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5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본래라면 튜토리얼 정도는 쉽게 클리어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험하기 짝이 없는 길을 걸어왔지만.
“시작의 도시, 로베리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봄날의 햇볕처럼 산뜻한 요정의 목소리에 드디어 튜토리얼이 끝났음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온몸을 차지하는 무거운 탈력감에 현기증을 느끼며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 짐승 녀석 때문일 것이다. 녀석은 역시 괴물이었다. 총알 한 방으로는 죽지 않았다. 두 방으로도 역시 죽지 않았다.
음속을 뛰어넘는 총알을 녀석은 반쯤 피해낸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피해내지 못했기에 두 번째 총알까지는 피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가슴에 총알 박히자 처음으로 녀석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유쾌한 소리였다. 당황하면서 내지르던 그 짐승의 울부짖음이란 앞으로 평생을 잊을 수 없겠지.
녀석의 마지막은 결국 내가 검으로 끝내주어야 했다. 몸에 박힌 총알에 고통을 허덕이는 모습을 더욱 지켜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그렇기에 신속히 녀석의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목뼈를 그대로 관통하며, 살을 완전히 꿰뚫어 바닥까지 검을 박아 넣었다. 그 순간은 정말이지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걸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비명도 없는 죽음이었다. 목에 검이 박히자 녀석은 쉰 소리밖에 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검이 기도를 갈라버렸더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리도 낼 수 없는 죽음.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녀석이 죽는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들을 수 없었다는 거겠지. 녀석을 죽이자 비스퀴아르를 죽였던 것처럼 업적에 대한 메시지 창이 떠올랐고, 보너스 능력치도 ‘10’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녀석이 가지고 있던 붉은색의 곡도마저도 획득할 수 있었다.
[검은 발톱 놀 부족의 곡도] [설명: 검은 발톱 부족의 놀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성인식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한다. 성인식에서 제일 뛰어난 성적을 보여준 놀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검은 발톱 놀 부족의 특별한 곡도. 들리는 소문으로는 주술사들의 특별한 주문이 검에 스며들어 있다고 한다.] [광폭화: 저주이자 축복. 일정 수준의 선까지 몸에 새겨지는 고통을 둔감하게 만들어주며, 본래 소유자가 가진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줍니다. 전투가 끝나면 증폭된 능력치와 감소된 고통은 후유증으로 바뀌며 소유자에게 저주를 부여합니다.이놈은 꽤나 곤란한 무기였다. 만약 정말로 권총에 맞고 고통에 허덕이는 녀석을 조롱하고 있었다면 광폭화가 발동되어 도리어 내가 당했을지도 모른다.
‘빨리 죽인게 다행이네.’
섬뜩한 붉은빛 색에 예사롭지 않은 무기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무기였다. 반대로 말하면 소유하고 있는 나에게는 좋은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쌍검을 다룰 생각은 없었기에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되기도 하는 무기였다. 녹빛의 비스퀴아르 장검 또한 훌륭한 무기였으니까.
곡도는 그다지 많이 다루어 본적이 없는 무기였다. 쓰다보면 익숙해지기는 하겠지만 어느정도 시간을 필요로 할 터이다.
어찌되었든 행복한 고민인 건 변함이 없기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튜토리얼의 클리어를 축하해주던 요정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회귀 전에도 튜토리얼을 통과할 때 나를 맞이해 주었던 요정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뭐였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잘려나간 기억들 중에 요정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는 듯했다. 기억이 날 듯 말듯한 느낌도 없이 아예 백지였다. 그나마 얼굴이라도 기억하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정도였다.
“이유현님은 다섯 번째 통과자로 훌륭한 성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성적에 따라 차등적인 통과 보상이 주어질 것이고 튜토리얼 내에서 달성하신 업적에 따라 추가로 보상이 주어질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잘 훈련 받은 안내원 마냥 매끄럽게 이야기를 끝내자 나는 코웃음 치며 물었다.
“이제 와서 보상을 준다고 하면 기뻐할 줄 알았나?”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주길 바랍니까? 참고로 말하자면 저는 여러 분들을 돌려보내는 방법 따위는 모릅니다. 저는 말단 중에 말단이니까요.”
···재미없는 변명이다. 너무 뻔뻔하게 나와서 이제는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요정은 커다란 눈방울을 뻐끔뻐끔거리고 있다.
애초에 그런 녀석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한숨 한 번 쉬는 걸로 넘어가기로 했다. 솔직히 화를 내는 것보다는 빈정거리기 위해서 말했을 뿐이다. 이 녀석과 싸울 생각은 아니었다. 그래서는 나만 손해다.
요하자면 쓸데없는 감정싸움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화를 삭이고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이용하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이었다. 요정과 나쁜 관계를 쌓아 봤자 이로운 건 전혀 없다. 적어도 당분간 그들의 말을 따라주는 게 좋다.
‘내 앞에 네 사람이 있다는 건, 역시 그 녀석들인가.’
그것보다 내가 다섯 번째 통과자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역시 아이들은 무사히 이곳에 온 듯하다.
그럼 녀석들이 지금 쯤 어디에 있을지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거기밖에 없을 테니까.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자신들이 뭘 하고 있을지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나를 데려갈 곳이 있겠지? 네가 단순히 인사나 하러 온 것도 아닐테고.”
“눈치가 빠른 분이네요 저는 그런 분을 좋아합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경쾌한 목소리로 고개를 꾸벅이며 요정은 등을 돌렸다. 그대로 허공에 날아 어딘가로 향했는데 못 따라갈 속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의 뒤를 말없이 따랐다.
*
“아, 그리고 보니 제 이름을 말해드리지 않았네요. 제 이름은 리아 이리아스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편하게 리아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튜토리얼을 통과한 플레이어들에게 처음에 주어지는 여관에 절반 정도 도착할 때쯤 요정, 아니 리아는 그제야 자기의 이름을 소개했다.
그녀의 뒤에 있던 나는 쭉 뻗어 있는 그녀의 등줄기에 걸린 연한 금발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리아.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
“네. 뭔가요?”
리아는 잠시 가는 걸 멈춘 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호수처럼 깨끗한 벽안이 나를 바라본다. 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정에게 속아 넘어갈 법하다고 느껴졌다. 어린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순수한 눈동자였으니까.
“원래 튜토리얼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가?”
이건 순수한 의문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비록 어중간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튜토리얼과 많이 달랐다. 몇 번이나 생각해도 이번 튜토리얼은 비정상적으로 난이도가 높았다.
내 질문에 리아는 잠시 고민하듯 신음하며 눈을 감고는 빠르게 눈을 떴다. 여전히 또랑또랑한 파란 눈동자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솔직히 말해서는 저희가 튜토리얼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신 듯합니다. 다른 요정 분들도 진행 과정을 보고는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고 말하시더군요. 생각한 것 이상으로 튜토리얼 진행 중 죽은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1회차 튜토리얼 난이도 설정을 잘못한 듯합니다.”
“1회차 튜토리얼?”
순간 내가 뭔가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지금 녀석은 뭘 말한 거지. 뭔가 엄청난 걸 들은 거 같은데.
“1회차 튜토리얼이라고···? 지금 설마 우리가 퍼스트 플레이어라는 건가?”
“퍼스트 플레이어요? 그게 뭡니까? 전혀 모르는 단어입니다만.”
아차,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지금 들은 말이 맞다면 퍼스트 플레이어라는 건 아직 없는 말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그럼 튜토리얼 난이도가 이해가 돼.’
별거 없는 단어다. 초창기에 소환된 플레이어를 퍼스트 플레이어라고 부른다.
남들 보다 앞서 소환되어 플레이어를 다루는 법이 미숙한 요정들 밑에서 다른 회차 플레이어보다 많은 고생을 한 이들.
그래도 제일 먼저 소환된 이들이기에 유명 클랜과 원정대를 운영하는 플레이어들 대다수가 퍼스트 플레이어들이었다.
“더 질문해도 좋아?”
“옙.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제 권한 내에서라면 대답해줄 수 있답니다.”
“잠시 정리 좀 하고.”
궁금한 게 늘었다. 너무나도 많아서 나는 뭘 물어야 할지 막막해졌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나는 지금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면 지금 튜토리얼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총 몇 명이지?”
“네. 5채널 까지 있으니 아무리 못해 1000명의 인원이 더 추가될 예정입니다.”
“1000명이라고?”
엄청나게 많다. 생각지 못한 많은 수의 인원에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초창기에는 이렇게 무식하게 소환하던 건가.
‘아니, 그렇게 많은 게 아닐지도 몰라.’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본다. 주위로는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튜토리얼에서 그렇게 찾던 시작의 도시였다. 솔직히 말해서 평화로운 분위기다.
중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의 집들이 대다수였지만, 거기에 녹아들어 있는 사람의 온기란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상에 있는 게 아닌 던전이라 불리는 지하 미궁에 있는 도시임에도 머리 위로는 하늘이 있고, 태양이 있다.
더욱이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대로 만들어진 도시임을 알려주는 것마냥 길게 쭉 뻗어 있는 도로 옆으로 정갈하게 집들이 만들어져 있다. 저 멀리서는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벽도 보인다.
여기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시작의 도시와는 조금 이질감이 느껴졌다. 눈치 채는 게 늦었다. 지금 길거리에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본래 튜토리얼이 끝나면 그 전에 소환되었던 이들이 쓸만한 인재를 구하기 위해 길거리에 북적거려야 정상이다. 튜토리얼을 클리어 했다는 건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하나도 없다.
주위로는 도시 주민들의 모습만이 보인다. 나와는 이질적이기 짝이 없는 복장들. 비록 험한 꼴을 많이 겪어 옷은 많이 찢어졌지만 여전히 현대인의 복장이었다. 이곳의 원주민들과는 복장부터 차이가 났다.
그렇기에 주변을 지나치는 도시 주민들이 나를 힐끗 쳐다보며 지나가기도 했다. 이것 역시 회귀 전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 때는 나를 보며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 당시엔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익숙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직 아니다. 이곳 주민들은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이질적이다. 그걸 눈치채고 나니 힐끔 거리는 시선들이 슬슬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쯧.’
···쓸데없는 생각이다.
어차피 1000명이 갑자기 한꺼번에 오더라도 원주민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없을 테고 천천히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앞으로 겪게 될 것 또한 변함이 없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먹고 살기 위해 무언가 하게 되겠지.
어쩌면 시작의 도시에 존재하는 식당에 머물러 웨이터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대장간에서 망치를 두들기게 될지도 모른다. 싸우기를 싫어하는 이들은 원주민들 밑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작의 도시를 벗어나 미궁을 떠돌게 될 것이다. 도시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일할 일자리는 많이 존재하지 않았고, 대다수가 원주민들을 고용하기를 선호 할테니까.
어쩔 수 없이 미궁으로 내몰린 플레이어들은 경험치와 돈을 벌기 위해 미궁을 탐사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후로도 리아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귀찮을 정도로 상세하게 물어보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밝은 표정으로 대답해주었다. 참으로 친절한 요정이다.
“아, 도착했네요. 앞으로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그렇게 질문이 거의 다 끝나 갈 때 쯤 리아와 나는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맞이해준 길거리는 기억과도 너무 달랐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양 옆에 여관을 끼고 있는 길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는 쓸쓸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북적거리던 길거리를 떠올리고 있던 나는 무심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걸 보니 이제야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회귀 전과 달리 내가 정말 퍼스트 플레이어가 되었다는 걸.
수십 개의 여관이 길게 늘어져 있는 이곳은 플레이어들만의 생활공간이었다.
본래라면 이 도시에 이렇게나 많은 여관들이 필요할 리가 없다. 애초에 이곳에 올 여행객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이곳에는 수천 명을 가득 채울 법한 규모로 여관들이 길게 늘어져 있다. 가지각색의 건물들이 길게 늘어져 있고, 그것들 모두가 여관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이곳을 보면 알 수 있는 게 한 가지 존재했다.
이 도시를 만들 때 철저하게 플레이어들을 위한 공간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플레이어들은 이곳을 이렇게 불렀다.
플레이어들의 휴식터.
여관의 관계인이 아니라면 원주민들은 잘 접근도 하지 않는 특별한 구역. 오로지 플레이어들만을 위해 마련 된 곳. 그곳이 바로 플레이어들의 휴식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