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02
그리고 그녀가 집을 나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순간,
보형이 뛰어나와 그녀의 손목을 잡아챈다.
“어? 보형아. 집에 있었어? 잘됐다. 할머니랑 저녁 꼭 같이 먹어.”
“하나야, 나 믿지?”
생글-
하나의 얘기와 관계없는 지문을 갑자기 던지며, 보형이 특유의 폭신한 미소를 짓는다.
“그럼, 내가 세상에서 우리 할머니 다음으로 믿는 사람이 보형이지!”
“그래, 그럼 오빠 믿고 잠시 따라가자.”
“어? 나 약속···”
“안 늦게 데려다줄게.”
보형이 하나를 데리고 간 곳은 백화점.
하나는 그 곳에 들어섰을 때부터, 아니 보형이가 한 눈에도 비싸보이는 차를 어디서 끌고와 그녀를 태울 때부터 넋이 나가있었다.
그녀가 알던…보형이 아닌 것 같았다.
“여긴 왜···”
“오늘 네가 가는 자리, 드레스코드가 있는 자리거든.”
“그런 얘기 없으셨는데···”
“하나야. 나는 네 편이야, 그렇지?”
“당연하지!”
“그 사람은 네 편일까 아닐까?”
“음…글쎄…”
“그럼 나를 믿어. 내가 너한테 나쁠 일을 할 리가 없잖아?”
그렇게 그녀의 말문을 막은 보형은 명품 매장들에서 능숙하게 그녀에게 어울리는 드레스를, 신발을, 악세서리를 뽑아 낸다.
“헉, 너도 돈 없잖아. 어떡하려고! 입은 걸 반품하는 건 나쁜 짓이야···”
“음…너한테 거짓말한 게 있는데…그건 저녁에 얘기하고 혼날게. 지금은 시간 없으니까 얼른.”
순식간에 갖추어지는 아이템들과, 어디선가 나타나 그녀의 머리를 틀어올리고 메이크업을 해주는 전문가.
하나가 정신없이 휘둘리는 사이, 그녀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우리 하나, 예쁘네.”
보형이 반달웃음을 지은 후, 그녀를 거울 앞에 세운다.
멍-
그녀가 입을 벌린다.
“이게…나···”
거울 속의 미녀는, 자신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
“허리는 곧게 펴고, 눈빛은 당당하게. 내가 뭐라고 했었지?”
“화려한 외양, 명함, 지갑 그런 건 모두 껍데기다. 중요한 건 알맹이다.”
“그래. 하나는 원래 예뻐. 그래도 껍데기가 중요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굳이 무시당할 이유는 없지. 외모도 마음도 그 사람들에게 꿀릴 것 하나 없으니까 당당하게 있다 와.”
“하나 없다니, 여기 있는데?”
그녀가 혀를 날름 내민다.
그런 그녀의 이마를 한번 톡- 치고 보형은 하나를 파티장소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하나의 드레스업한 모습을 보고 가장 놀란 것은 류준경이 아닌,
권도준이었다.
그 7화가 방영되면서,
시청자 게시판이 다시 한 번 터졌다.
천재를 넘어설 길
————– 68/74 ————–
[연예학개론 7화]└프리티우먼 보는줄…보형아 보형아 널 어떡하니…ㅠㅠ
└보형이 재력이면 슈퍼에서 껌 한통 사준 거랑 비슷할 듯···
└하나 템빨 어마어마하네요. 엄마 나 보형이 사줘.
└윤보형 남주추진위원회입니다. 사안이 시급합니다.
└TV모니터링 요원인데요. 일하다 심장 다쳤는데 산재 신청되나요.
프리티우먼. 돈 많은 남성이 여성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드레스업시켜주는 클리셰는 진부할 정도로 고전적이지만, 그렇기에 언제나 유효하다.
팬클럽의 가입수가 폭주했다.
보형이 걸치고 나온 아이템들이 1화에서 7화에 걸쳐 낱낱이 분석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윤보형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매스컴에 등장했다.
“이겼군요. ‘상실’을 알려주는 건 물건너갔네요.”
“저는 이미 혼자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자유를 ‘상실’했는데요?”
“하하. 그래서 아쉬워요?”
“아쉽지만 감수해야죠. 조금의 자유보다는 연기로 인정받는 게 저에게는 훨씬 큰 가치니까요.”
스물넷 답지않게 평온한 대답에 유석이 바람빠지듯이 웃었다.
“여기요. 호철씨한테 위임장 써서 대신 처리하라고 했어요.”
자동차등록증.
이미 익숙해진 자동차 넘버가 보이고 위쪽에 자신의 이름이 꽝꽝 박혀있다.
‘어? 그런데 날짜가···’
이상하다.
등록일의 날짜는, [윤보형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매스컴에 뜨기 한참 전. 아니, 오히려 내기가 이루어진 날 쪽에 가깝다.
“실장님, 그런데 왜 날짜가···이거 혹시 내기결과와 무관하게 그냥 주려고 하셨던 겁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비싼 걸 그냥 받을 수는 없다, 라는 생각에 유명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아니, 그냥 신유명씨가 이길 걸 알고 있었던 것 뿐이에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 상사의 교묘한 언변에 당할 뻔한 전적이 있었던 유명이 말투를 굳혔다.
유석이 빙글빙글 웃으며 해명한다.
“나한테는 예지 능력이 있거든요.”
“…네?”
이 무슨 황당한 소리…는 아니지. 자신이 연귀를 만나 존재감을 받고 회귀까지 한 것을 생각하면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혹시 문실장도 뭔가 기연을 얻어서 예지 능력을···? 아니면 회귀? 그렇다기엔 원생에서 보형을 연기한 것은 다른 배우였는데…
온갖 가설들이 유명의 머리속을 어지롭게 떠도는 와중에, 문유석이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정말입니다. 내가 제법 머리가 잘 굴러가서요. 이런 상황, 이런 경쟁작, 이런 피디와 작가에 이런 배역. 계산된 변수들에 신유명이라는 배우의 역량을 넣고 엔터를 치니까- ‘윤보형 신드롬’이라는 결과가 나오던데요?”
그런 의미였구나···
한껏 긴장했던 유명의 몸이 풀썩 풀렸다.
“정말입니다. 나는 세상을 그런 식으로 예측하고, 그 예측이 대부분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돈을 버는 겁니다. 그리고 신유명이라는 배우를 넣고 다시 조금 뒤의 미래를 예지해 보자면,”
“…”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 말투에 찬 확신.
사기 같으면서도, 귀를 단숨에 현혹한다.
“그 페라리 정도의 값은 신유명씨가 금세 벌어올 거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부담갖지 말고 받으세요. 정말로 내기에 질 걸 알아서 준비한 겁니다.”
그제서야 유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
윤보형 신드롬을 낳고, 하나의 드레스업 한 모습이 화제가 되었던 7화의 시청률은 32%.
도준이 하나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접근하지만 장난치지 말라고 하나가 거부하는 것과, 도준이 촬영중인 에 하나가 단역을 맡게 되는 모습이 그려지는 8화의 시청률은 33.5%였다.
는 윤은정의 명품 연기가 화제가 되긴 했지만, 연말에 어울리지 않는 처지는 분위기로 초장부터 힘이 빠져 있었고,
또한 에 밀려 10% 후반대를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이번 3사간 드라마전쟁의 승자는 명백히 KBK였고,
그 결과의 일등공신은 유명임에 틀림없었다.
8화가 방영되고 나자, 연말이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어 휑해진 운대 앞 거리는 조금씩 내리는 진눈깨비로 질척해져 있다. 포켓에 손을 찔러넣고 그 길 위를 휘적휘적 걸어가는 낯익은 형체는 한 건물의 지하로 내려간다.
“류신 선배~”
“여어, 서류신.”
원래 마른 편이었지만, 조금 더 말랐나.
살짝 길어진 머리는 검은 고무줄로 질끈 묶여있다. 그것조차 어울리는 미형의 남자는 무심한 손길로 패딩에 묻은 물기를 툭툭 털어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선배님.”
“여기, 류신아 여기!”
아예 한 가게를 전세내어 수십 명이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는 이 곳은 오디우스 송년회이다. 그는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를 떨쳐내고, 혜선 수호 유리가 앉아있는 구석 테이블로 향했다.
가장 마지막까지 공연을 함께했던 팀이며, 그가 관심있는 인물과 친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와, 선배 졸업하고 처음 보네요. 잘지냈어요?”
“그래. 혜선이는 어디 들어갔니.”
“저 혜성 들어갔어요. 요즘 열심히 마루닦고 있어요, 히히.”
“수호는?”
“저는 영상원가서 공부 좀 더 하려구요. 연출 쪽에 관심이 생겼어요.”
“아 그래. 유리는?”
“내년 초 들어가는 드라마 준비하고 있어요.”
간단하게 근황이 펼쳐졌고, 류신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단연코 화제가 된 것은 근래 오디우스가 배출한 핫한 스타이자 그들의 친구인 신유명이었다.
“유명이가 연기를 대단히 잘 하긴 하지만, 윤보형은 캐릭터의 승리지 않아? 작가가 캐릭터 빌드업을 잘하고 대사도 너무 잘 붙였어. 누가 했든 사랑받을 캐릭터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은 요즘 연출에 관심이 있다는 수호의 의견이었고,
“글쎄, 좋은 캐릭터지만 굉장히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지 않아?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정도로 온도가 빠르게 오르고 식는데, 연기력이 안되는 배우가 그 역을 했다고 생각하면 끔찍했을 것 같은데.”
이것은 같은 배우로서 유명의 연기를 높이 평가하는 유리의 의견이었다.
“선배 생각은 어때요?”
혜선이 방글거리며 질문해오자, 류신이 잠시 이맛살을 찌푸리며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발레리나 하이 봤어?”
“표가 없어서.” “아직.” “담주에 예매해놨어요.”
세 명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거나 봐. 그럼 드라마보다 그 얘기만 하고 있을걸.”
“선배는 봤어요?”
“지금 보고 오는 길이야.”
“우와, 어땠어요? 앗 스포일러는 하지 말구요.”
“화가 나.”
그들은 흠칫했다.
화가 난다는 류신의 어조에 좌절이 지근지근 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그들은 그의 창백한 낯빛을, 조금 쉰 듯한 목소리를 발견했다.
“왜요?”
“신이 연기자에게 필요한 모든 재능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고, 거기에 노력과 끈기까지 줬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잠시 길이 안 보여서.”
“…무슨 길이요?”
“천재를 넘어설 길.”
순식간에 셋은 조용해졌다.
서류신의 재능도, 노력도, 승부 근성도 질릴만큼 봐왔던 그들이었다. 류신이 유명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그들 모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서류신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며, 본인이 부족한 것은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해서라도 해내고 말지, 절대 약한 소리를 할 남자가 아니었으므로.
“그 정도…인가요?”
“윤보형과는 달라. 그건 쉽지않은 배역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신유명의 ‘범주’ 안에 있는 연기지. 보형이 되기 위해 신유명은 최선을 다했겠지만, 한계를 넘어설 필요는 없었을 거야. 그런데 팬텀은 달랐어. 분명 몇 번이고 부딪힌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었을 거야. 발레라는 낯선 분야를 표현해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팬텀의 복잡한 내면연기, 그리고 지젤의 희미한 존재감을 표현해낸 연기···”
그가 말을 하다 버거운 듯이 두 번 정도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1년간 나는 그의 지킬과 하이드와 부딪힐 자신을 겨우 만들어 왔어. 타인의 연기에 감응하여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연기, 그걸 해내기 위해서, 작은 작품들만 조금씩 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오로지 거기에만 몰두했지. 그리고 넘어서진 못해도 따라잡았다고, 며칠 전에야 겨우 납득했다.”
혜선은 생각했다. 류신이 자신의 얘기를 저렇게 길게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