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65
’첫 날에 모인 숫자는 겨우 이 정도 인가.’
전해 받은 보고서를 확인하며-.
“···하아. 류트. 꼭 말을 그런 식으로 해야 했나?”
훈련소 안에 만들어져 있는 한 집무실에서 아란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의 탄식에 옅은 하늘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는 쓴 웃음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만약 저 때문에 이번일이 꼬이게 된다면 책임을 꼭 지겠습니다.”
“책임이라고···?”
집무실 책상 위로 턱을 괴며 앉아 있던 아란스의 눈이 좁혀진다. 이윽고 그는 류트의 말에 헛웃음 치며 물었다.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거지? 다시 말하지만 이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제 평생을 여기에 바치도록 하죠.”
“···이 자식이. 하아아.”
아란스는 더 이상 꾸짖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눈앞에 있는 녀석은 애초에 이런 녀석이었다. 그걸 알기에 포기는 빨랐다. 녀석의 어린 시절 병사로서, 원정군으로서 훈련시킨 건 아란스였다.
재미없는 말장난이다.
눈앞에 있는 능구렁이는 이미 모든 걸 바치기로 했다. 딱히 마법이나 저주로서 얽혀 있는 계약은 아니지만. 그 날 보여주었던 의지는 수년 만에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런 녀석이었다면 아란스가 류트를 가까이 할 이유가 없었다.
“1주일이다.”
아란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앞으로 1주일 후에 훈련소는 열린다. 그 때 얼마나 되는 숫자가 모일지 모르겠지만 부디 생각했던 만큼 정원이 모이면 좋겠군. 중간에 나갈 이들을 생각하면 처음에는 많은 게 좋아.”
오늘 낮에 플레이어들을 훈련소에 데리고 온 건 단순히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소문은 진짜였고, 너희들을 위한 모든 것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무언가 교육도 없이 플레이어들을 미궁으로 밀어 넣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그들이 여기서 얼마나 배워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미궁이란, 사소한 일에 대처하지 못해 한 파티가 몰살당하는 게 일상적인 곳이니까. 기본적인 상식만 배워가도 생존율은 엄청나게 상승한다.
그리고 사실 플레이어들을 자신들의 군에 합류시키는 게 제일 좋은 방향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건 무리 일려나.’
류트의 이야기, 그가 굳이 그런 말을 안 해도 플레이어들 사이로 적의는 쌓여져 있었다.
하지만 그 동안 플레이어들은 몸을 사리고 있을 뿐이다. 류트가 굳이 그런 말을 안 해도 언젠간 적의를 드러냈겠지.
‘그럼 우리가 언제까지 녀석들을 관리할 수 있지?’
플레이어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이번 1회차 플레이어들이 절반 넘게 죽어나가도, 2회차 때 소환된 플레이어들이 수를 매꿀 것이며, 그리고 다음에는 3회차가, 4회차가, 5회차-.
그렇게 숫자는 계속해서 쌓여 나가 관리하기 힘든 지경에 이를 것이다. 다른 던전에 플레이어들을 분산 시키는 일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여기는 시작의 도시다.
그래서는 이 도시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면 답은 하나였다.
“우리에게 호의적인 세력을 만들어, 적의를 가진 세력과 대치하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플레이어로 제압한다. 지금으로서는 제일 이상적인 미래였다. 적의를 가진 세력을 뚜렷한 사상과 정의 따윈 없는 단순한 무력 단체로만 만들 수 있다면.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란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해내야 했다. 성공만 할 수 있다면 그 이득은 어떻게 계산할 수 없는 거대한 것이 된다. 그러니까 해낸다.
‘머리가 아프군.’
무언가 미래에 있을 일을 떠올리며 계획을 세우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건 요정의 일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멍청하게 있을 수는 없다.
아란스.
이리아스의 로얄 나이트 중 하나.
그러니까, 멍청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
‘어이가 없군.’
유현은 여관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류트 그 자식이 찌르면 안 될 부분을 찌른 거 같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왜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데!
-녀석들은 우리를 우습게보고 있어. 그런데도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거야?
분위기는 최악이다.
류트의 이야기는 원정군 모집이란 이야기가 퍼졌던 것보다 배는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유현의 일행이 훈련소를 구경하고 여관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플레이어들이 성난 얼굴로 류트의 말을 떠들고 있었다.
차라리 류트가 했던 말이 그대로 전해졌으면 다행이다.
소문은 퍼지면서 변질되어 버린다.
좋은 것보다는 나쁜 쪽으로.
악의가 담기게 된 이상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덕분에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류트의 얼굴도 모르면서 류트를 욕하고 있었다.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리저리 변질된 이야기들이 떠돌고 다녔다.
반나절이란 시간, 그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퍼지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유현도 문득 궁금해 질 정도였다.
유현은 읽고 있던 책을 덮고서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봤다. 늦은 심야의 시간. 방금 전까지 시끄럽던 소리들이 잦아들어 침묵에 잠겨 있다. 성난 사람들도 잠은 자야 했다.
이제 슬슬 불을 끄고 자볼까.
그런 생각에 책을 옆에 있는 탁상에 올려놓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정확히 가볍게 두 번. 유현은 그 소리에 바로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남궁민을 확인했다. 코고는 소리를 볼 때 잠에서 깰 거 같지는 않다.
‘누구지.’
그래도 역시 방 안에 누군가 들어오면 잠에서 깰지도 모른다. 유현은 이 시간에 누구일까, 생각하며 가볍게 겉옷만 챙기고 일어섰다. 유현이 입은 건 꺼칠꺼칠한 면으로 이루어진 이세계의 주민들이 주로 입는 옷 중 하나였다.
유현이 산 옷은 아니었다. 이서연이 어디선가 사온 물건이었다. 소심하게 보이던 그녀가 예상 외로 유난히 길거리의 주민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옷도 결국 옷가게를 하는 주민에게서 가져온 거다.
그녀에게서 옷을 선물 받을 때는 바가지 씌워진 게 아닐까, 싶어 걱정했는데 가격을 듣고선 그런 걱정도 사라졌다. 아직 이 세계의 물가도 잘 모를 텐데 싼 가격에 잘 가져왔다.
조용히 문을 열어본다. 그러자 유현을 기다리고 있던 건 송가연이었다.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에도 유현은 놀란 표정 하나 없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유현의 물음에 송가연은 쓴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산책이라도 하실래요?”
“이 시간에 산책···?”
이런 늦은 심야에 산책이라. 유현은 아직 꺼지지 않은 등불에 비쳐지는 유리 창문 너머를 확인하며 곤란한 듯 뒷머리를 매만지다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껌껌한 밤만 보인다. 하지만 이 시간에 찾아온 걸 보면 고민이라도 있는 거겠지.
*
밤거리는 한산했다. 아니, 텅 비어 있었다. 밤에 무언가 즐길 오락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뭔가 찾는다 하더라도 플레이어의 휴식터에서 벗어난 곳에서 찾아야 했다.
적어도 그 쪽에는 늦은 시간 까지 운영하는 술집과 홍등가 같은 게 있을 테니.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밤공기를 뒤로 하며 유현과 송가연은 어두운 길거리를 걸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빨리 퍼졌군요.”
옆에서 송가연이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가 말한 이야기, 그게 무엇인지 눈치 채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류트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떻게 보면 류트를 자극한 건 그녀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 때 굳이 그녀가 말하지 않았어도 누군가 말하기는 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 하루 종일 퍼지고 있던 이야기가 거슬리는 건지, 이런 늦은 시간에 유현을 불러내는 기행까지 벌였다. 우습다. 유현은 그녀의 머리를 꾹 눌러주었다.
“아앗···.”
“너무 신경 쓰지 마. 만약 정말로 이번 일 때문에 폭동 같은 게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건 네 잘못이 절대로 아니니까. 단지 요정들이 나쁜 놈인 거지.”
“···전 신경 쓴 적 없,, 아앗, 그, 그만.”
송가연이 가늘게 뜬 눈으로 유현을 노려본다. 하지만 유현은 그럴 때마다 그녀의 머리를 꾹꾹 눌러 주었다. 몇 번씩 가냘픈 비명이 계속 되었지만 그녀를 도울 사람은 지금 여기에 없었다. 싸늘한 길거리에는 유현과 송가연 뿐이었다.
“하, 항복···.”
“그래야지.”
송가연도 유현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어느새 반항을 포기하며 힘을 풀었다. 유현도 그제야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떼어놓았다. 그녀는 다른 샴푸라도 쓰는 걸까. 뭔가 손끝에 향기로운 냄새가 맴돈다.
“하아.”
송가연은 유현 때문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사실 신경은 많이 쓰고 있어요. 류트에게 그런 말을 했던 건 단순히 화가 나서 했던 것뿐인데 다른 이들에게 생각 이상으로 큰 자극을 준 거 같으니까. 너무 반응이 뜨거워서 아무리 저라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죠.”
송가연이 본심을 꺼낸다. 유현은 묵묵히 들었다.
둘 밖에 없는 밤거리는 여전히 조용했다. 그 덕분인지 호수 깊게 가라 앉아있는 듯한 고요한 그녀의 목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계속해서 밤거리를 걸으며 유현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잘 꺼내 놓지 않는 그녀니 이런 시간은 나름 가치가 있었다.
계속해서 앞에서 걷던 그녀가 잠시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보고는 물었다.
“이번 일···.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겠죠?”
그 물음에 유현은 고민할 것도 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