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43
그 뒤로 나는 송하연과 간간이 소형 던전을 돌았다.
곽민지라는 하수인이 생기긴 했지만, 고작 한 명이 더해진다고 새로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끽해야 게임 계정 육성에나 도움이 될 뿐이었다.
‘세 명만 더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중형 던전의 공략 허가도 받아낼 수 있다.
생각할수록 홍용택 일행을 죽인 것이 아쉬워지는 시점이었다.
‘세 명, 세 명이라.’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떠오르는 이들이 있기는 했다.
바로 국비 지원 교육에서 같은 팀을 이뤘던 김승민과 한소은, 최은솔이었다.
일단 집으로 초대한 적도 있는 만큼 세 사람 모두 연락처는 가지고 있다.
그들 모두를 더한다면, 가까스로 목표하던 6인 파티가 완성되기는 한다.
‘그래도 좀 그렇지…….’
게임 친구인 김승민이나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곽민지라면 모를까, 나머지 두 사람은 아직 대하기가 어렵다.
나는 우선 생각을 보류했다.
그러던 찰나, 송하연으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띠링.
[스승님.] [이제 소형은 한 30번 돌았던가요?] [어.]아마 그쯤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송하연의 답을 기다렸다.
[그럼 그, 슬슬 제 부탁도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나는 괘씸함에 입가를 삐죽거렸다. 시대가 시대라지만, 어디 감히 제자가 스승에게 대가를 청하게 되어 있단 말인가?
허나 확실히 송하연이 평소 여러모로 신경을 써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번 임시 파티 사건으로 그녀의 대우를 개선해주겠다 마음먹은 것도 있어, 나는 봐주는 셈 치고 수긍의 의사를 건넸다.
어쩐지 불길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송하연은 이윽고 상상치도 못했던 부탁을 건네왔다.
나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거절했다.
띠링.
[아, 왜요! 한 번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어차피 모니터 안의 사람들이니까 상관없지 않아요?]완벽한 인싸의 사고방식에 절로 고개가 내저어졌다. 나는 그런 송하연에게 의문이 가득 담긴 질문을 건넸다.
[내가 거길 가서 뭐해?] [게임 하시든가요. 랭크도 높으시던데.]그렇게 생각하니 또 아예 못할 건 없을 것 같았지만, 게임이야 집에서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 나에게 송하연은 가불기를 시전했다.
[그럼 이렇게 계속 세간에서 제자 취급받아도 괜찮으신 거예요?]그건 괜찮지 않긴 하다. 그렇지 않아도 줄곧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었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송하연은 더욱 설득에 열을 올렸다.
[이참에 나오셔서 사제 관계도 제대로 밝히시고, 민심도 좀 챙시기고, 요즘 스승님 얘기 인터넷에서 얼마나 돌아다니는지 모르시죠? 분명 잠깐 얼굴만 비춰도 다 열광할걸요.] […그래?]가끔 내 얘기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긴 했지만, 주로 게임 커뮤니티 위주라 그 외의 반응은 잘 모르긴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채팅 정도의 소통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여타 게임을 할 때도 채팅을 했지만 아무런 부작용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대중들이 나를 원한다면 한 번쯤 나가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띠링.
그렇게 결국 부탁을 승낙한 후, 나는 문득 의문이 들어 송하연에게 물었다.
[근데 평소엔 신경도 안 쓰다가 왜 갑자기 난리야?] [아, 그. 지난번에 술 먹고 시청자들이랑 내기했는데 실패해가지고. 그때 조건으로 건 게…….]“…….”
얼추 예상은 했지만, 참으로 보잘것없는 이유였다.
#
송하연은 최근 인터넷 방송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크리에이터 중 하나였다.
외모도 수려했으며, 일단 가장 중요한 방송의 재미가 훌륭했다.
거기에 본인부터가 B랭크 헌터이고, 앞으로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평가받고 있다. 사실 이 정도나 되면 인기가 없는 것이 더 이상한 수준이었다.
【요즘 송하연 방송만 보는 듯.】
【ㄹㅇ 얘 한 번 보니까 비슷한 컨셉 방송들은 걍 못 보겠음.】
【머리에 사과 올려놓고 묘기 부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당시의 방송은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서 영상 으로 돌아다니며 회자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기가 많은 송하연이었지만, 최근에는 더욱더 관련 커뮤니티의 언급 빈도가 늘어나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사제 관계라 알려진 백은하 때문이었다.
【스승으로서 책임지고 함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니냐?】
【다른 게 아니고 이게 업무 태만이지.】
【송하연 뭐해? 송하연 뭐해? 송하연 뭐해? 송하연 뭐해?】
그런 흐름이 이어지던 와중, 한 가지의 소식이 커뮤니티 등지에 전해졌다.
【송하연 방송 특보. 술 먹고 백은하 합방 걸면서 격겜 내기했는데 짐.】
┗ 진짜?
┗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시도해본다고 함.
그것은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각종 사이트는 그 소식에 완전히 불바다가 되기 시작했다.
여지껏 소문만 무성하던 백은하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였으니,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네크로맨서 듀오 올 때까지 숨 참음.】
【송하연 초심 잃었네. 기다리다 죽겠다. 아이고.】
【ㄹㅇ 우리도 말로만 듣던 은발 적안 미소녀 헌터 좀 보자고. 왜 니들만 봐.】
그렇게 도저히 그칠 줄 모르는 원성이 며칠이나 지속되었을까, 마침내 줄곧 잠잠하던 송하연의 방송이 켜졌다.
【왔다!】
【백은하 없으면 폭동이다.】
【ㄹㅇ ㅋㅋㅋㅋ】
곧바로 버튼을 누른 시청자들이 본 것은, 화면 대부분을 가리고 있는 거대한 스켈레톤과 완전 박살이 나 있는 송하연의 스튜디오였다.
[아니, 그걸 갑자기 불러내면 어떡해요! 여기 마룻바닥인데!] [미, 미안. 그, 막상 켠다니까 긴장이 좀…….]그리고 소문의 헌터 백은하는, 왠지 모르게 송하연에게 잔뜩 혼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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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정돈이 된 스튜디오 사이에서, 나는 무안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송하연은 그런 내게 불만스런 시선을 던지며 방송의 시작을 알렸다.
“죄송해요. 시작부터 좀 난리였죠?”
그래도 명색이 방송인이라는 듯 능숙하게 멘트를 이어가던 송하연이, 스켈레톤 매셔 뒤에 앉아 있는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네, 이쪽이 바로 그분이시거든요. 워낙 부끄럼을 타시는 분이라 앞에 해골은 양해 좀 부탁드릴게요.”
부끄럼 운운하는 송하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쩐지 긴장되는 상황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부작용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새, 생각 이상으로 거북해.’
하지만 소싯적에 수만의 언데드를 앞에 두고도 군주의 풍채를 잃지 않았던 나다. 고작 이런 일로 긴장해서야 체면이 서질 않는다.
“…그, 안녕하세요.”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나간 것도 신경 쓰지 못하고, 나는 무수히 올라오는 채팅들을 빠르게 훑어나갔다.
– 목소리 뭐야.
– 진짜 은발이네
– 해골 치워! 해골 치워! 해골 치워! 해골 치워!
– 모자란 방장님 관리하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관리는 무슨 관리에요? 제가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챙겨주는데.”
그런 시답잖은 채팅들 사이로, 줄곧 신경쓰던 질문 하나가 등장했다.
–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저희 송하연씨 제자라는 게 정말인가요?
마침내 기회가 왔다. 나는 꿀꺽 침을 삼키며 당당히 선포했다.
“그. 얘, 얘가 제자고 제가 스승이에요.”
허나 이상하리만큼 반응이 없었다. 무리수를 던진다는 채팅이 가끔 올라오는 것을 보면 아마 긴장한 탓에 나온 농담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 제자 되신 게 언제쯤인가요?
– C랭크 승급하기 전?
– 이 무지성 스켈레톤충이 스승이라니 암만 생각해도 상상이 안 가는데.
그에 나는 송하연이 쥐고 있던 마우스를 빼앗아 전체 채팅 제한을 걸어버리곤 카메라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시선을 마주치며 다시 한번 말했다.
“…내, 내가 스승이라고.”
직후 채팅 제한을 풀자, 무수한 물음표가 수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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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청자들과 소통한다는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여겼던 송하연의 예상과는 다르게, 백은하는 의외로 방송에 곧잘 적응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적응해서 문제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조, 조건형 던전 난이도? 별거 없던데.”
– 저랭크 헌터 일동 실시간 오열.
– 아, 별거 없는 던전도 못 깨는 애들은 반성해야 하는 게 맞다고 ㄹㅇ
– 자신감 미쳤네 진짜 ㅋㅋㅋ
– 이게 한국의 신성?
분명 사람과 통화하는 것은 또 힘들어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백은하는 그렇게 어색하지 않게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하기야, 채팅을 빼고 본다면 그저 벽에 대고 혼자 말을 내뱉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 때문인지 백은하는 완전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장장 30분을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스물일곱? 그럼 네가 동생이야.”
– 아니 ㄹㅇ 뭔 컨셉이냐고 ㅋㅋㅋㅋ
– 이런 캐릭터일 줄 몰랐는데 씹 ㅋㅋㅋㅋ
이제는 옆에 있는 송하연마저 무시한 채 시청자들과만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에 송하연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스승님? 얘기 좀 그만하시고 슬슬 게임이나 트시는 게…….”
– 어허! 감히 하늘 같은 웃어른께서 말씀하시는데.
– 아니, 씹. 제자가 허락도 없이 입을 열게 되어 있나?
– ㄹㅇ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 에휴.
그런 시청자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백은하는 헤실거리며 송하연에게 응수했다.
“그, 그렇다는데?”
그리고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려 태연스레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치. 나 때는 허락도 없이 입 열면 그대로 나가리였어. 맞아. 요즘 애들은 뭐 그리 불만이 많은지…….”
그 얼굴이 어쩐지 얄미워, 송하연은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어휴, 좀 치켜세워 준다고 신나서는.’
송하연도 소싯적엔 그러한 분위기에 당해 업보를 여러 번 쌓았던 전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내뱉어진 백은하의 폭탄 발언에 송하연은 새하얗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잭슨? 그게 누군데? 뭐야, 별 거 없네. 싸우면 당연히 내가 이기지.”
미국의 차기 톱 유망주이자 현 A랭크 헌터, 잭슨.
지치지 않는 검투사라 불리는 그를, 갑작스레 백은하가 저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