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00
-커헉! 도대체 어떻게!
유현은 망설임 없이 리치의 몸에 검을 박아 넣었다. 마검은 해골뿐인 녀석의 몸에 박히자마자 탐욕스럽게 힘을 발휘하더니 리치의 영혼을 뿌리째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악!
다시 육체를 벗어나 도망이라도 치려했던 건지 리치가 절규한다. 얼핏 보니 희멀건 연기 같은 것이 육체를 벗어나려다가 도망치지 못하고 마검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검이 집어삼킬수록 녀석의 비명은 더욱 커져만 갔다.
-우우우우웅!
마검이 즐거운 소리를 지른다. 녀석의 영혼이 마음에 든듯하다.
“끝난 건가.”
이윽고 녀석의 비명이 완전히 사그라질 때쯤에서야 유현은 마검을 뽑았다. 그러자 녀석의 몸은 가루가 되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현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다시 리치가 눈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거다.
이 자리에서 녀석은 완전히 목숨을 잃었다.
녀석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에게 최악의 무기가 유현에게 있었다는 걸.
허탈한 웃음을 띄우며 유현은 천천히 등을 돌렸다.
무너진 언데드들 사이로 멍하니 서있는 일행의 모습이 보인다. 유현이 리치를 이겼다는 사실에 감동하거나, 놀란 모습은 아니다. 아까부터 저렇게 서 있었다.
리치가 뿜어낸 회색빛은 광범위하게 주위를 훑어지나갔고, 그 여파는 언데드와 싸우고 있던 일행에게도 닿았다. 정작 유현은 어떻게든 마검을 통해 막는 건 통했지만.
-유현. 이거 어떻게 할 거야?
파레디아가 말하고, 천설화가 시퍼렇게 지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단지 그것뿐으로 천설화는 멀쩡해 보였다. 그녀는 단지 불안해하고 있을 뿐.
역시 대정령의 힘은 대단하다. 리치의 이능도 아무렇지 않게 튕겨냈다.
이쯤 되면 정말 무적의 방패가 아닐까 싶다. 나중에는 천설화를 방패로 공격을 막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이 아닌 진짜로.
마스터의 이능도 튕겨내는 방패-. 그건 분명 전술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힘이었다.
“흐음···. 다행히 죽은 건 같지는 않아.”
유현은 돌상처럼 굳어 있는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 중에서도 이서연의 모습이 제일 먼저 들어온다. 그 찰나의 순간 위험을 눈치 챈 건지 그녀는 보호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토끼같이 커다란 눈을 부릅뜬 채 지팡이를 높이 든 그녀의 얼굴은 필사적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딱 거기에서 모든 동작과 얼굴이 유지되고 있었다.
유현은 그녀의 볼에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는 파레디아를 쳐다봤다.
천설화의 옆에서 눈꽃 결정은 유유히 허공에 떠있었다.
“이거 어떻게 할 수 없는 건가?”
-못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설화를 지키는 것뿐. 너무 큰 걸 바라지 말라고.
“쓸모가 없군.”
-뭐어어어어?
아마, 천설화의 안에서 유현을 찌릿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기에도 개의치 않고 유현은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분노보다도 지금 상황에 대한 한탄이 절로 나오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리치의 이능은 정신 계열인 듯했다. 꽤나 잘 어울리는 능력이다.
예전에 검은 손톱 쿠와로를 잡으러 갈 때도 정신조작을 당한 여자를 만나지 않았는가.
멀쩡한 건 오로지 천설화 뿐. 하지만 여기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리고···. 그건 유현도 똑같았다.
상대를 베고, 파괴하는 건 할 수 있어도 누군가를 치료하는 건 불가능.
이서연이라도 멀쩡했다면 어떻게 기대를 해보겠지만.
냉철함과 차분함을 갖추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유현 또한 천설화처럼 불안한 건 매한가지였다.
파레디아도 그걸 눈치 챈 건지 더 이상 잔소리는 하지 않고 있었다.
가벼운 농담처럼 들렸던 그것은 흔들림을 숨기기 위한 위장-.
그 순간 리치를 죽이지 않고 어떻게든 살려놓을 걸 그랬나 싶었지만 유현은 속으로 가로 저었다. 그건 미친 짓이다. 페르시가 어떻게 죽었는지 유현은 똑바로 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답은 하나였다.
누군가는 이쪽에 남아 일행을 지키고, 다른 한 사람이 도시에 가서 사제를 불러온다.
지키는 건 유현이 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천설화 혼자 도시에 돌아갈 수 있을까?
유현은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천설화를 쳐다봤다.
-···어떻게 하죠? 라고 묻는데.
“글쎄. 나도 방법은 없는데.”
무엇보다도 마스터의 이능이다. 포션이나 해주마법을 푼다고 해결이 되는 걸까.
짙은 한숨이 서로 몇 번이나 되풀이 하고 있을 때였다.
“흠흠. 내가 좀 도와줄까?”
이 목소리가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믿기 어렵지만 이 나른한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는 유현은 곧 바로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일까.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분명 놀랍지만.
“···페르시에게 노출증이 있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한 번 쯤 쥐어보고 싶을 정도로 풍만스러운 가슴을 가느다란 팔로 겨우 가린 채 나체 상태로 세상에 모습을 뜨러내고 있었다. 유현이 빤히 쳐다봐서 일까.
“너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거 아니야? 변태도 아니고 말이야.”
페르시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볼을 긁적였다. 그 모습은 평범한 여인내의 것이었지만 그 동안 봐왔던 것이 있어서 그런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쓱 피하자 페르시는 뭐가 좋은 건지, 꺄르르 웃었다.
“농담이야. 보고 싶으면 마음껏 봐. 어차피 닳는 것도 아니고. 내가 평소에 로브로 가리고 있어서 그렇지 이래봬도 몸매에는 자신이 있거든. 그것보다 놀랐어?”
“놀라지 않으면 거짓말이겠죠. 어째서 나체인 겁니까?”
“···내가 나체인 게 신기한 거야?”
농담이었지만 페르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대로 그녀는 변함없는 도도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가슴을 가리던 팔을 내리며 다가오니 유현으로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곡옥같이 새하얀 피부.
그녀는 자신의 치부를 거리낌 없이 내보이며 걸어왔다. 모델 워킹마냥 부끄럼없는 걸음. 그 덕일까 옆에 있던 천설화가 얼굴을 붉히며 유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힐끔 보니 그녀의 눈이 말한다.
시선을 피하라고. 유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름 귀한 광경이다.
페르시는 그대로 유현의 옆을 지나치며 일행에게 갔다.
그리고 거기에는-. 페르시의 시체가 있다.
유현은 눈을 가늘게 한 채 페르시의 시체와 살아 움직이는 페르시를 번갈아 쳐다봤다.
기분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뭐, 뭐야.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
천설화는 아예 볼을 꼬집으며 현실을 회피하고 있었고, 파레디아도 적잖이 당황했다.
역시 페르시는 죽었었다. 리치의 지팡이 가슴이 뚫려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꿰뚫린 가슴에서 피는 울컹울컹 흘러나왔고, 그 주위의 바닥을 붉게 칠했다. 유현이 직접 그녀의 죽음을 확인했고, 이서연 또한 그녀를 죽었다고 판단했다.
끊김 호흡. 메마른 눈동자. 그것은 분명 시체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건 뭐지. 그녀는 살아있다.
언데드처럼 되살아났다는 것도 아니고 아예 새로운 몸으로.
“궁금한가 보네.”
페르시는 죽은 자신의 시체의 눈을 애달픈 미소를 지으며 감겨주고는 말했다.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지만 유현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 초간 뜸들이던 그녀는 읏샤, 하고 몸을 일으켰다. 풍만한 가슴이 흔들린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몸을 돌리고는 유현을 쳐다봤다.
그나마 그녀의 기다란 분홍 머리카락이 가슴을 가려주고 있어 시선을 피하지 않아도 되었다. 페르시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 언저리 부분을 가리키고는 가볍게 웃었다.
“이건 일종의 호문클루스라는 거지.”
“···호문클루스 말입니까?”
호문클루스라는 건 유현도 잘 모르는 존재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생명체. 유현이 알고 있는 건 대충 이정도 뿐이었다.
그리고 보면 리치도 검은 짐승을 보며 호문클루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페르시는 무엇인걸까. 눈앞에 있는 건 유현이 알고 있는 페르시가 맞는 걸까.
“아, 오해는 하지 마. 단지 기존에 만들어놨던 새로운 육체에 원래 내 영혼이 들어온 거 뿐이니까.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네가 알고 있는 내가 맞아.”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으음. 가능하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있는 게 아니겠어? 너도 봤잖아. 내가 죽은 걸.”
···그래. 보았다.
하지만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건.
“···페르시. 당신은 죽음을 초월했다는 겁니까?”
리치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허탈해 할까.
리치가 죽음을 초월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유현의 마검에 죽었다. 발버둥치며 도망쳤지만 그는 마검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을 뿐이다.
“아니, 그런 엄청난 건 아니고. 나도 이게 끝이야. 이제 남은 육체는 없어. 지금 이 몸도 원래는 내 여동생이 나한테 선물해 준 거였거든. 미친 년 같으니. 언니한테 새로운 몸이라면서 이런 걸 어떻게 선물할 수 있던 걸까.”
도대체 페르시의 여동생은 어떤 여자였던 걸까.
지금까지 들은 것만으로도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그런 여자 같았다.
“그러면 새로운 육체가 생긴다면 계속 살아날 수 있는 겁니까?”
“에이. 설마. 뭐, 해본다면 몇 번은 되살아나겠지만 결국 내 영혼이 버티지 못할 거야. 지금도 이미 충분히 무리를 했는걸?”
“···무리를 했다는 건?”
“레벨이 초기화 된 거랑, 몇 가지 기억을 잃은 정도? 몇 가지 더 있겠지만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네. 점차 알아나가야겠지.”
가볍게 웃으며 말하지만 그건 절대로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그리고···.”
순간이지만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아무래도 이 몸은 혼자서 유지할 수 없는 거 같아. 계약자가 필요해. 애초에 호문클루스로서 만들어진 몸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치우며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보여주었다.
문양은 초승달처럼 생겼는데 색이 붉었다. 마치 페르시의 눈동자처럼. 붉은 초승달은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그려져 있었다. 유현은 초승달이 낙인처럼 느껴졌다.
“내가 라이칸슬로프들을 소환한 거 봤었지?”
“그게 라이칸슬로프들이었습니까?”
라이칸슬로프는 수인족과는 조금 달랐다. 뱀파이어와 같이 마의 힘을 다루는 종족. 얼핏 보면 수인족들과 다를 게 없지만 본질은 완전히 다른 종족이었다.
“뭐,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고. 어쨌든 그것들 전부 호문클루스거든? 원래는 이성이 없는 놈들인지라 명령을 내려줄 주인이 필요해. 계약을 위한 각인이 바로 이거지.”
페르시는 자신의 가슴골에 그려져 있는 각인을 가리켰다.
그걸 보고 있자니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그게 왜 당신에게도 있는 겁니까?”
잠시 말이 없던 페르시지만 차가운 얼굴을 하고는 대답했다.
“···. 미친 여동생 때문이지. 아마 녀석은 내가 죽으면 나를 호문클루스로서 이용하려고 한 거 같아.”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동생인 걸까.
그녀의 여동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데 페르시는 당돌한 제안을 해왔다.
“어때. 내 계약자가 되어보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