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24
세간에서 사안(死眼), 혹은 마안(魔眼)이라고 불리는 것들.
그러한 능력에 내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테베에 떨어진 뒤 70년째를 넘겼던 순간부터였다.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무료했으니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심심해 죽을 것 같았지.’
더 이상 내게 대적하려 드는 이조차 없고, 이젠 이것도 저것도 전부 질려 버린 참이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가는 것이 있다면 연구하거나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아무튼, 그런 몇 년의 과정을 걸쳐 나는 내 사령술에 마안의 능력을 접목하는 데 성공했다.
때로는 고대 생물의 것을 직접 추출하기도 하고, 어디의 누군가가 비슷한 계열의 능력을 사용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곧바로 찾아가 정보를 털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은, 내 당초 생각보다는 조금 위험한 물건이었다.
하긴, 그야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이미 너무나도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으니까.
“마침 너 같은 타입한테 딱 좋은 능력이 있거든.”
“…….”
내 손바닥에 자리 잡은 눈동자가 그 색을 변화시키며 강렬한 기운을 내뿜었고, 라이언 역시 지체하지 않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소용없다고 말했을 텐데.”
후우웅.
파지지지직!
그를 기점으로 방사되기 시작한 막대한 양의 전류, 확실히 말해 그것으로부터 피할 방법은 도저히 없어 보였다.
허나.
지지직.
후우우웅.
“뭣!”
라이언의 전류는, 마치 살아 움직이듯 내가 있는 공간을 피해 애꿎은 허공만을 내리쳤다.
사실을 모르고 본다면 일부러 나를 빗겨 맞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런 라이언을 비웃듯 말했다.
“거봐. 방법만 바꾸면 된다니까.”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거지?”
“글쎄. 네가 힘을 쓰는 방식이 너무 뻔한 탓이지.”
솔직히 말하면 라이언은 칠성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본인이 가진 힘을 완벽히 컨트롤하고 있다.
허나, 그 역시도 각성자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이 직접 쌓아 올린 힘이 아닌데다 저가 가진 힘의 이미지가 너무 명확한 탓이다.
‘힘의 운용 방식이 너무 일편적이고 올곧아.’
그만큼 공략하는 입장에서는 편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나는 시큰둥한 표정을 내지으며, 리자드 울프를 소환해 나지막이 그 등 위에 걸터앉았다.
“슬슬 정리할게. 딱히 바뀔 것도 없어 보이고.”
“…크윽!”
올라간 레벨을 보며 대충 예상은 했지만, 확실히 이제는 강령술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도 제법 낼 수 있는 힘의 상한치가 올라갔다.
급한 대로 다시 한번 강령술을 쓸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쓰지 않고 사태를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단숨에 몰아칠 작성으로 사기와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방해가 들어왔다.
쐐애액!
콰가가가각─!
순식간에 나를 견제하듯 내리꽂힌 십수 개의 강철 기둥들.
그 주인은 당연히 라이언을 주시하고 있던 독일의 칠성 율리안이었다.
‘…솔직히 저놈은 꽤 까다로운데.’
라이언과는 다른 타입.
힘의 크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것을 잘 다루는 쪽은 다름 아닌 율리안이다.
속성적인 면에서도 라이언만큼 상성이 좋지는 않다. 아마 조금 전 썼던 편법들은 전부 먹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허나 율리안은, 왠지 모르게 더 이상 전투를 이어갈 낌새는 없어 보였다.
라이언의 안전을 확보한 그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얘기를 들어보지.”
“뭐? 율리안. 지금 제정신이야?”
“라이언이여. 냉정히 상황을 파악해라. 이곳에서 결사 항전을 벌이는 것은 그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마 율리안은 내가 그리 어렵지 않게 라이언을 누른 것을 보곤, 헤네시아 쪽과 힘을 합친다면 이길 수 없다 판단한듯했다.
“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혀주길 원한다. 뒤쪽에 있는 두 사람에게 피해를 입은 국가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들 역시 둘에게서 명확한 목적성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습격은 어찌 된 일이지?”
“…….”
생각보다 이성적인 타입이다.
조금 예상치 못한 상황이긴 했지만,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된다면 나 역시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여기서 다시 무작정 강령술까지 써버리기엔, 하데스 쪽이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아는 사이는 맞아. 단지 미국과 러시아를 습격한 게 동일 인물인지 몰랐을 뿐이지,”
“무슨! 그런 궤변을…….”
“미국의 폴슨이라 했던가? 진정해라. 아마 그녀의 말은 사실일 테니.”
당국에서 파견된 폴슨은 내 말에 격분했지만, 그것을 율리안이 또다시 저지했다.
칠성이라 불리는 헌터의 말에 폴슨 역시도 더 이상 나서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럼 다음 질문이다. 그녀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지? 국제기구에 소속된 모든 나라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일치하는 정보를 찾지 못했다.”
아마 율리안으로서는 그것이 가장 의문스런 부분이었을 것이다.
길게 갈 것도 없이 당장 두 사람은 지구 출신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이것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나선 것은,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아스트리데였다.
“…선생님과는 저쪽에서 만났어. 이 행성에 온 건 고작 며칠 전이니, 우리에 대해 모르는 것도 당연해.”
“그게 무슨 말이지?”
“…당신들이 귀환자라 부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라는 거야.”
많은 설명이 들어 있지는 않았지만, 율리안 역시 아스트리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내용인지는 깨달은듯했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녕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경우에 따라 복잡한 변수가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가능했어.”
인위적인 차원 간 이동이 가능하다. 사실상 그것만으로도 난리가 날 만한 정보였다.
율리안은 잠시 깊은 고민에 잠기더니, 이내 다시금 말을 꺼내왔다.
“거짓 같지는 않군. 그것을 믿는다면 이전의 사태 역시 설명이 된다. 습격 건은 이 세상에 대해 무지했던 탓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겠지.”
“뭐야, 당신. 말이 좀 통하네. 우린 딱히 무슨 짓을 저지르려 움직인 게 아니야.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됐을 뿐이지,”
곁에 있던 헤네시아가 뻔뻔스레 말을 내뱉었고, 아스트리데 역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역시 나를 찾겠다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아마 이쪽의 사회와 더 이상의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게 분명했다.
“그럼, 그쪽은 더 이상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다 약조할 수 있나?”
“우릴 귀찮게 하지 않겠다면 그 정도야 뭐.”
“좋다. 상층부는 내가 설득하지. 다만, 이후 어느 국가를 통해서든 최소한의 소통은 해 주길 바란다.”
“그렇게 할게.”
대화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까 전까지 사생결단을 벌이려던 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생각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는지, 율리안과 라이언을 제외한 다른 헌터들이 일제히 반발의 뜻을 내비쳤다.
“웃기지도 않는 촌극이군. 언제부터 당신에게 그 정도의 권한이 있었지?”
“이건 이곳에 있는 다른 헌터들과 그들의 국가를 모욕하는 행위다. 우리 러시아 앞에서도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나?”
“소속도 없고, 그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강자가 둘이나 있다. 그들이 세계정세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위험인물이라 말한 건 당신들 쪽이었을 텐데.”
전부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뭐라 반론할 것이 없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어 율리안 쪽을 바라보니, 그는 왠지 모르게 일순간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무지몽매하기 짝이 없군. 머리가 있다면 무엇이 국가를 위한 일인지 생각해라.”
“뭐, 뭣이?”
“이 자리에서 더 이상의 반론은 받지 않겠다. 불만이 있다면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전달하길 바라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행동, 그러나 그 한구석에는 왠지 모를 조급함이 섞여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허나 그의 강함을 익히 알고 있기에, 다른 헌터들도 서로 눈치를 볼 뿐 앞장서 나서는 이들은 없었다.
거기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바로 아스트리데였다.
“…한 가지 말해두겠지만, 우린 별로 당신들이 두렵지 않아.”
그와 동시에 그녀는 허리춤의 검을 하나 뽑아 멋대로 휘두른 뒤 다시 집어넣었다.
서걱!
서거억!
철컥.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속 진영과 연락을 취하고 있던 헌터들이, 한순간 전부 통신 이상을 호소한 것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스킬을 쓴 기척은 느끼지 못했는데!”
“마력 반응도 없었소. 그저 검을 휘둘렀을 뿐.”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말은 틀렸다.
너무나도 정련되고 절제된 마력을 그들의 수준으로 파악할 수 없었을 뿐이다.
허나 단순히 강력한 위력의 공격보다도, 조금 전의 일격이 헌터들에게 커다란 경각심을 심어준 듯했다.
결국 그들은, 이렇다 할 반론을 내뱉지 못한 채 자리가 상황이 종료되는 것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
그사이에 섞여, 나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율리안을 응시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는 뭔가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또한 집중해서 보니 어렴풋이 그의 주변을 맴도는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아까 전 갑작스레 바뀐 태도와 이유 모를 조급함 역시 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뭐, 상관없나.’
흥미가 동했을 뿐, 당장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선생님.”
무엇보다 지금은, 우선적으로 정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