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323
323. 도전 (2)
“……푸핫.”
싹이의 시어머니 같은 발언에 웃음이 나왔다.
‘이번 김치는 조금 맵구나’라니.
“왜 웃는 것이냐?”
싹이는 조금 불만이라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그냥 웃겨서 웃은 거야. 별뜻 없어.”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느냐? 나를 두고 웃는 것 아니더냐.”
“그렇기는 하지.”
“그러니까 말하는 것이다.”
“나쁜 뜻은 없었어. 있을 리가 없잖아. 재밌어서 웃은 거지.”
“내가 재미있는가?”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처음에는 그저 신비로운 존재였는데, 언젠가부터 싹이도 그냥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싹이는 몸을 살짝 틀더니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나는 제법 재미있군…….”
어이없어서 또 피식 웃는데, 지율이가 싹이에게 김치를 내밀었다.
“재밌는 싹아! 김치 더 먹어! 많이 먹어!”
“조금 매워서 괜찮다만…….”
“아니야! 더 먹어! 밥이랑 먹으면 돼.”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밥이 뜨거워서 더 맵게 느껴졌어.”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
지율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구나! 몰랐어!”
잠시 텐션이 올라간 지율이가 젓가락을 흔드는 바람에 김치가 툭 날아갔다. 김치는 그대로 싹이의 팔 위로 떨어졌다.
잠깐 흐르는 적막.
싹이는 자신의 팔 위에 있는 김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지율이와 눈을 마주쳤다.
“히…….”
미안함에 괜히 웃어 보이는 지율이.
“미안.”
싹이는 자신의 팔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로 김장을 할 셈인 것이냐?”
“푸훕!”
나는 또다시 웃음을 참지 못했고, 싹이가 눈을 흘겼다.
하지만 누를 수 없는 웃음인지라 계속 웃었다.
이내 싹이도 피식 웃으며 팔을 닦았다.
* * *
다음 날 오전.
평소보다 좀 더 거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뒷산이나 올라가볼까?”
나의 제안에 아이들은 격정적으로 화답했다.
“고오오오오옴!”
“삐삐삐삐삐!”
“멍멍멍멍!”
곰곰이, 삐삐, 핫도그는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었다.
항상 같이 있고, 고작 뒷산을 가는 건데도 저리 좋을까.
“따라오라냥.”
역시나 무룩이는 오늘도 리더 행세를 한다.
싹이도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긴다.
다 같이 뒷산을 오르는데 지율이가 목소리를 냈다.
“엇? 새로운 길로 가네?”
지율이가 말했다.
“왜 오늘은 새로운 길로 가?”
무룩이가 우뚝 서더니 고개를 돌렸다.
“내 마음이다냥.”
그 말을 끝으로 무룩이는 다시 마음대로 몸을 홱 돌리고 꼬리를 살랑이며 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길이다! 신난다!”
지율이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른들에게는 별것 아니더라도 아이에게는 큰 도전이 되는 일들이 있다.
새로운 길로 가는 것도 그렇다.
길 잃은 어린아이가 우는 모습은 얘기를 듣자마자 머릿속에 그려진다.
요즘이야 GPS도 잘 돼 있고, CCTV 천지인 세상에, 어른들도 더 신경 써서 보호를 하기에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인터넷으로 검색이 되고 네비게이션이 있는 세상인지라 오지가 아닌 이상에야 ‘길을 잃는다’라는 것이 성립되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무엇이든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대도 마찬가지고.
요점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길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들은 익숙한 길로 다니고는 한다.
새로운 길로 발을 내디디는 것은 두려워서일 수도 있고, 단순히 익숙한 게 편해서일 수도 있다.
지율이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과감하게 받아들일 준비도 돼 있는 것 같다.
A는 A라서 좋고, B는 B라서 좋고.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지율이는 장점만을 극대화해서 볼 수 있다.
뭐든지 그렇다.
단점을 긁어내서 깎아내리려면 끝도 없다.
결국 무엇이든 좋아 보이고 나빠 보이고는 보는 사람의 시선에 더 큰 무게가 시렬 있을지도 모른다.
“꽃이 많네.”
마치 꽃 안에 꽃이 또 핀 듯한 형형색색의 꽃들이 바람에 몸을 맡겨 가볍게 흔들렸다.
꽃집에 들어선 것처럼 특유의 향이 코를 떠나지 않았다.
“예쁘다아아아.”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이자 핫도그도 괜히 다가가서 킁킁거렸다.
“이쪽이다냥!”
무룩이는 계속해서 리드를 하면서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갔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들 한다.
사실 휴도에서 통하는 말은 아니다.
어디로 가든 아름다우니까.
“빠아! 햇빛이 쨍쨍한데도 시원하다!”
지율이의 말에 문득 선선해진 날씨를 느낀다.
“그러게. 시원하고 좋네.”
무룩이를 따라 오른 뒷산의 새로운 길.
어느새 키 큰 나무가 빽빽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우거진 나뭇가지와 나뭇잎 덕에 생긴 그늘.
마치 완연한 가을이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삐삐가 튀어올랐다.
“삐삐삐삐삐!”
삐삐가 무룩이를 앞질렀다.
“내가 제일 앞이다냥!”
무룩이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삐삐는 들리지 않는지 우다다다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무언가를 본 삐삐가 깡충깡충 뛰었다.
“삐이이이!”
삐삐가 양손으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커다란 도토리였다.
소형 밥솥만큼 커다란 도토리.
“우와아아아, 저게 뭐야?”
지율이가 흥미로 가득한 눈을 반짝였고, 삐삐가 웃는 얼굴로 도토리를 들어 보였다.
벌써 잘 익은 도토리는 밝은 갈색으로 반질반질 빛났다.
꼭지가 달린 밑받침이 꼭 모자 같았다.
“귀엽게 생겼다아아.”
지율이가 관심을 보이는데 삐삐가 양손으로 든 도토리에 입을 가져갔다.
빠자자자작, 빠자자작.
삐삐는 아주 능숙하게 앞니로 껍질을 사과 깎듯이 벗겨냈다. 그러고는 알맹이를 오독오독 씹어먹기 시작했다.
소리만 들으면 식감이 강한 아몬드 먹는 소리 같았다.
“어때? 맛있어?”
지율이의 물음에 삐삐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삐삐삐삐!”
나는 커다란 도토리를 하나 집어 들었다.
“엄청 크네.”
“이게 뭐야?”
“도토리야.”
“도토리? 아아아! 다람쥐들이 먹는 거!”
“맞아.”
그때 위쪽에서 파삭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뭇잎들이 빠르게 흔들렸다.
무언가 몰려오고 있었다.
내가 약간 경계하면서 위를 올려다봤는데, 익숙한 녀석이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
청설모인 날개컷이었다.
“날개컷!”
지율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날개컷의 뒤로 청설모들이 줄을 지었다.
날개컷이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하듯 앙증맞은 앞발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옆으로 늘어선 귀여운 청설모들이 코를 벌름거렸다.
“반가워! 너희도 대왕도토리 먹어?”
지율이가 묻자 날개컷 가족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을 합쳐 대왕도토리의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카득! 카드득!
어느새 자기도 해보겠다고 대왕도토리를 물어뜯고 있는 핫도그.
이빨 자국만 실컷 남고, 껍질은 제대로 벗겨지지 않았다.
“삐이!”
삐삐는 자기가 하겠다고 나무라듯 핫도그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낑.”
핫도그가 조금 시무룩한 얼굴을 했는데, 삐삐가 순식간에 대왕도토리 껍질을 벗기더니 알맹이를 핫도그에게 내밀었다.
“헥헥헥헥.”
금세 기분이 풀린 핫도그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고옴?”
곰곰이는 대왕도토리를 들어 보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냄새를 맡고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둥거렸다. 아무래도 맛있는 냄새가 나지는 않는 모양이다.
“…냥! 냐앙!”
어느새 무룩이는 대왕도토리가 샌드백이라도 되는 양 앞발로 공격 중이었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녀석이다.
“나는 작은 것들이 더 좋다.”
싹이는 바닥에서 나뭇가지가 자라게 하더니 작은 도토리들이 열리게 했다.
“먹을 거야?”
지율이가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는데, 싹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딱히 먹지는 않는다…….”
“원래 안 먹었어?”
“아니, 굳이 먹지는 않는다.”
“왜?”
“더 맛있는 것들이 많다.”
싹이는 대답을 하면서 나를 힐끗 쳐다봤다.
하긴, 도토리가 아무리 맛있어도 도토리다.
사람이 먹는 밥보다 맛있을 수는 없다.
“으엑! 퉤퉤!”
대왕도토리 알맹이를 씹은 지율이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맛없어.”
언제나 귀여운 지율이지만 인상을 쓰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빵 터졌다.
“푸하하하하하하! 얼굴 웃기네!”
“웃겼어?”
지율이는 다시 대왕도토리를 한 입 깨물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으에에에에, 써어어어어.”
“하하하하하하! 굳이 또 먹을 필요는 없어.”
“아빠가 재밌다고 하니까.”
아빠가 웃게 하기 위해서 쓴맛도 감수하다니.
효녀도 이런 효녀가 없다.
“그냥 먹으면 별로여도 도토리묵으로 해서 먹으면 맛있어.”
나의 말을 들은 지율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응.”
“거짓말.”
“아빠가 거짓말을 왜 해.”
“진짜 이게 맛있어져?”
나는 피식 웃으며 삐삐를 가리켰다.
“삐삐는 지금도 맛있게 먹잖아.”
“삐삐는 원래 풀이랑 열매는 다 맛있게 먹어.”
“그건 그래.”
“나도 도토리묵 먹어보고 싶다.”
“도토리묵이라…….”
도토리를 하나하나 모아서 하려면 힘들겠지만, 대왕도토리라면 요리가 훨씬 수월할 듯했다.
문제는 내가 도토리묵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
“먹어보고 싶어!”
지율이의 외침에 나는 마음을 굳혔다.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의외로 만드는 게 쉬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각 이상으로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요즘이야 검색하면 어떻게 만드는지 다 나오니까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겠지 뭐.’
어느새 삐삐가 대왕도토리 하나를 다 먹어치웠다. 꼭지가 달린 밑받침만 남아 있었다.
“삐이이이.”
삐삐는 배도 부르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노곤노곤한 얼굴을 했다.
날개컷 가족은 대왕도토리 하나에 모두가 달라붙어서 열심히 갉아먹고 있었다.
“삐삐 배 많이 부르지?”
나의 물음에 삐삐는 퍼져 있었다.
“삐이이이이…….”
마치 온천욕을 네 시간 정도 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대왕도토리의 밑받침을 집어 들었다.
“흠.”
이리저리 잠시 살펴보고는 깨끗한 도토리 밑받침을 지율이 머리에 씌웠다.
“엇?”
지율이가 양손으로 도토리 밑받침을 마졌다.
“도토리 모자.”
지율이는 그게 제법 마음에 드는지 싱글싱글 웃었다.
“아하하핫! 모자 생겼네! 좋다아아!”
몇 번이나 손으로 더듬어서 도토리 모자를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모자 되게 좋아아아! 아빠도 써!”
“하하, 알았어.”
나도 대왕도토리 밑받침을 모자삼아 머리에 썼다.
약간 넉넉하긴 했는데, 은근히 안정감이 드는 게 모자 역할을 제대로 했다.
“어때? 되게 좋지?”
지율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게?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네?”
“그치! 다 같이 도토리 모자 쓰자!”
지율이의 제안에 삐삐가 대왕도토리 알맹이를 빼는 작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싹이 외의 아이들에게는 도토리 모자가 너무 컸다.
“이렇게 하면 되겠느냐?”
싹이가 아이들의 머리에 맞게끔 적절한 크기의 도토리를 만들어냈다.
삐삐와 청설모 가족이 힘을 합쳐서 알맹이를 뺐고, 모자 같은 밑받침만 남았다.
다들 머리에 도토리 모자를 썼다.
청설모 가족에게도 그냥 도토리 알맹이를 빼서 모자를 하나씩 씌웠다.
“이야, 이건 참을 수 없네.”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들어 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예전에는 가족이나 커플이 같은 코디로 입거나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한때는 조금 유난이다 싶었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다들 너무 사랑스럽고, 서로를 볼 때마다 그 사랑이 계속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흠뻑 적신 채 대왕도토리 몇 개를 챙겼다. 이따 네모집에 돌아가면 도토리묵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32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