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academy, I became the only magician RAW novel - Chapter 117
Chapter 117 – 파국(破局)
거대한 흙먼지가 내려앉았다. 주변의 학생들은 저마다 경악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처음은 아닌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발끝에서 물컹거리는 감촉을 무시한 채.
전방을 바라봤다.
금발의 미남이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테일러.
신시아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인물이었다. 디바인 아카데미 1학년 학생들 중 3번째로 강한 남자.
“대단한데.”
“그래?”
“신시아는 제멋대로인 데다가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지. 남의 말은 또 더럽게 듣지도 않고, 자기주장만을 내세운다. 하지만.”
테일러는 검을 꺼내었다. 스릉-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그녀는, 그녀만큼은 그래도 된다. 그녀의 재능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니까. 멋대로 해도, 그녀만큼은 용서가 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살기가 너무 짙은데?”
“그녀는 디바인 아카데미의 상징이니까. 그녀의 패배는 우리의 패배이기도 하다.”
주변의 디바인 아카데미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을 붙잡은 채, 수십의 인원이 나에게 모였다.
‘게임에서 지더라도 나를 쓰러트리겠다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네.
나는 웃으면서 손을 뻗었다. 흑천이나 겨울의 검이 아닌, 예비용 검. 낯설다. 그러나 재능, 검귀(S)를 활용한다면 금세 익을 테니 상관없다.
‘백홍이랑 수호자의 갑옷도 못 쓰고.’
둘 다 너무 사기적인 물건들이라 그렇다. 여기 오기 전에 신관에게 많은 물건을 제지당했다.
뭐, 당연하긴 하다.
이건 마인과 싸우는 죽고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싸움이니까.
‘어떻게 할까.’
이기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격의 초반일 때도 상격을 쉽게 잡았던 나다.
방어를 굳히고, 다른 애들이 오길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고, 한순간 힘을 폭발적으로 사용해서 뛰어난 정예들을 쓰러트리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후자를 골랐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바로 갈 테니까……!”
멀리서 에르실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금방 처리하고 갈게.”
“뭐?”
테일러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 우리를 금방 쓰러트리고 가겠다고 했냐?”
“한국어가 유창한데? 어, 맞아.”
나는 몸을 가볍게 풀었다.
“내가 다 해먹을 거거든.”
“쳐!”
테일러의 말에 십수 명의 학생들이 나에게 덤볐다. 나는 칼을 반듯하게 세웠다.
검귀의 감각이 상대의 공격들을 모조리 꿰뚫었다. 성신안이 모든 신성을 보았다. 내가 할 것은 하나. 그것들을 피하며 모조리 깨부수는 것.
후웅.
흑신무로 다져진 육체를 조율한다. 피의 흐름부터 시작해서 골격을 강화하고, 근육을 키웠다. 흑정이 역천의 기를 토했다.
“뒈져!”
열명이서 짓이겨 오는 공격.
합이 꽤 맞다.
디바인 아카데미는 대부분 개인의 생존보다는 신성력을 응용해서 다수대 다수나 다수로 개인을 압박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웅!
검에 역천의 기를 불어넣었다. 흑색의 부정한 힘이 검을 타고 새까만 검신을 만들어 냈다. 부정한 경파가 그 주위를 감쌌다.
‘넓게 퍼트리는 감각으로.’
흑신무(黑神武).
흑경(黑勁)-난살법(亂殺法).
힘을 제약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모의전이니까. 칼날의 형태를 뭉툭하게 만들었다. 힘을 넓게 퍼트리며 경파를 실었다.
“다들 조심해! 신시아도 저걸 막지 못했어!”
“알고 있어!”
화악!
휘광이 휘몰아치며 벽을 만들었다. 수십 개의 신성이 응축되고, 서로 융합된다.
쩌어어어엉!
한 번의 일격. 경파를 실은 무지막지한 공격이 신성으로 이루어진 벽을 산산이 깨트렸다.
“이런 괴물 같은…….”
“무슨 저런 성질의 마력이? 신성이 통하지 않는다고?”
경악해하는 학생들을 보며 테일러를 바라봤다.
“뭐해? 말은 많이 하지만 겁먹어서 오지 못하나?”
“테일러. 내가 나설게.”
“라운…….”
라운.
소녀같이 가녀린 선에 중성적인 외모. 하지만 남자다.
나는 검을 잡다가, 쓰게 웃었다. 조금 전 일격을 날리느라 검신의 절반도 같이 사라졌다. 흑천이었으면 버텼을 텐데.
파직.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늘을 올려봤다. 성신안으로 정경을 바라봤다.
마치 하늘에 금이라도 간 듯한 현상이 일어났다.
“…….”
……벌써 온 건가.
진행속도가 빠르다. 하긴, 지금 백신전을 거꾸러트리고 싶은 존재 중에 시작과 운명의 신이 있으니 당연한 건가.
시작과 운명의 신.
무언가를 시작할 때 행운의 작용을 주는 신이기 때문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시작과 운명의 신이 함께한다면 그 반은 먹고 들어간다.
‘싸울 때가 아니군.’
나는 검을 늘어트리고 발을 올렸다.
“야. 일어나 있는 거 다 안다.”
“…….”
신시아가 죽은 척 미동하지 않았다.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해. 마인들이 침공할 거다.”
“……마인들 따위가 침공해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어. 미국을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자긍심 넘치는 말투였다.
그 근본은 백 명의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초월자들과 비견되는 존재들의 비호를 받기에 저리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거지.
하지만.
그들의 일부가 적으로 돌아섰다.
앞으로 미국은 서로의 신앙들을 믿지 못하고 도태된다. 중세에서 성행했던 마녀사냥이 미국에서 벌어지며 미국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되지.’
미국이 앞으로 해줄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조용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와라, 흑천.’
파앗!
내 물건이 보관된 곳에서 흑천이 솟아올랐다. 내 념을 보내준 덕분일까. 흑천은 내 물건들을 모조리 가져왔다.
내 기행 덕분일까. 전투가 멈추고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너, 무슨 속셈이야? 그 무기들을 사용하면 반칙패일 게 분명한데.”
“말했잖아. 마인들이 쳐들어왔다고.”
담담하게 말하며 흑천을 들었다.
“그거 진짜야?”
“……뭐, 이럴 때가 있긴 하셨죠.”
에르실이 내 옆에 섰다.
“진짜 미래라도 보는 거예요?”
조그맣게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르실의 미소가 약간 진해졌다.
념으로 수호자의 갑옷을 착용하고, 다른 무장까지 착용하며 하늘을 가리켰다.
금이 하나둘 생겨나는, 비정상적인 하늘이 있었다.
“하늘이……깨져 있어?”
“……들어 본 적이 있어. 칠악 중 흉악이라 불리는 자는 ‘근력’으로 공간에 간섭해 하늘을 깨트릴 수 있다고…….’
망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학생들.
발밑에서 신시아가 꿈틀대는 게 더 강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믿을만한가?”
“발부터 치워. 난 내 눈으로 확인한 거 아니면 안 믿으니까.”
발을 치우자 신시아가 등을 툭툭 두들기곤 일어났다. 마치 아무것도 없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들이 관리하고 있는 곳인데 마인들 따위가.”
조금 전까지 발 밑에서 꿈틀대던 애가 말해봤자 멋 따위는 없었다.
“어쩔래?”
“……너도 마인들을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모양이군. 나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마인이라는 적을 앞에 둔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하니까. 그러니까 이번만이다……!”
비장한 어투로 신시아가 말했다.
나는 뺨을 긁적거렸다.
“미안한데, 난 따로 행동할 거야.”
“뭐……라고?”
그런 바보같은─.
신시아가 뭐라 하기 전에 나는 등을 돌렸다.
“서가연. 홍유화.”
나는 두 명을 불렀다. 서가연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홍유화가 묘하게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랑 같이 갈래?”
“응.”
“……난 어디 갈지 말 안 했는데. 내가 갈 곳은 가장 위험한 곳이야.”
“괜찮아. 서하라면 나는 지옥 끝까지 갈 수 있어.”
든든하면서도 묘하게 무서운 말이었다.
“나도 상관없어. 경쟁자가 내가 있어야 하는데.”
홍유화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 고맙다.”
“후우, 이 느낌. 나쁘지 않아.”
“…….”
서가연이 묘한 눈으로 홍유화를 바라봤다.
“대신 사진 한 장만 찍어줘.”
“……사진?”
“어. 방에 걸어놓게.”
“……서하 사진은 왜?”
“그야, 내 경쟁자니까. 할아버지가 말했지. 정정당당한 경쟁을 위해서는 상대를 항상 눈으로 새기라고. 그렇기에 난 서하 사진을 천장에 붙여서 쓸개를 맛보는 심정으로 고난을 참는 거라고.”
“와신상담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것 같은데.”
서가연이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그럼 나도 서하 사진 찍어서 줘.”
“……그래.”
“성한별은 안 불러?”
“우리보다 선배야, 유화야.”
“……성한별 선배는 안 불러?”
“부를 필요 없어.”
그 사람이라면 이미 갔을 테니까.
성한별은 항상 그랬다. 수명을 깎아 먹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그녀는 항상 타인을 위해서 행동했다.
마치 자신이 사는 이유가 남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듯, 자신의 재능을 펼쳤다.
성한별은,
그렇기에 죽는다.
모든 분기, 모든 루트에서 그녀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죽는다. 그녀를 살리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어쩌면 그녀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가연을 바라봤다.
성한별을 살리기 위해서는 서가연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잠깐이나마 찬탈할 홍유화가 필요하다.
나는 하늘의 정경을 바라봤다. 하나둘, 금이 새겨졌던 하늘은 이제는 깨진 유리처럼 바뀌었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