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66
란슬렛이 안내한 여관은 제법 깔끔했다. 엄청나게 눈에 띄는 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쁜 것도 없어 보이는 무난한 곳이었다. 한적한 1층을 둘러보며 일행은 여관에 들어섰다.
여관의 이름은 요정의 호수라는 여관이었다.
‘그것보다 손님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데.’
정확히 말하면 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개업을 한지 오래 안 된 걸까.
손님은 없어도 여관 안은 새건물 처럼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자색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묶어 올린 란슬렛의 뒤를 보며 유현은 물었다.
“여관에 다른 사람은 없는 겁니까?”
“음. 뭐 그렇지. 평소에는 개업을 안 하고 있었거든.”
“…개업을 안 하고 있었다고요? 그럼 오늘은 뭡니까?”
“슬슬 일을 해보려고 하니까, 너희들이 보인 거지. 그런데 설마 류트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로베리아 군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그건 즉 우연이라는 걸까.
유현이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데 앞에서 걷던 란슬렛이 빙글 몸을 돌렸다.
“어쨌든, 요정의 호수 여관에 온 걸 환영해. 2층은 남자들이 머무는 곳이고, 3층은 여자들이 머무는 곳이야. 전부 개인실이니까 각자 원하는 방을 아무거나 잡으면 돼.”
“…정말 손님이 없나 보군요.”
“어쩔 수 없잖아. 개업을 오늘 했으니.”
민망함을 숨기듯 란슬렛이 씨익 웃으며 말한다.
유현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윗층으로 올라갔다.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한 층 위인 3층으로 올라갔고, 남자들은 2층에 자리 잡았다.
적당히 복도 끝으로 방을 잡은 유현은 안을 둘러봤다.
1층에서 볼 수 있었던 것만큼이나 방 안은 깔끔했다.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이불도 새 것처럼 새하얀 색을 유지하고 있다. 정말로 오늘 개업을 시작했나보다.
방에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유현은 짐을 풀었다.
짐을 풀면서 유현은 란슬렛에 대해 생각했다.
원정군에 있었던 것 같으니 제법 실력자이기는 할 거다. 잡힐 듯 말 듯한 그 유령 같은 기척이 유현으로서는 꽤나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려한 외모, 하지만 밝고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을 것만 같은 여인이었다.
똑- 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반 쯤 짐을 풀어 놓을 때였다. 류트의 목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벌써, 짐을 다 푼 걸까.
“들어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편안한 차림새를 한 류트가 유현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품속에는 단검 한 자루가 숨겨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는데, 마도병 일 이후로 주위에 대한 경계심을 올린 모습이다.
“벌써 짐을 다 푼 거야?”
“아니요. 그냥 옷만 갈아입고 온 상태입니다. 유현 씨랑 이야기 좀 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이야기라면 역시 그건가.
이른 아침부터 류트가 신전에 들렀던 건 어제 일 때문이었다.
유현은 마도병과 죽이고서 곧 바로 신전에 이야기를 알렸다.
늦은 밤인데도 신전은 빠른 대응을 보여주었다. 유현이 소식을 알리고 몇 분 안 되어 유현과 전투가 있었던 곳에 조사단이 파견 되었을 정도다.
류트가 아침에 신전에 향한 건 조사단의 조사 내용을 전해 받기 위해서였다.
“어제 밤 조사 결과 유현 씨가 싸웠던 주변에서 플레이어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플레이어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유현은 표정을 찌푸렸다. 그리고 보면 그 마도병에게서 피 냄새가 나기는 했다.
그런데 그 피 냄새의 정체는 플레이어의 것이었나.
“마도병이 죽인 것 같더군요. 다만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류트가 눈을 가늘게 했다. 불쾌한 표정.
“녀석은 일부러 플레이어를 가지고 놀다가 죽였다는 겁니다. 시체를 확인해 보니 온몸 여기저기에서 상처가 있더군요. 마치 일부러 치명상만 피해서 공격한 것처럼 말입니다. 죽은 사인도 과다출혈이 아닐까 싶습니다.”
“…….”
“아마, 시체는 더 있을 겁니다. 그래서 현재 계속 조사 중이라고 하더군요.”
“흑마법의 흔적은 발견했나? 그 마도병은 분명 언데드였어.”
류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제들의 이야기로는 흑마법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건 분명 죽은 시체의 몸이었다. 시체를 움직이는 것이 흑마법 말고 다른 게 있던가.
“어쨌든, 이번 일은 로베리아의 군에게 맡기기로 하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쪽에서도 도움을 받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야겠지. 어차피 카르나덴에 온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 말과 함께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짐정리는 모두 끝난 상황이었다.
“어디에 가실 생각입니까?”
“새롭게 들어왔으니 등록을 하러 가야겠지. 길드의 위치가 어딘지 알아?”
로렐라이에서는 신전에서 직접 파티 등록을 했다. 그리고서 미궁의 나침반을 받았고.
하지만 모든 던전이 그런 건 아니었다.
로렐라이가 그랬던 건 단지 로렐라이가 특수했을 뿐이다.
제법 규모가 있는 던전들은 원정대를 관리하기 위한 길드 같은 게 있었다.
흔히 원정대 길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던전 안에서 원정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길드에 들러야 했다.
“으음. 글쎄요. 차라리 란슬렛 누님한테 물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누님이라.. 네가 그렇게 부르니 조금 이상한데.”
류트가 일행을 부를 때는 언제나 이름 뒤에 ‘씨’를 붙였다. 어떻게 보면 정중한 어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행들과 농담을 따먹을 정도로 친해졌음에도 말투는 달라진 게 없다.
“하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란슬렛 누님이, 자신을 누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항상 때렸기 때문에 입에 저절로 붙어 버렸죠. 덕분에 란슬렛 누님만 그렇습니다.”
먼 기억을 회상하며 류트가 허허, 웃었다.
유현은 그걸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꽤나 불우한 어린 시절이었나 보군.”
그러자 류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불우하다고 하기 까지는.. 그냥 란슬렛 누님은 특이한 사람일 뿐입니다.”
어린 시절 류트는 어떤 놈이었을까.
어쩐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유현은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고는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오고 유현은 곧 바로 란슬렛에게 향했다.
그녀는 1층에서 조용히 차를 들이키고 있었다. 꼿꼿하게 허리를 핀 채 무엇을 보는 건지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지만 상념에 잠겨 있다.
그 모습이 제법 그림처럼 보여 한 동안 지켜보고 있다가,
유현은 일부러 그녀가 눈치 채도록 발소리를 냈다.
“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어?”
그녀의 물음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길드에 파티 등록을 하러 가고 싶은데. 위치 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것 때문인가. 알았어. 약도를 그려줄 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종이 한 장을 팔랑이며 가져왔다. 다시 자리에서 앉아 그녀의 펜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유현이 말없이 지도가 그려지는 걸 지켜보던 중,
“그것보다 서로 말 놓는 게 어때?”
약도 그리는 게 끝난 건지 펜촉을 똑똑 두들기며 말했다.
“그러면 그렇게 하지.”
유현은 사양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가 사람과 관계를 쌓는 방법일지도 모르니까.
당분간 머물 게 될 곳이니 여관 주인과 친해지면 편했다.
“자. 그러면 빨랑 갔다 오라고. 비가 올 것 같으니까.”
그녀가 내미는 약도를 받으면서 유현은 힐끗 여관 밖을 바라봤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비가 올 것처럼 밖은 어딘가 어두웠다. 습하다는 느낌도 강했고.
란슬렛이 만든 약도는 나름대로 세세했다.
덕분에 자유 원정대 길드를 찾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유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시에는 활기가 넘친다.
안정적이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져 왔다.
적어도 자신들의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 모습들은 로렐라이에서 봤던 거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고블린의 대대적인 공격 속에서 로렐라이의 거주민들은 나날이 공포에 떨었다.
그 기운은 싸우고 있던 플레이어들과 로베리아 원정군들에게도 절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그 때 로렐라이의 죽음 이후 고생하고 있던 이리샤가 여러 가지로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다지 큰 효과는 없었다. 매일 같이 혈색 좋지 않은 얼굴로 사람들의 공포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는 지금 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로베리아로 돌아오고 난 뒤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약도를 간간히 확인하며 걷던 유현은 자유 원정대 길드를 무사히 발견할 수 있었다.
문은 열려있다. 마치 언제든지 들어와도 좋다는 것처럼.
입구를 보며 약간 망설이고 있는 중에도 여러 사람들이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걸 한 동안 구경하던 유현도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많은 테이블이 있었고, 그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퀘스트 게시판으로 생각되는 곳 앞에서는 파티의 리더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게시판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고심스러운 얼굴로 올라온 내용들을 확인한다.
그 모습을 보니 유현은 이제야 제대로 된 던전에 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매일 같이 무너질 것 같은 탑처럼 삐거덕 거리던, 그런 위태로운 곳이 아니다.
플레이어들보다도 거주민들로 이루어진 원정대가 훨씬 많은 곳.
유현은 피식 웃으며 길드의 접수대로 향했다.
“파티 등록을 하러 왔습니다.”
대충 형식은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유현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잠시 자리를 비운 건지, 접수대에 접수원이 보이지 않아 조금 기다려봤을 때였다.
안쪽에서 사람이 나왔는데 유현으로서는 생각지 못한 인물이었다.
“….유현님?”
이리샤 루베르. 로렐라이의 사제가 어째서인지 길드의 접수원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