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69
결론만 말하면 브라이언의 무리는 병사 3명에게 박살이 났다. 달려든 건 40여명이 넘는 엄청난 인원이었는데 그 누구도 병사들에게 상처하나 주지 못하고 박살이 나버렸다.
그 중에서 제일 독보적이었던 건 역시 정령을 다루는 리아나였다.
정령의 힘을 사용해 달려들던 인원 모두를 여관 밖으로 밀어내며, 그녀는 싸움의 장소를 바꾸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울상을 짓고 있던 여관 주인의 얼굴을 알고 있었나보다.
여관 안에서 싸움을 벌였다가는 이것저것 망가뜨릴 것이 뻔했다.
-뭐, 뭐야! 놔! 놓으라고!
마력도 다루지 못하는 이들이 정령의 힘을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떠밀려 가는 자신의 몸에 놀라 발버둥치는 걸 리아나는 헛웃음 치며 바라보고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우당탕, 바닥에 엎어지며 처음부터 엉망진창인 꼴을 보였지만 자존심이 있었는지 플레이어들은 이를 악물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기세만 좋을 뿐이었다.
-정말, 이런 작자들이 뭘 하겠다는 건지.
달려 들어오는 플레이어를 보며 나직이 한숨을 쉬고는, 검도 뽑히지 않은 검집만으로 플레이어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싸움이었다. 리아나가 데리고 온 병사 두 명 또한 마력을 다루었고, 정령술사인 리아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싸움이 터졌다는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 나가 순식간에 관심을 끌었다. 그 덕분인지 초인적인 힘으로 한명 한명 씩 기절시키는 그 광경을 수백 명이 보았다.
나중에 뒤늦게 다른 이들이 싸움에 끼어들었지만 바닥에 널려지는 수는 늘어날 뿐이었다.
“뭐···. 어느 정도는 예상 했는데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네.”
남궁민은 길바닥에 널려 있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쉬었다. 병사들은 이미 브라이언과 이름 모를 남자 한 명을 끌고 사라져버렸다.
그 누구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바로 전날만 해도 요정들과 싸우자고 신나게 소리치던 이들이 입을 꾹 닫으며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나름 무리의 대장이었던 브라이언의 최후는 결국 그것뿐이었다.
그나마 누군가 죽지는 않았다. 이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까지 저항할 수 없는 힘의 차이에 슬퍼해야하는 걸까. 남궁민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병사들이 사라진 길을 바라봤다.
침묵만이 길거리를 맴돈다.
저번에 로렐라이에 함께 했던 이들은 그나마 덜한 반응이었지만 대다수가 지금의 결과에 놀랐는지 말을 잃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겁게 축 가라앉아 있다.
“이정도면 나름 완만하게 해결된 게 아닐까?”
지금 분위기를 답답하고 느낀 길유미가 말했다. 왠지 이번 일을 보고서 걱정하던 모든 것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플레이어와 요정 사이에서 큰 싸움이라도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유현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는 했다. 단지 귀찮다듯이 보고 있었을 뿐. 그는 이미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던 걸까.
‘어디에 있는 거지.’
길유미는 유현을 찾기 위해 조심스레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보이지는 않는다. 언제 사라진 걸까. 생각해 보면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예 처음부터 여관에서 안 나온 것일 수도 있다.
“···. 그래도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니야?”
그렇지만 딱히 싫지는 않다. 길유미는 피식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녀가 등을 돌리자 같이 보고 있던 일행들도 흥미를 잃은 듯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
밤이 찾아왔다.
낮에 있었던 일은 당연히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 사건을 보지 못한 이들보다 본 사람이 더 많았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보지 못했던 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허풍이 아니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두들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요정과 싸워야 한다고 소리치던 이가 쥐죽은 듯 자신감을 잃었는데 그걸 보고도 안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시위를 하던 무리는 하루아침에 붕괴했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역시 대장인 브라이언이 어린 소녀를 강간하고 다니는 남자라는 게 제일 영향이 컸을 것이다.
뿌리부터 잘못된 무리였다.
만약 무리의 리더가 좀 더 훌륭했던 남자라면 결과는 조금 달라졌을까?
좀 더 기회를 엿볼 수 있고, 좀 더 머리가 좋았다면.
머릿속으로 그런 상상을 하던 유현은 피식 웃었다.
정말로 누군가의 손에 놀아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어린 소녀를 강간할 정도로 어리석은 남자가 며칠 만에 100명이 넘는 무리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긴지 잘 알고 있었다.
설령, 브라이언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이가 많았다 하더라도 그걸 끌어 모으는 게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던 것일까.
“쿡.”
유현은 유쾌히 웃었다. 경쾌하게. 기분 좋게.
자기도 잘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 플레이어를 조종하려고 있었다. 끈적끈적하게 진흙 같은 것이 밭 끝부터 시작해 가슴까지 올라오는 듯한 불쾌한 기분.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 시작은 어디부터고, 녀석들이 꾸미는 목표는 어디까지일까.
유현은 식당 테이블에 턱을 괸 채 주방에서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있는 여관 주인장을 바라봤다. 일행은 모두 잠을 자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간 상태였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다. 식당 안에는 현재 유현만 있었다. 고요한 식당의 공기는 차가웠다. 그 차가운 감각이 오히려 기분이 좋다. 생각을 하느라 뜨겁던 머리를 식혀준다.
그는 상념에 잠긴 듯 테이블 위에서 턱을 괸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관 주인장은 그런 유현을 건드리지 않고 그냥 두었다. 언제나 상냥한 미소로.
유현은 주인장의 상냥한 미소를 떠올리며.
“주인장, 여기 블루 스카이 한 병 가져다 줄 수 있습니까?”
주방에 있을 여관 주인장에게 술 한 병을 주문하기로 했다. 그러자 주방장에 있던 여관 주인장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정말 멈췄을지도 모른다.
1분 정도 침묵을 유지하던 여관 주인이 주방장에서 머리만 내민 채 조심스레 묻는다.
“···블루 스카이 말입니까?”
“오늘 아침에 보니까 누가 한 병 마시고 있던데요. 혹시 남아 있습니까?”
“·········.”
블루 스카이. 술의 색은 특이하게도 맑은 하늘색이었다.
대지로 나가 진짜 하늘을 보고 싶다는 인간의 소망으로 만들어진 술. 그 소망에 어울리게 술의 색깔은 하늘을 닮아 있다. 나름대로 가격이 쌘 술이었다. 그 가격이 어느 정도냐고 하면, 몇 골드는 우습게 할 술.
그러니까 의문이다.
“왜 말이 없는 겁니까, 주인장?”
튜토리얼도 통과 못한 플레이어가 그런 비싼 술을 어떻게 시킨 걸까. 애초에 어떻게 알고 시킨 걸까. 그 동안 이 여관에서 지내며 블루 스카이를 마신 이는 한 명도 못 봤다.
양주로 취급되는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술 하면 맥주만 마실 뿐이었다.
“그 술은 조금 비쌉니다. 다른 술을 찾는 게 어떨 신지요?”
“비싸다라···. 그럼 아침에 그걸 마시고 있던 남자는 뭡니까? 제가 알기로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던 남자로 알고 있는데요.”
“···그, 그건.”
“서비스로 줬다는 건 아니겠죠? 아무리 못해도 10골드는 내줘야 하는 녀석인데. 여관 주인장이 착하다는 건 알지만 거기부터는 조금 무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관 주인이 나직이 한숨을 쉰다. 항복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주방장에서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 나온다. 그는 유현의 앞자리에서 조용히 앉았다.
“그래서, 어디까지 아신 겁니까?”
유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딘가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죠. 도대체 뭔 짓을 한 겁니까?”
“흠.”
여관 주인이 유현을 응시한다. 건조한 시선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몇 분전 유현이 상상하던 상냥한 미소의 얼굴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한 참 동안 유현을 응시하던 여관 주인이 포근하게 웃었다.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미소였다.
“자세히 모르셔도 일단 알고 있는 걸 말해 보시지요.”
가볍게 찌르는 걸로는 역시 안 된다는 건가. 유현은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그렇게 말하신다면 일단 아는 걸 말해보겠습니다. 대신에 듣다가 웃지는 말아주시길.”
“예. 걱정 마십시오.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다는 기분으로 듣겠습니다.”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꼿꼿이 핀 채 고개를 당기는 그 모습은, 정말로 잘 새겨듣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솔직히 말해서 시위를 하던 무리는 너무 빨리 몸집을 불렸습니다. 마치 누군가 도와주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무리의 대장이 그 만큼 능력이 좋은 인간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요.”
유현의 물음에 여관 주인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무리의 대장은 칭찬할 구석은 거의 없을 정도로 무능했고, 생각이 짧은 남자였다. 그가 한 거라고는 크게 소리친 것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인간이 대장을 하고, 무리는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렇지요.”
“단순히 운이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럼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은 누군가 그를 돕고 있다는 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바로 접근하고 있었다면 이상하게 보일 터.”
그래서 주변에 있는 동료를 이용했다.
“아마, 그 대장 녀석의 친구에게 뭔가 쓸만한 정보라도 쥐어주던 게 아닐까, 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평소에 요정들에게 불만이 많던 플레이어들이 누군지에 알려주면 끝날 일이죠.”
그것도 과격한 인물들. 속으로 화를 삭이는 게 아닌 대놓고 표출할 줄 아는 이들 소개 했을 것이다. 그런 인물들이 계속해서 모이면 무리 자체는 썩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터진 것이 한 소녀의 암울한 사건이고,
“그 남자에게 비싼 술을 쥐어준 건 뭔가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였을까요? 아니면 우연히 알게 되어서 다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거나. 어쨌든 독한 술이니 입이 술술 열렸겠죠.”
“······. 정말이지 곤란한 분입니다.”
유현의 이야기에 여관 주인은 어색한 쓴웃음 지었다. 그의 말대로 소녀를 강간한 범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취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여관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현도 쓰게 웃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품속에서 그런 걸 꺼내서는 조금 곤란한데요.”
“그렇습니까?”
어느새 여관 주인의 손에 단도가 쥐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얕게 빛나는 듯한 서늘함에도 유현은 차분한 얼굴로 여관 주인을 바라봤다.
그래도, 역시.
“너무 깊숙이 찔렀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말과 동시에 여관 주인의 손이 움직인다.
날아오는 은빛에는 손님을 상대할 때의 상냥함은 전혀 없었고, 공기마저 죽이며 유현의 가느다란 목으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