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41
‘…이게 정녕 한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칠성이라 불리는 헌터 자비에는, 힘이 빠져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눈앞에 있는 존재를 응시했다.
교전이 시작된 지 고작 10분.
그러나 이미 자비에는 그 짧은 교전 속에서 패배를 직감했다.
저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의 힘으로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군.’
자비에 역시 세간에서는 인간을 초월한 헌터라 불린다.
함께 각성자가 되어 팀을 맺은 그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 도달했고, 주변의 헌터들은 언제나 자비에의 등 뒤에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자비에는 바로 지금 그들의 감정을 절실히 느끼고 말았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너무나도 커다랗다.
자비에의 힘으로는, 도무지 손이 닿지 않는다.
“하임벨이여, 이 중에 백은하란 자가 있나?”
“…아닙니다. 군주시여. 아마 다른 곳에 몸을 숨겨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렇다면 되었다. 그 정도 상대에게는 흥미가 일지도 않는구나.”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길데온과, 그런 그의 곁을 지키는 세 마리의 언데드.
고룡 아스칼론, 천벽(天闢)의 기사 루스파, 융마수(烿魔獸) 베르쿨라치오.
자비에로서는 그중 어느 하나도 뚫어낼 수 없었다. 그저 일대일로 시간을 끌며 버텨내는 것이 한계였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헤네시아와 아스트리데. 그녀들이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실제로 아스트리데는 루스파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날카로운 공격에는 길데온조차 이따금 눈길을 주곤 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그녀들에게 길데온을 상대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것이 자비에가 노릴 수 있는 마지막 계책이었다.
“…이보게, 헬(Hel) 하임벨을 잡아둘 수 있겠나?”
헬레나의 이명을 일컫는 자비에의 말에, 평온한 목소리가 마주 들려왔다.
“아예 눌러버리는 것도 가능해요. 아무래도 이제 그는 제 밑줄인 모양인지라. 다만…….”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다. 그러니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헬레나는 눈빛으로 자비에를 향해 그리 말했다.
“좋네. 그럼 정확히 20초 뒤에 부탁하지.”
지금 자비에에게 남은 마력은 고작 4할 남짓, 그러나 한순간 최대 화력을 내기에는 충분하다.
자비에는 뒤쪽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있던 예시엘에게 비밀스레 손짓을 보냈다.
타이밍에 맞춰, ‘성역’을 불러내라는 수신호였다.
‘…셋, 둘, 하나. 바로 지금.’
자비에의 지휘에 편승해, 아직 힘이 남아있는 모두가 제 역할을 다하고자 몸을 움직였다.
헬레나가 불러낸 거대 뱀과 밴시 퀸이 하임벨의 언데드를 무력화시켰고, 당황한 하임벨의 곁으로 수많은 원혼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베아트리체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강력한 염력을 방사했다.
“염추(念墜)!”
표적이 된 것은 길데온을 지키는 세 마리의 언데드.
코와 귀에서 피가 흘러내릴 정도의 힘을 쓴 베아트리체의 희생으로, 그런 그들은 허공에 띄워져 한 장소에 내리꽂혔다.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것은, 바로 자비에와 예시엘이었다.
“지금부터, 성역(聖域)을 선포하겠습니다.”
후우웅.
촤아아악─!
신성력을 한껏 끌어올리며 기도를 올린 예시엘에 의해, 폭발적인 빛이 던전 내부를 가득 비추었다.
그렇게 세 마리의 언데드를 겨냥해 빛의 공간이 구성되자, 자비에는 마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5분. 그 이상은 못 버티네.”
그 말에 아스트리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도 지금 길데온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이제는 마지막 수단을 사용할 때였다.
“…헤네시아, 용사의 힘을 쓸 거야.”
“알겠어. 보조할게.”
그녀의 출신지인 셀렌 왕국의 왕족,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런 힘.
아스트리데는 아주 어릴 적부터 그것을 발현해냈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뒤로부터는 사용하기를 꺼렸다.
그 힘의 원천이, 인간의 신분으로 관련되어 하등 좋을 것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써야 해.’
그렇지 않고서는 눈앞의 괴물을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다. 그렇기에 아스트리데는 망설임 없이 성검 울페리아를 뽑아 들었다.
“광휘(光輝)의 빛.”
아스트리데의 마력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육체를 감싸기 시작했고, 그것은 머지않아 폭발적인 힘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속 시간은, 길지 않아.’
그러니 그 안에 전력을 다해 승부를 낸다.
그것이 일행 모두가 선택한 마지막 한 수였다.
투콰악─!
아스트리데가 힘차게 땅을 박찼고, 순식간에 던전 벽면 이곳저곳에 정체불명의 충격파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인 탓에, 그저 도움닫기를 하는 것만으로 벽이 부서지고 있는 것이었다.
콰앙!
쾅!
콰아앙!
자리에 있는 그 누구조차 인지할 수 없는 스피드로 세 번 연속 땅을 박찬 아스트리데는, 마침내 틈이 만들어졌음을 느끼며 완벽히 정련된 검격을 내질렀다.
제 선생인 백은하가 처음으로 감탄을 표하기도 했던 기술.
순수한 검로와 마력이 그리는 검로를 정확히 일치시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 넘기는 단절(斷絶)의 검이었다.
서거억!
콰가가가각─!
길데온 역시 경각심을 느꼈는지 빠르게 언데드 한 체를 더 소환했지만, 그것은 구현되자마자 검격에 휘말려 그대로 찢겨나갔다.
그리고 검격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그 너머에 있는 길데온에게 적중했다.
‘…들어갔어.’
확실하게 손맛이 느껴졌다.
지금껏 휘둘렀던 그 어떤 검격보다도 완벽한 한 번이었다.
아스트리데는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몸이 반으로 잘려 나간 길데온의 사체를 응시했다.
그와 동시에 헬레나의 거대 뱀에 꽁꽁 묶인 하임벨이 놀란 듯 소리쳤다.
“군주시여!”
길데온의 강함을 익히 알고 있는 하임벨조차도 그 무사를 확신할 수 없을 정도의 일격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와중, 자비에가 다급히 경고를 외쳤다.
꼼짝없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길데온이었지만, 정작 그의 언데드는 멀쩡히 공격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일격을 넣게! 놈은 아직 살아있는 게야!”
그 말에 아스트리데가 재차 땅을 박찼고, 헤네시아 역시 그런 아스트리데를 보조해 각종 주문을 쏘아냈다.
허나, 거기까지였다.
“…내 실수를 사죄하지.”
후우웅.
콰드드드득!
아스트리데가 내지른 검격이, 한발 앞서 지면에서 솟아오른 검은 손들에 의해 상쇄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아스트리데와 헤네시아는 표정을 굳혔다.
그것이 다름 아닌, 백은하의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들의 충격을 무시한 채, 길데온은 평온한 음색으로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진정 전사로구나. 비록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곤 하나, 이리 판단을 잘못 내렸으니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상황에 맞지 않게도 찬사를 건넨 길데온은, 이윽고 몸에 말단 부위에서부터 소름 끼치는 사기를 피워 올리며 나지막이 선언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타당한 예우를 갖춰 맞이하여도 괜찮겠나?”
“…….”
“그대들 전부, 한번 끝을 본 뒤 남김없이 수족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전부 죽인 뒤 자신의 언데드로 삼겠다는 소리.
그러나 그 무례한 선언을 코앞에서 듣고도, 감히 반론을 내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 당장 모두가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두렵군. 이런 존재가 곧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된단 말인가.”
말을 내뱉은 것은 자비에 뿐이었지만, 자리에 있는 누구나가 마음속으로는 그에 동의했다.
하데스의 야망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길데온이라면, 진정 단신으로 이 세상을 남김없이 집어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행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던전 저편에 잠들어있는 마지막 희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윽고 그런 희망을 남김없이 부수듯, 무덤덤한 길데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라, 거신병(巨神兵) 쿠바르나.”
그와 동시에, 끝을 알 수 없이 드높던 던전의 천장이 가려지며 어둠이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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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씨, 시끄러워서 진짜.”
정신세계 내부에서 육체와 영혼의 경계를 조율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이고 있던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반듯한 자세로 곁에 눕혀진 서민아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뭐, 알만하네.’
어떻게든 몸의 형체를 유지하던 도중, 누군가 바깥에서 고위의 사령술을 통해 나를 도우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의식의 시행자는 헬레나, 그리고 그 제물로 쓰인 것이 서민아일 것이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느그 족속들은 맨날 그런 식이라니까.”
서민아와 비슷한 힘을 지녔던 예언가들은 테베에도 몇이나 존재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결말은 대부분 비슷했다.
결국 정해진 때가 온다면, 스스로의 운명에 순응하며 미래의 누군가에게 뜻을 넘길 뿐이다.
“근데 내가 그런 걸 좀 싫어해서.”
후우웅.
파스스슥.
뻗어진 내 손을 따라 일정량의 사기가 피어올랐고, 그것은 그대로 서민아의 시체를 향해 흘러 들어갔다.
지금 내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고작 전성기의 4분의 1 정도.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껏 나를 억누르던 모든 속박이 사라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대충 이렇게 하는 거였던가.”
오랜만에 느끼는 상쾌한 감각을 즐기며 손을 몇 번 휘적이자,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서민아의 시체가 허공에 떠올랐다.
이윽고, 눈을 뜬 그녀가 놀란 듯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았다.
“이건, 대체 어떻게…….”
“받은 만큼 돌려줬을 뿐이야. 언데드로 만든 것도 아니니까 괜한 착각은 하지 말고.”
말을 내뱉고는 깨달았다. 이제는 지긋지긋하던 차원 이동의 부작용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서민아를 내버려 두곤, 강렬한 진동이 발생하고 있는 진
원지를 향해 걸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뭐야. 생각보다 할 만하네.”
조금 전 한 번 본 것만으로 재현해낸 길데온의 사령술, 그 구조를 다시금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