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97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드워프가 멈추자 카를란은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방금 전까지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것처럼 움직이던 양반이 갑자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를란은 조심스레 그의 눈이 향한 방향을 쳐다봤다.
카를란의 얼굴도 드워프처럼 딱딱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바로 앞에 고블린들의 시체가 있었다. 죽은 지 조금 시간이 지나 보인다. 그 동안 시체들이 몬스터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남아 있던 건 기적이라고 해야겠지.
‘싸움의 흔적을 볼 때 역시 그 녀석들인가.’
죽임을 당한 흔적만 봐도 몬스터에게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요즘 들어 고블린들 사이에서 시끄러운 그 녀석들. 미궁의 악마라고 하던가. 초보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네임드 몬스터보다도 더 악명을 떨치고 있는 지족한 놈들이었다.
덕분에 녀석들의 목에 현상금 까지 걸리지 않았던가.
처음에 길드장이 녀석들의 목에 200골드라는 거금을 걸었을 때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시하기에는 이제 당한 숫자가 많이 늘었다.
고블린 모험가들을 공격하고 있는 악마가 미궁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단순히 소문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수많은 모험가들에 의해 미궁 곳곳에서 살해당한 고블린들의 시체가 많이 발견되고 있었다.
“…어째서 이 문양이 여기에 있는 거지.”
한 동안 입을 다물며 시체들을 살피던 드워프가 중얼거렸다.
카를란은 어딘가 근심 어린 그의 목소리에 조금 놀라며 침묵을 유지했다. 카를란의 클랜원들도 드워프의 분위기에서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며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카를란은 생각한다. 어째서 드워프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전멸 당한 고블린 모험가 파티가 불쌍하게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 그건 아니겠지.’
지금까지 보여준 드워프의 태도를 볼 때 고블린 파티가 전멸당한 걸로 눈 한 번 깜박일 양반이 아니었다. 오히려 비웃을 것이다. 카를란이 본 드워프는 그랬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드워프는 바닥에 널려 있는 시체를 보며 긴 상념에 잠기고 있었다.
“쯧. 생각이 바뀌었다.”
드워프가 고개를 든 건 10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원래 미궁의 악마든 악령이든, 그냥 무시하고 가려고 했는데 조금 관심이 생겼구나.”
“…관심이 생겼다고요?”
“그렇다. 녀석을 붙잡아서 물어볼 게 생겼다.”
그건 즉 궁금한 게 생겼다는 것인데. 카를란은 다시 한 번 고블린들의 시체를 살폈다. 하지만 딱히 무언가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그저 보이는 건 처참하게 학살당한 시체들 뿐.
저것들 사이에서 드워프는 도대체 뭘 발견한 걸까.
한 참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데 누군가 카를란의 등을 톡톡 건드렸다.
“키..키릭! 지금 드워프의 말은 우리를 도와준다는 소리인가!?”
카를란에게 말을 건 건 클랜원이었다.
어딘가 잔뜩 기대하는 클랜원의 얼굴에 카를란은 고개를 돌려 힐끗 드워프를 쳐다봤다.
때 마침 이쪽 이야기를 들은 건지 코웃음 치며 대답한다.
“너희를 도와주는 게 아니다. 단지 내가 볼 일이 생겼을 뿐이지.”
쌀쌀맞게 대답하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버린다.
…뭐 어쨌든 좋다.
안 그래도 드워프를 어떻게 해야 이용할 수 있는지 잔뜩 고민하고 있던 카를란에게 있어 지금 이야기는 희소식이었다. 검은 강철의 멤버라면 꽤나 힘 좀 쓰는 양반일 터.
카를란은 슬쩍 입꼬리를 당겼다.
자기가 알아서 관심을 보이니 이쪽 입장에서는 싫어 할 이유가 없었다.
*
섬광.
강력한 힘이 담긴 할버드가 고블린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어깻죽지부터 허리 부근까지 깔끔하게 두 동강 내는 일격에 고블린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상한 바람소리만 낸 채 바닥에 쓰러졌다. 녀석이 들고 있던 검이 바닥을 구른다.
‘젠장.’
마지막 고블린을 힘겹게 쓰러뜨린 남궁민은 표정을 찡그렸다.
결국 이기기는 했는데 어쩐지 시원찮게 이겨서 그런지 별로 기분은 좋지 않았다.
무기를 꽈악 쥐고 있던 왼손에 힘을 푼 채 자신의 몸을 매만진다. 더듬더듬 서서히 올라가던 남궁민의 왼손이 멈춘 곳은 그의 가슴팍이었다.
손끝에 닿는 건 딱딱한 철의 감촉.
지금은 고블린의 핏물로 더럽게 변해 있지만, 잘 닦기만 하면 새하얗게 빛날 것만 같은 멋진 외형의 갑옷이다. 웨블의 자신작으로 남궁민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갑옷이었다.
이 갑옷 덕분에 몇 번이나 위험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 매번 하루를 정리하기 전에 갑옷을 박박 닦아 깨끗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런 갑옷에 큼지막한 상처가 생겼다.
싸우다보면 갑옷에 생채기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남궁민도 그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자잘한 흠집들이 오히려 자신의 노력을 알려주는 것만 같아서 기분 좋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건 조금 틀렸다. 자잘한 생채기 수준이 아니라 남궁민의 목숨을 위협해 올 정도로 큼지막한 상처가 갑옷에 생겨난 상황이었다. 가슴팍에 움푹 파인 선이 그어져 있었다.
만약 방어력이 낮은 갑옷이었다면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를 그런 상처였다.
이 상처를 만들어낸 건 당연히 고블린. 녀석의 검이 희미하게 빛나더니 눈앞이 번쩍이는 순간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무심코 정신을 잃을 뻔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될 정도의 충격.
그 순간 버틸 수 있던 건 남궁민이 가지고 있는 능력 〈역전의 전사〉 덕분이었다.
승리를 확신하며 녀석이 빈틈을 보인 덕분에 그 순간을 간신히 캐치 하여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운이 좋았다. 그렇게 밖에 표현이 안된다.
몇 번이나 방금 상황 속에서 자신이 이길 수 있던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때였다.
“…위험했어. 괜찮아?”
전투가 끝나자 걱정이 된 건지 등 뒤로 이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남궁민은 묵은 숨을 토해내듯 길게 심호흡했다.
‘하핫.. 뭐 하는 거야. 난.’
얼굴에 힘을 푼다. 괜히 굳은 얼굴을 보이면 걱정만 더 하게 할 것 같았다.
“흠. 나중에 웨블을 만나게 되면 꽤나 잔소리를 듣겠군. 어쨌든 이건 운이 좋았어. 조금만 더 날카로웠다면 지금 쯤 바닥에 누워있는 건 너였겠지.”
“그…그런가요?”
전투가 끝나고 유현은 남궁민의 갑옷에 새겨진 상처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유현의 말에 남궁민은 부끄러운지 볼을 긁적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남궁민의 태도에 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딱히 네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어. 검기를 쓰는 상대는 이번이 처음이었을 테니까. 오히려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칭찬하는 어조로 남궁민에게 말을 건네고서 유현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블린 모험가들의 시체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남궁민이 마지막에 상대한 건 파티의 리더가 아니였을까.
검기를 쓸 수 있는 수준이라면 꽤나 실력 있는 모험가라는 뜻이었다. 아직 오러를 쓰지 못하는 남궁민의 입장에서 검기를 쓰는 모험가는 상당한 강적이었겠지.
이서연의 축복을 받아 육체가 강화 되었음에도 남궁민은 모든 게 밀렸다.
그나마 마지막에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유현이 나섰을 거다.
이번 싸움은 꽤나 고전이었다.
랑샤셴은 자기 뒤로 접근해 오던 고블린 도적을 눈치 채지 못해 그 자리에서 심장이 꿰뚫려 죽을 뻔했고, 그걸 송가연이 도우려고 하다가 도리어 큰 부상을 입었다.
아무리 송가연이 정령을 다룬다고 해도 근접전이 강하지는 않았다.
웨블에게서 선물 받은 정령석이 박힌 단검도 있고 해서 무기를 다루는 법이야 계속 가르치고 있었지만…
고블린 도적에게 맞서는 건 조금 무리였나 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송가연이 차분함을 잃지 않고 시간을 끄는 식으로 고블린 도적을 상대했다는 정도. 방어적인 자세로 계속해서 버티다가 뒤늦게 상황을 눈치 챈 유현이 그녀를 도왔다.
전투가 끝난 지금 둘은 이서연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한 동안 지금 상황을 생각하던 유현은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누적된 피로와 갑자기 향상된 고블린들의 전투 능력이 서로 맞물려 지금 같은 피해가 난 듯 싶다.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미궁에 있던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인가.
어느새 치료가 끝난 건지 이서연이 지친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상처가 심할수록 치료 마법에 사용되는 마력이 급증한다. 이서연의 얼굴만 봐도 랑샤셴과 송가연이 꽤나 고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약간의 한숨을 내쉬며 이서연이 유현의 옆에 앉았다.
“으음.. 확실히 저희 목에 현상금이 걸렸다는 게 요즘 들어 많이 체감이 되네요.”
“힘들어?”
이서연의 말대로 며칠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며칠 전까진 유현의 일행이 모험가를 쫓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모험가들이 유현의 일행을 쫓았다.
덕분에 이젠 모험가들을 쫓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저는 괜찮아요. 저야 언제나 애들이 다치면 치료해주는 역할 뿐이니…”
자괴감을 가진 얼굴로 이서연이 말한다.
하지만 유현은 그녀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가호의 축복이며 고블린들이 마법을 사용할 때 타이밍 좋게 방어 마법을 사용해주는 그녀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었다.
유현이 그런 사실을 말하며,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이서연은 기쁜 듯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말이 없던 그녀지만 싸움이 끝나고도 류트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자 관심이 가는지 류트를 쳐다보고 있었다. 현재 류트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유현이 제안했던 표식을 모험가들에게 새기고 있는 것이다.
작업이 끝난 류트가 굽히고 있던 허리를 피자 이서연이 물었다.
“그런데 왜 표식을 남기기 시작한 거예요? 원래 오빠는 남기기 싫어하지 않았나요?”
“네 말대로 원래 좋아하지는 않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저건 미끼거든.”
“미끼요? 모험가들이면 지금도 충분한데…”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원하는 건 고블린 모험가가 아니야. 저걸 알아보는 특별한 놈이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유현은 턱을 괸 채 고블린의 이마를 응시했다.
고블린의 이마에 표식이 있었다. 과연 그 표식을 알아봐 줄까 의문이지만.
한 참 그런 것을 생각한 채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였다.
“….유현 오빠. 뭔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갑자기 송가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