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489
제 489화
489. 91층. 우로보로스 (10)
새로운 힘이 태산의 안을 가득 채운다.
태산은 조용히 그 힘을 갈무리했다. 그의 것이 되기 싫다는 듯 발악했지만 영격 상승은 흔들림 없이 무가치한 자의 권능을 강탈했다.
“후우.”
태산이 숨을 골랐다. 그와 동시에 드높은 경지에 도달했던 격이 추락한다. 절대 저항의 효과가 끝나면서 부하가 태산을 덮친다.
“음.”
전신이 삐걱거린다. 정신이 순간적으로 한계에 도달하며 육체가 무너져내린다.
태산은 재빠르게 신성을 펼쳤다. 망가진 육체와 정신이 황금빛에 의해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간당간당했군.”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상당히 위험했으리라. 스스로의 본질이 있었음에도 부하가 말도 안 되었다. 며칠 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양을 취해야 할 정도였다.
‘쉽게 쓸 힘이 아니야.’
하지만 그는 승리했다.
에센셜이 웃으며 태산의 옆에 착지했다.
“정말로 이 세계에서 지워버렸군.”
우로보로스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무가치한 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우주에서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소멸했다.
고신의 죽음. 비록 아주 작은 일부라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에센셜조차 처음 보는 일이었다.
에센셜은 흡족해하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이렇게 쉽게 해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저도 몰랐습니다.”
상대는 무가치한 자의 아주 작은 조각.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거기에 에센셜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 태산에게 온전한 힘의 집중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고신이다. 제법 애먹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승리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는 알고 있었다.
‘절대 저항.’
상대에 필적한 수준으로 격을 끌어올린다.
태산은 일시적으로 무가치한 자와 동격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월등한 효과만큼 지속 시간은 무척 짧았다. 원래라면 비장의 한 수로서 발동해야 했으리라.
하지만 그 지속 시간이 대폭 늘어났고, 부하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에센셜의 권능인 스스로의 본질 덕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의 안에 있는 무언가.’
아멜리아가, 하프란이 보았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태산도 드디어 그것을 보았다.
“고민이 많은 모양이군.”
에센셜은 클클 웃었다.
“뭐, 일단은 기뻐해도 된다. 승리한 것은 너다. 패자는 고신이고.”
“……알겠습니다.”
에센셜의 말대로 지금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해도 되었다. 태산이 고개를 들었다.
쿠구구구궁!
세상이, 공간이 비틀리고 있었다.
이물질이 제거된 우로보로스가 삐걱거리며 움직인다.
“자. 그럼 여기서부터가 진짠데.”
에센셜이 애매한 얼굴로 권능을 발현했다. 그의 본질이 영역을 이루었다.
시간과 공간이 안정화되면서, 우로보로스의 본체가 태산의 시야에 보였다.
‘……작아.’
태산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크기였다. 지구에서 흔히 보이는 평범한 뱀과 비슷한 크기였다.
무광의 비늘을 가진 우로보로스가 꿈틀거린다.
정신을 차린 듯 주변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태산과 에센셜을 바라본다.
“음.”
무가치한 자를 상대할 때도 웃음이 지워지지 않던 에센셜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이 서렸다.
우로보로스는 순환의 뱀.
세상을 이루는 가장 큰 개념 중 하나다. 만약 그들을 이물질로 판단하고 적대한다면, 에센셜이라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우로보로스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온다. 그 움직임에는 적의가 없었다. 경계하던 에센셜이 순간 당황했다.
“응?”
우로보로스는 태산의 앞에서 멈춰 섰다.
작은 눈이 물끄러미 태산을 향한다.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태도에, 태산은 손을 내밀었다.
뱀은 기다렸다는 듯 태산의 손을 몸으로 조용히 쓸고 지나갔다. 묘한 감각과 함께 태산의 손에 무언가가 남겨졌다.
우로보로스는 다시 허공에 떠올라 조용히 몸을 웅크린다. 세상을 집어삼킨 우로보로스의 영향력이 축소되기 시작한다.
쿠구구구구궁!
망가지고 일그러진 세계의 시간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한다.
태산은 보았다.
망가진 행성과 우주.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되돌아가 본래의 모습을 찾는 것을.
세계 전체가 우로보로스에게 먹히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에센셜이 감탄을 터트렸다.
“장관이군.”
이윽고 되돌아가는 시간이 끝났다. 우주를 집어삼킨 우로보로스의 권능은 사라져 있었다.
그들의 앞에 있는 작은 뱀이 순간 일그러지더니, 곧 그 모습을 감추었다.
“전부 되돌려주고 가는군. 말은 못하는 모양이지만 어느 정도의 지성은 있는 모양이야.”
“그런 것 같군요.”
태산이 손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무광의 비늘 한 조각이 있었다.
[당신은 우로보로스의 비늘을 얻었다.]“이물질을 제거해준 보답인가. 결국 무가치한 자를 제거한 건 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지켜줬는데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군.”
에센셜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 표정엔 불만보다는 즐거움이 서려 있었다.
“나왔어.”
에센셜은 흐뭇한 얼굴로 우주를 바라봤다.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우로보로스의 안에 갇혀 있던 초월자가, 드디어 우주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지. 태산. 그대 덕분에 나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뇨. 저도 얻은 게 많으니까요.”
스스로의 본질만으로도 고생을 한 가치가 있었다. 거기에 고신 본인의 권능과 우로보로스의 비늘까지 얻었다. 이것만으로도 퀘스트의 보상으론 충분했다.
에센셜이 껄껄 웃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직 너에게 주기로 한 게 남아있지.”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관조.
에센셜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센셜은 애매한 얼굴이었다.
“그걸 위해서는 내 제단과 성소가 있어야 하지만…… 솔직히 모르겠군. 그곳이 관리되어 있을지. 그리고 나를 섬기는 필멸자들이 남아있을지 말이야. 사도들도 죄다 뒤져 없어진 모양이고.”
에센셜은 너무 오랫동안 우로보로스의 안에 갇혀 있었다. 불멸자마저 한계에 몰릴 정도였으니, 바깥에서 에센셜은 완벽에 가깝게 잊혔으리라.
“우선은 잡다하게 처리할 일이 많겠어. 제법 시간이 걸릴 거 같다.”
“알겠습니다.”
태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곧바로 이룰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건 예상 범주 안이었다.
“그에 대한 보상이라기에는 미안하지만, 이걸 주지.”
에센셜은 태산의 이마를 두들겼다.
아주 작은, 조각에 가까운 것이 태산의 안에 깃들었다.
[당신은 [자신]을 얻었다.]“이건 뭡니까?”
권능이라 말할 수 없었다. 태산 안에 깃든 것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너 자신이 쌓아 올리는 것. 너라는 존재를 담는 그릇이다.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나중에는 제법 쓸모가 있을 거다.”
에센셜은 묘한 웃음과 함께 태산을 바라봤다.
태산은 얼굴을 찡그렸다.
“저에게서 뭘 보신 겁니까.”
태산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에센셜은 그에게서 무언가를 봤다.
에센셜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건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루지. 지금의 너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야.”
“…….”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널 위한 것이기도 하니.”
그는 껄껄 웃으며 발을 굴렀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너머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궁이라고 했나. 그곳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어.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뒤섞인 자! 내 다시 너를 찾아오겠다!”
그 말을 끝으로 에센셜은 공간 너머로 도약했다.
드넓은 우주에 태산 홀로 남았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태산 또한 공간을 열었다. 그는 확장된 공간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수고했어.”
마법사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 * *
보상을 알리는 시스템 창이 시야를 가린다. 그 사이로 마법사의 감탄한 얼굴이 보였다.
“설마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해결해줄 줄은 몰랐는데.”
태산은 마법사의 기대 이상으로 해주었다. 더 이상 우주를 집어삼킨 우로보로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로보로스는 본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돌아간 상태였다.
“그러면 들어보자고. 정확하게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마법사는 무척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태산은 천천히 설명했다.
우로보로스의 내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망가진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 누가 있었는지.
“고신인가.”
마법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짐작하긴 했어. 우로보로스를 망가트릴 존재는 그것들 말고는 떠오르지 않으니까. 무가치한 자가 거기까지 들어갔다니.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이었군. 그리고 에센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알고 있어?”
“한때 같이 싸웠던 초월자니까. 당연히 알고 있지.”
마법사는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개념이 사라지지 않은 걸 봐서 고신에게 죽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계속 안 보여서 어디로 갔나 했더니 우로보로스의 안에 있었나. 나중에 한번 만나러 가봐야겠어.”
“그는 너를 모르는 기색이던데.”
“그때와 나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지금의 나는 미궁의 주인이거든”
마법사는 흥얼거렸다.
“결론은 무가치한 자의 조각을 소멸시키고, 우로보로스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이거지. 아주 좋아. 훌륭해.”
마법사는 무척 흡족해했다. 태산을 향한 그의 시선에는 호의가 가득했다.
“잘해주었어. 설마 혼자 해결하고 올 줄이야. 이거 보상을 더 챙겨줘야겠는데.”
미궁의 기본 구조는, 모험가가 행한 일에 걸맞은 보상을 주는 것.
지금 태산은 초월자들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해주었다. 그만큼 보상 또한 무척 커야 했다.
그렇기에 태산은 마법사에게 말했다.
“내가 정할 수 있어?”
“말해 봐. 어지간한 건 전부 들어줄 수 있으니까.”
“그렇다 이거지.”
태산은 미궁에 돌아왔을 때부터 쥐고 있던 손아귀를 펼쳤다.
웃으며 바라보던 마법사가 멈칫했다.
그 손에는 무광의 비늘이 들려 있었다.
마법사의 얼굴이 굳었다.
“……잠깐.”
[우로보로스의 비늘] [만물의 순환을 관장하는 신의 비늘. 그 힘이 담겨 있다.]태산은 우로보로스에게서 직접 비늘을 얻었다.
위석과는 달리 별다른 능력은 없었다. 이 상태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너라면 이 재료를 이용하여, 내가 바라는 것을 만들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