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04
그렇게 9화가 끝이 났다.
[연예학개론 9화]-권도준 연기 진짜 잘하네요. 아니 백승효가 잘하는 건가
-나라가 망할 길을 떠나는 친구를 붙잡는 절절함, 캬~ 남자다! 어른이다!
-백승효 연기 잘하는 줄은 알았는데, 드라마 내에서 탑배우라는 설정이 하나도 안 어색하네요.
-탁규민 연기가 좀 어색하네요. 권도준한테 연기로 밀리는 씬이라 일부러 그런걸까요?
└당연히 일부러 그런 겁니다. 우리오빠 욕하지 마세욧.
└컨셉이었다기에는 탁규민과 월공 연기에 일관성이 없던데…좀 아쉽네요.
-권도준 남주를 가장한 빌런인 줄 알았는데 남주 맞네요. 오늘에야 인정합니다.
그날 시청률은 36.7%.
그리고 다음날 10화에,
시청률은 처음으로 40%를 넘기게 된다.
*
-10화-
하나는 오디션 배역을 연습하고 있었다.
보형을 대상으로.
“보형아 근데 이 영화, 남자주인공 이름이 보형인 거 알아?”
“헉, 진짜? 내 이름 안 흔한데.”
“그러니까. 신기하지? 비중있는 역이라 나같은 신인에게는 안 돌아오겠지만, 오디션 꼭 보게 해 달라고 말씀드렸어. 이 작품 남주도 보형이니까 나한테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아서.”
“내가…너한테 행운을 가져다줘?”
“그럼~ 보형이는 내 마스코트지!”
한 점 거짓 없이 자신이 행운의 마스코트라고 하는 하나의 밝은 표정을 보고, 보형은 가슴이 약간 지끈한다.
그리고,
“나 연습 좀 도와줄래?”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
“대사 연습하게 상대역 좀 해줘. 이 파트로 지정연기 보거든.”
“알았어!”
아무렇지도 않게 승낙했던 그 일이,
‘계기’가 되리라고는 보형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냥-”
하나가 손등을 할짝 핥는다.
놀라서 바라보는 보형을 보고 개구지게 웃으면서 설명한다.
“이 배역이 고양이 역할이거든. 남주가 주워와서 기르는 고양이인데, 연애에 쑥맥인 남주의 짝사랑을 도와주는 역할이야.”
“아···”
“그런데 아직 정확한 캐릭터와 감정을 못 정했어. 이거저거 연습해보려고.”
“응 해봐. 뭐가 어울리는지 봐 줄게!”
“보형아.”
“…응?”
그녀가 갑자기 자신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이고 다정하게 부른다.
보형은 당황해서 대답을 해버렸다. 평소 하나의 해맑은 말투가 아닌, 은근하게 떨어지는 나지막한 목소리.
“하하하- 대사한 거야. 이름이 같으니까 너 부르는 줄 알았구나.”
“어? 으…응.”
조금 붉어진 보형의 안색.
“여기, 여주가 고양이에서 사람으로 변해서 처음으로 주인공의 이름을 부르는 이 부분이 지정연기 파트거든. 조금씩 감정과 톤을 바꿔서 불러볼테니까 뭐가 좋은지 얘기해줘.”
“으…응.”
“보형아~”
한 번은 귀엽게,
“보형아!”
한 번은 마음을 비집듯이 예리하게,
“보형아.”
고양이같이 도도하거나,
“보형아.”
제 주인을 우러러보듯이 순종적으로,
“보형아···”
그리고…사랑스럽게.
사랑스럽다. 라는 생각이 들자 보형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다양한 색과 향기로 귀를 사로잡는 자신의 이름은, 새로운 개념을 학습하는 것처럼 익숙치 않게 귀를 간지럽힌다.
자신의 이름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었는지를 그는 처음 깨닫는다.
하나를 향한 보형의 감정변화.
그것에 육작가가 부여한 계기는 ‘이름’이었다.
이름. 나를 이르는 것.
가장 익숙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언제나 낯선 단어.
누가 불러주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수백 수천 배로 증폭하기도 하는, ‘나’와 가장 가까운 단어.
“보형아~~”
한 번 마음이 내려앉고 나자, 보형의 안색이 시시각각 바뀐다.
하나의 부름에 따라 매번 변하는 그의 다채로운 표정.
귀여운 부름엔 사랑스러운 표정이, 도도한 부름엔 ‘하나한테 이런 면도 있었나’ 놀라는 표정이 떠오른다. 예리한 부름엔 덜컥 찔린 마음이 내려앉고, 순종적인 부름에는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솟아오른다.
부름과 부름 사이,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유명의 연기는 그 자체로도 신기에 가까웠다.
그런데, 변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물들어간다.
하나가 수십 번 부르는 이름의 사이사이에, 식물이 성장하는 고속비디오를 틀어놓은 듯이 감정이 움을 틔우고, 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하나를 향한 감정이 순식간에 나이가 먹는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스러운 부름엔···
보형이 차오르는 숨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의 어깨를 짚었다.
“하나야. 나 잠시….잠시만. 나갔다 올게.”
“어? 왜그래 보형아. 어디 아파?”
“아니. 아 아픈 건가. 그럴지도··· 괜찮아 잠시만 있어.”
“보형아?”
오르내리는 가슴이 보일까봐 손으로 누른 채로 응급상황을 피해 도망친다.
문 밖 복도에 기대어 서서야 그는 겨우 가득 들어찬 숨을 내쉬었다.
휴우–
보형의 삶에서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빼면, 할아버지 정도.
주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용인들은 자신을 감히 이름으로 부르지 못했고,
자신을 ‘혁성그룹의 후계자’로만 보는 지인들의 부름은 견고한 성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무방비한 상태로 얻어맞은 제 이름의 연타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감미로워 성벽을 부드럽게 타고 넘어 요새의 심장부를 저격한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감정이 순식간에 깊어져 버린 연기.
첫사랑을 빠르게 재생한 듯한 그 연기는 보형의 인기와 맞물려 큰 화제가 되었고,
그 날 시청률은 40.05%를 기록했다.
*
[연예학개론 10화]-이번 편 하나도 보형이도 연기력 터졌네요. 이름 부를 때마다 하나 캐릭터가 바뀌고, 그거 듣는 보형이 감정도 시시각각 변하는데, 숨막혀서 호흡곤란 오는 줄.
-서브남주 원래 이규성 아니었나요? 뭔가 스토리가 달라지는 듯한…아, 물론 적극찬성입니다.
-고양이가 이름을 부르면 넙죽 응답해야죠. 너, 내 주인이 돼라.
-하나 고백듣고 얼굴 빨개진 보형이 너무 귀여웠어요. 두근두근 첫사랑이 떠오르는 연기.
-연기 구멍이 없어서 너무 좋네요. 권도준이 탑배우인 것도, 김하나가 연기천재인 것도, 윤보형이 재벌3세인 것도 무리한 설정이란 생각이 안들어요.
갑자기 틀어진 러브라인에 대한 비판이 없지는 않았다.
특히 방송평론가들은, ‘클리셰를 비튼 획기적인 드라마가 나오는 줄 알았더니, 인기에 영합해서 구조를 망가뜨렸다.’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결국 드라마는 시청률이 모든 것을 말한다.
PPL이 물밀듯이 몰려오고, 광고 단가가 하늘을 치솟는다.
KBK는 연말연초 드라마 전쟁의 승자가 되어 풍악을 울렸다.
유명이 얻게 된 유명세야 말할 바도 없었다.
처음으로 받은 팬레터.
길을 걸을 때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면 하루에도 몇 개씩 주르르 뜨는 기사들.
그것이 더 이상 신기하지만은 않아진 어느 날, 미호가 물었다.
{인기와 유명세를 얻어보니까 어떠냥?}
‘글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을 쥐고도 자신은 지나치게 담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가 고플 때는 배를 채울 것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부탁 하나 해도 될까(오후 8:35 수정)
————– 70/74 ————–
{인기와 유명세를 얻어보니까 어떠냥?}
‘글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을 쥐고도 자신은 지나치게 담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가 고플 때는 배를 채울 것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기뻐. 기쁘긴 한데, 그건 연기에 따라오는 것이지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랭?}
연기의 힘, 캐릭터의 힘, 매스컴의 힘.
여러가지가 섞여서 ‘인기’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을 만들어낸다.
연기를 아주 잘하는 배우도 좋은 캐릭터를 만나지 못하면 인기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좋은 캐릭터라 해도 악역이라면 오히려 미움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연기에 있어 배우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일까.
유명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연기가 끝난 직후의 반응.
공유된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몸을 떠는 사람들의 멍한 눈빛.
‘사랑’ ‘증오’ ‘슬픔’ 그게 어떤 감정이든,
인간의 진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몰입시키는 힘.
그 극에 달한 연기를, 그는 이미 체험했다.
앞에 있는, 귀여운 동물의 탈을 쓴 미지의 존재를 통해.
{흠···}
미호는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연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혹은 처음 맡는 주연이라는 별거 아닌 이유로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는 인간이 의외로 가장 중독적인 것에는 무덤덤한 것이 신기하다.
그렇게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것은 알지 못한 채.
{그건 그렇고, 너희 촬영장 좀 이상하당.}
‘왜?’
{이 정도 잘되는 드라마이고 배우들 에너지도 좋은 편이면, 촬영 후에 남는 잔존생기가 더 커야 하는뎅···예상치를 밑돈당.}
‘그래?’
{엉. 많이는 아니공…네가 나한테 생기를 받은 특이한 존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다 싶기도 한뎅···}
‘흠…너 말고 다른 연귀라도 있는 거 아냐?’
{연귀의 존재는 흔하지 않당. 그리고 내가 있으면 다른 애들이 먼저 피해갈 거당. 기운이 눌리니캉.}
‘그래? 대단한데···’
미호가 우쭐한 듯 꼬리를 위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