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academy, I became the only magician RAW novel - Chapter 127
Chapter 127 – 사냥
“일어났군.”
느닷없이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는 패왕이 과일을 씹어먹고 있었다.
“……깜짝 놀랐습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해봤자 소용은 없다. 그나저나 축하한다. 이제는 제법 태가 나는군.”
패왕은 나를 보면서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까지 중격의 테두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반쯤 상격이지만, 아니, 이걸 고작 절반의 상격으로 봐야 하나?”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패왕.
“터무니 없는 일이지. 5년 안에 탈각해서 초월의 격을 두를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의 속도야.”
옆에는 나를 바라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 천견이 보였다.
“다들 조용히. 지금은 우리 서하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서하? 학생에게 그런 이름은 과하지 않나? 교장 선생과 학생의 금단의 사랑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어찌 되었든 내 학생이다.”
서예빈이 나를 바라봤다. 황금처럼 빛나는 머리카락. 보랏빛의 눈동자가 휜 채로.
“뭐, 아무튼 잘했다. 네가 별에 관한 목걸이를 줬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었는데.”
패왕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놈은 위천의 여단을 상대로 ‘별’을 소환하지 않아도 될 여력을 남기고 있었던 거군. 흠, 진짜 너, 내 제자가 될 생각이 없나?”
“남의 학생에게 이상한 손길을 내밀지 마라.”
“불안한가? 하긴, 너도 저 아이가 성장하는 데에 큰 도움은 못되었지.”
“나는 학생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편이라 그렇지. 나는 무수히 많은 지원을 해 줬어.”
패왕과 황제가 나를 두고 싸우고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스승님이 있어서.”
“……그래. 언제 그 잘난 스승을 한번 보고 싶구나.”
-내 본신으로 들어오면 돌아오면 한주먹감도 안 될 놈들이!
‘진짜로?’
-……한주먹감은 돼 보이는 구나.
흑천이 눈을 흘기며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백신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많은 신들이 죽었다. 나도 최대한 손을 써봤지만, 그럼에도 조금 부족했지.”
“쯧. 최고 우방국의 전력이 깎이는 건 탐탁지 않은데.”
“마냥 안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야. 이번 사태로 그들은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을 할 테니까.”
“그 엉덩이 무거운 놈들이?”
“그래.”
화악!
서예빈의 말을 끝으로 내 앞에 빛 무리가 나타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한 채 빛 무리를 바라봤다. 주변을 둘러싼 격이 어마어마했다.
‘내가 좀 친다고 해도 타격이 없겠는데…….’
‘격’을 나누는 것은 단계만을 뜻하지 않는다.
위계(位階)를 뜻하는 말도 있지만, 경계(境界)를 뜻하는 말도 있다.
상격에서는 그 힘이 잘 발휘되지 않고, 최상격에서야 그 힘이 좀 발휘되지만.
초월자가 되면 이야기가 조금 많이 달라진다.
초월자가 아닌 존재들은 초월자를 해할 수 없다. 그들이 쌓아온 격이 다른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니까.
그야말로 비대칭 전력.
그들에게는 핵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안녕.”
동네 아는 형이 건네는 듯한 가벼운 인사.
행색도 그랬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더 많은 듯한 형태. 검은색의 가죽 재킷에 안에는 나시티를 입었고, 가죽 바지를 입은 형태였다. 마치 어디 마실이라도 나가는 듯한 차림새.
남자는, 투쟁의 신은 그렇게 등장했다.
“너구나? 지금 초월자들 사이에서 그리 뜨겁던 애가.”
“그런 소문이 퍼졌습니까?”
“뭐, 황제나 패왕, 천견이 같이 움직이는 것은 꽤 드문 일이니까. 그리고 우리도 너에 대해서 꽤 주시하고 있어.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투쟁의 신은 그리 말하고는 나에게 허리를 숙였다.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번 사태는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거야. 백신전은 지금 남은 수의 절반도 못살았을 테고, 초월자들도 죽었겠지.”
“너무 과한 인사입니다.”
“아냐, 너는 이런 감사를 받아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야.”
투쟁의 신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 인간들은 보상을 좋아했지? 원하는 게 있어?”
“우리 백신전은 수천 개의 세계를 지나왔지.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큰 출혈이 있었지만, 보물들은 반대로 늘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백신전을 대표해서 왔어.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말만 해.”
신성을 이룬 신들은 그 격만은 초월자와 비슷하다. 그리고 그들은 무수히 많은 세계들을 거쳐서 왔다.
무수히 많은 신비를 품은 유물, 혹은 한 번의 섭취로 일반인이 중격의 힘을 가지게 되는 신비의 영약, 중격이 상격을 죽일 수 있을 힘을 주는 무구도 있겠지.
‘……대부분 필요 없는 것들이네?’
신비는 처음부터 한 가지를 정해 두었다.
지금은 흑신이 너무 비대해져서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신비는 필요하지 않다.
영약도 영적 능력을 상향시켜주는 영약은 극히 드문 데다가 지금은 효과를 별로 받을 수 없는 수준.
중격이 상격을 죽이는 무구? 나는 중격일 때도 상격을 죽이고 다닌 데다가 비슷한 무구인 사계의 검 중 두 개의 검이 있다. 흑천도 있고.
‘역시 그것뿐이지.’
신비와는 다른, 신성의 힘을 품은 힘.
“투쟁의 권능을 내려주실 수 있을까요?”
“투쟁이라.”
투쟁의 신은 난처하게 웃었다.
“꽤 곤란한 걸 달라고 하는군.”
“안되는 겁니까?”
“아니, 내 가오가 있지.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수 없어.”
투쟁의 신은 내 이마에 손가락을 올렸다.
“너는 이미 각인이 하나 있다. 그렇기에 내 각인을 받는다면, 하나밖에 받을 수 없지.”
투쟁의 신에게서 막대한 빛이 뿜어졌다.
거룩하고, 신성한. 그러면서도 끊임없는 투지를 불사르는 듯한 힘이었다.
[투쟁의 신에게서 투쟁의 권능을 얻었습니다.] [특수 스탯 투쟁을 획득했습니다.]‘이번에 진짜 얻어가는 게 많네.’
무력면에서 따지자면 족히 2배는 더 강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너, 혹시 내 사도가 될 생각은 있어?”
“사도 말씀이십니까?”
“어, 사도.”
사도는 문자 그대로 신의 힘을 잇는 것이다.
신의 대행자라고 봐도 좋다. 신의 얼굴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사도가 된다면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가장 먼저 미국에서 거의 신과 다름없는 권력을 가질 수 있고, 신도 사도가 강해야 편하니, 여러가지 밀어줄 거다.
‘투쟁의 신은 성격이 화끈하니, 엄청 밀어줄 테고.’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가.”
투쟁의 신은 나를 잠깐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 본인의 의견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투쟁은 그리 말하고는 아쉬움을 털어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또 받고 싶은 건 있나?”
“투쟁의 권능을 얻었는데요?”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 그렇지만 지금은 너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제스처라고 봐도 좋아.”
투쟁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너희는 특별 조치로 말해 두었다. 당장 한국으로 복귀해도 문제는 없어.”
“마인들은 어떻게 됩니까.”
“마인들이라.”
투쟁의 표정이 변했다. 친근한 동네 형에서 서릿발이 끼치는 냉혹한 표정으로.
“우리를 건드렸으니,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지 가르쳐 줘야겠지. 당분간은 미국에 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투쟁은 그리 말했다.
“아무튼 너희에게는 고맙다. 나중에 너희에게도 따로 선물을 해주지.”
“오냐. 중국-52로 보내라.”
“52? 그새 또 늘어난 건가. 중국은 요즘 늘어나기만 하는 것 같군 그래. 천견과 황제는 한국이었지?”
“그래.”
“그럼 조만간 보내도록 하지. 우리가 지금 생각보다 바빠서.”
투쟁은 그리 말하고는 떠났다.
“너는 어쩔 셈이냐? 나랑 황제는 돌아갈 거다.”
“천견 님은요?”
“천견은 여기에 남아있을 거다. 황제는 별을 수복해야 하니까.”
“…….”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다. 별들은 금방 회복할 수 있으니까. 교감을 조금 갈구면 되겠지.”
“저도 도와드릴까요?”
“……네가 도와준다면 나야 기쁘다.”
서예빈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혹시 너희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지? 자그마치 50세가 넘……커헉!”
어디선가 나타난 첫 번째 별이 패왕의 입을 닫았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
호흡한다.
흑염휘성신은 거대한 그릇이다. 근원과 불꽃, 흡의 결을 넣은 거대한 그릇.
‘너무 크게 만들었나.’
역천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대해에 바가지를 넣는 정도의 수준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역천을 이용해서 손에 역천을 모았다.
화르륵.
부정한 불꽃이 생겼다. 흑염휘성신을 만들면서 생긴 부가 효과다.
부정하고, 순도가 높은 흑염. 거기에 주변의 힘을 빨아들이는 인력(引力).
그러나 순도가 너무 높아서 오히려 쓸 수 있는 힘 자체가 줄었다.
‘관건은 흑염휘성신을 채우는 건가.’
가장 빠르게 채우는 방법은 천마의 유산을 얻는 것이다.
‘천마의 유산은 찾기 힘든데.’
차원이 겹쳐지는 현상이 생겨나면서 세계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원래 천마가 안배했던 유산들은 어쩌면 다른 것들에 오염되어 있을 수도 있고, 미국에 있던 것처럼 누군가의 손에 흘러갔을 수도 있다.
‘이건 전자마녀에게 맡겨야겠군.’
나는 휴대폰으로 전자마녀에게 이 일을 전달했다.
-네 힘을 쓸 수 있는 도구라. 알았어, 최대한 찾아볼게. 그런 특이한 게 있으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 부탁해.”
나는 주먹을 쥐었다. 이전과는 다른 힘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슬슬 움직여 볼까.’
서울 근처에는 마인이 없다.
정확하게는 수준이 높은 마인을 제외하면 없다. 왜냐하면, 내가 가면을 쓰고 소탕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면을 쓰고 에르실이 건네준 코트를 착용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몸을 점검했다.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해 본 결과, 지금 정도라면 건드리지 못한 놈들을 건드려도 될만했다.
‘오늘 밤, 사냥에 나서야겠군.’
나는 설화련에게 문자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