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69
모두들 잠든 시간 여성들은 이서연의 방에 모였다. 지겹도록 몬스터 수배지를 읽어보느라 눈이 많이 피곤했지만 결연해 보이는 이서연의 얼굴을 보고서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바람의 여관과 달리 모든 방이 개인실이다. 그 탓일까.
몸집이 작은 여성들이 4명이 모인 것으로도 방안은 비좁게 느껴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뭐야? 빨리 자고 싶은데.”
길유미가 하품을 쩌억 하며 묻자, 이서연은 입술을 달싹이며 망설이더니 힘을 냈다.
“오빠한테 뭔가 선물할 게 없을까?”
“엉?”
아무 생각 없이 말하던 길유미는 눈을 크게 뜨며 하품하던 동작에서 움직임이 멈추었다.
어딘가 진지한 얼굴로 하는 이야기가 무엇을 선물할지라니.
“푸하하하.”
끝내 참지 못하고 길유미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쩐지 이서연답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배꼽을 잡으며 웃고 있는 길유미를 보며 이서연은 얼굴을 붉혔다.
“우우우… 그렇게 웃을 것 까지는 없잖아.”
“하,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진지한 얼굴을 할 건 없잖아. 나는 뭔가 사고라도 친 줄 알았지.”
“나는 진지하다고.”
“뭐야, 그래. 너는 진지하다고 쳐. 그런데 갑자기 선물을 하자는 건 무슨 생각이야? 유현 오빠의 생일이라도 있는 거야?”
만약 유현이 생일이라면 진지해 질만도 하다. 그러면 여기 있는 일행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생일이라면 생일 축하 정도는 해줘야지 않겠는가.
“……….”
“…음. 미안.”
이서연이 고개를 저으며 울 것처럼 표정을 흐리자 길유미는 사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사소한 일로 그녀의 미움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상냥한 사람일수록, 화를 내면 무서운 법이다. 그렇기에 길유미는 이서연의 저런 표정이 더 무서웠다.
“…정말이지. 유미, 너는 배려가 없구나.”
길유미를 보며 한숨을 쉬던 송가연이 입을 열었다.
길유미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찌릿 하고 차갑게 노려보는 송가연의 눈빛은 여전히 무섭다. 말로 싸우면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송가연 아닌가.
“갑자기 선물을 하려고 하는 이유가 뭔가요?”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랑샤셴이 상냥한 목소리로 묻자 이서연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나도 오빠한테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나도?”
이서연의 말에 랑샤셴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누군가 이미 유현에게 선물을 해준 것처럼 말한다.
이서연의 말에 다른 사람도 이상함을 눈치 챘는지 서로 얼굴을 살펴봤다.
유현에게 무언가 선물을 할 사람은 일행 밖에 없을 터.
….하지만 얼굴을 보아하니 모두들 모르는 얼굴이었다.
“뭐야. 도대체 뭔 일이 있던 거야?”
길유미가 풀려있던 얼굴에 힘을 주며 묻자,
“그냥, 누군가 오빠한테 선물을 했더라고.”
“….그거 설마 여자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길유미는 표정을 찡그렸다.
방금 전까지 떠들썩하게 웃고 있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그녀는 진지해졌다.
“흐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적이 나타난 건가. 혹시 누군지 알아?”
그렇게 말하는 길유미의 얼굴은 고블린들과 싸울 때보다 더 험악했다.
“이리샤라고 로렐라이의 사제분이야.”
“호오… 그 언니야? 꽤나 강적이군. 유현 오빠라도 홀릴 만도 해.”
이리샤,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은 전형적인 아름다운 미인이라고 해야 할까. 사제 특유의 신비한 분위기를 품은 채 단아한 분위기는 랑샤셴과도 비슷했다.
어떻게 보면 이서연과 랑샤셴이 적당히 섞인 듯한 여성이었다. 상냥하면서도 차분한 얼굴로 사람을 맞이하던 그 모습은 길유미의 기억에도 제법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숨김없는 길유미의 한 마디에 이서연은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강적이겠지? 나로서는 무리인가..”
“너무 그렇게 기죽지는 마. 네가 그 사람한테 밀릴 게 뭐가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길유미는 약간 표정을 흐렸다.
생각해보면, 남자라는 동물은 전부 성숙한 여인을 좋아하지 않는가.
그런 점으로 따지면 역시 이서연이 밀릴 수밖에 없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 풋풋한 고등학생일 뿐. 길유미는 힐끗 옆에서 조용히 있는 랑샤셴을 쳐다봤다.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고 성숙한 건 랑샤셴이었다. 굳이 드러내지는 않지만 여인으로서의 농염함을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도 랑샤셴이었다.
꾸밀 생각은 없는 건지 수수한 차림새지만 굴곡진 몸매는 숨길 수가 없다.
“랑샤셴은 언니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네? 그.. 그게 말이죠.”
랑샤셴은 갑자기 길유미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몸을 움찔거렸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랑샤셴으로서는 어떻게 대답할 수가 없는.
그렇지만 눈을 반짝이며 기대어린 눈초리로 쳐다보는 이서연 때문에서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밖에 없었다. 랑샤셴은 신음하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최대한 좋은 대답을 하기 위해서,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송가연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이리샤 씨가 단순히 순수한 보답으로서 선물을 한 걸지도 모르잖아. 생각해 보면 우리가 로렐라이에서 많은 고생을 한 것도 사실이고. 특히 유현 오빠라면 더더욱.”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눈치 빠른 사람들은 로렐라이 사태 때 유현이 한 공적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보답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
몇 번 본 적 없지만 착하다, 라는 인상이었던 여성이었으니 단순히 보답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서연은 송가연의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어째서?”
확신하는 얼굴로 부정하니 송가연으로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반듯하게 빛이 서있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송가연은 묻는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어딘가 힘이 빠지는 대답 뿐.
“그냥… 감이라고 해야 할까.”
송가연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허탈한 얼굴을 할 때였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랑샤셴이 눈을 뜨고는 입을 열었다.
“옷이라도 짜주는 게 어떤가요? 그리고 보니 로베리아의 시장에서 뜨개질 도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거랑 조금 모양이 다르기는 하지만 용도는 똑같더군요.”
“오. 그거 나쁘지 않은데요?”
길유미가 감탄하며 말하자, 랑샤셴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힐끗 이서연을 쳐다보니 그녀도 진지한 얼굴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보니 서연이, 이 녀석 학교에서 제법 손재주가 좋았어요. 가정 시간에 뜨개질로 목도리 같은 것도 어렵지 않게 만들던데.”
“그런가요? 역시 손재주가 좋은가 보군요.”
싱긋 웃으며 랑샤셴이 말하자 길유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이서연의 고민이 끝난 것 같아서 송가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걸로 회의는 끝이지?”
“뭐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떠들고 가자.”
옷자락을 붙잡으며 길유미가 말하자 송가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빠 말 잊었어? 오늘은 빨리 자라고 했잖아. 벌써 새벽 2시는 넘었다고.”
“으음.. 그렇기는 한데.”
“내일 아침부터 카르나덴 에이리어를 탐색해 본다고 하는데 빨리 자야지. 내일 늦잠자면 오빠한테 뭐라고 변명할 생각이야? 이제는 정말 자야 할 시간이야.”
“끄응. 그렇게 찌르고 들어오면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없지.”
“…확실이 가연의 말대로 슬슬 잠을 자는 게 좋겠군요.”
항복한 듯 길유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있던 랑샤셴도 길유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서연은 미안한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모두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불러내서 미안. 의견을 내줘서 고마워.”
이서연의 말을 마지막으로 여자들의 비밀스러운 회담은 끝났다.
*
아침이 찾아오자 유현은 곧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1층으로 내려 와보니 음식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여관 주인께서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신경 쓰이는 게 많은 여관 주인이었기에 조금 걱정했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보다.
“좋은 아침.”
“그러게, 좋은 아침이네.”
발소리를 들은 건지 주방에서 앞치마를 한 채 그녀가 삐죽 고개만 내밀어 인사를 하자 유현도 인사했다.
어젯밤 이야기는 그녀도 얼핏 들었을 것이다. 티는 안냈지만 그녀도 그 때 일행과 같이 1층에 있었다. 심지어 무엇을 사냥할지 이야기 하는데 차를 준비해 주기까지 했다.
“아침부터 움직인다고 했던가?”
주방에서 그녀가 말한다. 유현은 그렇다, 라고 말하며 의자를 끌고는 앉았다.
무슨 요리를 하는 걸까. 냄새가 진해진다. 그 덕분인지 배가 조금 울리기 시작했다.
“검은 손톱 쿠와로는 조심하는 게 좋아. 흑마법을 쓴다고 하니까.”
여전히 주방 안에서 나른한 목소리로 그녀는 이야기했다.
녀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까.
결국 어제 유현이 정한 목표물은 처음에 나온 검은 손톱 쿠와로였다.
“알고 있어. 흑마법을 쓰는 녀석이니까 일부러 노리고 있는 거지.”
“흐음? 흑마법을 쓰기 때문에 일부러 노린다고?”
“흑마법에 대해 조금 알고 싶은 게 있거든.”
정확히 말하면 오랜만에 다시 한 번 흑마법을 느껴보고 싶다고 해야 할까.
유현이 검은 손톱 쿠와로를 노리는 건 녀석이 흑마법을 쓰기 때문이었다.
이건 로베리아에서 있었던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흑마법의 잔재를 느끼면, 녀석들에 대해 뭔가 생각나는 게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최고의 요리를 해줄테니 기대해도 좋아.”
그녀의 말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