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6
로코코 촬영장의 경험과 미호의 의견을 애매하게 섞어서 설명했다.
“그런데 그런 재능이 있다고 해도 굳이 신유명씨가 도울 이유가 있나요?”
“음…저도 막막하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재능있고 노력도 하는데 잘 안 되는 배우라, 가능하다면 돕고 싶어요.”
유명은 수연의 지난 2년을 간략히 얘기했다.
로코코로 기대치가 높아진 후, 2년 반 내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기획사의 천덕꾸러기로 지냈지만 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혼자 극복해보려고 지금도 저렇게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을.
“…그랬나요.”
류신은 의아했다.
본인이 알기로, 신유명은 무명시절이 없었던 배우였다.
신유명이 불세출의 천재라고 생각하는 그로서는 ‘저도 막막하던 시절이 있었다’라는 유명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근성은 있는 배우인가 보군.’
자존감을 사정없이 깎아먹는 와중에도, ‘제대로 연기하는 법을 익혀 보려’ 혼자 공원에 판을 깔고 연기를 하고 있을 정도의 근성은 마음에 든다.
“유명씨가 그렇게 봤다면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게 안 보이니,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유명씨가 그 ‘방해물’이 뭔지 찾아보는 동안 피지컬을 만드는 정도이군요.”
류신의 협조 수락에, 유명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해요, 형!”
“발성, 호흡, 체력, 기초가 너무 모자라 보이네요. 어르고 달래며 연습시키는 성격은 못 돼요. 도망가지 않아야 할 텐데.”
“연습이 힘들다고 도망갈 정도로 연기에 욕심이 없는 배우라면, 굳이 저도 붙들고 있을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그러진 않을 겁니다.”
“그럼 됐어요. 같이 열심히 해 보죠.”
유명은 류신이 연출부였던 공연을 겪어본 적이 없었지만, 다른 오디우스 친구들에게 그의 악명은 익히 들었다.
-거의 악마와 동급이지.
-한계를 귀신같이 포착해서, 딱 한계 직후까지 굴린다니까. 한계 직전이 아니라 직후!
-그런데 본인 연습량은 그 이상이니까…욕이 나올 것 같다가도 본인 연습하는 걸 보면 쑥 들어가긴 해.
창천 조연출이었던 사준한 이상일까.
유명은 잠시 수연에게 애도를 표했다.
물론 그녀에게 충분한 향상심이 있다면, 최고의 코치를 얻은 것임은 확실했다.
*
“유명 오빠, 안녕하세요~ 저도 좀 전에 도착했어요.”
“안녕, 수연아. 여기 지난 번에 얘기했던 같이 연습하기로 한 선배셔.”
“네~ 안녕하세···.헉!!”
수연의 턱이 땅에 떨어졌다.
‘서류신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 중 많은 부분을 담당했던 브라운관 속의 세계.
아역임에도 탁월한 연기를 보이던 배우를 그녀는 매우 좋아했었다.
그가 15세의 나이로 일시적으로 은퇴했을 때 11세의 그녀는 얼마나 슬퍼했었는지.
수연은 상기된 얼굴로, 평소답지 않게 먼저 말을 붙였다.
“서…류신 배우님 맞으시죠?”
“네.”
“와…영광이에요. 정말 팬이었어요.”
“감사합니다.”
류신은 마스크를 벗은 수연의 얼굴을 보고 조금 놀랐다.
미인이다. 예쁘장한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미인.
혹시 유명이 그녀를 돕고 싶은 이유가 사심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하지만 아니겠지. 열심히 애쓰는 배우를 돕고 싶다던 유명의 어조는 무척 담백했으니까.
“같이 연습할텐데 말 놓으세요. 저도…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니요. 오빠라는 호칭은 익숙치 않습니다. 제가 그래도 연기 쪽에선 선배이니 선배라고 부르는 게 좋겠군요. 말은 나중에 좀 더 편해지면 놓겠습니다.”
“아…넵.”
그리고 류신 또한, 어릴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했기에 예쁜 얼굴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예쁘네’라는 객관적 감상은 잠깐 스쳐지나갔을 뿐, 그는 효율성을 중시하여 호칭을 정리했다. 연습을 시킬 사람이 너무 편한 것은 좋지 않다.
과연 기껏 용기를 낸 호의를 거절당한 수연은, 소라게처럼 조금 움츠러들어 있었다.
“수연아. 류신 선배는 후배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많아. 잘 배우면 무척 도움이 될 거야.”
“네! 많이 가르쳐 주세요. 막 굴리셔도 괜찮아요.”
유명이 민망해하는 수연을 위해 류신의 호칭을 슬쩍 선배로 바꿨다.
수연도 곧 서먹한 기분을 떨어내고, 열심히 연습시켜 달라며 씩씩하게 얘기했다.
“오늘은 간단하게 몸을 풀고 에뛰드(*즉흥 연기)나 한 번 해볼까요.”
그렇게 그들은 함께 연습에 돌입했다.
‘류신 형은 그 동안 더 성장했구나.’
유명은 류신의 더욱 농축된 연기력에 혀를 내둘렀고,
‘어떻게 2년동안 저렇게 달라진 거지. 쫓아갈만하면 또 저렇게···!’
류신은 환골탈태한 듯한 유명의 압도적 분위기에 이를 갈았다.
그리고 수연은···
‘……’
새롭게 눈을 뜬 듯 그들의 연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여태 유명과 해온 연기연습들에선 주로 유명이 수연의 연기를 봐 주는 식으로 진행되었기에, 제대로 유명의 연기를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눈 앞의 라이벌을 맞아 서로를 불태우는 듯한 두 사람의 연기는,
이것이 배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습장이 아닌 공연 중이라 해도 믿길 정도로,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연기가 맞는지를 자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굉장했다.
하지만 수연은 나약해지려는 자신을 한껏 다잡았다.
자신같은 초보 배우에게는 기대할 수 없었던 천운의 기회.
최고의 연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한 두 명이 자신을 이끌어주고 있다.
‘힘들어 죽을 것 같고, 열등감에 토할 것 같더라도.’
절대 포기란 없다.
수연은 그들의 ‘닮고싶은’ 연기를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
현성자동차 중역회의실.
광고는 제작 과정에서 여러 번의 시사회를 한다.
광고주들은 시사회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착착 꼬집어내어 빠꾸를 먹이고, 대행사와 제작사는 다시 광고를 깎고 깎아 2차, 3차, 4차 결과물을 가지고 오는 과정의 반복.
오늘은 크루드의 1차 VIP 시사회였다.
“적당히 만질 수 있을 수준은 돼야 할텐데.”
“그러게요. 출시 일정이 빠듯해서 여러 번 수정할 짬이 없는데…1차 시사라지만 어느 정도는 느낌이 맞게 뽑혀야 수정안이 제 때 나올텐데 걱정입니다.”
임원들이 수군거리며 입장했고, 박진희가 고개를 살짝 숙여 절도있게 인사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대행사 AE가 피티를 담당하겠지만, 이번 광고 컨셉은 박진희가 뽑아낸 것이었고 그녀의 피티 능력은 이름나 있었기에 직접 진행을 맡았다.
옆쪽에 앉아있던 대행사의 AE와 CD가 머쓱하게 일어나 함께 인사했다.
모든 임원들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민상무가 사장을 모시고 들어왔다.
“민상무가 보기엔 어때? 때깔 괜찮게 빠졌나?”
“제작 일정이 빠듯해서 저도 완성본은 처음 봅니다, 하하. 하지만 중간 체크 때 보니 결과물이 나쁘지 않더군요.”
촬영 원본을 보고 입을 떡 벌린 상태로 침을 살짝 흘렸던 민상무는, 사장에게 ‘나쁘지 않다’는 표현을 쓰며 겸손을 떨었다.
그것을 보고 박진희가 싱긋 웃었다.
‘상무님이 기대치 관리는 참 잘 하신단 말이야.’
회사원의 덕목.
결과가 나쁠 때는 관심을 최대한 다른 방향으로 돌려 충격을 최소화하고,
결과가 좋을 때는 기대치를 낮춰서 기쁨을 더 크게.
민상무는 이 부분을 제대로 해 주는 상사라, 모시기 편한 편이었다.
사장과 상무까지 자리에 앉은 후 박진희는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이번 의 마케팅을 맡은 마케팅 2팀장 박진희입니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들면서 빛나는 예리한 눈.
그녀가 손에 든 포인터를 딸칵- 누른다.
피피티가 돌아가며, 나오는 첫 페이지에서 크루드의 어원이 드러난다.
[Crude[kruːd] : 1. 대충의, 대강의 2. 막된, 상스러운 3. 날 것의, 미가공의]“현성자동차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 크루드.
아시다시피 이 네이밍은 부정적인 의미 또한 포함하고 있어, 결정 당시에 반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크루드라는 이름이 채택된 것은, 날 것이고 거칠기에 시선을 사로잡는 ‘멋’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이름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녀는 엄선한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임원들의 ‘지지’를 겨냥한다.
“그래서 크루드의 광고 컨셉은, ‘지극히 정제된 것’과 ‘날 것의 거친 것’의 갭을 표현하는 ‘반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번 광고의 컨셉은,”
이것은 직장인 박진희의 전투.
“Unmask입니다.”
딸칵-
프로젝터 화면 속에서, 신차 크루드의 광고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끝
ⓒ 글술술
Crude Unmask 3min Ver.
Fade-in(*서서히 밝아짐). 흔한 사무실의 풍경.
부감으로 거대한 사무실을 내려다보던 카메라는, 한 남자를 중심에 놓고 그에게로 화면을 주욱- 당겨 들어간다.
“네, 삼진물산 물류관리팀 박주원 대리입니다.”
“네–?”
“아니 그 물량이 왜 거기로…다시 가져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다른 쪽 물량을 돌리자구요? 하하…저도 그래 드리고 싶죠. 네 안 돼요. 아시잖아요. 네, 해결하고 연락주세요.”
화면이 검은 색으로 딸칵- 바뀌며
다큐멘터리의 자막같은 흰색 고딕체가 검은 화면의 중앙에 타닥타닥 박힌다.
다시 돌아온 화면.
박주원의 파티션 옆쪽으로 빼꼼하게 고개를 내미는 신입 사원.
“대리님.” “대리님!” “대리님~~”
이미 알려주었던 기본적인 질문들이 반복된다.
신입이 세 번째 기본적인 질문을 하자, 그의 표정이 사악- 굳는다.
웃을 때도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던 얼굴은 표정을 없애자 가슴이 덜컹하도록 차가워진다. 그 표정에 쫀 신입사원은 죄송합니다-하고 웅얼거리며 머리를 쑥- 넣었다.
그리고 박주원은 다시 완벽한 각도의 미소를 걸고, 전화 통화를 시작한다.
한번 더 자막이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