각하며 조심스레 길드장의 눈치를 살폈다. 부른 건 저쪽이었으니 이쪽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윽고 손님을 부르고 침묵을 유지하는 건 좋지 않다고 여겼는지 길드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3계층 안에서 많은 고블린들이 실종되고 있다던데 그에 대해 뭔지 알고 있나?”
“………..!”
거기서 카를란은 등줄기가 번개에 수직으로 관통당한 듯한 짜릿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생각보다 기회는 빠르게 만들어졌다, 그 사실이 카를란을 흥분하게 했다.
떨림을 겨우 억누르며 카를란은 길드장의 물음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키릭. 예. 제가 무척이나 잘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