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5
한 마디도 없이 15분의 감상을 마친 윤한성은 목이 타는 듯 아이스버킷의 녹은 물을 벌컥 들이켰다.
“누구냐 이놈.”
“기가 막히지? 실제로 보면 더해. 심지어 이번이 첫 연기랜다.”
“뻥이겠지. 말이 안돼.”
“23살이고 얼마 전에 제대했어. 1학년 때 연극동아리에 가입했지만 스탭만 했고, 그 전에 데뷔 이력도 없어. 고등학교 때 연극부였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본인 말로는 처음이라더군.”
“그럴 리가 없어. 몰입력이야 백번 양보해서 타고난거라 치자. 몸을 쓸 줄 알고, 발성이 잡혀있고, 관객을 의식하고 무대를 쓸 줄 알아. 저런 게 아마추어라면 대한민국에 연기로 밥벌어먹을 놈 없을 거다.“
“모차르트는 5살 때 첫 작곡을 했다지.”
재필은 수능을 끝낸 고3이 고2를 놀리는 듯한 짓궂은 기쁨으로 한성의 당황을 음미했다.
“누구 보여준 적 있어?”
“아니. 내 보물이야. 윤 배우만 살짝 보여준거야.”
재필은 이 자료를 여기저기 돌릴 마음이 없었다. 이런 걸 풀지 않더라도, 그 놈은 스스로 제 전설을 써 나가리라. 잘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보물급 자료가 될 지도 모른다.
“얘 오디우스야? 이번 워크샵 참가해?
“왜? 가르쳐 보게?”
“저 영상이 진짜라면 누가 가르칠 레벨은 진작에 넘어섰어. 일단 진짜인지 확인해 보고싶고···”
“싶고···또 뭐?”
“같은 배우로서 해줄 조언이 있을 거 같네.”
“무슨 조언?
“너 저 연기에서 고칠 점이 보이냐?”
“아니? 내가 본 최고의 메소드연기라고 칭찬했는걸. 아, 미안. 윤배우 연기는 메소드 계열은 아니니까 삐치진 말고.”
“나도 안보여. 너무 완벽해. 그래서 추측되는 저 배우의 문제가 있다. 아마 맞을 거다”
재필이 무슨 의미인지 보채 물었지만 한성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근데 쟤 오디우스 아니야.”
“…아니라고?”
“어. 경영학과야. 창천에 소속되어 있을걸?”
“그럼 진짜 천재네. 너 교수잖아. 어떻게든 섭외해서 넣어봐.”
“야…교수 아니고 시간강사거든?”
“어쨌든. 그림을 만들어 보자고. 오디우스는 내가 지원사격할테니 걱정말고.”
“큭큭. 하여간.”
재필은 자신보다 더 눈에 불을 켜는 한성을 보고 실소했다.
배우란 놈들은 하나같이 못말릴 종자들이었다.
*
학기가 끝나가던 어느날, 수업 이후 이재필 교수가 유명을 호출했다.
“오디우스 워크샵요?”
오디우스 여름 워크샵.
오디우스에서 여름마다 쟁쟁한 선배 배우들을 초청해 진행하는 명망높은 워크샵이다.
얼마 전 류신도 은근슬쩍 물어왔었다. 그 때 유명은 정중히 거절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외부인이 참가하기는 부담스럽다는 변명과 함께.
그래서 류신이 그에게 부탁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는데, 교수는 의외의 이름을 꺼냈다.
“윤…한성 배우요?”
“네. 내 지인입니다. 신유명학생 단막극 녹화분을 보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윤한성, 별칭 비제悲帝
무명 시기를 오래 견디며 탄탄한 연기력을 쌓아왔으며, 30대 중반에야 빛을 보기 시작한 배우이다. 특히 비극적인 배역에 있어, 그 심금을 울리는 연기력에 눈물짓지 않는 관객이 없어서 붙은 별칭이 비제, 비극연기의 제왕.
하지만 유명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크기가 작지만 불꽃같은 연기를 하네요. 힘내요. 언젠가는 빛 볼겁니다.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몇 안되는 사람.
유명에게 말을 걸었을 때의 윤한성은, 2007년 kby 드라마 대상을 탄 의 비극적인 주연으로 최고의 스타덤을 구가하고 있을 때였다.
까마득한 후광이 비치던 탑배우가 단역 배우에게 건넨 그 위로는, 유명의 무명 생활 내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저 최고의 배우 또한 무명기가 길었으니까, 조금만 더! 하고.
“내가 수업 동영상을 보여줬어요. 그걸 보더니 ‘조언할 부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내 친구라서가 아니라, 대단한 배우에요. 그가 조언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면 그건 분명 학생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에 유명은 결정했다.
“제가 오히려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유명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
학기가 끝났다.
연기적 측면에서는 회귀가 무척 고마웠지만, 시험을 다시 치는 것만큼은 고역이었다.
03년 2학기 시험문제가 뭐였던지 골똘히 궁리해 보기도 했지만, 한 문제도 생각나지 않았다. 시험지를 받아들고서야 ‘아, 이거였지!’하고 무릎을 탁 쳤다. 고로 기말고사는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하지만 C로 점철된 성적표 위에 유일하게 빛나는 한 글자가 있었다.
[메소드연기학] A+회귀 전에는 C-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명은 전생과 현생간의 극명히 대비되는 성적표를 확인한 후 인터넷 창을 껐다.
‘오늘부터구나.’
방학이 시작된 직후에 류신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재필 교수와 윤한성 배우의 추천으로 무리없이 참가 처리되었다는 얘기와 함께, 워크샵의 일정을 전했다.
-이번 기회에 오디우스의 매력을 느끼게 되면 좋겠네요.
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었지.
유명은 방학 후 1주일간 목적없는 휴식을 취했다. 꿀같은 휴가를 딱 1주일 보냈을 뿐인데, 대본이 보고싶어 몸이 근질근질해오는 것이 ‘나는 참 어쩔 수가 없는 놈이구나’ 싶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학교로 향했다.
[뫼비우스홀]방학 중이라 휑한 건물의 불이 켜진 부분을 따라가니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제대로 찾은 모양이다. 홀 앞에는 이라고 인쇄된 A4지가 붙어 있고, 문을 슬쩍 여니 꽤 많은 인원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명은 조용히 문을 닫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아는 얼굴이 몇몇 보인다. 프레디 팀 연습 중에 말을 놓게 된 같은학번 혜선과, 4조였지만 오며가며 인사할 정도로 안면이 생긴 수호선배.
“유명아 왔어? 같이 재밌게 듣자.”
“오디우스 초토화되는 거 아니에요? 살살 해요.”
그 사이로, 날카로운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쪽이 류신 선배를 밀어내고 들어온 그 ‘예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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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게 해 드리죠
“그쪽이 류신 선배를 밀어내고 들어온 그 ‘예외자’?”
배타적인 느낌이 다분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자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가지런한 생머리, 윤곽이 선명하고 단정한 이목구비는 예쁘지만 ‘대하기 어렵겠다’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왼쪽 눈 밑에 박혀있는 눈물점.
아, 선유리다.
에서 희수 역을 맡아 전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아역배우.
잘 컸네, 잘 컸어.
그런데 서류신을 밀어내고 들어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그게 무슨 소린가요?”
“몰라요? 워크샵에 그쪽 넣으려고 류신 선배가 빠진다고 한 거?”
“네??”
그러고보니 서류신이 이 자리에 없었다.
“그런 얘기는 못들었습니다만, 사실인가요?”
딱딱해진 유명의 말투에 혜선이 나섰다.
“유리야 말을 그렇게 하면 어떡해.
그게 아니고, 원래 이게 20명 선발 워크샵이거든. 유명이 너를 워크샵에 포함시키기로 하면서, 우려하는 의견이 좀 있었어. 선발에 떨어진 애들의 불만은 선배들의 추천이 있으니 무마할 수 있다 쳐도, 2명, 4명, 5명 등의 그룹 컴포지션 때문에 20명을 맞춘 건 어떻게 조정할 거냐고.”
유명은 대답없이 혜선의 설명을 들었다.
“얘는 올해 오디우스 부회장 선유리라고 해. 워크샵 진행을 맡은 유리는 그런 진행상의 문제로 좀 속을 썩고 있었어. 류신 선배는 무조건 너를 넣겠다고 하고, 유리는 21명으로 진행하긴 어렵다고 하고, 그러다가 류신 선배가 작년에도 들었던 워크샵이니 자기가 빠지겠다고 했어. 뭐 그렇게 된건데 얘 말투는 원래 이렇고, 원칙주의자라 그렇지 악의가 있는 건 아니야.”
“혜선아!”
“유리야, 너도 알잖아. 그게 얘 잘못은 아닌거. 그리고 손해본 건 우리가 아닌데 화낼 건 없잖아.”
“아니, 큰 손해지. 우리가 류신 선배랑 같이 워크샵을 들을 수 없게 했잖아. 강사님들 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재능있는 동료에게서도 배우는 게 많아. 나는 OB선배들이 어떤 추천을 했다해도 이 쪽이 서류신보다 대단한 배우라는 건 인정할 수 없어.”
두 여학생의 공방전을 지켜보면서 유명은 오히려 열이 식어가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오디우스의 매력을 느끼게 되면 좋겠네요.’
라고 서류신이 말했다.
그건 희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유명이 오디우스에 매력을 느껴 다음 공연을 함께하길 바래서 던진, 소위 ‘투자’.
투자는 리스크를 안는다. 서류신은 자청해서 리스크를 안았다. 오디우스가 그만한 가치를 가질 지는 겪어본 후에 그가 결정하겠지만, 그런 투자를 분란을 일으키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할 정도로 유명은 호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정도 난관으로,
그 윤한성이 자신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을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인정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뭐라구요?”
“누가 누구보다 재능있다- 그런 비교는 그렇지만, 같이 했던 게 도움이 되었다 정도는 인정하게 해 드리죠.”
그의 호승심이 발했다.
유리는 굴러들어와서 박힌 돌에게 큰소리마저 치는 인간을 기가 막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