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6
더벅머리에 뿔테안경을 쓴 젊은 남자는 명함을 스윽 내밀었다.
“이런 사람입니다.”
[film director 기도한]유명은 움찔하며 그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기도한···’그’ 기도한인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던 40대 이후의 그의 얼굴만 아는 유명이 아리까리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나이대에 영화감독인 기도한이 설마 둘은 아니겠지.
“아, 네. 안녕하세요.”
“공연 재밌게 봤습니다.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작품 얘기를 하자 바로 나오는 그 번뜩이는 눈빛.
‘기도한 감독, 맞네.’
현재는 30대 초반일 기도한 감독은, 탁월한 재능과 센스로 2000년대 중반부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대표작은 2014년 설수연, 방지환 주연의 . 그 작품으로 천만 영화 감독의 타이틀을 달았었지.
“제가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캐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조연이지만, 여자 주인공과 매우 드라마틱하게 얽히기 때문에 사실상의 비중은 주연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데뷔도 안 한 자신에겐 과하게 좋은 제안이다.
“가제는 phantom of the ballet. 팬텀 오브 오페라를 오마주한 작품으로, 발레리나의 이야기입니다. 유명씨에게 맡기고 싶은 것은 팬텀 역할입니다.”
“왜 저인가요.”
“팬텀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절대자의 느낌’, ‘인간같지 않은 스산한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해서, 인외의 특성이 있을법한 캐릭터가 나오는 공연들을 다 훑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발견했습니다.”
예리한 안광이 유명의 시선에 얽힌다.
“굳이 무명 연극 배우를 찾은 이유가 있습니까? 혹시 개런티 문제인가요?”
“아뇨. 예산은 상당히 넉넉합니다. 이게 사실···”
기도한이 조금 망설이다 고백하듯 뒷말을 내밀었다.
“자비영화거든요.”
“자비영화요?”
자비영화.
개인의 돈을 들여 찍어내는 영화.
어느 호사가가 제 머리 속의 아이디어를 굉장하다고 생각하여 돈을 쏟아붓거나, 성공한 배우가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서 사비를 들여 영화를 찍는 경우 등으로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결코 흔한 일은 아니다.
내막이 뭘까?
“대본 작가가 영화사 투자자 큰 손의 딸이에요.”
“…”
“그런데…그 작가가 여주인공입니다.”
갈수록 답이 없다.
유명의 표정을 읽고 기도한이 변명하듯이 설명을 덧붙였다.
“어떻게 보이실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저같은 신출내기 감독이 제작비 문제가 없다는 메리트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대본이 좋지 않았다면, 저도 절대 이 영화를 찍으려고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대본이 좋다구요…”
“네. 그리고 팬텀 역이 정말로 연기력이 필수적인 역할입니다. 오늘 유명씨의 지킬과 하이드 역에서 제 머리 속의 팬텀과 상당히 부합하는 단면들을 보았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유명은 다른 질문을 던져 보았다.
“오늘 공연, 두번 다 관람하셨다고 했는데, 왜 저입니까?”
“솔직히 낮 공연까지는,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서류신씨도 대단히 훌륭했거든요. 그런데 저녁 공연에 눈치챘습니다. 이거 서로 맞춘 연기가 아니라, 유명씨가 일방적으로 맞춘 연기구나···”
유명이 흠칫 놀랐다.
“…어떤 점에서요?”
“지킬과 하이드, 낮 공연에도 잘 맞고 저녁 공연에도 잘 맞았는데, 각각을 잘라서 머리 속에서 붙여보니,”
기도한이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서류신씨는 잘라 붙인 게 한 작품처럼 잘 맞는데, 신유명씨는 미묘하게 어긋나더라구요. 카피한 필름 두 개를 이어붙이면 살짝 뜰 때가 있죠. 그래서 아, 유명씨가 일방적으로 맞춘 연기구나 했습니다.”
“…”
“맞추지 않았을 때가 무척 궁금하네요.”
유명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다른 천재성에 혀를 내둘렀다.
지금은 무명이지만 그 재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닐테지.
이 감독, 이야기를 나눠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제 무대 정리하러 가봐야 합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유명은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
유례없이 성공적이었던 오디우스 본공연이 끝났다.
다시 최철주가 무대에 선 창천 본공연은 그에 비해 매우 초라한 성적이었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여담이다.
그리고, 공연의 여파는 생각보다 강했다.
“저 사람들 계속 너 힐끔거리는 것 같은데?”
“그냥 이쪽 방향 보는 거겠지.”
“아까부터 너 손가락질하면서 수군거리고 있는데?”
준호가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식판을 정리하고 일어서려고 하자 그들 중 한 명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혹시 오디우스 공연 주연하셨던 분 아니세요?”
“…맞습니다.”
“와, 정말 재밌게 봤어요. 연기 진짜 잘하세요. 혹시 졸업하고도 연기 쪽으로 가실 건가요?”
“아, 네···”
“역시! 앞으로도 팬심으로 응원할게요. 저, 싸인 한 장 가능할까요?”
“네? 싸인 같은 거 없는데···”
“그래요? 그럼 이름이라도 써주세요. 싸인 빨리 만드셔야 할 것 같은데···”
볼이 발그레해진 여학생은 다이어리를 내밀며 싸인을 종용했고, 유명은 당황을 감추지 못한 채로 신유명이라는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주었다.
“to 민선화, 라고도 적어주세요!”
주문이 많은 여학생은 끝내 목표를 성취하고 신이 나서 발길을 돌렸다.
“와…이제 진짜 유명 배우네. 이름값한다.”
“준호, 너까지 그럴래?”
“흐흐, 미안. 그래도 진짜 싸인은 만들어둬야 할 것 같은데? 방금 전에도 한 명이 노트 꺼내서 줄서려다가 다시 집어넣었어.”
장난기 가득한 어조로 놀려댔지만, 준호는 사실 제 친구에게 진심으로 경탄하고 있었다. 이런 녀석과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그 지킬과 그 하이드···두 버전 모두 대단했어.’
유명을 떠올리면 끊임없이 작품구상이 떠올랐다. 그는 준호에게 뮤즈와 같았다. 다만, 초기에 너무 높아진 눈 때문에 나중에 고생할 것이 걱정이었지만.
“싸인 만드는 쉬운 요령은 네 이름 모음 자음을 다 분리해서 나열해두고- 어? 너 전화.”
유명의 모토롤라가 식탁 위에서 지잉- 울린다.
그는 준호에게 두고보자는 표정을 짓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신유명씨 핸드폰인가요?”
“네, 그런데요?”
“안녕하세요, 대학내일 편집부입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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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와 조건
“안녕하세요, 대학내일 편집부 노선영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신유명입니다.”
선영은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고 놀랐다. 그 강렬한 연기를 연상하기 힘들 정도로 담백한 얼굴이다. 스타일까지 더하면 인기있을 타입이긴 하지만.
“제가 ‘꿈을 향해 도약하는 대학생들’이라는 주제로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지난 주말에 오디우스 공연보고 너무 인상적이어서 월요일에 바로 편집부에 기안 올리고 컨펌 받았어요.”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남자가 쑥스럽게 웃는다.
그 모습을 뒤에 선 카메라 기자가 찰칵- 찍었다.
“카메라는 신경쓰지 마시고 저와 자연스럽게 대화하시면 돼요. 혹시 연기는 언제 시작하셨나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년이 채 안됐습니다.”
“휘유~ 믿을 수가 없는데요? ‘본격적으로’라고 하신 건 본격적이지 않게는 그 전에도 준비하셨다는 건가요?”
“예전부터 배우의 꿈은 있었어요. 본격적으로 연기할 여건은 되지 않아서, 주로 대본을 읽고 마음에 드는 배역을 연습해보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지만요.”
“얼마나 예전부터요?”
“음…15년 전? 아, 이제 16년 전인 셈일까요?”
“16년 전이면 헉, 7살 때부터요? 엄청 조숙한 어린이셨네요.”
“그런…셈이죠?”
유명이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와! 그럼 16년 전 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제가 무척 조용하고, 눈에 안 띄는 사람이었거든요.”
“지금 모습을 봐서는 상상이 잘 안가네요. 어릴 때 내성적인 타입이 자라면서 변하는 경우가 있긴 하죠.”
“그런데 나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무대’에 한 번 서게 되었어요. 제가 뽑힐 거라고는 기대도 못했었는데, 무척 설렜죠. 지금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못하는 것보다는 소극적으로 못하는 게 티가 덜나서 배역을 받게된 것 같지만요.”
“유치원 재롱잔치같은 건가요? 어린 마음에 설렜을만도 하네요.”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지만, 대화는 잘도 이어지고 있었다.
“무대에 서고 조명이 떨어지니까, 다들 강제로 저를 주목하는 거에요. 평소엔 저에게 눈길한 번 주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그건 강렬한 체험이었어요.”
“어린데도 상당히 복잡한 사고를 하셨었네요. 그렇게 강렬했는데 바로 연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역이 주어지지 않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