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90
다행히 늑대들에게 쫓기던 악몽 같은 밤은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날 하루에 쌓인 피로가 엄청났던 탓일까. 일행 모두가 괴로움을 호소했다. 평소에 단련을 열심히 했어도 격렬했던 싸움을 한 바로 다음날에는 어쩔 수 없이 극심한 근육통이 동반되었다.
미궁에서는 흔히 겪게 될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럴 상황에 대비해 도움이 될만한 건 당연히 준비되어 있었다.
딸깍, 마개를 따는 소리가 미궁을 울린다. 하지만 거기서 모두가 동작이 멈추었다. 마개를 따자 이상한 냄새가 주위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모두가 멈칫할 수밖에 없는 고약한 냄새였다.
“이거, 마셔도 괜찮은 거예요? 색깔이 영···.”
길유미가 유리병 안으로 보이는 어두운 색의 액체를 보며 표정을 흐렸다. 냄새부터가 고약하다. 마개를 따자마자 제일 먼저 느낀 건 음식물이 썩는 듯한 지독한 냄새였다.
그 모습에 유현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쉽지만 예정된 예산으로는 이런 거 밖에 사지 못해. 좀 더 돈을 들이면 달달한 맛이 나는 녀석을 살 수 있겠지만 맛이 좋아져도 효과가 좋아지는 건 아니라서, 그러니까 그냥 참고 마셔. 효능은 보장할 테니까.”
“···. 음. 일단 한 번 마셔볼게요.”
유리병을 쥐고 있는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적과 조우한 듯한 그 모습에 일행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봤다. 그 정도로 유리병에 담긴 액체는 위험해 보이는 색이었다.
꿀꺽.
이윽고 길유미가 눈을 질끈 감으며 유리병에 담긴 액체를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모두가 숨을 죽인다. 유현은 주위의 분위기에 헛웃음을 터뜨리며 길유미를 따라 활력 포션을 마셨다.
‘여전하네.’
지독한 맛이다. 그렇지만 익숙한 맛이기도 했다.
연금술사마다 포션의 맛은 다르지만, 그 중에서도 그나마 디아나의 포션이 먹을 만했다. 쓴 맛이 덜하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결국 맛없는 건 똑같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활력 포션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음?’
유현은 문득 주위의 분위기가 이상해진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여 주변을 둘러보니 바닥에 다리를 구부리며 손으로 입을 가로막고 있는 길유미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새파랗다. 당장이라도 오늘 먹은 걸 토해낼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런 길유미를 바라보는 일행의 얼굴이 약간 굳어 있다.
“오빠, 이거 괜찮은 거 맞죠?”
이서연이 묻자, 유현은 일단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아마?”
“그런데 오빠는 괜찮은 거예요?”
이서연이 걱정 어린 얼굴을 한다. 유현은 말없이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오빠가 괜찮다고 하니 괜찮은 거겠지.’
아무렇지 않은 듯한 유현의 모습에 이서연은 잠시 망설이고는 곧 바로 안에 든 액체를 한 번에 다 마셨다. 그리고는 쓰러지듯 길유미와 똑같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을 질끈 감으며 활력 포션의 맛을 참아낸다.
온몸에 스며드는 듯한 지독한 맛이 이서연을 괴롭혔다. 이런 걸 거리낌 없이 마셔버린 유현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늘게 떨리는 몸을 겨우 진정시킬 때쯤,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송가연과 남궁민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막고 있다. 그들의 손에 텅 빈 유리병만 보이고 있는 걸 보니 한 번에 마셔버린 듯싶다. 이서연은 둘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며 쿡, 웃었다.
“아무래도 진정이 될 때까지 조금 기다려야 할 듯 싶습니다.”
일행의 모습에 류트가 그렇게 말하고는 활력 포션을 입 안에 부어 넣었다. 그는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빈 유리병을 배낭에 담았다.
유리병을 가지고 돌아가면, 다시 되팔 수 있다. 게다가 굳이 바닥에 버리고 가서 흔적을 남길 이유도 없다. 혹시라도 모험가나 지능 좋은 놈들이 이걸 보며 따라올 지도 모른 일이다.
그 후로 일행이 정신을 차린 건 5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활력 포션을 마신 건 미궁을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지금 이곳은 늑대들의 영역이었다. 그게 어떤 건지 어젯밤에 모두들 혹독히 겪을 수 있었다.
이것 또한 결국 경험이다.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쌓이면 나중에 가서 큰 도움이 될 터.
“맛은 없지만 확실히 효과는 있네.”
“그래도 다시 마시고 싶진 않은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활력 포션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일행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변했다. 근육통으로 인해 로봇 마냥 삐거덕 거리는 듯한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지만 입안에 맴도는 활력 포션의 향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 여전히 모두들 괴로운 표정을 했다.
미궁을 움직이는 일행의 발걸음은 신중했다. 언제 어디서 늑대들이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 넓은 통로가 아닌 비좁은 길을 통해, 조심스레 이동하고 있지만 언제 들켜도 이상하지 않다.
바로 아래, 가파른 절벽 아래로 넓은 통로가 보인다. 지금 일행이 움직이고 있는 길은 어젯밤 늑대들을 피했던 샛길과 비슷한 형태였다. 움직이기 불편해도 조심스레 움직이기에는 딱 좋았다.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녀석들이니 이런 길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늑대들이 우리를 포기한 걸까요. 어젯밤만 해도 엄청난 수가 우리를 쫓고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에서 늑대들의 기척이 감지가 되지 않아요.”
잠시 휴식을 할 겸 일행이 멈춰서 있을 때 송가연이 그리 말했다.
멀리 나아가고 있는 정령에게서 늑대들의 기척은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작정 안심할 수 없는 것이 몬스터들의 시체는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여전히 미궁에서 싸움은 일어나고 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늑대들이 이 주변에서 잠시 모습을 감춘 것 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는 거겠지.
유현은 담담히 물었다.
“발견된 시체는 어떻게 생겼어?”
“지금 거리가 있는 탓에 뿌옇게 보이는데, 쥐머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몸집은 아주 큰 거 같네요. 인간보다 조금 작은 정도라고 해야 할까···. 고블린이랑 비슷한 몸집이에요.”
“라비락이군.”
송가연이 입에서 나온 단서로도 유현은 그 정체가 무엇인지 빠르게 알아챘다.
라비락. 이족보행을 하는 몬스터였다. 쥐 대가리를 했고 어느 정도 지능이 있는 탓에 큰 규모의 집단을 이루기 시작하면 위협적으로 변한다.
간간히 미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허접한 함정들은 녀석들의 손에서 만들어 졌다고 할 수 있다. 몬스터를 잡기 위해 설치한 것이 모험가나 원정군들이 걸려드는 것이다.
허접한 함정이라도 눈에 잘 띄지 않은 곳에 설치하기 때문에 간혹 당하는 일이 있다.
귀찮은 녀석들이다.
도구를 사용하며, 함정을 만들 줄 알고. 필요하면 기습은 물론이고 살기 위해서라면 비굴한 태도까지 보여준다. 유현이 만났던 놈들 중에는 10000마리 이상이 모인 거대한 규모의 라비락 무리도 있었다.
“라비락이요? 그게 뭐하는 놈들인데요?”
남궁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그 물음에 대답하는 건 류트였다.
“미궁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쥐머리를 한 몬스터입니다. 함정과 도구 정도는 사용할 줄 알기에 제법 규모가 큰 놈들을 만나면 귀찮기 짝이 없는 놈들이죠.”
녀석들과는 별로 좋은 추억은 없는지 류트가 드물게도 미간을 찌푸린다.
“그럼 발견된 라비락의 시체들은 전부 늑대가 죽인 걸까요?”
죽은 녀석들의 상처까지 자세히 살펴보기에는 어려운지 송가연이 유현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확신해서 답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아마 그렇지 아닐까 싶어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비락은 거대한 집단을 이루는 걸 좋아하는 녀석들이니 늑대들도 쉽게 건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미궁 안에 있는 다른 위험 요소를 전부 처리하고서 이번에 치려고 한 걸지도 모른다.
결국 이 모든 건 근거 없는 예측일 뿐.
유현의 말을 새겨듣던 송가연도 그걸 알고 있는지 더 이상 깊게 묻지는 않았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판단한 유현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내려 두었던 배낭을 챙기고 흐트러진 무장을 확인한다. 완벽하다고 판단할 때쯤 유현은 말했다.
“아무튼 주위에 라비락의 무리도 있는 거 같으니 더욱 조심해야겠네. 가다가 이상한 흔적이라도 발견하면 곧 바로 이야기 해. 사소한 것들도 좋아.”
굳이 일행이 말하기도 전에 류트와 유현이 먼저 눈치 챌 확률이 높았지만 혹시라는 건 모르는 일이었다.
“이상한 흔적이라는 건?”
남궁민이 묻는다.
“함정처럼 생긴 모든 것들. 주위에 라비락 무리가 있으면 귀찮을 정도로 함정이 많아지거든.”
“···그거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네요.”
“기대해도 좋아. 훈련소에서 수업 받은 기본적인 함정들은 대부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유현이 스산하게 웃자, 남궁민은 썩은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훈련소에서 함정에 대한 교육을 받을 때 그다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남궁민이었다. 유현은 그걸 잘 기억하고 있다. 파티장으로서 일행의 성적 정도는 알아둬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가 싫은 건 길유미도 마찬가지였는지 옆에 있던 송가연에게 물었다.
“가연아, 정령으로는 함정 같은 거 바로 알아챌 수 없는 거야?”
길유미의 물음에 송가연은 쓴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쓸데없는 힘 낭비가 아닐까. 내가 정령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상세한 정보보다는 대략적인 정보들뿐이야. 함정 같은 건 숨겨져 있을 확률이 크니 정령으로 알아채기 특히 더 힘들어지지.”
“끄응···.”
송가연에게 있어서도 내심 아쉬운 일이었다. 정령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시야는 흐릿했다. 이건 자신의 힘이 그 만큼 부족하다는 증거기도 하다. 게다가 마력 낭비도 심하다.
대략적인 정보만을 탐색하기 위해 정령을 움직이는데도 많은 마력이 소모된다. 미궁에서 마력 탈진이라도 일어난다면 일행에게 큰 불편을 끼치게 된다.
길유미가 요구한 건 뿌옇게 앞이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바닥에 뿌려져 있는 동전 같은 걸 주워달라는 것과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