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82
282. 생일 주간 (3)
“아. 사진. 사진부터 찍어야지.”
찰칵, 찰칵.
휴대폰에 음식 사진부터 담았다.
“아, 이것들도 같이 찍자.”
동그랑땡을 비롯해서 요리한 것들을 생일상에 올렸다.
“우와아아아, 이건 뭐야?”
지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율이가 애들이랑 같이 요리하는 동안 아빠도 따로 준비했지.”
나의 대답에 지율이가 눈을 흘겼다.
“아빠는 생일이니까 쉬어야지!”
“이게 아빠한테는 쉬는 거나 다름없었어. 그래서 많이 못 만들기도 했고. 그냥 다 같이 먹을 반찬 조금 더 생긴 거지.”
“알았어! 그럼 이제 얼른 미역국 먹어!”
“응! 고마워!”
미역국을 한 술 떴다. 온탕 속의 긴 생머리 같다. 먹는 것에 알맞은 비유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보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게 영락없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뜨끈한 미역국을 담은 숟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당연히 내가 손을 멈춘 탓이다.
반짝반짝반짝반짝.
반짝거리는 눈망울들이 내게 고정돼 있었다.
아이들이 기대감으로 차오른 눈을 반짝였다.
지율이는 대놓고 눈을 빛냈고, 싹이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티가 팍팍 났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천천히 미역국을 입에 가져갔다.
“아…….”
온천욕을 즐기던 긴 생머리는 내 목구멍의 폭포로 떨어졌다.
따스한 기운이 식도를 쓸어내렸고, 혓바닥 위에 향과 맛을 남겼다.
보이지 않는 향과 맛은 내 뇌를 건드렸고, 한 단어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다.
바다의 맛이었다.
해조류라 바다의 향이 담긴 게 아니라, 그냥 바다의 맛만 났다.
“어…….”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지율이가 방글방글 웃으며 물었다.
“어때? 맛있어?”
맛은 난다.
바다의 맛이.
어떻게 말해야 되지?
솔직하게?
아니면 거짓말로라도 맛있다고 해야 되나?
지율이가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차려준 생일상인데 당연히 맛있다고 해야겠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교차하는 것은 처음인 듯했다.
지율이는 여전히 기대로 가득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맛있어!”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지율이와 아이들의 얼굴이 더 환해졌다.
싹이는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었다.
정답이었다.
거짓말은 대체로 나쁘지만, 새삼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구나 싶다.
“근데 어떻게 만들었어?”
나의 물음에 지율이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미역이랑 물을 넣고 끓였어!”
“그리고…?”
“없어! 미역이랑 물만 넣고 끓였는데?”
그랬구나. 그래서 미역국 맛이 이랬구나.
“아하하, 그렇구나. 잘했어.”
어색하게 웃는데 지율이가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아하하하, 정말 맛있네.”
나는 미역국을 더 먹기 시작했다.
못 먹을 정도로 끔찍한 맛은 아니었다.
그냥 미역에 충실한 맛일 뿐.
그래. 지율이 나이에 처음으로 한 미역국이 이 정도면 굉장한 수준이지.
사실 미역국을 끓였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다.
아무래도 싹이가 함께 요리를 했다는 사실 탓에 내 기대치가 높았던 듯하다.
물만 먹고 햇빛만 쬐도 사는 싹이인데,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바랐다.
그래, 이거면 됐어. 이건 충분히 맛있는 미역국이야. 확실히 그래.
“최고야 정말.”
내가 말하자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국자를 들었다.
“정말? 더 먹어!”
효녀구나. 내가 효녀를 뒀어. 근데 왜 힘들지?
“하하, 고마워 지율아.”
그때 싹이가 잡채를 사발에 가득 담아서 내 앞에 놨다.
“이것도 먹거라.”
“어? 어, 당연하지.”
미역국이 미역국이다 보니 잡채도 걱정이 앞섰다.
사실 미역국은 비주얼이라도 미역국스러웠는데, 잡채는 어딘가 잘못됐다 싶었다.
잡채라기보다는 무언가의 볶음.
“자… 먹어보실까.”
나는 괜히 중얼거리며 젓가락으로 잡채를 집었다.
묵직하고 투박하다. 상남자의 잡채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하지만 의외로 반전의 맛이 있을지도 모른다.
합리적으로 추론을 하기 시작했다.
미역국은 물과 미역을 넣고 끓이기만 했다.
그래서 밍밍하고 미역의 맛만 진하게 났다. 사실상 짜지 않은 바닷물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잡채도 그냥 재료들만 넣고 볶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즉, 단순한 채소와 면을 볶았다는 뜻.
그 정도라면 미역국보다 맛있을 확률이 높았다.
미역국도 맛있게 먹어 보였는데, 그런 잡채라면 충분히 더 즐겁게 먹을 자신이 있었다.
“맛있겠다아아아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아하하하핫! 빠아 오늘 웃기네!”
지율이가 까르르 웃었다.
그래, 네가 웃기만 한다면야.
나는 씩 웃어 보이고는 잡채를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조용히 먹는 것이 한국의 식사예절에 가장 올바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가족들끼리 먹을 때는 소리가 좀 나도 괜찮겠지.
후루룩, 후루루룩.
“음?”
확실히 나쁘지는 않다. 반전으로 더 맛이 없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맛있지도 않았지만.
이게 무슨 맛이지? 내 맛도 네 맛도 아니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고.
일단 면은 잘못됐다. 툭툭 끊기는 식감인데, 또 막상 넘기려고 하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잘 끊어지지만, 마치 식이섬유 다발처럼 씹힌다.
“면이…….”
내가 의문을 표하자 싹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부드러운 나뭇가지다. 바람에 날릴 정도로 부드러운 나뭇가지가 있다. 제법 면 같을 것이다. 어떠한가?”
“어, 면 같아. 확실히 면을 대신하고 있네.”
면 같기는 하다. 맛이 없어서 그렇지.
그 외의 채소들이야 무난했다. 하지만 기름을 한 방울도 넣지 않은 탓에 그냥 불에 익기만 했다. 은은한 채소의 단맛은 있었지만, 결코 맛있는 음식이라 할 수는 없었다.
“참…….”
그런데 참 이상하지.
후룩, 후루룩.
미역국 한 번, 잡채 한 번.
“흐하하핫.”
계속해서 웃음이 났다.
객관적으로는 맛없는 음식이었는데, 왜 이렇게 행복한지 모르겠다.
“맛있어?”
지율이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응.”
나는 다들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나만 먹고 있네. 얼른 다들 먹어.”
그렇게 밥을 앞에 하나씩 놓고 식사를 시작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지율이, 싹이, 곰곰이, 핫도그, 무룩이 앞에는 미역국이 없었다.
“왜 미역국 안 먹어?”
내가 묻자 싹이가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식으로 대답했다.
“최대한 많이 먹으라고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
“어? 아니, 그래도……. 그리고 삐삐는 먹고 있잖아?”
싹이는 삐삐를 눈짓으로 가리키고는 말했다.
“저 아이는 가리는 것이 있지 않느냐. 그리고 저 아이 하나가 먹는다고 얼마나 먹겠는가.”
삐삐는 진심으로 맛있는지 미역국과 잡채를 열심히 먹었다. 원래 채식을 좋아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지율이의 미역국과 잡채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렸으니까.
“아빠 많이 먹어어어어!”
지율이가 환하게 웃었고, 나 역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솥에 가득 차 있는 미역국 그리고 산처럼 쌓인 잡채.
내 딸은 아주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고, 손이 지나치게 크다.
* * *
저녁.
하루 종일 미역국과 잡채를 먹었다.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말을 하면 미역이 입에서 나오고 풀들이 자랄 듯한 기분.
그래도 내 안이 지율이의 사랑으로 꽉 찼다고 생각하니 행복했다. 다른 아이들의 사랑도 같이.
고로로롱.
누워 있는 나의 양발 사이에 자리를 잡은 무룩이.
녀석은 내가 권하는 미역국과 잡채에는 혀끝도 대지 않았다.
얄밉게도 동그랑땡은 어찌나 잘 먹는지.
당연하게도 100인분은 될 듯한 미역국과 잡채를 나와 삐삐 둘이서 다 먹을 수는 없었다.
남은 것은 앞마당에 있었는데, 워낙 양이 많아서 한 번 데워놓으면 식지 않아서 상할 걱정은 없었다.
싹이가 특별한 나뭇잎과 나무를 사용해서 신선도를 유지할 수도 있었고.
우당탕탕!
밖에서 들린 소리였다.
“뭐지?”
나는 벌떡 일어났고, 잠을 자고 있던 무룩이도 고개를 돌렸다.
오늘 고성우가 온다고 했었다.
“오다가 뭐 엎은 건가?”
내가 중얼거리자 지율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삼촌 아닌데?”
“응?”
“삼촌 아니야.”
그럼 밖에는 누구지?
조심스레 밖으로 나가자 커다란 게 두 눈에서 노란빛을 뿜어내며 서 있었다.
순간 움찔 놀랐는데, 금세 웃으며 안도했다.
밖에 있는 것은 꼭꼭이였다.
“뽥?”
꼭꼭이가 미역국과 잡채를 거의 다 먹어치웠다. 덩치가 큰 만큼 잘 먹는 듯했다.
“아아앗! 꼭꼭이가 다 먹었어어어어!”
지율이가 거의 다 비어버린 솥으로 달려갔다.
“다 먹으면 어떡해! 아빠 건데!”
“뽥?”
꼭꼭이는 뭐가 잘못됐냐고 묻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빠 건데!”
“뽜뽥?”
“히이잉…….”
지율이가 화난 복어처럼 볼을 부풀리며 도끼눈을 떴다.
“괜찮아.”
내가 끼어들자 지율이의 뺨에서 곧장 바람이 빠졌다.
“괜찮아?”
“그럼.”
“아쉽지 않아? 이제 못 먹는데?”
나는 웃으면서 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또 안 만들어줄 거야?”
“어? 어… 아니?”
“그치?”
“응! 또 해줄 거야.”
“꼭꼭이도 우리 친구잖아. 먹고 싶으면 먹을 수도 있는 거지. 우리는 나중에 또 해먹으면 되는 거고.”
“맞아! 그렇네!”
“그치?”
“응!”
지율이는 꼭꼭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꼭꼭아.”
“뽜앍.”
“미안해.”
“뽥?”
“다음부터는 치사하게 굴지 않을게.”
“뽥뽥.”
대화가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었다.
“미안! 앞으로 더 사이좋게 지내자!”
지율이가 양손을 뻗자 꼭꼭이는 자신을 안을 수 있게 고개를 숙여 가까이 다가섰다.
무언가 통하기는 통하는 모양이다.
“뽥뽥!”
꼭꼭이는 알을 낳은 곳을 알려주고는 돌아갔다. 미역국과 잡채를 다 먹어서인지 평소보다 유난히 더 커 보였다.
“그래도 자랑스러워.”
지율이가 텅텅 빈 솥과 그릇을 쳐다보다가 멀어지는 꼭꼭이의 뒷모습으로 시선을 옮겼다.
“맛있었다는 뜻이잖아.”
“그렇지.”
“빠아.”
“응.”
“다음에는 더 맛있게 해줄게!”
“그래, 기대할게.”
그러자 지율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흘겼다.
“더 맛있을 수 있다는 뜻이네? 나는 최고로 맛있어하는 줄 알았는데.”
“어? 아니, 그게…….”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지율이가 배를 잡고 웃었다.
“아하하핫! 농담이야 농담! 빠아! 놀라지 마!”
“하하하, 알고 있었지. 하하.”
보통이 아니다. 아이들은 정말 순식간에 자란다. 지율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더 빠른 듯하고.
하지만 순수함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앗! 빠아! 위에!”
지율이의 짧고 귀여운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별이 제법 많이 보였다.
“와아아아아, 예쁘다.”
지율이가 활짝 웃었다.
“아름답구나.”
하늘을 올려다보던 싹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게.”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거들었다.
“멍멍멍멍멍멍멍멍!”
갑작스레 핫도그가 힘차게 짖었다. 녀석도 기분이 좋은 거겠지.
도시에 살았더라면, 시골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사는 곳이었다면 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휴도에서는 우리 마음대로 뭘 해도 괜찮다.
그래서 더 편하고 행복하다.
“우와! 저 별은 되게 크다! 왕별이야 왕별!”
지율이가 가리키는 별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유독 빛이 많이 번지는 커다란 별이 보였다.
“저 별은 아기별인가? 왕별의 아기별인가 봐!”
커다란 별 옆에는 작지만 유난히 반짝거리는 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왕별과 아기별.
꼭 두 별이 나와 지율이 같다고 생각했다.
“빠아!”
“응?”
지율이가 왕별과 아기별을 가리키며 말했다.
“꼭 아빠랑 나 같다. 그치?”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8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