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93
미궁에 나온 지 6일 째 되던 날 유현은 걸음을 멈추면서 이제는 로렐라이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일행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유현을 쳐다봤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벌써 돌아가게요?”
정작 이제 돌아간다고 하니 길유미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네임드 몬스터 한 번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건 조금 아쉽네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절실한 아쉬움에 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네임드 몬스터가 쉽게 발견되는 놈들은 아니니까.”
“헤헤···. 뭐 그렇겠죠? 역시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나. 첫 탐사부터 엄청난 걸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겠죠.”
유현의 말에 길유미가 멋쩍은 웃음을 띄우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유현은 길유미가 왜 저렇게 아쉬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그녀가 아니더라도 그 옆에 있던 남궁민도 비슷한 감정인 듯 싶다.
네임드 몬스터를 잡으면 상당한 양의 업적 점수가 주어진다. 몇날며칠을 탐사해서 얻어낸 정보를 보고해서 올리는 것보다는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할 경우 주어지는 점수가 컸다.
그걸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정 업적 점수를 쌓아야 직업을 얻을 수 있다. 직업을 얻으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업적 점수에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의 뿌리는 강해지기 위한 욕망이었다.
그녀가 강해지기 위해 욕심을 내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욕심이 동력이 되어 그녀를 한 층 더 성장 시켜줄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무모한 도전을 하는 건 좋지 않았다. 멈출 때 정도는 스스로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굳이 네임드 몬스터에 욕심을 내지 않아도 탐사 보고를 통해 업적 점수를 쌓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한 번 미궁에 나오는데 성공하게 되면 두 번째부터는 어렵지 않으니까.”
탐사 보고를 통해 업적 점수를 쌓아 직업을 얻는 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의 방식이었다.
유현도 회귀 전에는 착실하게 탐사 보고를 올려 업적 점수를 쌓았다. 그 과정에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남들 보다 어려운 과정을 겪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떻게 보면 직업을 얻기 위해 네임드 몬스터를 잡아 업적 점수를 쌓는다는 발상부터가 비정상적인 면이 컸다.
능력 좋은 플레이어들이 모인 원정대에서 직접 떠먹여 주지 않는 이상 직업이 없는 플레이어가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 한다는 건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물론 뛰어난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는 클랜들이 몇몇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먼 미래의 일이다.
“그러면 이번 탐사는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떠날 준비를 하던 송가연이 무덤덤하게 묻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 번 말했듯이 우린 이제 로렐라이로 돌아갈 거야.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하거든. 이 이상 멀리 나가면 너무 위험해져.”
“확실히 준비한 식량도 아슬아슬하고, 이 앞으로는 좀 더 준비가 필요할 거 같네요.”
그녀는 지금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주위의 냉기 때문인지 어깨를 감싸 안으며 몸을 떨고 있었다. 추위에 그녀의 새하얀 볼이 붉게 물들어 있다.
“지금 우리의 옷 상태로는 이곳을 지나가기에는 조금 무리지. 여기를 지나가려면 이 추위를 어떻게 해줄 특별한 도구 같은 게 필요할 거야.”
유현은 추위에 몸을 떨고 있는 송가연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아직 탐색하지 못한 구역을 바라봤다.
이쪽 구역에 발을 내딛을 때부터 공기가 차갑게 변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물마저도 얼어버릴 것만 같은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는 길마다 차갑게 얼어붙은 땅이 일행을 맞이해 주고 있었다. 겨우 발견한 샘물은 아예 꽁꽁 얼어 얼음이 되어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식수 공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갑자기 이런 추운 구역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유현으로서는 지금 상황을 대처할 수단이 없었다. 몬스터들과 싸우기도 전에 추위에 쓰러질 판이었다.
류트의 마법이라면 잠시 동안 몸을 따듯하게 할 수 있겠지만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를 곳에서 그런 거에 마력을 낭비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여기서 탐사를 끝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 된다.
“그럼 이제 로렐라이로 돌아가 볼까.”
유현은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다는 것처럼 등을 돌렸다.
등 뒤로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이런 구역이 있다는 걸 최초로 보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양의 업적 점수를 줄 것이다.
*
유현이 로렐라이로 돌아간다고 결정했을 무렵.
미궁 한 쪽에서는 치열한 영역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몇날며칠 동안 계속된 두 집단 사이의 싸움에 미궁 안에는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건 그 누구도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여기서 물러선다는 건 기껏 차지한 영역을 포기하고 쫓겨난 채 다른 영역의 지배자들과 다시 싸워야 한다는 소리였으니까.
-Grrrrrrrrrr!
피투성이로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돌아온 라비락이 급히 엘더 라비락에게 보고를 올렸다.
-GRRRRR!?
바닥에 엎드려 횡설수설하며 상황을 보고 하는 라비락의 이야기를 듣던 엘더 라비락이 분노하듯 고성을 질렀다. 그의 고함에 보고를 올리던 라비락이 기절한 듯 뒤로 엎어졌다.
겨우 살아 돌아온 부하의 보고 내용은 간단했다.
또 다시 잿빛의 늑대 무리가 라비락의 영역에 침범해 온 것이다. 벌써 이런 게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탐색하듯이 건들더니 이제는 대놓고 공격해 들어온다.
자유롭게 영역을 돌아다니는 늑대들과 달리 라비락들은 한 곳에 머물러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항상 기습을 당하는 건 라비락들이었다.
게다가 기습을 무사히 막아내도 늑대들 특유의 뛰어난 기동성 때문에 라비락들의 다리로는 추적이 불가능했다. 라비락들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새끼 늑대 한 마리 쫓기가 어려웠다.
녀석들도 이젠 그걸 잘 알고 있는 탓일까.
이번에도 녀석들은 라비락들이 머물고 있던 곳을 침범해 새끼들을 입에 물고 도망갔다. 새끼들을 기르는 곳은 라비락의 영역에서도 제일 깊은 곳에 있다.
그런데도 매번 그곳에 들어가 새끼를 납치해 갔다?
그건 라비락을 우롱하고 있는 행위였다.
암컷들은 슬픔에 울부짖고, 수컷 라비락들은 분노에 몸을 떨어 잠을 자지 못한다.
-GRRRRRRRRRR!
엘더 라비락이 고성을 질렀듯이 주위에 있던 라비락 전사들도 참지 못하겠는지 소리를 지른다. 모두가 무기를 들었다. 분노로 인해 핏발 선 두 눈으로 엘더 라비락을 노려본다.
살기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수백의 라비락들이 모여 만들어낸 지독한 살기가 뒤엉켜 주위를 짓눌렀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진다.
엘더 라비락은 라비락들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거대한 몸체를 일으켰다. 그의 어깨 위에 투기가 내리 앉아 있었다.
-GRRRRRRRRRRRRRRRR!
끝내 엘더 라비락도 주위에서 터져 나오는 고성의 파도에 어울렸다.
이 이상 멍청하게 당해줄 수만은 없다.
엘더 라비락은 위엄 있는 동작으로 자신의 무기를 집어 들었다. 전사들이 환호한다. 드디어 자신들의 왕이 싸우기를 마음먹었다. 지루한 탐색전은 이제 끝인 것이다.
엘더 라비락이 들어 올린 무기는 흑요석처럼 검은 빛을 가진 도끼였다.
*
돌아오는 길은 그다지 큰 문제가 없었다. 다행히 지난 시간 동안 미궁의 비틀림은 없었는지 변한 길은 없었던 것이다. 눈에 익은 길을 따라 일행은 하루 종일 걸었다.
한 번 이미 파헤쳤던 라비락들의 함정을 흘낏 살펴보며 사뿐히 지나치고, 다시 하루 밤을 미궁에서 보내고서 늑대들과 싸웠던 영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데 5일이 걸렸지만 오는데 이틀밖에 안 걸렸다. 그건 한 번 지나쳤던 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지체할 정도의 전투는 없었기 때문이다.
공격해 들어온 몬스터들은 대다수가 별거 없는 수준이었다. 라비락들의 함정도 파헤쳐진 그대로였으니 돌아오는 시간이 단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일행은 더욱 굳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오는 길에 엄청난 수의 시체를 보았다.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마냥 늑대와 라비락의 시체가 바닥에 널려 있었다. 몬스터와의 싸움이 없던 건 아마 이것 때문일까.
몬스터들도 지금은 미궁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싸움에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또 인가···.”
늑대 무리의 시체를 발견한 유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피투성이였다. 시체들의 상태를 보니 그다지 오래된 것들이 아니다.
죽은 늑대들의 옆구리에는 엉성하지만 무언가를 죽이기에는 충분한 화살들이 잔뜩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라비락들이 이 늑대를 죽인 듯 싶다. 길게 고민할 것도 없다. 오는 길 중간에 수 없이 발견된 흔적을 떠올리면 이 늑대를 죽일 놈들은 라비락들 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늑대들이 영역 다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듯 싶다.
“아무래도 돌아온 길이 별로 좋지 않은 거 같습니다.”
“그런 거 같네.”
류트의 말에 유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늑대들에게 습격당한걸 떠올리며 길을 돌아서 왔는데,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선택이 된 듯 싶다. 기껏 돌아온 길인데 싸움의 중심에 오고 말았다.
정말이지···. 한숨만 나오는 군.
그 때 근처에서 미약한 기척이 느껴졌다.
유현은 혀를 차며 나직이 말했다.
“전투 준비.”
아무래도 이 주위에 죽은 동료를 찾으러 다른 늑대들이 찾아왔나 보다. 옅은 그늘 속에서 번뜩이는 늑대들의 안광이 상당히 날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