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3
‘뭐야···!’
뒤쪽 자리에 앉아서 무대를 응시하던 백이신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팔걸이를 쥐었다.
‘하이드의 존재감이 후반부로 갈수록 커지는 것을 무대 위에서 아예 신체로 구현을 해버리다니, 어떻게 이런 연기를···!’
창천공연 때 어떻게든 매달려서 줄라이로 데려와야 했나…손톱을 깨물던 백이신이 고개를 흔들었다.
‘안 하길 잘했어. 나중을 위한 관계라도 잘 만들어놔야지.’
둠- 둠–
극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다.
댄버스 경의 살해에 대해 런던 경시청이 수사를 시작하고, 궁지에 몰린 지킬은 평소보다도 선량하고 봉사적인 생활을 하며 명망을 올린다. 하이드의 소재는 미궁에 빠진다.
하지만 결국,
지킬은 한 번 알아버린 파멸의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약병을 손에 들고 만다.
그것이 마지막 기회였을 줄이야.
한바탕 분탕질을 즐기고 나서 무리없이 지킬로 돌아왔지만, 그 때 이미 하이드의 그림자는 지킬을 압도할 정도로 자라버렸다.
무대 전체를 가로지를만큼 긴 그림자.
다음 날,
지킬은 나른한 낮잠에 취해있다가 어지러운 기분을 느낀다.
무대가 회오리친다.
광폭한 소음같이 음향이 부대끼고, 갖은 색상들이 꺼졌다 켜졌다 난동을 부린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자,
“허억···”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하이드가 되어가는 지킬.
어둠의 자아가 밝은 자아를 넘어서서, 이제는 하이드가 베이스 인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이드로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급하게 약을 마시고 복귀한 지킬의 얼굴에
한계를 넘어선 공포가 파르라니 어리었다.
“약…충분한 약이 필요해!”
그는 약물을 최대한 만들어놓기 위해 재료를 무더기로 주문하지만, 웬일인지 같은 배합을 해도 그 약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불안, 초조, 절망에 빠진 지킬 박사가 비명을 지른다.
으아아아아아–
그 히스테릭한 비명은 귀에 오래도록 메아리쳤다.
*
드디어 2막 7장.
준호는 스텝전용의 2층 발코니석에서 무대를 조망하며 갖은 신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이번 장만 무사히 연기하게 해주세요.”
오늘의 첫 공연,
준호는 자신이 그려낸 세계가 현실에 드러나는 마술같은 경험을 했다.
오디우스에 합류한 것은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초보 극작가인 그가 머리 속의 장면을 마음껏 휘갈기고도, 써 온 이상으로 장면을 소화해주는 분에 넘치는 배우들을 만났다.
‘제발 이번 장면만..!’
여기만 연습 때처럼 해낸다면, 첫 공연은 나무랄 데 없다.
그는 단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초조하게 발끝으로 서 있었다.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발코니 석이기에 망정이지.
“쟤, 진짜 어마어마하다.”
주란이 속삭였다. 이미 앞에서도 여러 번 튀어나온 그녀의 감탄사.
준호는 입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시작된다.
“래니언 박사님.”
장소는 래니언 박사의 사무실.
지킬 박사의 절실한 편지를 받고, 그의 집에서 그가 지정한 약물을 가져온 후 지킬 박사를 기다리던 래니언의 앞에, 그 소문이 무성한 혐오스러운 인물이 나타났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지킬 박사님의 심부름을 왔습죠.”
의심스럽지만, 지킬의 당부가 있었으므로 래니언 박사는 약물을 건네준다. 그걸 받아서 돌아 나가려던 하이드가 다시 몸을 돌린다.
불길한 미소.
“어서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래니언 박사님.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지킬 박사의 발견?”
눈 앞의 살인자를 불쾌하게 여기면서도, 래니언 박사는 그의 말에 혹하고 만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제가 이 약을 여기서 마시면, 박사님은 굉장한 것을 보시게 됩니다. 그것은 천상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파멸에도 가깝고, 기괴하지만 아름답기까지 한, 어떤 진리이지요.
당신은 그것을 외면하고 지금까지의 멍청하고 안전한 닥터로 살아갈 수도 있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고통스러운 진실에 가장 가까이 간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악마가 양 손바닥을 내민다. 꿀이 발린 목소리와 웃음으로.
아아, 인간이란 이토록 어리석은 것.
래니언 박사의 선택은…
“…진실을 보여다오.”
그 말에 하이드가 꿀꺽- 약병을 단숨에 비운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굽은 척추가 삐그덕거리며 한 분절씩 맞춰진다.
틀어진 팔이 우둑우둑 자리를 되찾는다.
일그러진 얼굴 근육이 두둘두둘 여기저기로 뻗치더니,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자리에만 CG를 붙여둔 게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변신.
음산하기만 했던 얼굴에 창백함이 스몄고, 곧 그 얼굴은 좌절을 가득 머금었다.
“래…래니언.”
닥터 지킬이었다.
*
숨도 못쉬게 옥죄어오는 전개.
지속된 3막은 래니언의 죽음과 지킬의 자살로 비극적으로 전개되었다.
어터슨은 래니언 박사의 부고를 듣고, 그의 유서를 전해받는다.
그리고, 어느 날 달려온 지킬의 시종.
그를 따라 달려간 지킬 박사의 저택에는, 자살한 하이드의 시체와 한 통의 편지가 남아있었다.
자신의 앞으로 되어 있는 그 편지를 어터슨이 조심스럽게 뜯는 순간, 마지막 장면이 펼쳐졌다.
푸른 스포트 라이트 아래 홀로 선 지킬,
그의 독백.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쾌락을 탐하는 성향이었다.
쾌락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만, 고고한 자긍심으로 대중들 앞에서 철저하게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오만한 욕망을 가진 내게 쾌락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의 고백은
인간의 본성을 양분할 수 있다는 진리의 발견으로,
그 약을 만들어 마시게 되기까지의 유혹과 갈등으로,
걷잡을 수 없는 나락에 빠진 지킬의 후회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약을 털어넣고 얻은 아주 짧은 유예.
그는 마지막 순간을 지킬로 살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제 머리를 겨눈다.
타앙-
그리고 암전.
우와아아아아–
막이 닫히고, 격한 갈채가 터져나왔다.
그에 응답하기라도 하듯, 다시 커튼이 열린다.
스윽- 비탄한 영혼이 빠져나가고, 유명은 깊숙히 절을 한다.
이것이 자신의 첫 정식 주연.
커튼콜에 모든 조명이 밝혀져 환하게 빛나자, 반사된 조명으로 객석이 어렴풋이 보인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뜨겁게 박수를 치고 있는 두 사람은,
그의 부모님이다.
‘오셨구나···’
지난 생, 저 모습을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공연에서 그나마 단역이라도 맡았을 때면, 그는 표 두장을 봉투에 넣어 품에 품고 다녔다.
우체국까지 가서 부치려고 하다가 돌아선 적도 여러 번이었다. 좀더 비중있는 역을 맡으면 그때 꼭…이라고 다짐하며.
엄마가 눈물을 그렁거린다.
아버지는 팔이 떨어질 듯이 힘차게 박수를 치고 계셨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그들은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유명은, 두 분이 허락하신 것을 알았다.
*
수많은 꽃다발이 안겨져 왔다.
부모님의 포옹, 경영학과 후배들과 오디우스 선배들의 축하.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꽃을 건넨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