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70
타아앙-.
금속이 부딪치며 불똥이 튕긴다. 어둠속에서 창백한 섬광이 그어졌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휘둘러진 단검은 유현의 목을 베기는커녕 중간에 막혔다.
카드득, 서로의 무기가 뒤엉켜 소음을 만들어낸다. 기분 나쁜 소음이 이어진다.
끝내 먼저 물러선 건 유현이었다.
손이 얼얼하다. 유현은 여관 주인의 공격에 담긴 힘에 작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아무래도 보통 양반은 아니었나보다. 적당히 거리를 벌린 후 여관 주인을 바라본다.
마력을 각성 함으로서 능력치가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역시 많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여관 주인도 역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이어지는 공격은 없었다. 그저 공격을 휘두르던 그 자리에 서 있는 채 유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막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둠을 타고 흐르는 여관 주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 그래서 더 오싹했다. 살기도 없다. 그건 마치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에 감정 따위는 못 느낀다는 것처럼.
정말로 그는 죽일 생각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유현은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상처는 없다. 그렇지만 어딘가 가늘게 찢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착각이다.
그걸 스스로도 알지만, 계속해서 묘한 감각이 남아돌 정도로 그 순간 보여주었던 여관 주인의 움직임은 매서웠다. 머릿속으로 자신의 죽음이 그려진다.
조금만 늦었다면 정말로 죽었겠지. 심장이 뛴다. 늦은 시간이지만 졸리기보다는 각성 상태에 빠져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맑았다. 유현은 씨익 웃었다.
“제가 떠든 게 많기는 하지만, 너무 난폭하게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무작정 이렇게 사람을 죽이려고 해도 괜찮은 겁니까?”
여관 주인에게 묻는 유현의 목소리는 여유로웠다. 방금 전까지 죽을 뻔했음에도 조금의 떨림도 없다. 오히려 농담조로 묻는 듯한 유현의 모습에 여관 주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상한 남자다. 그런 것을 생각하며 여관 주인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한 명 정도는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유능한 분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시체 하나 치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죠. 그리고-.”
“···그리고?”
“본래라면 한 명 정도는 오늘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본래 예정이었다면 말이죠. 실제로 지금도 연락을 하면 시체를 치워주실 분들이 빠르게 달려올 겁니다.”
“그거 참, 무섭군.”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죽인다고 말하는 여관 주인장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방에서 음식을 나를 때 그 표정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자신들은 저런 남자한테서 밥을 얻어먹고 있었던 건가. 저 손에는 얼마나 많은 피가 묻혀 있는 거지. 딱히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일행이 알면 어떤 표정을 할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져 유현은 쿡쿡, 웃었다. 웃으면서 그는 물었다.
“그렇다면 뭔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나 봅니다. 계획을 바꿀 무언가가.”
“예. 일이 생기고 말았지요. 별로 좋은 방향이 아닌 쪽으로.”
여관 주인은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유현에게 뭔가 숨겨도 의미 없다고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언젠가는 플레이어 분들이 무리를 이루어 무언가를 꾸미려고 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무리가 얼마나 위협적으로 성장하느냐, 이었죠.”
뛰어난 인간이 무리의 대장을 맡게 되면 곤란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은밀하게 움직이며 뒤에서 날을 세운다면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처음 시작은 별 볼일 없는 집단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자신들의 시야에 끌어놔야 했다.
그런 면에서 여관 주인이라는 위치는 매우 좋은 자리였다. 플레이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관찰할 수 있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여관 주인이라는 이미지를 새김으로서 경계심 자체를 지워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쉬웠다.
평범한 마을 주민 A.
그것만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여관 주인이란 매력 적인 자리였다. 덕분에 이번 일도 나름 순탄하게 흘러갔었다. 기세만 좋지 별 볼일 없는 남자에게 정보만 흘려주면 되었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그 무리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조정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겁니까?”
“예. 그런 겁니다. 무리는 저희의 감시 속에서 순탄하게 성장했죠.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어 저희들이 원하는 인재를 영입하게 만들고, 무리의 성향을 조정했습니다.”
여관 주인이 기분 좋게 웃는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시위대의 행동은 무척이나 난폭했다.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살 찌푸려질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을 당연하게 여겼다.
조금 더 신중한 집단으로서 활동했다면 더 많은 이들이 참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두머리부터가 생각 없어 보이는 양반이다. 그 누가 참가하려고 할까.
요정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어도 무리의 행위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시위대와 함께한다는 건 자신도 저런 존재들과 동일하게 된다는 거니까.
“슬슬 타이밍을 재서 불만을 가진 집단을 완전히 일그러진 집단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범죄라도 저지르게 해서 말입니까?”
“예. 그런 거죠. 처음에는 무엇을 할까, 고민했지만 역시 사람을 죽이도록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죠. 그들은 폭력적이었고, 자신들에게 따르지 않는 플레이어를 모욕하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시위대의 행동에는 당연히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불만을 가진 이들은 여기저기에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녀석들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텐데.”
“뭐, 그렇죠. 그래서 누군가 한 명 죽이고 그 죄를 뒤집어씌우면 될 일입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 서요. 조심스레 행동을 조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죠.”
“그런 건가.”
“예. 그렇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만큼 효과적이기도 했다. 여관 주인 정도라면 방에 몰래 침입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증거에 필요한 물건을 훔치는 건 정말로 간단했겠지. 사람을 죽이고서, 훔친 물건만 흘리면 범인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조금 일이 꼬여서 말입니다. 하아.”
처음으로 여관 주인이 미소를 지우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골치 아픈 일을 떠올린 듯 이마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인간들이 설마 어린 소녀를 겁간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물은 정말로 잘 골랐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하. 너무 잘 골라서 문제였죠. 저희들이라고 어린 소녀를 다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말입니다. 덕분에 어떻게 사죄를 해야 할지···.”
굳이 죄를 뒤집어씌울 준비를 안 해도 되었다. 그들이 스스로 죄를 만들어, 범죄자가 되었으니까. 게다가 마지막은 화려하게 범인을 찾으러 온 병사들과 싸움까지 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완벽한 결말이다.
힘의 격차를 보여주고, 무리의 정당성을 멋지게 날려버렸다. 피해자는 어린 소녀 한 명뿐. 작은 희생으로 나름 좋은 결말을 얻었으니, 전체적으로 보면 좋을 일 아닌가?
···라고 쉽게 생각할 수는 없겠지.
여관 주인은 한숨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긴 이야기는 끝이었다. 이쪽은 이쪽만의 일을 해야 했다. 아래로 내려두고 있던 단검을 다시 들어올린다. 그의 눈에서 시작된 스산한 살기가 희미하게 유현을 훑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유현은 여관 주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걸 확인했다.
“당신은 꽤나 좋은 분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일행 분들이 상당히 당신을 잘 따르더군요. 비록 긴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동안 본 걸로 판단 컨데 좋은 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살기를 흘리면서 말하고 있으면 별로 기쁘진 않은데요.”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여관 주인이 움직였다. 땅을 박차는 소리 따윈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빠르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와 단검을 찌르고 들어온다. 단검이 가리키는 건 유현의 심장.
쉽게 당해줄 것 같나.
유현은 여관 주인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의 공격을 막은 건, 여관 주인과 비스무리하게 생긴 단검이었다. 하지만 더 낡았고, 녹슬어 있다. 여관 주인의 눈에 이색이 돈다.
“정말로 볼품없는 무기입니다.”
“주인장 무기도 조금 오래 되어 보이는데.”
여관 주인의 단검은 나름 관리를 잘 한 것 같지만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단검이었다. 언제부터 사용했던 걸까. 유현은 여관 주인의 공격을 비틀며 허공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음 공격이 이어진다. 틀어진 궤적에도 개의치 않고 여관 주인의 몸이 빙글 하고 돈다. 기세 좋게 들어 올려 진 다리가 유현의 연수를 향해 휘둘러졌다.
피하지 못하면 치명상이다. 죽진 않더라도 뇌진탕을 동반한 충격에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게 될 터. 머리를 얻어맞게 되면 능력으로 전투속행을 가지고 있어도 의미가 없다.
유현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급히 몸의 중심을 낮추었다. 머리 위로 섬뜩한 감각이 곤두친다. 대기가 찢겨지는 그 소리에 담긴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렵지 않게 유추가 된다.
유현은 공격을 피하고서 고민할 것도 없이 굽히고 있던 무릎을 피며 쥐고 있던 단검을 움직였다. 저쪽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피했으니 이제 이쪽의 차례였다. 여관 주인도 혀를 차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청명한 금속음이 밤을 울린다.
그 소리에 여관 주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유현을 응시했다. 바로 코앞, 그의 얼굴이 있다. 서로의 무기를 맞물린 채 대치하고 있는 묘한 상황. 유현의 눈은 차가웠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서 유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버티기만 하면 끝. 하지만 당신에게 그런 여유는 없을 터.”
“맞는 말입니다.”
시간은 유현의 편이었다. 싸움이 길게 이어질수록 그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곤란해지는 건 여관 주인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 광경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건 여관 주인의 정체였다.
푸근한 인상의 중년인이 사실은 무서운 인간이었다는 걸 알면 모두들 섬뜩하게 느낄 것이다. 여관 주인도 그걸 잘 알고 있을 텐데.
“···. 정말 끝을 볼 생각입니까?”
어째서 일까. 여관 주인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대가 마력을 사용하면 이쪽도 마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여관 주인이 보여준 움직임을 볼 때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그런 생각에 유현도 서서히 마력을 일으키고 있을 때였다.
“흠. 그걸로 됐습니다.”
갑자기 여관 주인이 기세를 풀고는 품속으로 단검을 집어넣었다.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는 행동에 유현은 허탈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여관 주인은 이미 등을 돌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