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81
281. 생일 주간 (2)
“진짜? 정말로?”
나는 몇 번이나 되물었다.
“응! 진짜라니까!”
지율이는 마치 나를 나무라듯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이다.”
옆에 서 있는 싹이가 말을 덧붙였다. 팔짱을 끼고 턱을 살짝 든 모습이 왠지 모르게 당당했다.
“그래도… 내가 좀 도와줘야 되지 않을까?”
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지율이와 싹이는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괜찮다니까.”
“가만히 있거라.”
곰곰이와 삐삐, 핫도그도 와서 거들었다.
“고오옴!”
“삐삐잇!”
“멍멍!”
괜히 멋쩍어진 나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래도 걱정이 돼서…….”
지율이가 내 앞으로 쪼르르 오더니 손을 맞잡았다.
“빠아.”
“응?”
“나를 믿어.”
내 안의 깊은 곳까지 비칠 듯한 맑은 눈을 보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율이가 마음을 먹은 이상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았어.”
나의 대답에 지율이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편하게 쉬고 있어! 원래 생일인 사람은 푹 먹고 열심히 쉬고 노는 거야.”
뭔가 말이 이상한 듯하면서도 의미는 통했다.
“하하, 알았어. 그럼 아빠 쉬고 있을게?”
“응! 우리한테 맡겨!”
지율이가 몸을 홱 돌렸고, 싹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곤거렸다.
곰곰이와 삐삐도 틈에 끼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핫도그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는 하고 있을까 싶었다. 그저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신체구조상 요리에는 부적합하기도 했고.
“냐하아아아아암.”
앞에 있던 무룩이가 햇빛이 쨍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기지개를 키더니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리고 쩝쩝거리며 자리를 잡고 식빵을 구웠다.
“무룩아?”
나의 부름에 무룩이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귀만 움직여서 쫑긋거렸다.
“그래, 편하게 쉬어라.”
여전히 아이들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싹이를 비롯해 아이들이 있으니 다칠 일은 없었다.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자고 마음을 먹고 1층 네모집에 들어갔다.
침대에 드러누웠다.
“흠.”
깍지 낀 양손을 베개 삼아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싹이의 흔적이 온갖 군데 다 묻어나는 네모집.
보통의 집처럼 편안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느낌.
천장만 가만히 쳐다봐도 작은 생태계가 완성돼 있는 듯하다.
제법 큰 테라리움처럼.
네모집은 우리에게 맞춰서 살아 있는 듯한데, 손으로 벽을 짚으며 마음을 전하면 필요한 과일을 내주기도 한다.
이런 천장을 올려다보며 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예전에는 누워서 눈을 뜨고 있는 순간이 별로 없었다.
있기야 있었겠지만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았다.
잘 때 이외에는 눕는 법이 없었고, 누우면 눈을 질끈 감고 기절하듯 잠에 빠지기 바빴다.
그 정도로 여유가 없었고 피곤했다.
이렇게나 안온한 공간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이 생일상을 준비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극락 같다.
* * *
“그럼 무슨 요리부터 할까?”
지율이가 목소리를 내자 싹이는 턱으로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생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어째서 그것을 기념하는지 모르겠구나.”
“생일은 생일이니까 축하해야지.”
“생일이라서?”
“응!”
당연하게도 싹이의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생일인 게 중요한 것인가?”
싹이의 물음에 지율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싹이는 잠시 지율이를 빤히 바라봤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지율이도 싹이와 눈을 마주쳤다.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 없겠군…….’
싹이는 화제를 돌렸다.
“생일에는 무엇을 먹는 게 좋지? 미역국을 먹는 것은 알고 있다.”
지율이가 깜짝 놀랐다.
“미역국 말고 생일에 먹는 게 또 있어?”
“없는가?”
“아! 있다! 케이크!”
“케이크……. 그리고?”
지율이는 검지를 입으로 가져가며 시선을 위로 뒀다.
“글쎄……?”
“모르는가?”
“몰라!”
“다른 이의 생일상을 본 적은 없는 것이냐?”
지율이는 다시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현백이 생일!”
“있는 것이군!”
귀를 기울이고 있던 곰곰이와 삐삐가 눈을 반짝였다.
“고옴!”
“삐이!”
핫도그는 혼자서 나비를 따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멍멍멍멍멍멍!”
네모집 안에서 슬슬 잠에 들려던 김토일은 핫도그가 짖는 소리를 듣고는 다시 걱정되기 시작했다.
‘제대로 밥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잠을 청하던 김토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기 안에서 뭐라도 좀 해야지.’
네모집 1층에서도 식사 준비가 시작됐다.
아직도 회의가 진행 중인 아이들.
“그래서 생일상에는 뭐가 올라갔었느냐?”
싹이의 물음에 지율이는 현백이의 생일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도시락?”
“도시락…?”
현백이의 생일파티는 동물원에서 이뤄졌었다.
예쁘게 꾸민 도시락이 메인.
충분히 생일에 어울리는 식사였지만, 일반적인 생일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상하네?”
지율이가 중얼거렸다.
“삐?”
삐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지율이가 말했다.
“그때는 미역국이 없었던 거 같은데.”
싹이는 책에서 본 내용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틀리지 않아. 그리고 모두 미역국을 좋아하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
지율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맞네! 맞아! 그럼 미역국 결정!”
“애초에 문제는 다른 것들 아니냐? 미역국만 할 것이냐?”
“으음…….”
고민하던 지율이가 떠올린 것은 만화에서 본 장면이었다.
“잡채! 잡채가 있었어!”
“잡채가 무엇이냐?”
“면이야!”
“며언…?”
지율이는 마이패드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아이튜브에 ‘잡채 만드는 법’을 검색하면 완벽할 것이었다.
하지만 지율이는 그냥 검색창에 ‘잡채’를 검색했다.
“이거로군.”
잡채 이미지를 본 싹이가 말했다.
“지난번에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 나 먹었었네?”
지율이의 말에 싹이가 피식 웃었다.
“새삼 고맙구나.”
싹이의 시선은 김토일이 들어가 있는 네모집으로 향했다.
“뭐가 고마워?”
“항상 우리에게 온갖 요리들을 해주지 않느냐. 그 덕에 무엇을 먹었는지 헷갈릴 정도니까.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햇빛과 물 정도만 먹으며 살아갔을 테지.”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지?”
“좋구나.”
“그럼 아빠를 위해서 더 열심히 만들자!”
“그래.”
그렇게 우당탕탕 요리 대작전이 시작됐다.
* * *
“핫도그! 여기에!”
지율이가 바닥에 내려놓은 솥을 가리켰다.
“멍!”
핫도그는 헥헥거리다가 입을 벌려 불을 뿜어냈다.
화르르르르르륵!
금세 달궈진 솥이 끓기 시작했다.
미역국을 만드는 중이었다.
“오! 벌써 그 냄새가 난다!”
지율이가 목소리를 내자 싹이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법 그럴싸한 것 같구나.”
코를 벌름거리던 삐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삐삐삐삐.”
미역국에 별 관심이 없는 곰곰이는 허니포켓의 줄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솥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핫도그.
핫도그는 불을 약하게 뿜어내며 미역국을 계속 부글부글 끓였다.
“머엉…….”
킁킁 냄새를 맡은 핫도그는 이게 맞나 싶은 얼굴을 한 채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다.
“자! 잡채도 만들자아아아!”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고, 의욕이 넘치는 싹이가 양손을 들어 보였다.
“야채들로 만드는 거라면 어렵지 않을 것 같구나.”
* * *
밖에서 아이들의 신난 목소리가 울렸다.
프라이팬에 동그랑땡을 굽던 나는 피식 웃었다.
“다들 신났네.”
아이들의 즐거운 목소리를 들으니 내 입가에도 웃음이 흐른다.
칙칙칙칙칙칙칙칙.
밥솥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 실패해도 그럭저럭 먹을 수 있겠네.”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우웅.
휴대폰이 울렸다.
고성우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뭐 하냐?
“밥 기다리고 있어.”
―밥을 기다려?
“어.”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율이랑 애들이 생일상 차려준다고 해서.”
―생일? 너 생일이야?
“지났지. 지난지도 좀 됐는데, 뒤늦게 알더니 난리네.”
―그래서? 지율이가 요리를 한다고?
“응.”
―애한테 그걸 맡겼어?
“싹이가 있으니까 괜찮지.”
―하긴, 칼이랑 불만 조심하면 되니까.
“불은 보나마나 핫도그가 해결할 거고, 칼질은 싹이가 다른 방법으로 할 테고. 아무튼 지율이가 열심히 하고 있어.”
―이야아아아, 효녀구만 효녀.
“그럼.”
딱히 효도를 바라지는 않는다.
건강하고 착하게만 자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건 지율이의 행복.
그렇다고 해서 지율이가 효도하는 게 싫지는 않다.
“우리 딸이 최고야.”
―팔불출이네 이거.
“팔불출이라니,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뿐인데.”
―그것도 맞긴 해.
역시 고성우는 조카바보다.
“그런데 왜 전화했어?”
―이따 들를까 했지.
“언제쯤?”
―아마 밤에?
“들러 그럼.”
―알았어. 뭐 필요한 건 없어?
“필요한 거? 필요한 건 딱히 없어.”
―그럼 그냥 간다?
“언제는 뭐 되게 챙긴 것처럼 말하네?”
―에이, 말을 또 뭐 그렇게 해. 너 생일이었다니까.
나는 코웃음을 쳤다.
“됐어 인마. 그러고 보니 네 생일은 언제였지?”
―겨울.
“한참 지났네?”
―이제부터는 챙기고 살자.
“됐다니까.”
―내가 시작할게, 다음에는 너도 챙겨라.
생일이 뭐라고 그렇게 챙기나 싶다가도, 싫지는 않아서, 아니, 좋아서 웃고 있는 나를 되돌아봤다.
진심으로 축하해줄 일과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알았다. 그럼 오면서 건강한 시럽 종류나 초콜릿 같은 거나 챙겨줘.”
―단 거 땡겨?
“날 더우니까, 이따 빙수나 만들어달라고. 허니포켓도 좋지만, 가끔 다른 맛도 먹으면 좋잖아.”
―오케이이이, 그럼 이따 봐.
“그래.”
그렇게 전화를 끊은 순간이었다.
“빠아아아아아아!”
밖에서 지율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어어어어, 지율아.”
“잤어?”
지율이가 현관문 안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물었다.
“아니, 깨 있었어.”
“그래?”
“응.”
“저건 뭐야?”
지율이는 덮개로 가려져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냥 가려뒀어.”
“그냥?”
“응.”
“그렇구나.”
아니, 물어봐놓고 그렇게 그냥 넘어간다고?
“빨리! 빨리 나와봐!”
지율이가 손짓을 했다.
“밥 다 한 거야?”
“응! 빨리 나와!”
생일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마음이 급한 듯했다.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며 네모집 밖으로 향했다.
“음…?”
앞마당으로 나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양손을 뻗었다.
“짜자안!”
반대편에 선 싹이도 어색하게 양손을 뻗어 보였다.
“짜… 짠… 이다.”
곰곰이와 삐삐, 핫도그도 주르륵 나란히 섰다.
맛을 보겠다던 무룩이는 아까 봤던 그 자리에서 그대로 몸을 웅크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게…….”
내가 말문을 연 찰나, 지율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솥을 가리켰다.
“생일이니까 미역국!”
시커멨다.
대체 미역을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양으로 따지면 50인분, 아니, 100인분도 가능해 보였다.
“우, 우와… 많이 했네?”
솥 옆에는 커다란 나뭇잎으로 덮인 욕조 같은 게 있었다.
“이건… 뭐야?”
나의 물음에 싹이가 나뭇잎을 걷어냈다.
안쪽에는 굵기가 제각각인 면과 대충 토막을 친 듯한 당근, 양파, 파프리카, 버섯이 뒤섞여 볶아낸 잡채가 가득 있었다. 잡채도 100인분은 될 듯했다.
“넉넉하게 했어!”
지율이가 자랑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하, 잘했네.”
애써 웃기는 했지만, 많아도 너무 많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싹이는 황급히 시선을 피하더니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양 조절은 실패했다.”
나는 미역국과 잡채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웃으며 물었다.
“먹어봤어?”
지율이, 싹이, 곰곰이, 삐삐, 핫도그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가 생일이니까, 아빠가 제일 먼저 먹어봐야지! 얼른 먹어봐!”
아이들 모두가 기대로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다.
기대의 은하수가 번쩍거렸고, 그 빛에 홀린 듯이 나는 수저를 들었다.
“내가 도와주겠다.”
싹이가 큼지막한 나무그릇에 미역국을 덜어줬다.
“먹거라.”
“고마워.”
실험의 주인공, 아니, 생일의 주인공인 나는 천천히 미역국으로 수저를 가져갔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8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