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01
*
“뭐? 아무 반응이 없다고?”
“네. 그날 육미영 작가가 촬영장에 왔다갔다고 합니다. 현장은 그 뒤로 수습된 분위기구요. 그런데 10화 쪽대본 나왔던 것들을 싹 수거해갔다는데요, 대본 수정한다고.”
“뭐라고?”
이규성이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계획대로라면 작가한테서 신경못써줘서 미안하다고 연락이 오고, 피디가 몸은 괜찮냐고 얼른 촬영장에 나와달라고 콜이 왔어야 하는데···
그리고 매니저는 손에 든 usb 하나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그리고, 이게 형 앞으로 온 익명의 우편물에 들어 있었는데…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이게 뭔데?”
“어…재생시켜 보세요. 저 급해서 화장실 좀 갔다 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로드매니저가 난처한 듯이 줄행랑을 쳤다.
“저 새끼가···”
규민이 짜증을 내며 앞에 놓인 노트북에 usb를 꽂았고, 그 곳에는 동영상 파일 한 개가 덩그라니 들어 있었다.
따닥-
클릭을 하자 재생되는 장면에선 먼저 백승효의 얼굴이 보였다.
은성군과 월공의 대치장면. 자신이 보이콧하고 나온 날 예정되어 있었던 촬영 장면이다. 월공이 없는데 어떻게 촬영을 진행했단 말인가.
그가 예쁜 얼굴을 구기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반대편에 월공의 복색을 입고 대신 서 있는 사람은···
‘저 놈이 왜···!”
신유명, 그가 월공의 대사를 읊고 있다.
딱- 딱- 딱- 딱-
초조하게 손톱으로 책상 위를 두들기며 동영상을 재생하던 그는, 곧 ‘월공이 뭐 저래-‘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안도어린 비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월공이 탁규민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가 ‘연기’한 것이 ‘최선을 다했지만 연기력이 부족한 탁규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월공에 탁규민의 버릇, 습관, 말투가 그대로 배어있다.
아, 최선을 다해 연기했지만 부족했구나.
배우 신유명이 아닌 배역 탁규민이.
그 모습을 보고 배우가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자신이 주장하던 바와 완전히 배치되어, 이규성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신인배우 주제에 건방지게 나를 엿먹이려고···’
그것이 사실이기는 했다.
다만 화를 내기 전에 근본적으로 자신의 연기를 돌이켜봤다면 좋았겠지만,
그럴만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그는 벌떡 일어나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억누르며 실장실로 향했다.
“실장님.”
“어, 규성씨.”
그가 반색을 하며 인사했다.
이규성은 TW엔터의 매출에 높은 지분을 차지하는 배우이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외적인 수익이 더 크다. 특히 광고. 10대 팬들이 많기에 10대를 겨냥한 광고에서 그는 고순위의 섭외 대상이다.
그와 일하다 그만두는 스텝들이 많아 관리가 좀 골치아프긴 하지만, 어쨌건 회사엔 돈을 잘 벌어다주는 효자 상품이기에, 실장은 그를 반갑게 맞았다.
“어떻게 됐어요?”
“사장님한테 보고드렸어. 사장님이 KBK 국장한테 한 마디 하신대.”
“촬영장은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라는데요. 좀 서운하네요.”
“거 참…배우가 쓰러졌다는데 안부연락도 없고. 알았어. 좀더 세게 말씀드려 달라고 얘기해 놓을게.”
그제서야 만족한 규성이 하얀 미소를 짓는다.
“네. 그리고 그 신유명이라는 신인배우, 영 거슬려요.”
“흠···이미 들어간 작품을 어떡하겠어.”
“당장은 아니더라도. 뭐, 방법은 많잖아요?”
규성이 실장을 압박하듯이 말끝을 힘주어 눌렀다.
*
TW는 거대한 회사다.
국내 탑3 안에 들어가는 기획사이며, 대기업의 자회사.
유석은 촬영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해듣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 친구 전부터 뒷소문이 안 좋더니.”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당장은 잘된 일이기는 한데 후환이…TW가 일을 좀 더럽게 하다보니···”
유석은 배우1팀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명의 매니저는 자신이 직접 맡았다지만, 소속이 필요한 로드와 코디는 1팀으로 배속시켜 놓았기에, 호철은 1팀장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1팀장은 그를 찾아왔다.
“잘못하면 저희한테 똥물 튀겠는데요. 사실 작가나 피디야 이번 작품 성공시키면 당분간은 어쩔 방법이 없겠지만, 나중에 작정하고 신유명씨나 저희 다른 배우들한테 시비를 걸면···”
‘하필···’
다른 엔터였다면, 쥐고 있는 카드들 중 한두 개만 판에 깔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그런데 TW는 그가 가장 건드리기 꺼림칙한 상대이다.
‘그 곳’의 자회사.
드르륵-
핸드폰이 책상 위에서 떨렸고, 그는 무심하게 폴더를 열었다가 문자의 발신인을 보고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어머니]편지 모양이 깜빡이는 새 메세지를 확인한다.
[TW랑 트러블 있니? 사장이 사소하지만 너와 관련된 일이라고 보고하더구나. 네 취미생활 방해하지 말라고 일러뒀다. 가끔 들리렴.]그녀의 나즉하고 온화한, 뱀같이 사락거리는 음성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그냥 취미생활이지? 더 욕심은 내지 마라.
-너는 착하고 똑똑한 아이니까, 내가 귀엽게 봐주는 선을 잘 지키리라 믿는다.
유석이 살짝 머리를 흔들어 그 목소리를 떨쳐냈다.
“실장님 괜찮으십니까?”
“그 건은 해결됐어요. 걱정하지 말고 나가보세요.”
“네?…아, 네. 알겠습니다.”
당황한 표정으로 팀장이 물러갔고,
유석은 차가운 손등을 한참이나 눈 위에 얹고 있었다.
*
이규성이 돌아왔다.
항상 조각한 듯이 입에 걸려 있는 미소가 처음으로 지워져 있었다.
“촬영에 지장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제 다 나았습니다.”
“아니에요. 아픈 걸 어떡하나. 규성씨가 몸이 좀 약한가봐?”
“네에, 좀···”
저런, 앞으로 많이 쉬게 해줄게요.
방학 피디는 목구멍에 비수를 감추고 그에게 웃는 낯을 띄웠다.
“영화촬영씬, 급한 거부터 얼른 찍읍시다.”
“네, 피디님. 죄송합니다.”
그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떨어진 머리칼 아래 드러난 교근이 떨릴 정도로 앙다물려 있다.
그것은 한참 교만의 정점을 찍었던 스타가 패배하는 모습.
그는 전일 사장에게 불려가 너무 까불지 말라는 경고와 몇 가지 협박을 동시에 들었다. 피디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촬영장에 복귀하라는 명령도 함께였다.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라 순순히 허리를 굽히고 있긴 하지만, 자존심이 다친 얼굴은 평소보다도 더 희게 질려있었다.
쯧쯧-
다른 배우나 스텝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특히 성격이 쨍한 원로 이옥형은 대놓고 혀를 차며 그에게서 고개를 휙 돌렸다.
한쪽 구석에서 다른 배우들과 하하호호거리는 신유명, 그에게 시선이 닿자, 이규성은 이를 바득 갈았다.
“3,2,1- 슛-!”
“전하. 본국은 유월에 끝난 건척국과의 전쟁의 후유증을 겨우겨우 이겨내는 중입니다. 추수가 얼마 남지 않은 아름다운 본국의 영토가 다시 핏빛으로 물들 것입니다.”
이규성은 전날 본 그 영상을 잊으려 애쓰며, 배에 힘을 주고 대사를 쳤다.
그걸 보낸 사람은 누굴까- 피디겠지?
분해서, 그리고 짜증나게도 그 연기가 눈에 선해서 연습한 대로 대사를 치기가 어려웠다.
“컷- 규성씨, 그냥 연기를 못하는 게 아니고, ‘최선을 다하지만 잘 안되는 연기’라는 느낌이에요. 다시.”
“아니 최선을 다하는데 어떻게 못-”
규성은 반박하려다 말을 뚝- 끊었다.
그걸 연기해낸 모범 샘플이 바로 저기에 있다.
여기있는 모든 스탭이 그 연기를 보았고, 지금 자신의 연기와 비교하고 있다.
‘시발···’
얼굴이 달아오른다.
“전하. 본국은 유월에 끝난 건척국과의 전쟁의 후유증을 겨우겨우 이겨내는 중입니다. 추수가 얼마 남지 않은 아름다운 본국의 영토가 다시 핏빛으로 물들 것입니다.”
“컷- 그렇게 완전히 힘을 넣어버리면 권도준에게 밀린다는 느낌이 안나잖아요. 다시.”
“컷-”
“컷- 다시.”
“컷-”
누군가가 그 장면의 오케이 커트라인을 훌쩍 높여놓은 데다, 방학 피디의 뒤끝이 의외로 길었던 탓에, 그 날 규성의 촬영은 가시밭길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그의 분량은 급속도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니까.
*
촬영장이 다시 순조롭게 흘러가기 시작하고, 그 다음주.
연예학개론 7화가 방영되었다.
전반부의 주요 스토리가 빠르게 컷컷으로 요약된다.
도준은 하나가 짬날 때 몰래몰래 연기 연습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 재능에 놀라면서도, 뭐하는 짓이냐며 그녀에게 짜증을 내는 도준. 하나는 그런 그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자신도 연기에 꿈이 있으며, 언젠가는 당신같은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그녀의 담백하고도 진심어린 고백이 도준의 마음이 덜컹 흔든다. 그는 고민을 거듭하다 회사에 하나를 연습생으로 추천한다. 재능있는 친구같으니 오디션 한번 봐달라. 단, 자신이 추천한 것은 비밀로 해달라고. 그리고 하나는 오디션을 통과하고 기획사의 배우지망 연습생이 된다.
연습을 하며 드러나는 하나의 놀라운 재능과 노력. 그녀는 매일매일을 전쟁하듯이 연습에 매진하고, 지친 그녀를 규민이 위로해준다. 도준은 그 모습을 목격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며, 준경은 그런 도준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를 짓밟고 싶게 된다. 그래서 준경은 하나에게 접근하여 ‘괜찮은 배우들끼리 함께 하는 연말파티’에 초대하는데···
-연예학개론-
-7화-
“미미야-”
냥-
“언니 예쁘다고? 헤헤. 오늘 중요한 자리에 초대받았거든. 이거 제일 좋은 옷이다?”
냥-
“그러게. 아직 데뷔도 안한 나를 왜 불렀을까. 그 류준경 배우, 그 분이 말을 걸었다니까? 진짜 예쁘더라. ‘하나씨죠? 도준이가 재능있는 배우라고 하더라구요. 지인들끼리 가볍게 모이는 자리니까 부담없이 와요.’ 그랬다니까?”
냥-
“안 믿긴다고? 언니도 그래. 류준경씨는 믿을 만한데 그 싸가지 권도준이 나보고 재능있는 배우라고 했을 리가 없는데 그치? 언니 다녀올게. 집 잘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