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18
“…………………”
호수 깊은 곳에 잠겨 있던 것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듯 의식이 선명해진다.
가이낙스는 근처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몬스터 따위는 아니다. 3계층의 몬스터 따위가 이렇게 은밀히 접근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둠 속에 녹아들어 은밀히 다가오는 그 기척은 평소라면 눈치 채기 힘들었겠지.
시간이 되어 미궁에 밤이 찾아오자 기감을 최대로 높였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기술을 사용한 건지 모르지만 간신히 감지한 옅은 존재감에 무심코 감탄이 나온다.
기척을 죽이는데 능숙한 다크 엘프들이 저러할까. 만약 다른 미궁에 있었던 거라면 가이낙스는 지금 감지해낸 존재감을 다크 엘프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다크 엘프가 있을리가 없다.
게다가 가이낙스가 누구를 쫓아 왔는지를 생각해볼 때.
‘미궁의 악마인가.’
떠오르는 상대는 역시 하나 밖에 없었다.
미궁의 악마. 그 가증스러운 녀석을 쫓아 가이낙스는 여기까지 왔다.
역시 녀석은 예상했던 대로 밤에 찾아왔다. 그건 정면에서 부딪치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뭐가 되었든 방심은 금물이다.
녀석의 실력을 함부로 예측하는 건 위험한 짓이다.
녀석은 위협적인 놈이다.
가이낙스는 기다렸다는 것처럼 대검을 틀어쥐었다.
손잡이를 힘을 주며 잡아들자 강철 건틀릿이 끼익, 소리를 내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수십kg가 넘는 대검을 가이낙스는 별 어려움 없이 가볍게 든다.
그건 마치 대검이 겉모습을 속이고 안이 빈 가짜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닥에 한 번 닿는 순간 울리는 중후한 쇳소리가 무게의 진실을 알렸다.
그 무게부터는 검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무거운 철덩어리를 검 모양으로 빗어냈다고 하는게 옳을 정도였다.
벤다는 게 아닌 단순히 때려죽인다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검은 무거웠다. 뛰어난 장인의 손길에 날은 날카롭지만 그 진정한 힘은 무게 그 자체에 있었다.
보통의 검사라면 이런 무기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가이낙스는 일부러 이런 무기를 선택했다.
단순히 자신의 힘에 대한 자부심 때문 같은 게 아니었다.
자신의 근본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태생적으로 드워프들은 마력을 다루는 게 미숙했다.
신체를 강화하는 강화계 기술은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도 마력을 외부로 방출하는 방출계 기술들은 다른 종족들에 비해 재능이 없었다.
그건 분명 종족적인 한계였다.
방출계의 기술은 대부분이 검기를 기본 골자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에 재능이 없다는 건 검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소리.
검을 다루는 존재로서 검기를 제대로 발현할 수 없다는 건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굳이 검기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그건 볼품없고, 마력 낭비가 심한 엉터리일 뿐이다.
차라리 실력 좋은 고블린들이 드워프들보다 검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편이었다.
이러한 한계는 마법에서도 나타난다. 마법을 마력을 외부로 끄집어내 이치를 비틀어내는 능력. 하지만 드워프들은 몸 밖에서 마력을 다루는 것에 미숙했다.
어떻게 보면 드워프들의 무력의 한계에는 보기 좋을 정도로 곧게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드워프들은 도구에 의존했다.
마침 그들에게는 뛰어난 손재주가 존재했고, 지성이 존재했다.
종족의 장점을 이용해 그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었다.
가이낙스가 들고 있는 대검도 그러한 것들 중 하나였다.
검기를 제대로 만들어낼 수 없으니 검기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무기를 쓴다.
그 무식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드워프니까 해낼 수 있었다.
“——-”
오는 건가.
옅은 기척이 선명히 느껴진다. 어느새 그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
그리고 갑자기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굳이 보지 않는다. 그저 느껴지는 감각에 의존해 가이낙스는 몸을 움직였다.
빠른 속도로 어둠속을 헤치고 달려오는 악마를 향해 가이낙스는 대검을 휘둘렀다.
“………!”
까아앙, 순간이지만 철덩어리들이 부딪치는 충격에 주위가 환해졌다.
불똥이 튕기며, 주위를 밝히는 찰나의 순간 가이낙스는 인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젊은 인간이었다. 그 사실에 가이낙스는 눈을 가늘게 하며 다음 동작을 이었다.
질풍처럼 휘둘러지는 철덩어리가 공간을 베어 찢는다. 검기가 없더라도 그 자체에 담긴 힘에 주위가 훌렁이며 비명을 지르는 듯한 바람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거친 쇳소리가 나지 않았다.
상대가 단순히 피했기 때문이다.
좋은 선택이다. 만약 막으려고 했다면 그 자체로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었다. 아무리 검기를 사용하더라도 지금 휘둘러지는 대검을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대검이 허공을 갈랐지만 가이낙스는 다급해지지 않았다.
강철처럼 무겁고, 차가운 의식을 유지하며 어둠을 노려본다.
휘둘렀던 대검을 자연스레 허리 밑 하단으로 끌고 오고는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한다.
‘간 건가.’
잠시 후퇴를 한 건지 기척이 다시 옅어지기 시작한다.
밤이 찾아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탓인지 눈으로 녀석을 쫓는 건 불가능했다.
녀석은 악마였다. 어둠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잘 아는 녀석이다. 그러니까 이런 시간에 공격을 해왔겠지. 그 어느 때보다 어둠이 깊어지는 시각. 녀석은 공격해 왔다.
녀석은 다급해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제일 유리할 때를 노리고 온다.
‘관찰하는 건가.’
한 동안 공격은 없이 기척을 죽이고 있자 가이낙스는 더욱 기감을 넓혔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가이낙스의 마력이 악마를 쫓기 위해 스물스물 바닥을 긴다.
하지만 발견은 되지 않는다. 얼마나 멀리 거리를 벌린 건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차가운 식은땀이 이마를 흘러 눈가를 매만질 때였다.
그것은 갑자기 날아왔다.
가이낙스는 땀을 훔칠 겨를도 없이 대검을 움직였다. 그 거대한 대검을 방패로 삼듯 자신의 몸을 가린다. 그러자 대검을 두들기는 충격이 가이낙스의 팔 끝으로 전해졌다.
“……이 비겁한 자식이!”
마치 긴장의 끈을 놓고 있는지 시험해보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단검이 날아왔다.
오로지 심장만을 노리고 날아온 단검에 가이낙스는 치를 떨며 이를 갈았다.
순간이지만 살아났던 녀석의 기척이 다시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에 분노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데 최선을 다한다.
녀석이 노리는 건 이쪽의 다급함이었다.
함부로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녀석은 어떻게든 빈틈을 찾고, 파고들어 목을 물어뜯겠지.
길지 않는 시간. 그 동안 본 결과 녀석은 그럴 놈이다.
그런 녀석의 행동 패턴을 어렵지 않게 꿰뚫으며 가이낙스는 소리쳤다.
“흥! 이래서는 미궁의 악마가 아니라 그냥 하이에나가 아니더냐!”
마력이 담긴 탓일까. 메아리 치는 가이낙스의 목소리가 미궁 저편까지 퍼진다.
이래서는 자고 있던 몬스터가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싸움에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뭐든 좋다.
메아리 치던 가이낙스의 소리가 서서히 사라진다. 가이낙스는 코웃음쳤다.
이런 조롱을 해도 녀석이 반응할 리가 없겠-.
“허어?”
마치 그런 가이낙스의 생각을 비웃듯 녀석이 공격해 왔다.
언제 이렇게 가까이 온 건지 그 사실에 등줄기가 빠득빠득 얼어붙을 것처럼 놀란다. 하지만 그런 놀람도 힘으로 억누르며 가이낙스는 대검을 움직였다.
녀석의 움직임은 놀랍다. 기척을 감지해 내는 순간 바로 코앞까지 와 있다.
하지만 그런 신속을 가이낙스는 힘으로 꺾어냈다.
아무리 빠르게 공격해 와도 그에 대응할 정도의 속도는 가이낙스에게도 존재했다.
오로지 힘으로 만들어내는 무식한 속도가 뻗어오던 악마의 검을 막아냈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가이낙스는 이번에야 말로 녀석을 죽이겠다는 것처럼 거친 고함 소리와 함께 대검을 밀어 넣었다.
콰아아앙-!
선풍을 동반하고 엄청난 무게와 함께 휘둘러진 일격이 미궁의 통로를 부수어버린다.
벤다는 개념을 벗어난 그 일격은 정면에서 맞는다면 즉사에 이르는 공격이었다. 갑옷을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갑옷 째 짓뭉개 부수어버리는 일격.
그런 걸 맞으면 아무리 악마라도 버틸 수가 없다.
하지만 가이낙스의 대검이 부순 것은 애꿎게도 미궁의 벽뿐이었다.
‘피한 건가.’
악마의 기척이 다시 옅어진다.
대검이 가한 충격에 벽에서 균열이 일더니 쿠루룽,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균열은 천장까지 치솟아 벽뿐만 아니라 천장까지 무너뜨렸다.
사방으로 먼지가 인다. 어차피 어둠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다시 오겠군.’
떨어지는 돌덩어리로 소리가 어지럽게 퍼져 나오는 이 순간을 악마가 놓칠 리가 없다.
더욱이 현재 가이낙스는 녀석의 기척을 놓쳐버렸다.
그래도 상관없다.
녀석은 기척을 죽이는데 능숙했지만, 공격을 하는 순간은 기척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말장난 같은 게 아니다. 어수룩한 공격은 이쪽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한 공격을 해야 하는데, 악마라도 그 순간까지 존재감을 지우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지금 녀석의 위치를 잃었다고 하더라도 7m 안팎까지 좁혀오게 된다면 가이낙스는 녀석의 위치를 곧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7m 정도면 한걸음을 움직이는 동시에 녀석을 벨 수 있는 거리.
지금 녀석은 단순히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살살 건드려보며 상대의 힘을 가늠하는 단계.
녀석이 확신을 가지고 전력을 다해 공격해 오는 순간이 기회였다.
서로 전력을 다했을 때 깨부수는 쪽이 이긴다.
가이낙스는 그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것처럼 머릿속에 되새기고는 검을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