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7
“…? 올해 처음 시작하신 게 아닌가요?”
“아, 말을 실수했네요. 열심히 해도, 역이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요.”
유명이 말꼬리를 고쳤다.
“꽤 소심하셨네요. 지금은 전혀 안 그래 보여요. 뭔가 전환점이 있었나요?”
“네, 친구가 있었어요.”
“아, 역시. 좋은 우정은 사람을 변화하게 만들죠! 어떤 친구였나요?”
“아주 영리하고, 귀여운 친구죠. 어떨 때는 그 속을 알 수 없어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제게 배우의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경애하지 않을 수 없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와, 정말 좋은 친구를 두셨군요. 우정 오래오래 가시길 바라요!”
그 후에도 다양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두 시간 후에야 인터뷰와 질문이 끝이 났다. 처음 해보는 인터뷰는 생각보다 엄청난 체력이 소모되는 과정이었다.
{캬캬컁, 용케 거짓말은 안 한당? 편리하게도 착각해주는 사람이넹.}
‘그러게, 후훗.’
{모델 사진은 찍기 싫어하더닝 이건 뭐가 다르냥?}
‘이건 배우 신유명에게 들어온 인터뷰잖아. 배우로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활동은 되도록 거절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런컁.}
‘경애하는 소중한 친구라…’
연귀는 미묘하게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
공연이 끝나고 일주일 후, 유명은 기도한과 만났다.
장소는 학교 앞 스터디카페.
조용한 대화가 가능한 작은 공간에서, 유명과 기도한이 마주앉았다.
“먼저, 대본부터 보시겠습니까?”
“그게 얘기가 빠르겠네요.”
기도한이 낡은 가방에서 대본 한 권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phantom of the ballet.]윤세련 作
‘팬텀 오브 오페라의 오마주라···’
유명은 첫 장을 팔락 넘겼다.
시나리오의 서장은 잔혹동화로 시작되어 있었다.
[카렌은 빨간 구두가 너무 신고싶은 나머지, 교회에도 빨간 구두를 신고 갔습니다. 빨간 수염의 군인이 저주를 걸었고, 카렌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지친 카렌이 춤을 멈추려고 해도 구두는 계속 춤을 춥니다. 밤낮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들판과 덤불과 장벽을 통과하면서 계속해서… 그녀는 결국 사형 집행인을 찾아가서 발을 잘라달라고 부탁합니다. 카렌은 양 발이 사라졌지만, 잘린 발은 계속해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안데르센의 빨간 구두.
그 동화를 읽은 여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질문한다.
[춤을 출 수 있는데 어째서 발을 잘랐지?나라면 피곤하거나 가시덤불에 찔리는 것 따위로 춤출 수 있는 발을 포기하지 않아.]
여주는 발레리나.
국립발레극단에서 춤추는 일반단원이다.
그녀는 프리마돈나를 꿈꾸지만, 빛나는 재능을 가진 경쟁자들이 너무나 많다.
한밤에도 연습과 연습을 거듭하던 그녀는, 국립극장에 소문으로만 전해져오는 한 존재를 만난다. 그는 발레의 유령.
여기까지는 오페라의 유령과 전개가 같다.
하지만, 뒤쪽의 전개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마주보다는…안티테제(*Antithese:사물의 발전에 있어 최초의 상태가 부정되고 새로이 나타난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유명은 그 대본을 단숨에 읽어냈다.
‘대본이 좋다던 건 틀린 말이 아니네.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있어.’
오페라의 유령에서의 팬텀역도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이지만, 이 대본의 팬텀도 무척 매력적이다.
“어떻습니까?”
“재미있네요. 설정이 상당히 디테일한데 작가분이 이쪽 출신인가요?”
“네, 전직 발레리나입니다. 상당 부분 자전적 내용이라 본인이 주연을 서겠다고 한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극작은 처음이라구요?”
“네. 어색한 부분들은 기성 작가를 고용해서 다듬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스토리 전개는 온전히 구성한 게 맞습니다.”
“둘 중 하나겠네요. 재능이 있거나, ‘인생찬스’를 썼거나.”
도한이 유명을 넘어다 보았다. 아직 어린 친구가 대단한 직관력이다.
자신의 생각에도 그녀에게 작가의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 있는 삶의 테마.
자신의 혼을 끄집어 내어 글에 담았기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작품.
그걸 인생찬스라고 표현하다니. 기발한데도 정확한 표현력이 아닐 수 없다.
“팬텀은 왜 발레전공자로 뽑으시지 않구요?”
“그 부분에선 작가의 뜻이 확고합니다. 다른 역들은 몰라도 팬텀만큼은 연기자를 뽑아야 한다구요. ‘발레보다 연기가 중요한 역’이라고.”
“그렇군요. 그럼 몸은 만들어야 하겠네요?”
“…네. 물론 춤을 추는 파트들에선 대역을 쓰고 얼굴을 합성하겠지만, 타이트바스트샷 정도까진 소화해주셔야… 발레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공부하셔야 할 겁니다.”
“그렇겠네요. 배역은 오디션입니까?”
유명은 경험없는 초짜배우가 아니었다.
자비영화라는 제약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은 경력없는 신인배우이고 기도한도 지금은 신인감독에 불과하다.
감독의 눈을 믿고 이 배우로 무조건 가겠습니다?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지.
“이거도 좀 특이한데…오디션이라기보다는 경합입니다.”
“경합요?”
“사실, 이 영화 찍어보겠다고 나선 감독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전작이 있는 감독이라 네임밸류만으로는 저보다 그쪽이 유력합니다.”
“그런데요?”
“윤세련씨가 팬텀 역에 더 적절한 배우를 데려오는 감독에게 작품을 맡기겠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좋지 않다.
이 정도면 독재에 가깝다.
유명이 생각에 잠기자 초조해진 도한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다른쪽 감독은 이미 배우를 정했습니다. 발레리노 출신이라는 강점이 있긴 하지만, 팬텀 역을 표현해내는 깊이에 있어서 유명씨를 따라가진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가능성 때문이 아닙니다. 연기가 아닌 다른 외부조건들이 무척 복잡하네요…”
유명이 다른 질문을 했다.
“여주역을 맡게 될 윤세련씨는 연기 경험은 있습니까?”
“초보자입니다만, 발레도 연기의 일종으로 본다면 경력자지요. 제가 여주 캐스팅 권한이 있었다고 해도, 이 역만큼은 저도 그녀를 뽑았을 거라고 말씀드린다면 설명이 될까요.”
“…흠.”
“매력있어요, 무척. 감독으로서 찍어보고 싶은 타입입니다.”
“경합 전까지는 그렇다 쳐도, 확정이 된 이후에는 여주 겸 작가 겸 투자자에게 휘둘리지 않으실 자신이 있으신가요?”
그 직설적인 물음에 기도한은 움찔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타협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확고한 어조로 말은 했지만. 기도한은 식은 땀을 흘렸다.
연기력은 뛰어나다고 해도 아직 어린 무명배우.
주역에 가까운 비중의 배역을 제안받은 것만으로 들떠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만만치가 않다.
자신의 대답에도 차분히 고민하던 배우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경합에서 합격한다 하더라도, 제가 아닌 것 같으면 사퇴 가능한 조건이라면 해보겠습니다.”
“네? 그건 좀…합격되는 순간 결정이 되는건데 그걸 무르시는 건 곤란합니다.”
유명이 부드럽게 웃으며 선을 그었다.
“그럼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좋은 작품 찍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유명씨…저도 신인감독입니다. 팬텀역을 데려오는 걸 조건으로 붙는 경합인데 팬텀 역이 사퇴한다면 제 입장이 뭐가 되겠습니까.”
“감독님 입장만큼이나 제 커리어도 중요합니다. 말씀하신 윤세련씨의 여주로서의 매력, 촬영장 분위기에 문제가 없을지, 안본 상태에서 정하는 건 너무 리스크가 크네요.”
이 배우, 정말로 만만치 않다.
신인배우가 감독에게 이렇게 세게 나오는 경우는 없는데, 자신도 신인감독이라서 간을 보는 걸까?
아니, 그런 것 같진 않다. 말투는 공손하지만 단호한 표정. 아닌 건 아닌 성격인 것이 얼굴에 명확히 드러난다.
후우-
기도한이 한숨을 쉬었다.
어쨌건 지금 몸이 단 건 자신이다.
이미 기도한의 머리 속에는 신유명을 팬텀으로 한 영화의 그림이 잡혀버렸고, 다른 배우는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가지 마세요.”
한풀 꺾인 그의 시무룩한 만류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유명이 다시 앉았다.
*
그 뒤로 도한과 유명은 거의 매일같이 만났다.
경합까지 둘은 한 팀이었다. 도한은 자신이 배팅한 주식이 상한가를 치도록 최선을 다했고, 유명은 이미 팬텀 역에 흠뻑 빠져 있었다.
“경합이 12월 23일입니다. 20일쯤 남았네요. 경합은 아마 팬텀의 해석에 대한 인터뷰, 지정연기, 자유연기로 이루어질 겁니다.”
“오디션과 별로 다를 건 없네요.”
“감독 인터뷰도 함께 진행할거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겠네요. 어차피 결론은 배우에서 날 것 같긴 합니다만.”
유명이 스케줄러에 날짜를 체크했다.
“여주의 발레연기는 직접 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