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85
85
변호인 강태훈 085화
25장 해리를 위하여
점심에 고기를 먹었는데 공교롭게도 동창회는 삼겹살 가게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기회에 동창회 장소를 어머니 가게로 바꾸면 되겠군.”
전주가 워낙 좁기 때문에 거리 차이는 많이 나지 않는 편이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태훈은 일렬로 앉아 있는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 중학교 때의 얼굴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어? 태훈이다!”
“강태훈이네!?”
“뭐야! 태훈이도 와?”
친구들은 태훈을 보자마자 활기차게 웃으면서 몸을 일으켜 몇 친구가 다가왔다.
그럴 것이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단숨에 따내고 졸업할 때까지 최고의 성적을 보였던 그는 원대호와도 친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기대를 많이 받았었다.
그리고 현재는 그 기대에 부응하듯이 기사에 몇 번 얼굴이 난 변호사님이 되어 있었다.
“이야, 반갑다. 새끼. 자주자주 좀 오지!”
“내가 좀 바빠서.”
“지훈이가 연락할 때마다 네가 뺐다며?”
한 친구의 물음에 태훈은 쓰게 웃었다. 정말 그럴 때마다 큰 사건이 하나씩 터졌다.
그리고 동창회는 항상 전주에서 진행되고 했기 때문에 서울에서 왔다 갔다만 해도 6시간은 족히 걸렸다.
그래도 이렇게 보게 되어 정말이지 반가웠다.
동창회에 참석한 아이들도 간만에 본 태훈이 무척 반가운 기색이었다.
“동영이 넌 요새 뭐해?”
“나? 나 저기 인후동에 있는 휴대폰 대리점 점장.”
친구 동영은 어렸을 때는 뚱뚱했던 녀석인데, 나이가 들면서 키로 간 것인지 키도 커지고 얼굴도 핼쑥해졌다.
친구들은 이제 제각각 자신들의 직업을 찾아서 나아가고 있었고, 대부분 결혼을 했다고 한다.
‘나도 결혼을 하긴 해야 하는데…….’
태훈은 쓰게 웃었다.
확실히 자신도 결혼할 나이임이 맞았다.
더 늦으면 늦게 가는 것이리라.
“응, 지혜야. 여기 ‘존맛 삼겹살’ 아 맞다…… 아니야. 거기 있어. 내가 나갈게.”
동영이 통화를 하다 아차 하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에게 물을 새도 없이 동영은 나갔다.
“오늘 지혜도 와?”
“응, 너처럼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오늘 나온다더라. 할머니 기일이여서 전주에 왔다더라고.”
옆의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삼겹살을 기름장에 찍어 콕 입에 넣더니 웃었다.
“지혜도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되게 예뻤는데. 지금은 더 예뻐졌겠지?”
김지혜.
자신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아이.
잘못된 길에 빠졌었지만, 자신의 제자리를 찾은 아이 고등학교 때 예상했던 대로 광주 쪽 학교로 진학을 한 그녀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태훈은 싱긋 웃으며 문 쪽을 보았다.
그런데 옆에서 고기를 먹던 아이에게 한 친구가 수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정훈이 너 못 들었구나. 지혜 사고로…….”
드르륵-
그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미닫이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문을 열어준 것은 동영이었다.
그와 함께 큼지막한 개 한 마리가 번쩍 점프해서 먼저 안으로 들어왔다.
“시각을 잃었대…….”
말을 잇던 친구의 말이 끝났다.
태훈의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었다.
안으로 뛰어오른 개를 보며 고기를 구워주던 종업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머, 그렇게 큰 개를 가게에 데려오면 어떻게 해요!”
그녀의 말에 지혜는 민망한 듯 웃었다.
“죄송해요. 근데 저희 해리 되게 순하거든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거예요. 또 제가 눈이 안 보여서……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종업원은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곧 정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정훈의 직업은 수의사였다.
“저희는 괜찮아요. 아주머니. 또 리트리버가 되게 순해서 괜찮습니다. 또 훈련받은 녀석일 테니. 얌전할 겁니다.”
“그래요?”
종업원은 주위 사람들을 흘겨보았다. 가게나 공공장소에서 개를 출입시키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개 알러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룸 자체가 동창회를 위한 룸 형식이었고 그들이 괜찮다면 자신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수의사인 정훈이 친구들에게 눈치를 주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하하!”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몇몇 친구들은 그녀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몇몇 친구들은 모르고 있었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태훈은 웃지 못했다.
천천히 동영과 개의 부축을 받아 이동하는 그녀는 입구와 가장 가까운 구석 자리에 앉았다.
“해리.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알았지?”
그녀가 자리에 앉자 골든 리트리버도 자리에 앉아 헥헥거렸다. 그녀는 손을 뻗어 더듬거려 머리를 어루만져주었다.
“개가 정말 순하고 예쁘네.”
“그렇지? 넌 정훈이?”
“응, 난 김정훈. 하하! 지혜 많이 예뻐졌다.”
“고마워.”
“지혜야 뭐 중학교 때부터 우리 학교 얼짱이었지 뭐! 하하하하!”
친구들은 쩌렁쩌렁 그녀를 칭찬하며 웃었다.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태훈은 슬며시 몸을 일으켜 그녀의 옆자리로 갔다.
친구들 몇 사람도 몸을 일으켜 구석에서 혼자 앉아 있는 그녀의 자리로 몸을 일으켰다.
태훈은 자신의 손에 코를 가져다 대며 킁킁거리는 해리라는 개의 머리를 어루만져줬다.
“지혜야.”
그의 목소리를 듣자 놀란 그녀의 표정이 태훈에게로 휙 돌아갔다. 그녀는 밝게 웃었다.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정말 아름다워져 있었다.
“태훈아.”
그녀는 태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잘 지냈어?”
“그냥…….”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는 동창회에 굳이 참석한 이유가 태훈과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해서였다. 그는 중학교 시절. 자신을 위해 싸워줬던 아이였으니까. 한편으로는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얼마나 늠름하게 변했을지도 다소 궁금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젠 볼 수 없었다.
“들었어. 너 변호사 되었다며.”
“응, 넌 요즘 뭐해?”
“난 콜센터에서 일해.”
“아, 전화 상담하는 거? 힘들겠다.”
전화 상담이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알려진 직업이었다. 막말 손님을 수도 없이 상대해야 하는 걸로 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해야지.”
그녀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고,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녀는 전주에 위치한 전북대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냐…….’
태훈은 씁쓸했다. 그녀의 유일한 혈육은 할머니였었다. 그런 그녀의 받침목이 되어준 그녀가 떠난 것도 모자라 사고로 눈까지 잃은 그녀다.
혹여 바뀌어버린 인생 때문에 그녀에게 하늘이 내린 대가는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계속 가슴이 착잡했다.
“언제 한 번 사무실 놀러 와. 너 사는 곳하고 멀지 않으니까.”
“그래, 유명한 변호사님 뵈러 언제 한 번 가지 뭐.”
그녀는 빙긋 웃다가 생각난 듯 물었다.
“참, 결혼은 했어?”
“아직. 일이 바빠서.”
태훈은 무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역시 남녀 불문하고 그것부터 묻는다.
“넌?”
“나? 난…….”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순간 얼굴에서 스치는 어둠을 태훈은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워줬다. 조막마한 입술로 한 모금 마신 그녀는 빙긋 웃는다.
* * *
동창회가 마무리되어 간다. 마누라나 남편의 등쌀에 떠밀려 먼저 들어가는 이들도 있었고, 2차 가자! 하며 소리치는 이들도 있었다.
태훈은 고깃집의 카운터 앞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한 잔 뽑아 소파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때마침 정훈도 나왔다.
“태훈아, 너 서울 산다고 했지? 내일 밤에 올라가고.”
“그렇지. 왜?”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훈이 문이 닫혀있는 동창회 자리를 돌아봤다.
“지혜 네가 내일 좀 데려다줘라. 들어보니까. 내일 너하고 비슷한 시간에 올라간다던데 저 몸으로 어떻게 혼자 올라가냐. 오늘은 그나마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데려다줬다던데 먼저 올라갔다더라고.”
“그래?”
태훈은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같이 서울에 사는데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에 다소 서운해졌다.
아마도 그녀는 미안해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데려다주겠다고 말할 것을 알고서.
때마침 지혜가 나왔다.
깡총하고 골든 리트리버가 먼저 바닥에 내려서고 그녀가 굽이 없는 구두를 신었다.
“벌써 들어가게?”
“응. 들어가 봐야지.”
“잠은 어디서 자게.”
정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뭐 모텔이나…….”
그녀가 살고 있는 거주지가 전주도 아니었고 마땅히 잘 곳도 없었다. 태훈과 정훈의 머릿속으로 모텔 주인이 ‘아니 여기에 웬 큰 개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고, 고개를 연신 숙이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다고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앞에까지 데려다줄게. 택시 타는 곳까지.”
“괜찮은데.”
그녀는 민망한 표정이었다.
태훈은 조심스레 그녀를 부축해 계단을 내려갔고 택시 잡는 곳까지 걸어갔다.
“지혜 너 내일 밤에 올라간다며? 나도 그때 올라가는데 같이 올라가자.”
“괜찮은데.”
그녀의 머쓱해진 웃음에 태훈은 보이지 않는 한숨을 쉬었다.
“뭐가 괜찮아 임마. 이 큰 개 데리고 버스 타게?”
“……알았어.”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훈은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근데 개 되게 예쁘다.”
“그치?”
그녀의 얼굴에서 한순간에 꽃과 같은 웃음이 맺혀졌다. 개는 그 웃음을 보기라도 한 것인 듯 헥헥거리며 웃고 있었다.
맹인안내견은 오랫동안 훈련을 받은 녀석들이었고 주인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녀석이었다.
이 해리라는 안내견이 그녀의 눈이 되어 주고 그녀의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리라.
택시를 잡았다.
“아니, 웬 큰 개를. 개털 날리게 시리.”
“죄송합니다. 그래도 좀 부탁합니다.”
태훈은 슬쩍 기사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크흠, 뭐 아가씨가 딱해서 알겠어. 어디로 가면 돼요?”
“아중리 모텔 골목으로 가주세요.”
곧 택시는 출발했고 태훈은 다시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조심히 들어가.”
가슴의 착잡함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 * *
다음 날 저녁 태훈의 차로 어머니가 싸주신 밑반찬이 한 아름 들어갔다.
트렁크에 실은 후에 부모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곧장 지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쭈뼛쭈뼛 무척이나 불안한 모습으로 길거리에 서 있었다.
태훈이 오자 그녀는 안심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해리와 함께 탔다.
차는 출발했다.
“서울까지 한 세 시간 걸리니까. 한숨 자둬. 도착하면 깨워줄게. 어차피 네비에 찍어놨으니까.”
“고마워, 항상 난 너한테 도움만 받네…….”
“친구끼리 뭘.”
태훈은 싱긋 웃었다.
곧 차는 출발했다. 그녀는 자지 않고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태훈이 심심하지 않게 말을 붙이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태훈은 룸미러로 주인의 품에 기대어 태훈을 보며 혀를 드러내며 웃는 해리를 보고는 픽 웃었다.
“네가 너희 누나 잘 지켜줘야 한다. 자식.”
태훈은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으로 부드러운 머리털을 어루만져주었다.
차는 세 시간을 꼬박 달려서 서울의 그녀가 살고 있는 집 앞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쓰리룸 빌라였다.
잠에서 깬 그녀는 기지개를 켜더니 해리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다음에 꼭 맛있는 거 한 번 살게.”
“그래. 들어가. 조심하고. 해리 너도 잘 가.”
태훈이 몸을 숙여 해리의 머리를 한껏 쓰다듬어주었다.
곧 해리의 안내 하에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태훈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더 이상 불행해지지 마. 행복하게 살아.”
태훈은 그녀가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고서야 다시 차량에 올랐다.
곧 차가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량에서 남성이 내렸다.
남성은 실소를 흘리며 집 쪽과 태훈의 차량을 번갈아 보더니 실소를 흘렸다.
“빌어먹을.”
그는 방금 전 지혜가 들어갔던 그 집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