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89
처음에는 단순히 유현을 찾기 위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건 뭘까.
“기분 나쁜 바람이로군요.”
저편에서 불어 들어오는, 피부 끝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향을 품은 바람의 감촉에 류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일반적인 미궁의 음습한 감촉과는 뭔가 달랐다. 자기도 모르게 뺨을 매만져 본다.
손끝에서 끈적끈적한 점액질 같은 게 달라붙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슬라임형 괴물과 접촉했을 때 보다 좀 더 기분이 나쁘고, 불쾌한-.
차라리 괴물들의 피를 몇날 며칠 동안 뒤집어쓰고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이 감촉은 미궁을 탐사하면서 딱 한 번 경험해본 특별한 것이었기에 무엇인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불가해의 영역.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는 듯 싶다.
아직 많은 것이 부족했던 시절 앞에서 있던 선임들에게 그렇게 배웠다.
먼 옛날 최초로 그 영역을 발견한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름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단어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이었으니까.
‘근처에 불가해의 영역이 있는 건가.’
근본부터가 다른 공간이라 들었다.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건 인간이든 괴물이든 모두에게 해롭기 짝이 없는 정체불명의 힘이다. 그것과 계속해서 접촉해서 좋을 건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건 그 정체불명의 힘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지 않은 것이다. 만약 그게 불가해의 영역에서 공기처럼 넓게 퍼져 나왔다면 미궁은 지금 이상으로 더 지옥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절대로 그곳에 들어서지 마라.
어린 시절 류트의 선임은 그렇게 말했다.
그들도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물어도 자기들 또한 잘 모른다고 반복할 뿐이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단순히 그들 또한 류트처럼 앞에 있던 선임들에게 그리 배웠을 뿐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불가해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습게도 괴담과 비스무리하게 변해 있었다.
이제는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불가해의 영역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도 제단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흥미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발을 내딛을 생각은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 지금 이 파티는 불가해의 영역을 탐사하기에는 미숙했다.
‘그런데 어째서?’
···분명 그럴 턴데.
그 남자도 그걸 알고 있을 텐데.
그 순간 류트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혹시 불가해의 영역이 뭔지 모르는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훈련소에서 알려주기는 했겠지만, 그걸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도 결국 인간이었다. 모르는 게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미친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류트는 자기도 모르게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그 남자를 너무 믿고 있었나. 류트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믿을만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결국 그 또한 경험 없는 플레이어였다.
한 번 찾으러 가봐야 하는 건가?
그런 고민을 하며 류트는 이미 유현을 찾기 위해 불가해의 입구까지 온 상태였다.
한 동안 그자리에 선 상태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벅저벅.
음습한 미궁의 공기마저도 잠에 빠진 듯 바닥에 내리 깔려 있던 대기에 발소리가 울린다.
짐승의 것은 아니다. 인간의 것이다. 게다가 그 방향은 불가해의 영역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쪽이었다. 그곳에 간 인간은 한 사람 밖에 없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발소리에 류트는 얼굴에 힘을 풀었다. 미정령들이 모두 잠에 빠지며 어두워진 미궁 안이지만 발소리 하나 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긴장을 풀고 기다려보니 역시나 유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어딘가 싸움을 하고 온 듯한 그의 모습에 류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피들은 방금 전까지 전투를 한 증거였다. 그걸 눈치 챈 류트는 느슨하게 풀어 놓았던 뺨에 다시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불가해의 영역에서 생길 수 있는 싸움은 마수와의 싸움뿐이다.
마수는 위험하다. 비록 직접 싸운 것 없이 이야기로만 들었지만 그것들과 싸워서는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류트의 생각을 배신하듯 유현은 느긋한 목소리로 류트에게 말했다.
“내가 잠시 길게 자리를 비웠네. 피곤 할 텐데 너도 이제 자도 좋아.”
마치 가벼운 산책이라도 다녀온 듯한 모습이다.
유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머리에 묻은 피를 털어내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류트는 자신이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처럼 뻘쭘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유현 씨는 저기서 도대체 뭘 하고 오신 겁니까? 그곳에 접근해봤자 좋을 건 없을 텐데요. 혹시 저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셨던 겁니까?”
그 말에 유현은 힐끗 류트를 쳐다봤다.
“너는 저기에 뭐가 있는지 아는 것 같네.”
“불가해의 영역. 아마, 그게 아닐까 싶은데 틀립니까?”
“아니, 정답이야. 너는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건가.”
“···저도 이야기로만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곳에 발을 내딛은 적은 없으니까요. 보아하니 전투까지 있었던 거 같은데. 다친 데는 없는 겁니까?”
류트의 말에 흐음, 하고 유현은 웃음을 흘렸다.
다친 데가 아예 없진 않다. 그렇지만 마수한테 당한 건 아니었다. 유현을 기다리고 있던 건 미숙하기 짝이 없는 유생체의 마수였으니까.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엄청난 것도 아니다.
그저 아직 힘을 품지 못한 유생일 뿐이다. 마수가 무서운 건 유생체 다음 단계인 성장체 부터였다. 성숙체까지 이르면 거기부터는 검기 없이 상처를 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유현은 입고 있던 갑옷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류트는 차례차례 무장을 해제하고 있는 유현을 관찰하듯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윽고 유현의 맨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류트가 미간을 찌푸린다. 유현에게 상처가 아예 없는 게 아니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불가해의 영역에는 마소가 있지. 마소가 있는 곳에서는 숨만 쉬는 것만으로도 생물체에게는 큰 해가 돼. 이런 식으로 말이야.”
보라색으로 변색되어 있는 피부는 결코 정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번개가 찢어지는 것처럼 새겨져 있는 보라색의 선들이 무척이나 불쾌했다. 차라리 화상으로 변질된 게 더 나아보인다.
이 남자는 저런 것들을 몸에 새기고 왔음에도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건가.
류트는 어이없다듯이 웃음을 짓고는 유현의 옆을 지나쳤다.
“효과가 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포션이라도 뿌려두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내일 일행이 혹시라도 그걸 보면 조금 곤란할지도 모르니까요.”
“참고하지.”
유현은 류트가 말하고 싶은 것이 뭔지 빠르게 눈치채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몸에 생겨난 마소의 흔적을 보면 그런 위험한 곳에 왜 들어갔냐고 따지고 들 것이 분명하다. 걱정이 많은 아이들이다. 그 만큼이나 유현을 아낀다는 증거겠지만.
류트가 먼저 사라지자 유현은 배낭을 뒤졌다. 배낭 바닥에 손이 닿을 때까지 팔을 움직이자 머지않아 포션이 배낭에서 꺼내져 나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포션 뚜껑을 열었다.
“후우···.”
포션을 뿌리자 바사삭, 불에 타오르는 듯한 감각이 신경을 타고 머리를 꿰뚫는다. 유현은 이를 악 물며 신음을 참아냈다. 끔찍한 고통이다. 차라리 검에 베이는 것이 나을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소로 인한 흉터는 포션으로 치료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제일 큰 문제는 몸에 쌓인 마소였다. 이 지독한 힘은 생물체를 오랫동안 괴롭힌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독제를 이용하거나, 마력을 통한 자기 정화가 유일한 답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랬을 거다.
본래라면 유현도 그럴 각오로 불가해의 영역에 발을 내딛었다. 특히 마력 운용은 자신이 있다. 남들보다 배는 빠르게 마소를 몸에서 몰아낼 수 있을 터.
하지만 굳이 그런 고생을 안 해도 지금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건 마소를 빨아 흡수하는 특이한 마검이었다. 녀석이라면 알아서 몸에 쌓인 마소를 빨아 먹을 것이다.
“슬슬 일을 할 차례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으니까.”
불가해의 영역에서 나온 지금 상태에서 녀석이 말을 알아듣는지 알 수는 없지만 유현은 여관 주인에게 받았던, 부러진 검을 꺼내며 조심스레 중얼거려보았다.
그러자 부러진 검은 유현의 말에 응답하듯 검신을 떨었다.
이윽고 몇 초도 안 되어 검은 마력이 검신을 감싸더니, 부러졌던 날이 재생하기 시작했다. 낡았던 검이 오래 전, 전성기 모습을 되찾듯 변형되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가 끝났을 때 확인할 수 있는 건 낡고 투박하기만 했던 평범한 검의 생김새가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 뿐이었다.
부러졌던 검날이 완전히 회복되었고, 검은 손잡이부터 시작해 검날까지 모두 검게 변해 버렸다. 이렇게만 보니 이제는 제법 마검 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칠흑 같이 어두운 마검의 색은 불가해의 영역에서 엿보았던 어둠보다도 짙었다.
아무래도 고개를 끄덕인 듯 싶다.
오히려 녀석이 원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녀석은 마소를 흡수하는 쪽으로는 상당히 탐욕스러운 듯 싶으니까. 유현은 웃음을 흘리며 고민할 것도 없이 검을 가슴팍에 박아 넣었다.
그러자 몸을 침식해 들어와 있던 농축된 마소가 마검에 잡아먹히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탐욕스럽게 마소를 잡아먹고 있는 마검을 느끼며 유현은 생각했다.
이 녀석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