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
#5화 용 꼬리보다는 뱀 머리
“내가 백설 공주 할 거야!”
“아냐, 내가 할 거야!”
유치원에서는 연극에서 누가 백설 공주를 할지를 두고 여자아이들끼리 싸움이 한창이었다.
“내가 할 거라니까!”
약간 덩치가 큰 여자아이가 다른 여자아이를 밀어 넘어뜨리자, 넘어진 여자아이가 ‘와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자, 이제 내가 백설 공주 하는 거지?”
덩치 큰 여자아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제압해야 할 여자아이들은 아직도 차고 넘쳤다.
“내가 할 거라니까!”
“아냐, 나야!”
“내가 윤기랑 같이 연극할 거야!”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은 바로 윤기 때문.
하나유치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남자아이인 윤기가 왕자 역할로 결정된 덕분이었다.
“원장 선생님, 이래서 제가 윤기를 왕자 시키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20대 후반의 단발머리 선생님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듯, 원장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이 선생, 왜 책임을 나한테 떠넘겨. 여자애들이 전부 윤기가 왕자님 하기를 바라는데, 이 선생이라고 별수 있어? 그러면 이 선생이 여자애들한테 말해. 윤기가 왕자 안 하게 됐다고. 아니면 내가 이 선생 때문에 윤기가 왕자 안 한다고 말해 볼까?”
“아니, 그게…….”
서로 싸우기 바쁜 여자아이들, 서로 책임을 넘기기 바쁜 유치원 선생님들.
이렇게 과열된 분위기와 달리 그 누구보다도 축 처진 집단이 있었다.
“윤기는 좋겠다…….”
아줌마들이 할법한 곱슬머리 파마를 한 남자아이가 계단에 앉아 턱을 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럼, 네가 왕자 해.”
엄마를 닮아 오뚝한 코에 큰 눈, 거기에 잘 빠진 몸, 아빠를 닮아 큰 키까지.
사랑과 영양을 듬뿍 받은 윤기는 전생의 김찬열과는 비교도 안 되는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정말?”
눈을 빛내는 곱슬머리의 아이는 김진수.
유치원에서 윤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일종의 남자 추종자라 할 수 있다.
“응.”
“아싸!”
윤기의 허락과 동시에 진수는 쪼르르 달려 나가 모두의 앞에 섰다.
“얘들아! 윤기가 나보고 왕자 하래! 내가 왕자님이야! 하! 하! 하!”
그러자 순간 자기들끼리 싸우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공동의 적이 생겨 버렸다.
“네가 윤기한테 왕자 하지 말라고 했지?!”
한 여자아이의 말에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진수를 넘어뜨린 뒤 밟기 시작했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앙!”
사태가 커지자 이 선생님이 뛰어가 진수를 번쩍 들어 안았다.
“으아아아아앙!”
아직도 우는 진수를 토닥이며 이 선생님이 외쳤다.
“너희들 자꾸 싸우면!”
여자아이들의 살기등등한 반문에 이 선생님이 잠시 식은땀을 흘리다가 윤기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 구원을 바라는 듯한 눈빛.
하지만 윤기는 현재의 자신의 삶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고, 또 아주 즐기고 있었기에 지금 상황이 즐거울 뿐, 불을 끌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윤기를 공주 시켜 버린다?”
눈을 질끈 감으며 말하는 이 선생님의 말에 여자아이들이 다시 난리가 나려던 시점에 윤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요?”
“어? 으응…….”
이 선생님은 윤기를 바라보며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윤기가 평범한 집안의 자식이라면야 강제로 밀어붙이겠지만, 학원 선생님들에게 뒷돈을 턱턱 찔러 주는 집안의 자식이니 강제로 밀어붙일 수도 없어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왜요?”
“아니, 그게……, 여자아이들이 싸우니까…….”
“저는 여자 옷 입기 싫어요.”
윤기의 대답과 동시에 다시 여자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윤기는 공주 하기 싫다잖아요!]다시 난리가 난 유치원 상황에서 겨우겨우 가정 통신문이 완성되어 각 가정으로 전달되었다.
“윤기야 ‘왕자 없는 백설 공주’라는 연극은 어떤 거냐?”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하던 아버지 최철호가 가정 통신문을 보며 묻자, 윤기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 * *
최윤기가 그래도 주변에 드러내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시기는 6살 이후였다.
엄마를 따라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때, 알파벳 공부 책을 고른 것을 시작으로 차츰차츰 어려운 책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 대비 너무 어려운 책을 고를 경우, 기대감을 증폭시킬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학교 입학 직전이 된 지금, 국민학교 수준은 완벽히 뗀 상태가 되었다.
그중, 영어는 중학교 수준을 가뿐히 뛰어넘은 상태로, 단어만큼은 이미 어지간한 성인을 능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전을 외우면 될 일이었으니까.
국어 역시 마찬가지.
학력고사에 나올 법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책을 본다’라는 이유로 거의 달달 외우다시피 했기 때문에 추후 학교 시험에서 상당한 유리함을 가질 가능성이 컸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밀이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인 최기현이나 부모인 최철호나 박연지가 보기에는 ‘똘똘한 아이’인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너희들이 생각하기에 윤기 학교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 같냐?”
최기현의 물음에 최철호는 고민도 하지 않고 답했다.
“저는 아버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네가 내 말이라면 껌뻑 죽는 것이 나쁘지는 않은데, 이것은 애 인생을 결정하는 거 아니냐.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렇다면, 저는 아내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저야 뭐 회사 일 하느라 바빠서 윤기를 잘 모르니까, 아무래도 아내가 더 잘 알겠죠.”
그러자 이번에는 최기현과 최철호의 시선이 박연지에게 꽂혔다.
“아가, 네 생각은 어떠냐?”
이제 30대가 거의 다 되어가는 박연지였지만, 똘똘한 손주를 낳은 상으로 박연지는 ‘아가’로 격상되어 있었다.
“음…….”
고민하는 박연지를 바라보며, 최기현이 푸근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원래 네 시어머니가 살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집안의 큰 의견은 네가 결정해도 된단다. 집 밖의 일이야 나나 네 아비가 결정할 문제지만, 집안은 네가 통솔해야지 않겠느냐?”
“아직 제가 나이가 어려서…….”
“어허, 그런 소리 하지도 말거라. 내가 젊었을 때는 네 나이대 여자들이 안살림, 바깥 살림 다 하고 그랬어. 그러니까, 네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거라.”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자 박연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버님은 「청원국민학교」나 「계성국민학교」 같은 곳을 염두에 두신 적이 있나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손주 녀석이 똘똘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
청원과 계성은 유명 사립국민학교로 부잣집이나 정치권 자제들이 새싹 인맥을 위해 많이들 지원하는 학교였다.
“그곳에 애를 우리가 확실히 보낼 수 있을까요?”
“보내려면 보낼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이게 좋은 길인지는 잘 모르겠어서 말이다.”
최윤기 덕에 위기를 피한 삼우 물산은 어느새 삼우 그룹이 되어 대한민국의 100대 기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이었기에 사립초에 청탁을 넣을 능력은 충분히 있었다.
“혹시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윤기가 영어에 꽤 재능을 보이는 것 같던데…….”
“흠, 그것도 괜찮을 수가 있겠지.”
둘의 대화를 듣던 최철호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의견을 꺼냈다.
“그냥 윤기한테 물어보죠? 똘똘한 애니까 혹시 원하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윤기한테?”
“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괜찮은 의견으로 생각되었는지, 윤기는 서재에 불려가게 되었다.
“윤기야. 네가 곧 국민학교에 가야 하는데 너는 미국으로 유학 가는 거랑 유명 사립 중에 어디를 가기를 원하니?”
할아버지의 말에 윤기는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냥 가까운 데에 가면 안 돼요?”
* * *
가까운 학교에 가겠다는 윤기의 말에 할아버지인 최기현은 유명 사립이 그래도 낫지 않겠느냐고 설득했고, 외할아버지인 콜슨 준장은 미국 유학을 종용했지만, ‘할아버지들이랑 떨어지기 싫어요.’란 한마디에 둘 다 헤벌쭉하게 변해서는 가까운 학교로의 입학을 허락했다.
집안의 어른 둘이 허락했기에, 최철호나 박연지 입장에서도 반대할 이유도 명분도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정원국민학교」에 아들 최윤기를 입학시켰다.
물론, 그냥 입학시킨 것은 아니다.
등교하기 전에 이미 어떤 반에 배정이 될지 다 예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될 사람을 박연지가 아들을 데리고 찾아간 것이다.
“바쁘신데 만나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껏 치장한 박연지의 모습에 담임 선생님으로 내정된 박선자가 다소 주눅 든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니에요. 오히려 직접 와주셔서 제가 다 황송하죠.”
박선자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이미 삼우 그룹의 회장이자 윤기의 할아버지인 최기현의 이름으로 거액의 기부가 정원국민학교에 이루어졌고, 간단한 가족관계가 교장에게, 그리고 교장을 통해 다른 선생들에게 알려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삼우 그룹의 며느리가 직접 방문을 했으니 박선자뿐만이 아니라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 전부가 긴장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박연지의 외모.
콜슨 준장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푸른 눈과 웨이브 있는 검은 머리칼이 백인을 동경하는 풍조인 대한민국에서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당장 선생님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데다가 40대의 웃어른인 박선자가 감히 박연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윤기가 엄마를 닮아서 정말 잘생겼네요.”
일단 대화의 물꼬를 틀기 위해서 한 박선자의 말에 최윤기는 주눅 든 표정을 전혀 짓지 않고 평정심 가득한 모습으로 조용히 대화를 듣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주눅 든 모습을 보였다면 박선자가 추후 최윤기를 이용해 추가적인 요구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당당한 태도는 그런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보였다.
“저를 닮았다기보다는 아버님을 많이 닮았죠. 애가 속을 썩일 일은 없겠지만, 혹시 생활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연락 좀 부탁드릴게요.”
말과 함께 박연지가 박선자에게 아주 두툼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짜장면 한 그릇이 200원인 시대.
4만 원이 겨우 넘는 월급을 받고 있는 박선자 입장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한 액수가 담긴 봉투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가, 가……, 감사합니다…….”
차마 거절하지도 못하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아 든 박선자는 묵직하게 느껴지는 무게와 봉투 겉에 비치는 만 원짜리의 모습에 웃음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주변에서 구경하던 다른 선생님들이 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을까.
이 모습을 바라보며 최윤기는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이딴 마 쪼가리는 네 애미나 갖다 줘. 어?]스승의 날 선물 살 돈이 없어서 하루 종일 산을 뒤져 구해 온 마는 바로 교실 쓰레기통으로 처박혔고, 그날 5교시에 숙제를 안 해왔다는 빌미로 싸대기를 수십 대나 맞았다.
그런데 지금은 비록 다른 사람이지만, 선생이 자신의 어머니는 물론, 자신의 눈마저 감히 쳐다보지 못하는 것을 보니 감회가 정말로 새로웠다.
정말로 더러운 세상이지? 하지만, 재밌기도 할 거야. 너의 진짜 인생은.>
최덕배의 말에 최윤기의 한쪽 입꼬리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만 올라갔다.
* * *
“저는 여기서 내려 주세요.”
자가용 뒷좌석에서 최윤기가 말하자, 기사가 난처한 음색으로 답했다.
“하지만, 회장님이…….”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애들한테 첫날부터 부잣집 아이라고 이상한 소문 나기 싫어요.”
“그러면 조금만 더 가서 내려드리겠습니다. 여기가 다리 근처라서 불량배 놈들이 나오는 곳이거든요. 저 다리만 건너서, 어떠세요?”
기사의 나이는 30대 후반이었지만, 고작해야 8살인 최윤기에게 정말 깍듯이 말했고, 최윤기 역시 이러한 기사의 행동을 당연한 것처럼 받았다.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괜히 자신의 나이가 더 어리니까 반말을 하라느니, 편히 말하라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의 신분이 재벌가 손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쓸데없는 친절이 정말 의미 없다는 것을 지독한 전생에서 이가 갈리도록 배워 왔으니까.
“여기서 내리시면 될 겁니다. 혹시 문제가 생기면 바로 차로 달려와 주세요. 제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뒤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한 최윤기의 모습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비넥타이에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흰색 양말, 거기에 검은색 멜빵 반바지에 흰색 셔츠.
누가 봐도 부잣집 도련님임을 알려 주는 복장과 함께 미제 책가방.
하지만 화룡점정은 가만히 놔둬도 빛이 발광할 것만 같은 최윤기의 외모였다.
그러나 최윤기가 교문에 도달했을 때, 모두의 시선을 빼앗는 자가용 한 대가 교문 바로 앞에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