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01
101. 걱정 없어요
구정석과 현백이 그리고 지율이가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조민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그럼요. 얼마든지요. 저희 회사 복지로 어린이집 시설도 마련돼 있습니다.
조민택은 흔쾌히 맡아주겠다면서 웃음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요.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조민택이 웃으며 말했다.
―그거라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다 처리가 됐거든요.
처리라.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정확히는 처리한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뭘 말입니까?”
재차 물을 수밖에.
―그게 말입니다…….
수화기 너머의 조민택은 평소처럼 웃었다. 조금 웃긴 일이 있다 싶을 때, 아니면 약간 곤란한 상황에서 내는 웃음.
―모르시게끔, 신경 쓰시는 일 없도록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네요. 사실 제가 한 것은 없지만요.
휴도를 추적하는 집단이 있다. 아니, 있었다.
요트로 강척을 오가는 나. 고기잡이배도 아니고, 망망대해로 나가는데 며칠에 한 번씩 돌아오니 수상쩍을 수밖에.
사실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은 섬에 살겠거니 하고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며칠마다 강척에 올 때 무언가를 잔뜩 가지고 왔다는 것.
레저용 요트에 무언가를 잔뜩 실어서 오는 모습이 수상해 보였다.
이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의심을 산 계기는 나의 동선.
짐을 잔뜩 싣고 매번 JMT 글로벌로 향했다.
한적한 강척 마리나항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을 사람은 없었다.
휴도 추적은 오랜 계획에 걸친 것이 아니라, 단지 눈썰미 좋은 사람의 넘겨짚기가 딱딱 맞아떨어진 탓에 벌어졌다.
―전부 처리했습니다. 말씀하신 그 세 명만 어쩌다 섞이지 않은 모양인데, 그쪽도 문제없도록 하겠습니다.
우연히 문을 두드렸던 JMT 글로벌이 이렇게 듬직한 내 편이 될 줄이야.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는요, 앞으로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시선 분산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직원들도 그 주변으로 심어서 나르게 하겠습니다. 처음 단계에서는 지금까지처럼 대표님께서 직접 하셔야겠지만, 그 이후로는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이번에도 우연에 가까웠던 거잖습니까.”
―돌다리도 두드려야지요. 지금까지 잘 버텨줬다고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희 직원들도 대표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앞으로 알게 될 사람이 한 명 정도 늘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민택이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대표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아무한테나 이야기를 누설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계획들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나 더 필요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할 예정입니다. 그전에 대표님께 보여드릴 거고요.
“저는 대표님을 믿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어주시는 만큼,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따 들를 건데, 그때 뵐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언제든 오십시오, 자리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때 대표님 보조할 직원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냥 알아서 하셔도 되는데 말이죠.”
―그래도 확실히 해야죠.
마음이 편해졌다.
* * *
“후우우우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조민택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습관처럼 펜꽂이로 손을 가져갔다. 집어 든 것은 펜대였다. 뚜껑, 펜심, 뒤쪽 마개 등은 전부 빠져 있었다. 빨대처럼 가운데가 뚫려 있는 펜대뿐.
조민택은 펜대를 담배처럼 손가락에 끼우고는 스읍, 하, 스읍, 후우, 호흡하기 시작했다. 담배는 끊었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담배를 피우는 버릇은 나타냈다.
“습, 후우우우우…….”
조민택이 펜대를 입에 물고 흡연 흉내를 내고 있을 때였다.
철컥.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젊은 여자였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그녀는 조민택을 보며 실실 웃었다.
“애도 아니고 또 그래? 그냥 담배 하나 사다 줄까?”
“넌 애도 아니고 머리가 그게 뭐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
“내가 담배를 살 줄 몰라서 이러겠냐? 참느라 이러지.”
“내 머리가 뭐 어때서? 애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야.”
대립.
“노크도 안 하고 말이야.”
“왜 불렀는데?”
“여진아.”
“왜 삼촌.”
“이제 작은아빠라고 해야지.”
“싫어, 난 삼촌이 편하단 말이야.”
“……그래, 너 알아서 해라.”
“그래서 왜 불렀는데?”
조민택은 입에 물고 있던 펜대를 빼고는 커질 것 같은 목소리를 누르며 물었다.
“이제 같이 일하기로 했잖니?”
“그렇지?”
“그럼 근무할 때는 내가 얼마든지 부를 수 있는 거 아니겠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효율적으로 해야지 삼촌. 그런 거 다 갑질이야.”
“어후……!”
조민택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너 일부러 이러지?”
조여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당연하지.”
“됐어, 나가.”
눈을 질끈 감은 조민택이 손을 바깥쪽으로 젓자 조여진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뭐야. 삼촌 삐쳤어? 에이이이이.”
“비이이이이.”
“씨이이이이.”
“디이이이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죽이 잘 맞는 가족이었다.
“진짜 무슨 일인데?”
“당장 자세한 건 말 못 하는데, 이따 아주 중요한 분을 뵐 거야. 그분이 종종 들르실 때마다 네가 경호를 맡을 거고. 뭐, 경호라기보다는 상황을 가리는 거긴 한데, 아무튼.”
“그거 얘기하려고 부른 거야?”
“그렇지?”
“아, 뭐야아.”
조여진은 바닥에 발을 가볍게 구르면서 투덜거렸다.
“급한 일인 줄 알고 미용실 예약도 취소하고 왔는데.”
“미용실? 왜, 머리 자르게?”
“아니, 염색.”
“이번엔 또 무슨 색으로 하려고?”
“똑같은 색이지. 뿌염, 뿌염.”
“뿌염?”
“머리 뿌리 까맣게 올라와서 그거 염색하려고.”
“별…….”
조민택은 떫게 웃고는 말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하나 할 일이 있어.”
“뭔데?”
“물류센터에서 일 알지? 컨테이너들 있는 데.”
“알지. 다 죽었다며?”
“그쪽에서 살아남은 세 명이 있는 거 같더라고.”
얘기를 들은 조여진이 곧바로 몸을 홱 돌렸다.
“얘기하는 중에 어디 가?”
조민택의 물음에 조여진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 셋 잡으라는 거 아니야?”
“뒤 좀 캐봐.”
“캘 것도 없는데?”
“왜?”
“유명한 애들이야.”
“유명하다고?”
“나름대로.”
헌터들 및 각성자에게 공인 등급은 없다.
하지만 업계에서 통용되는 등급은 존재한다.
영향력 및 인기도에 따른 등급 등을 제외하면 공신력은 없다.
일단 소수가 일부분을 보고 판단하니까.
하지만 맞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참고한다.
조여진의 경우 종합적으로 A급.
전투력까지 높은 평가를 받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신체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덕분이었다.
반면에 어제 고성우가 소탕한 조직은 리더조차 종합 등급은 B급에 그쳤다. 전투력 하나만 봤을 때는 A-급 정도는 됐지만.
즉, 조여진과 비슷한 구간이라는 뜻.
헌터로 활동하는 자와 각성한 범죄자는 비슷한 등급을 잘 알게 마련이다. 쫓는 사람이, 쫓아오는 사람이 비슷한 등급이니까.
고성우 같은 경우 전투력에 관해서는 등급을 매기지 못한다. 한마디로 정해진 게 없는 규격 외.
규격 외에 해당하는 헌터가 까마득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 범죄자들까지 다 알 수는 없는 노릇.
“잡아 오면 돼?”
조여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고, 고성우는 속으로 안심이 됐다.
‘자신 있나 보네.’
조민택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알아서 처리해.”
“그럼 경찰에 넘길게.”
“그래.”
얘기가 끝나자마자 조여진이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조민택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펜대로 손바닥을 두드렸다.
‘휴도는 완벽하게 지킨다.’
그러고는 펜대를 다시 펜꽂이에 꽂으며 말했다.
* * *
“통화가 너무 길었지? 미안.”
사과를 받은 지율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미안해도 돼 아빠.”
“그래? 기다리는 동안 심심했을까봐.”
“하나도 안 그래. 구 씨 삼촌이랑 현백이랑 같이 있어서 하나도 안 심심했어.”
“그럼 다행인데.”
“진짜야.”
그때 시선이 느껴졌다. 현백이는 지율이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지 눈빛을 보내왔다.
“지율아, 현백이랑 놀아.”
“응!”
논다고 해봐야 같이 가벼운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구정석은 이때다 싶었는지 내게 다가왔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예? 어떤 소식이요?”
“흰색 차원문 말입니다.”
“아, 네. 듣긴 했어요. 잘은 모르지만요.”
“지금까지 차원문들과는 다르답니다.”
“어떤 점이요?”
“붉은색, 푸른색, 회색은 사실 하나나 다름없잖아요? 붉은색이나 푸른색일 때 활동하고, 회색일 때 휴식기에 들어가고요.”
“그렇죠.”
지금까지 있던 차원문들과 흰색 차원문의 가장 큰 차이점.
“흰색 차원문은 한 번 생기면, 뭔가를 뱉어내고는 사라져요.”
“바로 사라집니까?”
“바로는 아니에요. 생기고 나서 짧게는 한 시간부터 길면 하루까지도 걸리더라고요.”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이라는 구정석의 얼굴에서는 묘한 기대감이 엿보였다. 타고난 헌터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차원문 현장이란 결국 미지의 영역을 엿보는 것과 같았다. 많은 헌터들이 새로움을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현백이는 좀 어때요?”
내가 묻자 구정석은 현백이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잘 지내죠. 솔직히 처음에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근데 종족은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왜 호랑이도 새끼 때부터 키우면 고양이랑 똑같고 그렇잖아요.”
“그렇죠.”
“아직 친구는 많이 못 사귀어서 걱정이지만, 또 지율이가 있으니 괜찮겠다 싶어요.”
나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은 채 서로를 바라보며 즐겁게 얘기하는 지율이와 현백이를 바라봤다.
* * *
시장.
딱히 뭘 사야 돼서 들른 게 아니었다.
지율이가 오고 싶다고 해서 왔다. 현백이도 좋아하는 듯했고.
“이야, 소세지! 엇, 시장 햄버거! 저거 아시죠? 양배추에 오이랑 케첩 잔뜩 뿌려가지고! 저건 못 참죠, 무조건 먹어야 됩니다. 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이거.”
나도 시장 햄버거가 뭔지 잘 안다. 어렸을 때 그렇게 먹어보고 싶었다. 먹어본 적은 없다. 다른 아이들이 먹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을 뿐.
“드실 거죠?”
구정석은 아이들에게도 물었다.
“먹을 거지?”
지율이와 현백이는 해맑게 ‘네에에에’하고 길게 대답했다.
“대표님은요?”
구정석의 물음에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죠.”
* * *
시장을 빠져나오는 길.
앞장서던 지율이와 현백이가 갑자기 주차된 차 옆에 쪼그려 앉았다. 둘 다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아기 고양이였다. 마치 콩가루 위에 굴린 듯한 색깔.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처럼 작고 귀여웠다.
지율이는 활짝 웃으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아, 안녕?”
“미양.”
절묘하게 고양이는 대답하듯 울음소리를 냈다.
“너무 귀엽다. 그치?”
지율이의 물음에 현백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현백이도 만져봐.”
지율이가 손짓을 했는데, 현백이는 손을 가슴 쪽으로 가져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나는 괜찮아.”
“왜? 만져봐.”
타이밍 좋게 아기 고양이가 또 울음소리를 냈다.
“미야앙.”
현백이는 천천히 아기 고양이에게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손을 대지 못했다. 다시 손을 가슴 쪽으로 모으고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구정석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왜 그래요?”
내가 묻자 구정석이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했다.
“무서워서요.”
“고양이가요?”
“아니요, 자기가 고양이를 다치게 할까 봐요.”
마블 드래곤인 현백이는 일상생활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힘 조절은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작은 동물들만 보면 긴장을 한다고 했다.
“예전에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건가요?”
나의 물음에 구정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소에 힘을 잘 조절하고, 훨씬 다루기 어려운 것도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작고 약한 동물들만 보면 어려워해요. 아마 드래곤이라는 자각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드래곤은 아무래도 파괴적인 존재니까요.”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율이보다도 훨씬 능숙하게 힘을 조절하는 현백이가 저럴 이유는 없는데.
내가 다가가서 말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미야앙.”
아기 고양이가 다시 울음소리를 낸 순간이었다.
턱.
지율이가 현백이의 손목을 잡았다.
“예뻐해 줘.”
“아니야, 난 괜찮아…….”
현백이가 뒤로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지율이에게 붙잡힌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응, 괜찮아.”
지율이는 현백이의 손목을 잡아서 천천히 이끌었다.
“괜찮으니까 예뻐해 줘.”
현백이가 말한 괜찮아가 그 괜찮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나와 구정석은 조용히 지켜보며 응원했다.
현백이의 손에는 여전히 망설임이 묻어났다.
지율이도 더 이상 억지로 잡아끌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백이의 손을 놓지도 않았고.
“현백아.”
“……응?”
“나 믿지?”
“믿지. 근데 그거랑 달라.”
“나도 현백이를 믿어.”
“아…….”
“걱정하지 마.”
지율이는 현백이의 손목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손등을 부드럽게 감싸듯 손을 가져다 대며 웃었다.
“예쁜 마음 가지고 예뻐해 주면 돼.”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0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