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504
제 504화
504. 93층, 악마들 (3)
[우리는 고귀하다.]아몬은 선언했다. 불변의 진실을 말하듯,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원불멸하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홀로 오롯한 존재다. 초월자라 자칭하는 이들도 우리에 비교하면 모두 스러질 존재에 불과하다.]아몬의 눈이 어떠한 감정으로 일렁인다.
그것은 자부심과 거만이었다.
[하물며 우리는 너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너희는 우리에게 당연히 예의를 표해야 하는…….]“시끄러워.”
태산은 아몬의 말을 끊었다. 듣기 귀찮았다.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쓰레기 같은 정보로 귀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태산은 악마들의 심리를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의 창세 이전부터 존재했던 그들은 분명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불변하다.
고신이 추방당한 지금은 분명 특별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 사실에 취해 있었다.
그 하나만을 보고 자신들이 위대하며 고귀하다고 주장한다.
그건 참 우스운 말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들의 가치는, 단지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 하나가 전부라는 뜻이었다.
이들은 우주의 창세 이전부터 존재했던 종족. 그만큼 기나긴 세월을 살아왔으면 그에 걸맞은 지성과 성품, 그리고 깨달음을 얻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들의 가치관과 정신은 너무나도 볼품없었다.
평범한 인간과 무엇 하나 다르지 않았다. 태산은 입을 열었다.
“너희는 날 때부터 강했겠지?”
[당연하다. 그것이 너희 연약한 우주의 존재들. 힘을 쌓아 올려야 하는 것과의 차이점이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완벽했다.]아몬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태산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거 때문인가.’
자격이 없는 존재가 힘을 갖추었다. 그것이 이들이 아이 수준에 불과한 정신을 가진 이유로 보였다.
‘고신들도 이러려나. 그럼 실망인데.’
태산은 바알을 힐끔 바라봤다.
바알은 여전히, 관여할 생각이 없다는 듯 그들의 대립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을 바라는 거지.’
하지만 관여할 생각이 없다면, 자신도 마음이 바라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태산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아몬이 일그러진 얼굴로 재촉했다.
[무엇을 하는 거지. 예의를…….]“닥쳐.”
[뭐?]“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태산은 심드렁히 말했다.
아몬의 얼굴이 흔들렸다.
“어차피 그거 때문에 나를 압박하는 게 아니잖아? 괜히 말도 안 되는 핑계 대려고 하지 말고, 본론이나 꺼내.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잖아?”
악마들의 기운이 술렁인다. 조소와 멸시가 천천히 적의로 변하기 시작한다.
아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감히. 우리의 순수함을 더럽힌 것이. 우리를 향해 그따위 말을 해?]“결국 그거 때문인가.”
태산은 벨리알의 영역을 강탈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악마라는 것에, 불변이란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말 그대로 성역이 더럽혀지는 감각이었으리라.
[네 태도에 따라서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군. 머리를 조아려라. 진심으로 우리의 이름을 하나하나 내뱉으며, 사죄를 말해라.]“싫으면?”
[그러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천한 것에게 벌을 내릴 수밖에.]악마들이 스멀스멀 움직인다. 그들의 기세가 천천히 태산을 향해 기어온다.
적의와 살의가 공간을 팽팽하게 당긴다.
“이해할 수 없네.”
태산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힘이 천천히 육체 밖으로 삐져나온다.
그렇게 삐져나온 힘만으로도, 다가오는 악마들의 기운을 부수고 뭉개버린다.
태산은 분명 악마들보다 강했다. 그것도 월등했다. 그 사실은 악마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악마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조소와 조롱을 머금으며 다가왔다.
[너는 분명 우리보다 강하다. 하지만 우리는 스러지지 않는다. 우리는, 불변이다. 너는 우리를 죽일 수 없다.]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신과 악마는 이 세계의 존재가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초월자들도 고신을 추방하는 선에서 끝나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태산은 아니었다.
그는 얼마든지 이들을 죽일 수 있었다.
레메게톤으로 연결된 이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모른다는 건, 하나였다.
바알이나 마신이 그 사실을 차단했다는 뜻이었다.
태산이 바알을 다시금 바라본다. 바알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영문 모를 미소와 함께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알은 입을 열었다. 악마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아몬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곧 표정을 바꾸고, 바알을 향해 당당히 말했다.
[이건 저희 악마들끼리의 일입니다. 원래라면 필멸의 존재에게 직접 개입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의 그는 악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저희의 일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계약이었을 텐데요.] [그래. 나 또한 너희끼리의 일에는 간섭할 수 없지. 너희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할 수도 없고 말이지. 매우 귀찮은 계약이야.]바알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나는 너희에게 제안을 하겠다.] [제안이라면…….] [어차피 이대로 싸워봤자 상당히 오래 걸리지 않겠는가. 너희는 죽지 않고, 그렇다고 태산을 쓰러트리자니 그는 너희보다 월등하게 강하지.]방금의 말로 태산은 확신했다. 바알은 그가 악마들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일부러 악마들에게 숨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차라리 하나의 조건을 두고 결투를 해보는 것이 어떤가.] [결투는…….]아몬은 떨떠름히 말했다. 그 본인도 알고 있었다. 자신 혼자서는 절대 태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이어진 바알의 말은 그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인 말이었다.
[결투 대상은…… 그래. 태산 혼자와 너희 전부면 되겠군. 서른여덟인가. 지긋지긋하게 살아남았어.]“일대 다수입니까?”
[그래. 상관없겠지? 조건은 패배했다고 선언하는 것. 너희는 너희 모두가 자신의 패배를 선언해야 한다. 어떤가? 보상은 패배한 자는 승자의 명령을 하나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아몬을 비롯한 악마들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답을 내렸다. 아몬은 입가를 비틀며 답했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지요.]태산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그들 또한 약하지 않다. 그들 모두가 온 힘을 다해 태산을 압박한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아몬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엇보다 결투의 승리 조건은 상대에게 패배했다고 선언하게 하는 것.
그것은 참 우스운 말이었다. 그들은 불변하다. 죽지 않고 힘이 소모되지도 않는데, 패배를 선언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상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승리는 확정이었다.
‘바알도 저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그들을 이용해 태산의 기를 잡으려 한다. 아몬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너는 어떻게 할 것이지? 인간. 설마 여기까지 와서 뒤로 뺄 생각인가?]아몬을 태산을 향해 조소했다.
하지만 태산은 아몬 따위는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태산의 시선은 바알을 향하고 있었다.
바알은 조용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던 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바알은 즐겁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좋아.]쿠우우우웅!
건물이 밀려난다. 순식간에 지워지며 그들은 거대한 평야에 놓인다.
[약간의 준비 시간은 주겠다. 그 이후는 바로 시작할 테니, 준비하도록.]* * *
[후회하게 해주마. 감히 우리의 것을 강탈한 천한 것.]아몬은 이죽거리며 떠났다.
서른이 넘는 악마들은 한 곳에 모여,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산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너는 악마들을 보았다.]태산의 옆에서, 바알은 차분히 말했다.
[소감이 어떤가?]“실망스럽군요.”
태산은 즉답했다.
악마들은 태산의 기대 이하였다. 그 사상과 정신이 마치 아이와 같았다.
[악마와 고신은 불변한다. 하지만 악마는 고신보다 훨씬 하등한 존재들이지. 저들은 불변하다. 그 육체와 힘은 물론이고, 정신마저 말이지.]바알의 목소리에는 혐오감과 경멸이 묻어 있었다.
[저들은 아이와 같이 어리석고 우둔하면서, 세상을 능히 부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때 저것들의 단순한 즐거움 따위를 위해 수천억이 죽어갔지.]“당신은 저들을 싫어하는군요.”
바알은 대악마다. 악마들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바알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그 무엇보다 악마들을 혐오하는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시는 겁니까.”
바알은 애초에 둘이 모임을 하면 악마 쪽에서 반발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행했다는 건, 그는 태산과 악마들의 충돌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너와 처음 만났을 때 우리에 대해서 질문했었지. 그때의 내 대답을 기억하고 있나?]“네.”
태산은 바알에게 물었었다. 당신들의 의미는 무엇이냐고.
바알은 답했다. 그것은 우리의 원죄라고.
자신들을 시대의 흐름을 부정하는 존재들이라고. 그렇기에 벨리알의 소멸을 막지 않았다고.
[여태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계약으로 인해 세계에 일정 이상의 간섭을 할 수 없으니 그런대로 내버려둘 수 있었지. 하지만…… 더는 내버려둘 수 없게 되었다.]“이유라도 있습니까?”
[우리가 틀어막았던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거든.]“…….”
우리가 틀어막은 것이라면 하나였다.
고신.
[어째서 벌써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에 불량품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지.]바알은 나직이 말했다.
저편에 있는 악마들의 힘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모든 준비가 끝났는지 태산을 자신만만한 얼굴로 바라본다.
[뭐. 결국은 네 선택이다. 네가 바라는 대로 행동해라.]바알이 손뼉을 친다. 박수 소리가 영역 전체에 울려 퍼진다.
[바알의 이름을 걸고 선언하지. 너희는 결투를 시작한다. 패배를 선언하기 전까지 결투는 끝나지 않으며, 패배한 자는 승자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받아들이는가?]악마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외친다.
태산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의 선언이 바알의 힘에 의해 계약이 된다. 바알은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그러면 시작하지. 자아. 서로 죽고 죽여라.] [하하!]쿠우우웅!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아몬이었다.
그는 일그러진 미소를 띠며, 태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한 인간! 나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도록 하지!]쩌저저적!
공간이 갈라진다. 검은 틈 너머로 거대한 칠흑색 쐐기가 모습을 보인다.
그 크기는, 무척 거대하다.
마치 산맥과도 같은 크기였다.
‘아몬의 칠흑색 쐐기.’
태산도 가지고 있는 흑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태산이 다루었을 때와 확연히 달랐다. 저 쐐기에는 분명 대륙을 붕괴시킬 만한 힘이 담겨 있었다.
[이것이 우리 악마의 힘이다! 천한 자여!]아몬은 당당하게 외쳤다.
저만한 힘을 끄집어냈음에도 아몬의 힘은 전혀 소모되지 않았다.
악마는 불변하며 영원하니. 그 힘은 아무리 사용해도 줄어들지 않는다. 아몬이 구현한 쐐기를 그대로 태산에게 날린다. 그리고 자신 또한 돌진하며 또 다른 쐐기를 만든다.
쿠구구궁!
공간을 가르며 질주한다. 다른 악마들이 태산의 행동을 예측하여 공격할 준비를 한다. 태산이 쐐기를 피할 거라 생각하고 주변을 압박한다.
하지만 태산은 쐐기를 피하지 않았다.
지척에 이르러서야 천천히 손을 뻗는다. 손끝에 잿빛이 물든다.
그 크기는 쐐기와 비교하면 이쑤시개에 불과했다.
잿빛이 쐐기와 닿는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쐐기가 무너진다.
지진으로 무너지는 절벽처럼 쐐기가 완전히 조각나 스러진다. 파편이 태산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움직이려던 악마들은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태산은 아무런 상처도,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잠…….]아몬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그는 태산의 지척에 이른 상태였다. 태산의 몸이 순간 움직였다. 그가 사라졌다고 느낀 순간, 잿빛은 그의 가슴을 꿰뚫은 상태였다.
“내놔.”
태산은 담담히 말했다.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일어나 아몬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