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620
제 620화
620. 외전, 미궁의 마법사 (3)
만든다면 당연히 전력으로.
그렇다면 어떠한 던전을 만들 수 있을까.
던전의 종류는 많다. 미로. 탑. 미궁. 그 안에서도 다양한 형태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 어떠한 형태를 고를까.
잠시 고민하던 남자는 결정을 내렸다.
“미궁이 좋겠군.”
미궁의 가장 큰 장점은 한 가지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 수많은 층을 만들고, 각 계층마다 다른 구조로 만들면 다양한 미궁을 만들 수 있었다.
“층수는 대충 백 층으로 할까.”
일단은 임시로 정한다. 만들다 보면 흥겨워서 더 깊어질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어떻게 할까.
보상 체계는 어떻게 만들까.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은 제법 즐거웠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미궁을 설계하던 남자였지만, 그 감정은 천천히 식어 갔다.
“……결국 시간 때우기군.”
전력으로 만드는 그의 취향의 미궁. 설계는 재미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결국 미궁의 설계를 완성하면 사라질 재미에 불과하다. 필멸자가 미궁에 들어와서 공략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남자는 그 결말을 전부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모험의 신이니까.
모험으로서 이루어지는 모든 개념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까.
그가 바라는 건 그런 것이 아니다.
순간의 재미가 아닌 이 공허함을 영구히 채울 수 있는 그런 변화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는 깨달았다.
“……하.”
헛웃음이 나온다. 남자는 자신이 생각한 것이 미친 짓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그렇다면 된 거 아닌가.
남자는 킬킬 웃으며 움직였다.
* * *
[나를 찾아오다니. 별난 일이구나.]남자는 순환의 신. 아릴난을 찾아왔다. 아릴난은 나른히 물었다.
“네.”
[호오?]아릴난의 얼굴에 흥미가 서린다.
[여태 너와 같은 초월자는 제법 보았지만 그 누구도 답을 찾지 못했는데. 답을 찾았다니. 궁금하구나. 무슨 답이지?]“우선 몇 가지 확인을 하고 싶습니다. 초월자는 자신의 개념을 버릴 수 있습니까?”
[……그런 해결법인가.]아릴난은 쓴웃음을 지었다.
[가능은 하다. 스스로가 도달한 개념. 자신을 비운다면 버리는 것이 가능하지. 실제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린 초월자들도 있었으니. 하지만 스스로가 버티지 못할 것이다.]당연한 말이었다.
필멸자 시절부터 바라 왔던,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목적을 버린다니.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미친 짓이었다.
[스스로 도달한 경지를 버린다는 건 너 자신을 버린다는 것. 네 정신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겠지.]“아마도 그렇겠죠.”
남자도 부정하지 않았다. 서글픈 이야기였다. 도달했기에 공허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버리면 더 큰 공허함이 찾아온다.
하지만 남자가 찾은 답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시금 묻습니다. 만약 스스로 개념을 버린다면 저는 필멸자가 되는 겁니까?”
그 말을 들은 남자가 웃었다.
“그렇다면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있겠군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구나. 그럴듯한 발상이지만 불가능하다.]아릴난은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너는 모험의 신이다. 그건 너라는 존재의 결과물이다. 그곳을 비우고 채운다 해도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당연한 말이었다.
남자는 모험의 신이었다.
그건 그가 초월자가 되기 전부터 바라 왔던 지향점.
이른바 최고의 도달점이었다.
그곳을 비우고 새로운 걸 채워 봤자 공허함이 사라질 리 없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있다. 텅 빈 영역을 어떻게 채울 것이지? 다시금 고행을 해서 무언가를 얻을 생각이냐?]“설마요. 다시금 개념을 지배할 수 있다 믿을 정도로 자신을 과신하지 않습니다.”
그가 모험의 신이 된 건 그의 재능도 있지만, 그야말로 수천 개의 천운이 겹치고 겹쳐 일어난 일.
초월의 경지란 건 그런 것이다. 버리고 새로운 것을 주울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은 남자도 알고 있었다.
그가 노리는 건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빈 영역을, 제가 아닌 다른 초월자들이 채울 수는 있지 않습니까?”
[……아이야?]“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빙긋 웃었다.
아릴난은 잠시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우리의 영역으로 너의 빈 영역을 채우겠다?]“텅 빈 영역. 승리가, 선택이, 투쟁이, 순환의 개념이. 그 무엇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죠. 그리고 여러분은 강대한 초월자. 제 텅 빈 영역 정도는 채울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거는 재미있구나. 텅 빈 영역을 다른 초월자가 채운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야.]아릴난의 눈에 흥미가 서렸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야. 너는 모험의 신. 너의 격은 상당히 높다. 다른 초월자들의 개념을 받아들여도 버틸 수 있겠지. 더럽혀지고 망가지겠지만, 텅 빈 영역인 만큼 큰 문제는 아니지.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그렇긴 하죠.”
남자도 부정하지 않았다. 아릴난은 말을 이었다.
[우리의 영역은 무한하지 않다. 네 영역에 개념을 채우려면, 우리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겠지.]초월자들은 각기 우주의 개념 그 자체를 지배한다.
거대한 영향을 끼치려면 자신의 간섭 영역을 소모해야 한다.
즉,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개념 그 자체가 깎여 나간다는 뜻이었다.
만약 승리의 신의 간섭 영역이 줄어든다면, 우주 전체에서 승리에 대한 가치가 줄어든다.
그것이 점점 심해지면 마지막에는 우주에서 그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존재가 소멸당할 수도 있었다. 아릴난은 그렇게 사라진 초월자를 몇 보았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큰 영역을 바라진 않으니까요. 그냥 적당히 나누어 주시면 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모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 무엇보다 타인의 영역을 받은 너 또한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 그건 알고 있을 텐데, 무엇을 노리는 게냐.]“별 건 아닙니다.”
남자는 웃었다.
“재미있는 장난감 상자를 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릴난이시여. 묻겠습니다. 우리 초월자들이 필멸자들을 지켜보며 시련을 내리고, 그중 일부를 사도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니까.]아릴난은 담담히 답했다.
[초월자는 종착점에 도달한 자. 더 이상 이룰 것도, 노릴 것도 없으니.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배하는 개념이 우주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선택의 개념이 얼마나 우주에 영향을 끼치는가.
투쟁의 개념이 얼마나 우주에 영향을 끼치는가.
그 확인은 초월자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필멸자들이 자신이 도달한 개념에 필사적으로 도전하고 이루려는 것을 보면 초월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얻는다.
남자는 거기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극히 드문 케이스지만, 모든 초월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가 자신의 개념에 관련된 노력을 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건 단순히 유희를 넘어서 그들이 개념을 지배하는 초월자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주는 넓습니다. 초월자가 될 만한 가능성을 가진 자가 투쟁 끝에 스러지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보는 경우도 부지기수지요.”
[뭐, 그렇지.]우주는 넓다. 초월자는 완전에 가깝지만 완전이 아니다. 모든 필멸자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자신을 믿고 섬기는 신자들을 살피는 것이 전부였다.
“제가 노리는 것은 간단합니다.”
남자는 싱글벙글 웃었다.
“그 모든 가능성을 모을 것입니다.”
[……뭐라고?]“저는 던전을 만들 것입니다. 아릴난이시여. 수많은 초월자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던전을. 필멸자를 시험하고 그 투쟁을 보기 위한 던전을 말입니다.”
아릴난의 눈이 커진다.
“초월자들이 만들어 낸 던전. 그곳에 도전하여 힘을 거머쥐어라. 그 존재는 전 우주에 널리 알려지겠지요. 그리고 각 우주에서 재능을 가진, 자신의 힘을 믿는 자들은 던전을 찾을 것입니다. 초월자들 앞에 스스로를 증명하고, 자신의 힘을 더욱 단련하기 위해 말입니다. 아릴난 님이 보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들이 이곳에 모일 것입니다.”
던전은 모형 정원.
과연 필멸자들은 만들어진 모형 정원에서 무엇을 하고 어디에 도달할 수 있을까.
“만약 아릴난 님이 원하신다면, 던전을 찾아오는 필멸자 중 흥미가 있는 자에게 시련을 내릴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정말로 마음에 드신다면 직접 사도의 계약을 맺을 수도 있으실 겁니다.”
[딱히 사도의 계약에는 흥미가 없지만…… 재미는 있겠구나.]아릴난은 중얼거렸다. 그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초월자들이 만들어 낸 던전. 그만한 어려움이 있겠지. 그리고 그만한 재능을 가진 자들이 모일 것이고, 그들의 투쟁은 확실히 우리에게 즐거운 게다. 하지만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바칠 것이지?]“그렇게 만들어 낸 영역. 그 자체.”
“계약입니다. 던전을 정복한 자의 소원을 이루어 줄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어떠한 소원이라도. 설령, 던전 그 자체를 바란다 하더라도.”
[……너는.]아릴난은 경악했다. 그녀는 이제야 남자가 바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의 말대로 이루어진다면 던전은 남자의 빈 영역 그 자체다.
그러한 영역을 준다는 건 즉.
[……하, 하하하! 하하하! 그런 뜻이구나!]아릴난은 미친 듯이 웃었다. 만약 그 광경을 다른 초월자가 보았다면 분명 놀랐으리라. 아릴난은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초월자 중 하나. 그런 그녀가 이만큼 큰 감정을 드러내는 건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으니.
하지만 아릴난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남자의 말은 그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까지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너는 인위적으로 초월자를 만들어 낼 생각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