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59
“알겠습니다. 혹시 예매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피터팬 때처럼 현장 예매하면, 몇 날 며칠 전부터 그 앞에 상주하는 사람들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것 같은데···”
“아, 예매말고, 그냥 지원받아서 추첨하면 될 것 같아요. 무료 입장으로 하려구요.”
“무료…입장요?”
“제반 비용은 제가 부담할게요.”
“배우님께 그런 부담을 드릴 수는···!”
“걱정마세요. 저 돈 많이 벌었어요. 이번엔 그냥, 오래 아껴주신 분들께 선물 하나 하고싶은 거라서.”
“…!”
그 말을 듣고, 소진은 다시 눈물이 그렁해졌다.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멋진 자신의 스타. 그는 어떻게 생각까지 저렇게 사려깊은 것일까.
그를 좋아하면서, 그녀는 더 괜찮은 인간이 되고 싶어졌다.
저렇게 빛이 나는 사람을 닮고 싶고, 그에게 부끄럽지 않게 멋지게 살고 싶은 것이다.
“알겠습니다. 배우님의 뜻에 부끄럽지 않게 잡음없이! 지원자 받아서, 공정하게! 선정하겠습니다.”
“고마워요. 회장님께는 늘 도움만 받네요.”
유명이 소진의 눈을 마주치고 웃음짓자, 그녀의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었다.
그는 점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멋있어지는 것 같았다.
*
오늘 유명은 류신과 둘이 만났다.
준호가 혜성에 마지막 정리를 하러 출근한 날이라, 오늘은 둘이서 아이디에이션을 하기로 한 것이다.
유명은 궁금하던 소식을 물었다.
“효준씨는 두고 오셨어요?”
“그 녀석 이제 좀 기본이 잡혔어요. 지금은 누군가 잡고 가르치는 것보다 동료들과 작업하는 데서 더 많이 배울 시기라, 공연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위고 씨 연출작은 아닌가 보죠?”
“네. 브라이즈 극단의 다른 연출자인데, 효준이를 좋게 봤어요. 꽤 중요한 배역을 맡았습니다.”
“그렇군요. 잘 해야 할텐데··· 이제 회의 시작할까요?”
오늘 그들이 의논할 부분은 캐릭터.
유명은 현성, 민성, 은성의 캐릭터를 아예 바꾸고 싶어했다.
“현성은 교수로 설정하면 어떨까 해요.”
“교수라…그나마 시간에 덜 매이는 직업이긴 하군요. 8시간의 제약 때문인가요?”
“네. 그리고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성공과 인정의 욕망을 잘 대변하는 직업이기도 하구요. 사회적으로 가장 교양있다고 여겨지는 직업 중 하나니까요.”
“흐음…민성은요?”
“충동적인 자아.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하고 싶고, 쾌락에 취하고 싶은 본능적인 자아. 예술 계열로 설정하고 싶은데, 밤과 새벽을 살아갈 것을 고려해 클럽 DJ 정도면 어떨까 싶어요.”
“그럼 은성은?”
성공과 인정의 욕망.
충동과 쾌락의 욕망.
그리고,
“은성은 가족, 친구, 연인…주변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고, 애정과 이해를 공유하고 싶은 욕구. 자신의 가치를 ‘관계’에 두는 자아입니다.”
“직업은요?”
“한 명 정도는 무직으로 둬도 되지 않을까요?”
“하기야···”
유명이 읊은 키워드들을 종이에 적던 류신이 묻는다.
“이 캐릭터들은, 신유명씨의 내면을 고찰해서 나온 건가요?”
“네. 제가 가져온 캐릭터들은 모두, 제 내면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어요.”
유명은 준호에게 철저히 ‘신유명’이라는 인간을 반영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준호의 적극적인 동의 하에, 이번 대본 작업은 주로 유명의 아이디어를 준호가 대사로 표현하여 작업하기로 했다. 거기에 도우미로서 류신이 끼어든 것이다.
류신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 모든 걸 뒤덮는 욕망이라면, 역시 연기에 대한 욕망입니까?”
“…형이라면 이해하시겠죠.”
인간의 내면에는 늘 여러가지 욕망들이 혼재하고, 충돌한다.
승진을 위해 여가 시간을 버리고라도 일에 매진하려는 욕망과, 조금 늦게 승진하더라도 칼퇴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는 욕망의 충돌.
긴 인생을 살아감에 약점이 생기지 않도록 건전하게 살아가려는 욕망과, 젊음을 후회없이 소진하고 싶은 욕망의 충돌.
사람들은 자아를 성립해가며 욕망들간의 균형을 찾고, 적절히 조화시켜 살아가지만···
“…알죠.”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을 뒤덮을만큼, 그래서 다른 모든 욕망을 짓누를만큼 거대한 욕망이 나타나기도 한다.
인생의 조화를 깨 버리고, 다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한 가지만을 향해 달려가는 욕망.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두려움과, 그것을 취하고 싶은 욕심 사이에서 죽을만큼 고뇌하는 마음을…류신도 알고 있다.
그것을 연기로 표현하겠다니…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거군요.”
“…네.”
“어렵고 힘든 작업이 되겠네요.”
“…네.”
유명이 쓰게 웃었다.
*
유명의 집으로 커다란 소포가 도착했다.
지연은 유명이 자기 몸만한 박스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호기심어린 눈을 빛냈다.
“그게 뭐야? 페덱스 찍혀있는 걸 보니 해외 택배야?”
“회사에서 왔는데? 홍보부장님이 보내신 걸로 돼 있네.”
“뭐야뭐야. 나도 볼래.”
지연이 적극 덤벼들어 꽁꽁 싸인 포장을 풀었다. 하지만 박스 안에 또다른 박스가 있다.
“뭐야, 마트료시카*냐!”
(*인형 안에서 더 작은 인형이 계속 나오는 형태의 러시아 전통 인형)
“상하면 안 되는게 들어있나 보네. 그거도 풀어봐.”
“훗. 나의 택배개방력은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지.”
지연이 드르륵- 커터칼의 날을 세웠다. 비장한 눈빛으로 박스테이프를 샤샥- 절단하자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뽁뽁이가 나온다.
“다음은 너냐!”
유명은 지연이 혼자 잘 노는 것을 킥킥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가끔 보면 지연이 연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여기저기 나서는 것을 싫어해서 그렇지, 참 재밌는 아인데. 존재감도 무척 강하고.
“어머! 이게 뭐얏!”
뽁뽁이를 쫘악 찢은 지연은 내용물을 보고 기겁을 한다. 유명도 호기심이 생겨 슬그머니 들여다보았더니···
“비…빛이 난다, 빛이 나. 이게 다 뭐야.”
“광고 찍었던 브랜드 물품들인 거 같은데.”
“뭐야, 너 광고도 찍었어? 근데 이건 왜 주는거야?”
유명이 뽁뽁이 사이에 낀 봉투 하나를 꺼낸다. 그 안에는 박진희가 쓴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배우님!광고주들이 배우님이 꼭 써주셨으면 좋겠다는 얘기와 함께 이런저런 선물들을 보내왔어요. 편하게 써주세요~
오데마피게에서 그 때 착용했던 모델을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하는데, 그건 고가의 귀금속이라 교환서를 주셨습니다. 아마 갤러리아에 매장에 있을테니, 동봉한 교환서를 가지고 가시면 될 거에요.
한국은 좋은가요? 함께 넣은 오메가 쓰리는 제 선물입니다~]
공석에선 팬심을 좀처럼 드러내는 일이 없는 박진희지만, 이때다 싶었는지 편지 속에는 ‘보형양제’로서의 마음이 가득 들어있었다.
유명이 한 쪽 구석에 고이 자리잡은 영양제를 찾아내고 피식 웃을동안, 지연은 눈이 돌아가서 뽁뽁이를 모두 벗겨내고 있었다.
“제냐 정장! 넥타이는 열두 칼라 세트로 왔어. 무슨 12사도냐.”
“라메르···! 크림도 있고 에센스도 있고…근데 다 맨즈 라인이네, 쳇.”
“톰포드 향수도 있네. 헉, 선글라스도.”
“그건 너 쓸래?”
“오빠!!”
지연이 방긋 웃었고, 유명은 오데마피게의 교환서를 펼쳐보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때 떨어뜨린 시계는 어떻게 됐나···’
*
[다들 또 국뽕에 헤롱헤롱대는 듯]신유명 귀국했다고 난리법석이네.
세계 정상 스타가 되어 금의환향했네 어쩌네 하는데, 솔직히 좀 오바 아니냐?
유색인종이 헐리우드에서 잘 나가봐야 얼마나 잘 나가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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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뻘태클 시작이네. 미믹크리 성적이랑 미싱차일드 시청률이 말해주는데, 숫자를 보고도 못 믿으면 뭘 어떻게 설득해야함?
└아니, 연기력으로 태클거는 건 아님. 근데 솔직히 헐리우드 탑클래스는 오바 아니냐고. 겨우 두 작품한 신인인데, 한국인이 조금 떴다고 너무 신난 거 아니냐 이거지.
-겨우 두 작품? 헐리우드 첫 작품으로 배우 최초로 황금종려상 찍고, 두 번째 작품으로 역대급 미드 소리 듣고 있는데 겨우 두 작품? 존 클로드 신작이 세 번째 작품인데 신인?
└내 얘기는!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건 맞는데, 대중적인 인기로 탑클래스는 아니라 이거지. 신유명 작품만 하지 인터뷰나 티비쇼도 잘 안나오잖아. 인기있으면 수십 번은 더 나갔을걸? 아직 광고도 하나 못찍은 거 보면, 광고주들이 동양인은 좀 노노하는 것 같지 않냐?
└요건 나도 좀 인정. 진짜 그렇게 잘 나가면 광고는 들어왔을 거 같음. 우리 나라에도 명품배우 소리 듣는데 인기는 별로 없는 배우들 있잖냐, 그런 축인 듯.
-아오, 진짜 이놈의 디씨폐인들. 남 잘 되는 게 그렇게 부럽냐. 진짜 인생 암울하게 산다.
└나 전문직인데? 너야말로 방구석폐인 아니냐? 막장 인생이 암울해서 국뽕 한 사발로 잊고싶은 게 팩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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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민은 쾅- 하고 키보드를 내리쳤다.
‘아오…이 븅신들.’
원래 신유명 갤러리는, 신유명을 응원하는 성격의 게시판이었다.
호민은 영화애호가로서, 와 가 자신의 인생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신유명의 팬클럽까진 가입하지 않았지만, 가끔 디씨아웃사이드에서 유명에 관한 자료들을 눈여겨보곤 했다.
그런데 유명이 귀국하고 난 뒤부터, 유독 갤러리 물을 흐리는 어그로꾼들의 출현이 빈번해진 것이다.
‘남 잘 되는 게 그렇게 보기 싫나···’
증거가 온 세상에 펼쳐져 있는데도 저런 억지 주장을 하는 인간들을 보니, 황금종려상 수상 이전에 신유명이 얼마나 구설수로 피곤했을까 싶다. 캐스팅보트에 참여한 직후에는 더했겠지.
세상에는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광고가 안 들어온 게 아니고, 아무 광고나 안 찍는 거겠지! 국내 활동할 때도 똑같았다고!’
김호민은 광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AE를 지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광고 메이킹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꽤 관심있게 지켜보았었고, 현성자동차 쪽 담당자의 인터뷰 또한 기억했다.
국내 모든 브랜드들이 그를 광고모델로 잡고 싶어했지만, 광고보다는 작품활동에 전념하려는 그의 의지 때문에, ‘작품이 될만한 광고기획안’을 뽑느라 무척 고생했다고 했었다.
‘아오, 저놈들 입 좀 닥치게 엄청 쎈 브랜드 광고 하나만 하고 귀국하지···!’
그는 투덜거리며 갤러리를 끄고, 광고AE 지망생들의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그리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게시글 하나를 발견했다.
[신유명 미국에서 미친 광고 찍었네요ㄷㄷ]‘뭐? 진짜??’
그는 서둘러 게시글 속의 하이퍼링크를 클릭했고,
“헐…이거 리얼?”
입을 헤- 벌린 채 잽싸게 그 링크를 복사했다.
그리고 그는, 신유명갤러리에 다시 접속해 그 링크를 게시했고, 단숨에 갤러리가 뒤집혔다.
242 명품 연합광고 On
‘연합 광고’가 런칭된 것은 4월 1일 수요일. All fool’s day(만우절).
저녁 9시. 프라임타임대 시간에, 여러 방송국에서 동시에 ‘그 광고’가 런칭되었다.
제인 존스는 바쁜 일과 후 휴식을 취하던 중, 그 광고를 보게 되었다.
#정돈된 일상, 우아한 하루를 살아가는 당신.
진한 흰색으로 한 줄의 카피가 새겨지면서 Fade-in된 화면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는 웅장한 저택의 거실에서, 아직 뒷모습뿐인 남자가 서 있다.
흑백 화면이 남자의 뒷모습과 배경의 전경을, 마치 고전영화처럼 정갈하고 깊이 있는 톤으로 표현한다.
천천히 돌아선 남자의 얼굴에, 제인은 화들짝 놀랐다.
‘신유명? 언제 광고 찍었지?!’
화면 속 남자의 무표정이 예리했다.
그는 모든 움직임의 끝점에서 살짝 슬로우다운이 되는 듯한 여운이 있었는데, 그것이 굉장히 우아하고 섹시한 느낌을 주었다.
어떤 급박한 상황이 생겨도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을 것 같은, 어른 남자의 느낌.
‘와…뭐가 저렇게 우아하지.’
그가 외출 준비를 시작하며 화면이 건너뛴다.
첫 번째 컷.
턱을 살짝 옆으로 돌려들자 드러나는 유려한 목선.
티 한 점 없는 깨끗한 피부에 얹히는 부드러운 크림이 사악 스며든다.
온통 흑백인 화면에, 라메르의 케이스만이 푸른 색으로 빛나고, 옆 쪽 빈 공간에 흰 색의 타이포그라피가 타닥타닥 박혔다.
De La Mer Collection.
‘라메르가 신유명을 섭외했구나. 언제? 아니 어떻게…?’
다음 장면.
남자는 정장을 입고 왼팔을 살짝 들어, 오른손으로 왼 손목의 커프스를 채운다. 무표정하게 시선을 아래로 향하며, 익숙한 동작으로 커프스를 끼우는 모습에 살짝 숨이 가빠졌다.
역시 흑백화면 속에 정장 부분만 짙은 남색으로 색상을 드러내고, 새로운 타이포그라피가 새겨진다.
Ermenegildo Zegna.
‘제냐도? 아니…어떻게 라메르와 제냐가 같이??’
다음은 그가 오데마피게의 시계를 살짝 집어드는 모습. 은색의 팔각 라인과 내부의 청판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그리고 서랍장 위에 놓인 톰포드의 향수병을 들어 가볍게 누르자, 향수의 입자가 에메랄드색으로 빛나며 그에게 스며드는 모습.
Audemars Piguet Le Brassus.
Perfume de Tom Ford.
‘와우…이거 이거…’
마지막으로 유명이 포르셰의 스포츠카를 타고 있는 장면으로 넘어가며, 2번째 카피가 등장한다.
#하지만 당신의 가치는, 이런 것들로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고상함의 극.
남자의 완벽함은 아스 프리데터의 완벽함과는 달랐다.
온몸에 격이 배어있는, 조금은 딱딱하고 엄격해 보이는 상류층의 남자.
태어날 때부터 귀하게 태어나, 이런 삶 외의 삶은 알지 못할 것 같은 귀족적인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순간, 이 남자의 모습에 완전히 설득당했고,
잠시 후 그 믿음이 배신당했다. 좋은 방향으로.
*
남자의 정체는 탑스타.
그가 스포츠카를 타고 도착한 곳은 촬영장이다. 잠잘 때조차 완벽할 것 같던 남자는, 촬영장에서 몸을 날려 연기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연기가 나오자, 감독에게 재촬영을 수없이 요청하며 고개를 숙인다.
자신의 일에 온전히 진지하며, 스스로의 엄격한 기준을 결코 낮추지 않는 모습.
흑백의 화면에, 붉은 색의 정물들이 점점이 색깔을 띤다.
#성실함이 당신의 프라이드를 만들며,
촬영 후, 그는 스탭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함께 뛰어들어 몸을 움직인다.
고급 정장에 먼지가 묻고, 땀으로 와이셔츠가 젖는다.
옆 사람들이 만류하는데도, 그는 싱긋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번쩍 장비를 들어 옮긴다.
이번엔, 채도가 낮은 푸른 색이 더해져, 화면이 더욱 화려해진다.
#겸손함이 당신의 격을 세웁니다.
그리고, 시계를 떨어뜨린 어린 아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울먹이는 아이의 눈을 맞추고 짓는, 다정하기 그지없는 미소.
‘흐아…’
순간 몸이 배배 꼬였다.
그것은 자신과 눈을 맞추고 저 웃음을 지어준다면…하고 상상하게 되는 미소였다.
마지막 카피가 깔리며, 화면은 드디어 총천연색이 되어 선명하게 빛난다.
#이 브랜드들은 결코 당신의 격을 결정하진 않지만, 당신의 격을 잘 표현합니다.
아까보다 각이 죽고 지저분해진 정장, 한 번 바닥에 떨어졌던 시계.
자신을 포장한 것들이 조금 숨이 죽었어도, 돌아서는 그의 걸음에 서린 품위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말끔하고 우아했을 때보다 몇 배는 멋있어 보인다.
30초.
일반 광고보다 두 배는 긴 시간.
광고가 아닌 하나의 작품을 본 것 같은 기분으로, 제인은 멍하게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서서히 환상에서 깨어나고 나자,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이거…어떤 미친놈이 이런 기획을 한 거야?’
각각의 업계에서 손꼽히는 명품 브랜드들.
그들은 어떻게 엮여서 이런 기존에 없던 스타일의 광고를 만들었으며, 누가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일까.
무모하고도 당황스러운 도전이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본다면…엄청난 관심과 파장을 일으킬만한, 영리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왜 이 기획이 우리 회사에는 안 들어온 거지?’
그녀는 람보르기니의 홍보 담당자였다.
*
신유명 갤러리.
-와…미쳤다. 이거 무슨 일이냐? 만우절이라 누가 장난친 거 아니냐?
-포르쉐, 오데마피게, 제냐, 톰포드, 라메르…끝났다, 끝났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그니까…저 브랜드들이 다 모여서 같이 신유명 한 명 섭외한 거에요?
-뭔가 엄청난 일이 있었던 듯. 저 광고학과 학생인데, 저렇게 최고라고 불리는 명품 브랜드들이 연합해서 하나의 광고를 찍은 건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배우면서 황금종려상 탄 것도 그렇고, 매번 역사를 쓰네. 인생 혼자 사나…
-모델료 얼마나 받았을까요? 역대급일 것 같은데…ㅎㄷㄷ
-연기할 때 싹- 하고 사람이 달라지는 거 개신기. 진짜 광고에서도 연기를 하고 있네.
광고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일단 그 멋진 화면에 시선을 빼앗겼고, 그 뒤엔 어떻게 이런 광고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가설을 토론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