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
연기에 인생을 걸었지만 보답받지 못했던 자.
이제, 다시 생生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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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이 없는 배우
배우는 연기하는 매순간마다 극중 인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스타니슬라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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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리가 당신 여동생이라고?”
“그래. 그러니 제발 좀 진정하라고! 당신 의심병 때문에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아!!”
드라마 현장.
17화에 다다라 정점을 찍고 있는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여주와 남주의 바로 뒷편에는, 희미한 빛무리가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배우들의 생기, 기분좋아···’
물론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것의 정체는 연귀(演鬼).
연기장을 떠도는 이계의 존재이다.
일반인들보다 생기가 넘치는 배우들의 기운, 특히 연기에 몰입할수록 진하게 새어나오는 기운을 먹기 위해 연기 현장을 돌아다닌다.
그런 그의 눈에 희한한 놈이 하나 발견되었다.
“사장님, 국세청에서 전화가···”
“지금 중요한 얘기하는 거 안 보여? 나가있어!!”
막 프레임 인(frame-in)한 단역 배우.
..희미하다..
넘치듯 존재감을 발산하는 주연 배우들에 묻혔다고 치기에도 너무 부족한 생기.
‘뭐야 저건, 인간이야 생령이야···’
호기심이 발동한 연귀는 금세 대사를 끝내고 빠진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툭-
뛰어가던 스탭이 그의 어깨와 부딪힌다.
“죄송합니다.”
스탭의 사과에 남자는 꾸벅 맞인사를 한다.
하지만 다시 걷기 시작하자마자
툭-
다른 사람이 또 그의 몸에 부딪힌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툭툭 턴다.
어지간히 익숙한 일인 모양.
‘생기가 저렇게 적으니 사람들이 인지를 못하지. 어떻게 저런 인간이 배우를 하고 있지?’
연귀의 궁금병이 도졌다.
*
#scene 37
주연 이재훈이 국세청 직원과 대치하는 신.
남자는 이재훈의 부하 직원이자 회사의 실무자 역할로 중간 투입된다.
프레임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남자. 연귀는 그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장님. 압수수색 나왔던 것, 배경을 밝혀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내부고발이라고 합니다.”
“뭐라고?!! 어…어떤 놈이!!”
그 때, 남자가 등장했다.
주연과 단역의 대치. 하지만 사람들은 주연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연귀는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주인공에게서 퍼져나오는 강력한 생기가 희미한 남자의 생기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 때,
연귀가 자신의 기운을 밀어보냈다.
스윽-
그러자 연귀의 기운이 남자의 기운을 도와 주연의 생기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이퀄.
두 기운이 동등하게 대치할 정도로만 기운을 보태주고는, 연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김부장! 뭐야 니가 왜 들어와!”
“내부고발자, 접니다.”
“뭐?!!”
“그러게…적당히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단역이 비적 웃는다.
안면근육이 일반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뒤틀린다.
기괴한 표정.
“네 놈 따위가…”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법이지요.”
씹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감정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다.
사장실의 명패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왼손. 금방이라도 손에 든 것을 패대기칠 것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
연귀는 허공을 보았다.
보태준 것은 분명 ‘밀리지 않을 정도’의 기운이었다.
그런데, 저 단역의 희미한 기운이 보태준 기운을 집어삼키고, 이글거리며 몸부림을 친다.
오랜 감금에서 벗어난 죄수처럼.
어느 새 연기 현장의 시선들이 이름모를 단역에게 모여 있었다.
긴장된 침묵이 잠시 현장을 채웠고,
주연이 괴성을 지르며 책상의 물건들을 쓸어 엎었다.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씬 42 세팅 들어가고 배우들은 잠시 휴식합니다.”
“네~~”
“아, 그런데 김부장, 이름이 뭐에요? 연기 잘하네? 지난 씬에선 몰랐는데.”
“…신유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유명은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우렁차게 인사했다.
“조감독한테 프로필 한 부 주고 가요.”
“네! 감사합니다!!”
유명은 백팩에서 늘 가지고 다니는 프로필을 꺼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제하지 못했다. 15년째 단역과 준조연만을 연기 중이지만, 감독이 직접 관심을 표한 것은 처음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자유롭다.’
신기한 듯이 자신의 팔과 다리에 시선을 준다.
혼자 연기연습을 할 때와는 달리, 무대에 서면 늘 팔다리가 무거웠다. 자신의 생각대로 연기가 펼쳐지지 않았다. 그것을 늘 연습 부족이라 생각해왔는데···
‘생각한대로 움직일 수 있었어.’
방금 자신의 연기는 스스로의 마음에도 썩 들었다.
비록 단역이지만 그가 설계해 온 김부장의 인생이 대사 몇 마디로도 제대로 표출되었다.
‘나, 드디어 포텐이 터지는 건가?’
그 상기된 얼굴을 보던 연귀는 흐응-하고 감탄사를 냈다.
‘생기가 딸려서 그렇지, 연기는 꽤…아니 상당히…’
*
연귀는 은빛 털 한 줌을 뽑아 손바닥 위에 놓았다.
스르륵 녹아내린 그것은 액체가 되어 찰랑찰랑 흔들렸다.
{플래시 백.}
*Flash back 과거를 제시하는 일련의 쇼트를 삽입하는 편집기법
입에서 떨어진 단어와 함께 은빛 액체는 한없이 얇게 늘어져 거대한 스크린을 만들었다. 연귀는 손을 스윽 뻗어 아공간에서 팝콘봉지를 꺼내어 한 줌을 입 안에 털어넣고 와작와작 씹었다.
{재생. 저 인간의 삶. 중요부분 압축. 4배속.}
은색 스크린에 투영되는 필름.
주인공은 아까 그 인간이다.
[한 대가족이 모임을 한다. 주인공의 삼촌이 메뉴별로 거수해서 손을 센다.주인공은 볶음밥에 손을 든다. 볶음밥이 하나 적게 나온다. 삼촌은 ‘내가 왜그랬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같은 곳. 식사 후 주인공이 화장실을 간다. 가족들은 분주하게 인원을 나누어 차를 탄다. 주인공을 빠뜨리고 그냥 출발한다. 화장실에 다녀와 가족이 사라진 것을 안 주인공. 휴우-하고 한숨을 쉬곤 익숙한 듯 공중전화를 찾는다.]
연귀가 혀를 쯧쯧 찼다.
{그래. 가족도 자꾸 까먹을 정도로 존재감이 바닥인 놈이 배우는 왜 된거야?}
장면이 건너뛴다.
와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