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99
-클클. 마지막에 방심을 하다니. 너무 전형적인 스토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 채 리치는 말한다. 녹색 안광이 페르시를 조롱하듯 빛나고 있었다. 해골인지라 무슨 표정을 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대충 유추는 된다.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정말로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네.”
당장이라도 페르시가 장난을 쳤다며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일어나 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무리한 일이겠지. 그녀의 심장은 리치의 지팡이에 의해 파괴되었다.
아무리 그녀가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리치가 아닌 이상 심장이 파괴되었는데 살아날리가 없다.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최후가 아닐 수가 없다.
‘쯧. 귀찮게 되었어.’
솔직히 말해서 유현도 방심은 하고 있었다. 페르시의 마법은 멋지게 리치를 날려버렸으니까. 정말로 그 몸을 통째로 소멸시킨 거겠지. 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말이다.
그 광경을 보고도 리치가 살아있을 거라고는 유현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일격에는 몸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죽는다.
하지만 그런 걸 맞고도 살았다는 건 리치가 그 만큼 끈질길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런 걸 감안해도 이건 너무 바퀴벌레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지금 웃으며 떠들고 있는 리치는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위압감을 생각하면 많이 가벼워졌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몸은 페르시에게 완전히 소멸되어서 그런 건지 지금 그는 볼품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딱 봐도 저건 쿠와로의 해골이었다.
아무래도 마지막 순간 그는 육체를 버렸나 보다. 그리고 바닥에 널려 있는 쿠와로의 해골을 새로운 육신으로 삼은 건가. 유현은 마검을 쥐었다.
그 순간 페르시의 가슴에 박혀 있던 지팡이가 푹 뽑히더니 리치의 손에 돌아갔다. 페르시의 핏물이 지팡이를 타고 리치의 앙상한 손가락을 물들이고 있었다.
유현은 그걸 보며 차가운 눈을 했다. 페르시의 죽음에 감정의 흔들림은 없다. 단지 현실을 받아들일 뿐. 그녀의 죽음에 슬퍼하거나 한탄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가볍지가 않다.
녹색 안광을 흔들며 리치는 물었다.
-나를 상대하겠다는 건가?
“그 상태라면 나쁘지 않겠는 걸.”
유현은 검을 중단까지 끌어올린 채 검끝을 녀석에게 향했다.
-껄껄 그러면 잘 해보게. 마침 잘 되었군. 설마 여기서 마왕의 유물을 두 개나 얻을 수 있을 줄이야. 안 그래도 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마검 눈여겨보고 있었다네.
“마왕의 유물이 두 개라는 건 무슨 소리지?”
유현은 눈썹을 찡그렸다.
리치가 마왕의 유물을 알아보았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방금 말을 가볍게 들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뭘 의미하는 거지.
-내가 어째서 지금 같은 일을 벌인다고 생각하는가?
“던전을 파괴하기 위해서.”
-사실 그럴 생각도 어느 정도 있지만 그건 부가적인 일이라네. 진짜 목적은 아니야. 내 진짜 목표는 이 에이리어에 숨겨져 있던 마왕의 유물을 찾아내는 일이지.
“···숨겨져 있는 마왕의 유물이라고?”
-그렇다네. 아스파다라고 불리는 유물이지. 정말로 오랫동안 찾아다녔네.
리치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쥐고 있던 지팡이가 빛났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언데드들이 다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처음에 보여주었던 숫자에 비하면 겨우 반절정도였지만-.
“···젠장. 형 어떻게 하죠? 페르시 누나가 죽었는데.”
“위험하군요.”
“에잇. 또 언데드랑 싸워야 해!?”
엄청난 화력을 지녔던 페르시가 죽었으니 현재 일행에게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흉흉한 붉은 안광을 흘리며 언데드들이 몰려들자 일행은 곧 바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달려드는 언데드를 근접 클래스들이 막아내며 일행은 페르시의 주위를 지켰다.
그녀가 죽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언데드들에게 시체를 짓밟히게 할 수는 없었다.
본래 계획에는 없던 일이지만 유현은 덤벼드는 언데드들을 하나둘씩 해치우며 리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여유를 보였다.
숫자가 많은 탓에 언데드는 위협적이지만 치명적이지는 않다.
굳이 유현이 힘내지 않아도 일행은 어렵지 않게 언데드를 막아내고 있었다.
이걸로 유현을 죽일 수는 없다.
-좋은 실력이군. 가지고 있는 육신에 비해 몸놀림이 예상치가 않아.
리치가 지팡이로 바닥을 친다. 그러자 쓰러졌던 언데드들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가면 체력 문제로 죽겠다는 생각에 유현은 류트를 불렀다.
“나를 대신해서 지휘를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싸울 생각입니까?”
“그러면 도망이라도 칠까? 방금 대화를 들었겠지만 녀석은 우리를 끝까지 쫓아올 거야. 최대한 버티고 있어 봐. 빠르게 끝내고 오지.”
“···하하. 매번 느끼는 건데 유현의 자신감 있는 얼굴 정말로 든든합니다.”
류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마법진을 펼쳤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벼락이 치더니 언데드들을 휩쓸어버렸다. 길이 열린다. 유현은 류트가 만들어낸 길을 통해 달렸다.
그렇다고 곧 바로 리치에게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조금 도움이 되었을 뿐.
다시 언데드들이 몰리자 유현은 깊게 숨을 삼키고는 크게 검을 휘둘렀다.
머리 위까지 올라갔던 검이 힘차게 바닥을 부수듯 휘둘러지자 주위에 있던 언데드들이 검기에 휘말려 소멸했다.
사르륵, 파도치는 유현의 검기에 다시 살려낼 수 없을 정도로 흔적 없이 언데드들이 소멸하자 리치는 감탄을 하며 말했다.
-그 정도 수준으로 검기를 다루는 검사는 내 평생 몇 번 본적이 없군. 그런 젊은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을 가질 수 있다니. 단순히 마검에 의존하는 애송이는 아니었던 건가.
검기로 만들어낸 길을 저벅저벅 걸어오며 유현은 리치의 앞에 섰다.
거리는 10m.
주위로 흩날리는 유현의 살기는 리치도 가볍게 흘려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이상 거리를 허락하면 베인다는 사실에 리치는 여유로운 분위기를 지웠다.
···생각을 바꾼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생각 했던 것보다 강할지 모른다.
방금 전 그 미친 여인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는 유현의 눈을 응시하던 리치는 유현이 움직이는 동시에 지팡이를 움직였다. 검붉은 불꽃이 유현을 향해 쏟아진다. 불꽃은 폭발과 함께 유현을 집어삼켰다.
흩날리는 검붉은 재들과 연기들.
리치는 연기 너머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에 다시 마법을 영창 했다.
상대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리치의 예상대로.
싸아아아-. 연기를 베어 가르며 유현이 모습을 드러낸다.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암석마저도 녹여버릴 불꽃의 지옥 속에서 유현은 살아나왔다.
···믿기 어렵지만 그 불꽃들을 전부 베어낸 건가.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리치는 유현의 검이 휘둘러지는 걸 보았다.
그걸 보면서 설마 했지만 정말로 베려고 했던 것일 줄이야. 마법이 베였다. 그 사실에 리치는 신음하며 마법을 준비했다. 위험 경고를 높인다.
연기 속에서 뛰쳐나온 유현은 리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조금만 거리를 좁히면 좋겠는데, 리치는 그 좁은 거리마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미친듯이 마법을 퍼부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마법의 비.
얼음과 불꽃이 얽히며, 대지를 불태우고 얼렸으며, 몇 번이나 내려떨어지는 번개는 류트가 전력을 다해 만들어내는 번개의 화살보다도 강력했다. 지금까지 발현된 마법들은 수십 명을 학살하고도 남았다. 혼자서 여러 명의 마법사보다 많은 마법을 토해내고 있다.
-이건···!
하지만 유현은 모든 마법을 베어내며 차근차근 전진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모든 마법들의 궤도를 예측하고 계산하며 모두 베어 무너뜨린다. 신기에 가까운 행위.
순간 리치는 유현이 소드마스터가 아닐까, 의심을 했다.
그것은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용감스러운 일이었다. 보통의 검사라면 마법을 베는 게 아닌 피하는 것이 옳았다. 단 한 번의 실패는 죽음에 곧 바로 직결된다.
그 정도의 일을 망설임 없이 도전한다는 건 보통 용기로는 안된다.
저 행위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눈을 부릅 뜰 수밖에 없었다. 녹색의 안광이 흔들린다.
-이게 무슨! 네 녀석!
콰르르릉! 콰아아앙!
검은 광채가 지팡이에서 터질 때마다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를 정도로 마법이 작렬한다.
하지만 연기 속에서 유현은 계속 변함없이 살아나와 리치와 거리를 좁혔다.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던 10m의 거리가 어느새 7m까지 좁혀졌다. 아니, 드디어 좁혀졌다.
거리를 벌리지만, 유현은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마법으로는 녀석을 막을 수가 없다. 어처구니 없지만 그랬다.
위기를 느낀 리치는 언데드를 이용해 유현을 막아섰다.
그러자 유현의 전진이 멈춘다.
마법이 쏟아지는 순간 언데드들도 달려들 것이다.
마법을 막느냐, 언데드들의 공격을 막느냐. 결국 뭐가 되었든 선택은 최악.
-클클. 위험했군.
리치의 추잡스러운 웃음에도 유현은 흔들림 없이 차가운 표정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유현은 얼음 같던 표정을 깨고 작게 웃었다.
“마법이 약해졌네. 페르시랑 싸울 때 보여주었던 마법을 생각하면 웃음만 나올 정도야.”
-………
“페르시를 죽인 건 좋지만 너무 허세를 떨었어.”
지금도 리치의 마법은 위협적이다. 하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마법을 완성하는 속도와 물량은 엄청났지만, 그 위력은 처음과는 달랐다.
역시 제대로 된 몸이 아니라서 마법의 위력도 떨어지는 건가.
하지만 유현은 쉽게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능은 쓰지 않는 건가?”
극에 이른 존재들은 각자 특별한 힘을 지닌다. 마스터 클래스의 검사들이 이능을 가지고 있듯이 마법사들의 경우에도 비슷했다.
누군가는 초능력에 가까운 힘을, 누군가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고유 주문을,
유현이 경계하고 있는 건 그런 리치의 힘이었다.
페르시의 힘에 대항하던 리치의 힘은 확실히 마스터였다. 지금까지 보여주던 마법들도 마스터 수준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것들. 하지만 진정으로 무서운 건 녀석이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
-클클. 그러면 보여주도록 하지. 확실히 자네는 보통 마법으로는 죽지 않을 거 같으니.
그 순간 언데드가 유현의 앞을 막아섰고, 리치는 지팡이를 높게 쳐들었다.
유현은 벽처럼 막아서는 언데드를 그대로 앞에 둔 채 우두커니 그 자리를 유지했다.
그 자리에서 마검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리치의 공격을 기다린다.
회색빛 광채가 시야를 어지럽힌다.
일부러 리치를 자극한 건 유현이 오만해서가 아니었다.
녀석이 위기를 느끼며 갑작스럽게 녀석의 이능과 마주할 바에, 제대로 준비가 된 상태에서 부딪쳐주기로 결정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작게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그 무수한 마법의 비를 유현이라고 모두 베어낼 수는 없다.
단지 녀석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뿐.
···녀석이 이 마검의 힘을 잘 몰라서 다행이다.
그 순간 유현은 진심으로 그렇게 안도하며 마검을 자극했다.
다시 일을 할 차례다, 그렇게 속삭이며 유현은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회색빛을 쳐다봤다. 그것은 소리도, 공기의 흐름도 없는 무소음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회색빛으로 변한다.
단지 빛을 상대에게 비추면 되는 것뿐인지 녀석이 만들어낸 빛은 주위를 넓게 퍼져나갈 뿐이었다. 햇빛을 지우고, 회색빛이 주위를 점령하며 다가온다.
그걸 보며 유현은 조금 의문이 들었다.
이 마검은 형태가 없는 빛 그 자체도 잡아먹을 수 있는 건가.
시도해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저건 녀석의 이능이었으니까.
유현은 마검이 몸을 떠는 걸 확인하며 다가오는 빛을 향해 내리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