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96
“즉 결계의 구멍이 생겼으니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건가?”
검은 매 단장, 제니드가 유현의 말을 정리하듯 말했다. 그러자 주변이 시끄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서서히 숨통을 조여 오던 끔찍한 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
그 사실에 죽어가던 얼굴에 활력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다른 의미로 흥분하는 이가 하나 있었다.
“말도 안 되네! 어떻게 이토록 견고한 결계에 간단히 구멍을 낼 수 있다는 거지!? 그건 불가능하네! 저건 분명 리치의 함정이 분명해! 녀석은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힉스 할아범, 제니드가 그렇게 부르던 노인이었다.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노망난 노인처럼 느껴질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노인의 눈은 노망과는 거리가 먼 빛깔을 머금고 있었다.
이번에는 페르시를 손가락질 하며 힉스는 소리쳤다.
“이건 마스터 클래스가 제작한 결계야! 저런 여인이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거지!?”
페르시는 노인의 역정에도 하품을 하는 나태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시시한 듯했다.
페르시는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능한 걸 가능하다고 하는 게 뭐가 이상해?”
“···뭣?”
힉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얼굴이 붉게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페르시는 차가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리고···. 마법사가 되어서 상대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고 있는 거야?”
“·········”
페르시의 말에 힉스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걸로 끝난 건지 페르시는 다시 하품을 하고는 등을 돌렸다. 얼어붙은 힉스를 내버려둔 채 그녀는 사라졌다. 모두들 침묵이 맴도는 가운데 제니드가 어색한 미소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끄응. 이번에는 힉스 할아범이 잘못한 거 같아. 한 번 믿어보자고. 게다가 지금 여기 있는 이 남자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남자고.”
힉스는 달달 떨던 몸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잉···. 그래, 내가 잘못했다. 그 동안 내가 손도 대지 못한 걸 어렵지 않게 해냈다고 하니 쉽게 믿을 수가 있나. 허허. 세상에는 역시 괴물들이 많아. 정말이지 울고 싶군···.”
···그래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줄 아는 노인이었나 보다.
한숨을 푹 쉬며 힉스가 자리를 뜨자 분위기는 한 층 가벼워졌다.
“자, 어쨌든 상황은 알았어. 그러면 이대로 모두 움직이면 되는 건가?”
“네. 결계에서 나가는 길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직 볼 일이 있어서 남을 생각입니다.”
“응? 여기에 남는다니? 무슨 소리야.”
“혹시 정글 안에서 제단을 본 적 있습니까?”
그 말에 제니드의 얼굴이 굳었다. 눈빛이 어둡게 변했다.
“···만약 그걸 찾는 중이라면 포기하는 걸 추천하지. 그 주위로 어마무시한 숫자의 언데드가 지키고 있으니까. 제단으로 가려면 언데드 대군을 뚫어야 하는데 무리야.”
“하지만 제단으로 가야합니다. 리치가 그곳에서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으니까요.”
“···역시 그런가.”
짐작은 하고 있었는지 제니드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잠시 뭔가 생각하듯 고민에 잠겨 있던 제니드가 고개를 들었다.
“좋아. 그러면 제단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하지. 하지만 우선은 환자들부터 결계 밖으로 옮겨야겠어. 이 놈의 결계 때문에 지금 마력탈진으로 의식을 잃은 사람도 있거든.”
“···마력 탈진 말입니까?”
“응. 레벨이 낮은 놈들은 며칠 전부터 이미 뻗어 있는 중이지. 이대로 두다가는 정말로 죽을 거야. 그러니까 이쪽 일이 끝날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겠어?”
“알겠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기다릴 수밖에 없다.
*
조사대들이 마력 탈진으로 인해 고생하는 인원을 결계 밖으로 옮기는 사이 유현의 일행은 제단의 주위를 탐색해보기로 했다. 어떤 상황인지 말로 듣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게 좋다.
결계에 구멍을 낸 건 페르시였기에 안내하는 건 그녀의 일이었다. 덕분에 페르시가 없는 상태로 유현은 제단의 주위를 돌아다녔다.
다행히 제단의 위치는 조사단이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어도 유현은 제단의 모습을 조금도 볼 수 없었다.
근처에 이르자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가 정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거진 나무로 인해 그늘 진 곳에서 녀석들은 붉은 안광을 빛내고 있다.
언데드를 보며 일행은 신음을 흘렸다.
“···오빠, 아무리 봐도 저거 어떻게 뚫을 수 있을만한 수준이 아닌데요?”
“정령으로 조사해 보니 적어도 200m 정도 되는 거리를 뚫어야 해요.”
길유미와 송가연이 차례대로 말한다. 길유미는 질린 듯한 눈으로 언데드를 보고 있었고, 송가연은 언제 소환한 건지 정령을 통해 탐색을 끝내 놓은 상태였다.
송가연의 말에 유현은 역시 조금 무리인가 싶었다.
적어도 한 파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저 언데드 무리를 돌파하는 걸 시도했다가, 중간에 발이 묶이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방으로 둘러싸이면 유현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제단에는 리치가 있다.
제단까지 길을 뚫는데 리치와 싸워야 할 페르시가 힘을 쓰게 둘 수는 없었다.
-숲이 죽어있네. 나무들도 겉모습과 달리 속은 텅 비어 있어. 아마 결계가 사라져도 이 근방은 황토지로 변할 거야. 이미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으니까.
천설화의 어깨 옆에서 날아다니던 파레디아가 슬픈 듯이 말했다. 대정령의 눈으로 보이는 정글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생명력마저 모두 빨아 먹힌 숲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그 때였다.
“으읏···!”
정령을 통해 제단 주위를 탐색하던 송가연이 얕은 신음을 흘렸다.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현은 물론이고 일행 모두가 놀라 물었다.
“무, 무슨일이야!?”
“가연아, 괜찮아?”
“야, 갑자기 왜 그래?”
모두의 걱정 속에서 송가연은 질끈 감고 있던 눈을 힘겹게 뜨며 대답했다.
“누군가 제 정령을 공격했어요.”
-설마 정령이 소멸한 건 아니겠지?
파레디아가 묻자, 송가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행히 공격이 닿기 직전에 역소환을 할 수 있었어요. 다만 덕분에 몸에 무리가 온 거 같지만, 휴식을 취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비틀거리던 몸을 겨우 추스르며 송가연은 제단이 있는 쪽을 노려봤다.
“···리치인 걸까요?”
“아마, 그렇겠지.”
리치 정도라면 정령의 움직임은 쉽게 눈치 챌 것이다. 송가연과 계약을 맺은 정령이 소멸하지 않은 게 정말로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소멸되었으면 큰 피해를 입었겠지.
대충 제단 주위의 상황은 알았다.
‘저 언데드 너머에 리치가 있는 건가.’
강한 기운이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리치의 기운은 아니었다.
결계를 통해 흡수된 마력이 한곳에 집약되고 있는 걸 유현은 감지했을 뿐이다. 전기가 파지직하고 피부 위를 스치는 것만 같은 감각. 이대로 정글 그 자체를 황폐하게 만들 생각인가.
이 기운에 불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좋지 않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유현인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
상황이 급한 걸 아는 건지 결계 밖으로 환자들을 이동시키는 건 빠르게 끝났다.
마력 탈진으로 인해 정신을 잃은 숫자는 60명 정도로, 전체 생존자가 200명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한 숫자였다.
그렇다고 남은 140명이 전부 싸울 수 있는 인원인 것도 아니었다. 정신을 잃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대부분이 탈진 상태였기에 싸울 수 있는 인원은 50명 정도였다.
그 덕분에 제대로 정예들만 선별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결계에 노출이 되어도 싸울 수 있는 실력자들. 실제로 선별된 이들 중에는 익스퍼트도 다수 있었다.
그 누구도 길유미와 남궁민보다 약하지 않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그랬을 거다.
검은 매 단장인 제니드도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는데 다른 이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몸을 이끌고서 그들은 제단으로 향한 길을 열어주기로 했다.
“일단 한 가지 말해두지.”
제니드가 무장을 끝 맞춘 채 유현의 앞에 섰다. 이서연의 몸집만한 대검을 등에 걸고 있는 그는 풀 플레이트 갑옷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한 층 더 커보였다.
이런 정글 속에서도 잘도 저런 장비를 하고 있다.
얼핏 보니 갑옷 안쪽에 룬들이 박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저 룬들이 정글 안에서도 문제없이 저런 장비를 할 수 있는 이유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길을 열어주는 것 뿐이야. 미안하지만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건 불가능하다. 너희들이 제단으로 진입하는 순간 우리는 물러날 생각이다.”
“괜찮습니다. 저희를 기다리지 말고 곧 바로 도시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정말로 갈 생각인가? 저기에는 리치가 있다.”
몇 번이나 확인하던 질문. 유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제니드는 복잡한 심정을 숨기지 못한 채 그런가, 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가 등을 돌리는 순간.
“모두들 리치 녀석에게 한 방 먹여주자고!”
“오오오오오!!”
방금 전의 얼굴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의 말에 주위에 있던 서로 다른 파티의 원정군들이 옹호하며 호응하기 시작했다.
주위로 마력이 흘러나온다. 이번에 모든 힘을 쏟아 붇겠다는 것처럼 모두들 마력을 방출하고 있었다. 여러 마법사들이 혼신을 다해 주문을 외우는 모습은 여러 의미로 장관이었다.
거기서 유현은 일행을 불렀다.
“모두들 준비해. 우리는 단지 달리기만 한다.”
말하면서도 힐끗 페르시를 쳐다본다.
여유로운 분위기다. 격변하고 있는 주위의 분위기와 달리 그녀는 소풍을 나온 것처럼 보인다.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유현도 어깨에 주고 있던 힘이 풀릴 정도였다.
···기대해도 좋은 걸까.
“왜? 걱정 돼?”
유현의 시선을 안 걸까. 그녀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총총 걸어오더니 유현의 코앞까지 다가와 얼굴 옆을 매만졌다. 그녀의 눈은 고혹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예쁜 보석을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취했다가는 끔찍한 일이 있을 것만 같이 오싹하다.
그녀의 장난스러운 손길에 유현은 그 어떤 표정도 하지 않았다.
단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 마디 전할 뿐.
“만약 어려울 것 같다면 돕겠습니다.”
말하면서도 유현은 그녀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필요 없다고 말 할 줄 알았다.
“그래? 그럼 네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지켜봐 볼까. 후흣.”
“그거···. 진심입니까?”
그렇기에 그녀가 생각지 못한 말을 했을 때는 유현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니, 하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띄운 채 그녀는 말했다.
“그 녀석은 내 먹이야.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는 없지.”
몇 번이나 생각하는 것인데 익숙해 질 수 없는 여인이다.
장난스러운 표정은 거짓. 그녀의 눈은 사냥감을 포착한 맹금류를 닮아 있었다.
싸움을 기다리는지 입술을 핥으며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