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3
그런 사소한 부분을 제외하면 좋은 조건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이런 조건이라면, 독립영화나 연극같은 돈이 안될 것 같은 작품이라도 제약없이 연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유명에게는 몹시 절실했다.
-문유석이 특별대우하는 배우들이 있다.
전생에 그 소문을 듣지 않았다면 사기가 확실하다고 생각했을 만큼 좋은 조건이다.
그럼에도 확인할 것은 있었다.
“이 계약을 함으로써 대표님이 얻는 바는 무엇입니까? 너무 좋은 조건에, 제가 되려 대표님께 휘둘리는 게 아닐지 걱정됩니다.”
“의심을 함은 마땅하죠. 좋은 자세에요.”
유석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 물에서 놀만한 친구들은 굿엔터에서 키웁니다. 적당한 작품을 섭외해 주고, 적당한 대우를 해줘요. 그리고 나한테 이득을 가져다 주죠. 내가 아까 굿은 나한테 굿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게 배우들에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실제로 굿 엔터도 매니지먼트로서의 조건은 괜찮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내 물을 훌쩍 벗어날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후원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대어를 낚아서 만찬에 올리는 게 아니라, 다이빙 장비를 입고 대양을 함께 헤엄쳐다니며 바다를 구경하는 거죠. 그게 내 취미에요.”
그 호화스런 취미를 위해 따로 운영하는 회사.
“자세히 설명하긴 그렇지만, 체제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반항이기도 하고. 뭐, 유명씨에겐 좋으면 좋지 손해볼 건 없는 계약일 겁니다. 청년 예술가 지원사업같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자세히 살펴보아도 독소조항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조건을 준비해놓으시고, 왜 제가 먼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신 거죠?”
“사람 심리가 그렇잖아요. 엄청 좋은 걸 준비해놨는데, 이걸 못받아먹으면 바보지 하는 마음이었달까요. 내가 배우라면 유명씨가 부러울 것 같아서 부려본 약간의 심술?”
악동같은 미소를 짓는다.
유명이 그의 미소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조용히 싸인했다.
*
-조커를 얻었구낭.
유석을 만난 얘기를 듣고 미호가 던진 말이었다.
-만약에 그 조커가 네 패가 아니라면 어쩔 셈이냥?
-그 생각도 했어. 그래도 여차하면 조커를 덮을 스페이드A 하나쯤은 내게도 있으니까.
유석의 스캔들. 10년 후엔 공공연해질 사실이지만, 그 때까지는 유명이 쥔 카드이다.
물론, 상대방이 적으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 먼저 쓸 생각은 없지만.
1주일 후 유명이 굿 엔터 건물을 방문했을 때, 문유석은 조커다운 수완을 보여주었다.
“첫 선물입니다.”
드라마 출연계약서를 내민다. 이민정 디렉터가 언급한 출연료와는 앞 자리 숫자가 다른 계약서였다. 매니지 비율을 제외하고 나서도, 원래 준다던 금액보다 훨씬 크다.
“저 완전 신인인데···”
“연기로 가치를 증명했잖아요. 신유명씨 캐스팅하려고 육작가는 그 금액보다 더 큰 대가를 치뤘어요. 그 가치에 맞는 금액 정도는 받아야지.”
유석은 그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주피디와의 관계, 캐스팅디렉터의 유명에 대한 고평가, 그리고 백승효의 계약까지 물려서, 유명이 신인인 것치고 상당한 출연료를 뜯어내 왔다.
“준 돈을 뽑고도 남았다 싶을만큼의 연기를 보여주면 됩니다.”
“그건 당연하죠.”
유명이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것에 유석이 풉-하고 웃었다. 연기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묘하게 도발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게 나쁘지 않단 말이야.
“다른 곳도 아니고 오디션장에서 내가 직접 픽해 온 신인이라고 회사가 시끌시끌해요. 당분간은 시선이 좀 따가울 겁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계약조건은 비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굿엔터에 새로 영입된 신인배우라고만 알고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스텝을 만나볼까요.”
전화기를 들고 그가 뭐라 얘기하자, 남자와 여자가 한 명씩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로드매니저 김호철이라고 합니다.”
“코디네이터 서은수입니다.”
덩치는 크지만 동글동글한 얼굴에 순진한 인상의 남자와, 핑크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발랄한 여자가 인사했다.
“신유명씨 스케줄은 내가 직접 관리할 겁니다. 당분간은 드라마 촬영밖에 없을테니까 자주 볼 일은 없을 거에요. 신인이니 절대 지각 안하게 호철씨가 잘 관리해주고.”
“네, 실장님!”
“맡은 역이 명품 의상, 소품이 많이 필요할 거에요. 신인이라 협찬을 잘 안 넣어주려고 할텐데,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요. 협찬 따내주든지 구해주든지 할 테니까.”
“넵, 알겠습니다.”
“친해지게 세 분이 나가서 식사하세요. 호철씨, 저 분 좋은 것만 먹여요. 금세 뽑을 수 있을 테니까 비용 신경쓰지 말고.”
“네…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굿엔터에서의 첫 회의가 끝났다.
*
식사메뉴는 대낮부터 소고기였다.
비용 신경쓰지 말라는 얘기에 신난 서은수가 호철의 소매를 흔들며 고기고기하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
치익-
투 뿔 한우가 익는 예술적인 소리.
한동안 맹수의 눈빛으로 소고기를 사냥하던 은수는 배가 차고 난 후에야 이상한 호칭으로 말을 붙였다.
“저…배우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저 올해 스물넷입니다.”
“오빠네요! 전 올해 스물둘이거든요. 저기 호철오빠는 스물셋!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그럼요.”
“오빠도 말 놓으세요!”
20대 초반의 친화력은 굉장하다.
“근데 오빠 진짜 실장님 친척이에요?”
“…뭐? 10일 전쯤 처음 뵀는데?”
“와…그럼 실력으로 그만큼 문실장님 마음에 들었다구요? 딴 팀에서 호철 오빠 뺏어서 던져주길래 저는 진짜 낙하산인줄.”
“은수야!”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유명이 은수를 바라보자, 그녀는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말을 잇는다.
“이제 우리는 팀이니까 오빠도 알 건 알아야지! 호철 오빠가 다른 배우 로드였거든요. 근데 며칠 전에 갑자기 팀 이동 통보를 받았네요? 그 배우는 말도 안 된다고 길길이 뛰다가 실장님 방에 불려간 후 찍소리 못하고 깨갱.”
흠···
“그리고 원래 실장님은 배우 스케줄 관리 안 하세요. 치프 매니저들은 따로 있고, 실장님은 우리 회사 원 톱 실세니까 거의 사장님급이랄까? 그런데 유명오빠 스케줄 관리는 직접 하신다네요?”
“나만 관리하신다고?”
“정확히는 한 명이 더 있긴 한데, 그 놈팽이는 있으나마나라···”
호철이 은수의 입에 고기를 넣어 입을 막았다.
그녀가 버럭하려다가 고기맛을 보고 우물우물 씹었다.
“얘가 좀 과하게 솔직해요. 그래도 밖에 나가서는 말 가릴 줄 알고, 코디 실력은 확실하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꿀꺽-
고기를 넘긴 서은수가 한 마디를 보탠다.
“호철 오빠가 로드로는 최상이죠. 미친 도로의 합법자. 오빠 봉잡으신 거에요.”
*
일주일 후 리딩 일에, 유명은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부아아앙-
미친 도로의 합법자.
눈치보며 샥샥 끼어들기, 카메라가 나타나기 직전 예술적으로 밟는 브레이크. 네비도 켜지 않았는데 몸에 감지기가 달린 것 같다.
합법은 합법이다. 카메라의 시야 내에서는.
누가 그랬던가. 로드의 존재가치는 랩타임으로 말한다고.
바람직한 운전 습관은 아니지만, 시간이 생명인 연예인 로드매니저기에 어쩔 수 없이 선호되는 능력.
“어, 호철아. 아직 안 늦었는데 좀 천천히…”
“실장님께서 형은 신인배우니까 모든 스케줄에 30분 전에 도착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소처럼 순한 눈망울이 지금만큼은 예리하게 빛난다. 결국 수원에서 여의도까지 최단시간에 주파해낸 호철이 다시 해맑게 웃었다.
“딱, 30분 전입니다.”
유명이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방송국에 입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KBK 드라마국 리딩실.
호철이를 앞세워 검문(?)을 쉽게 통과한 후, 엘레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아직 아무도 없는 리딩실. 자리마다 이름표가 올라와 있다.
자신의 자리에 번듯이 붙어있는 이름표를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주변을 살짝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유명은 그 이름표를 잽싸게 사진찍었다.
찰칵-
“아…그거 처음 볼 때 기분 좋죠.”
그 때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옷인줄 알았던 형체가 구물렁 일어난다.
차하린이다.
이번 작품의 여주인공인, 아역 출신 12년차 여배우.
“안녕하세요 선배님, 신인연기자 신유명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유명은 민망한 표정을 감추며 크게 인사했다. 자신보다 어리다고 하지만 경력으로 따지면 대선배이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물 넷입니다.”
“오빠네. 말 놓으세요. 촬영하는 동안 잘 지내요.”
그녀는 초점이 잘 맞춰지지 않는 멍-한 눈빛으로 몇 마디를 툭툭 던지더니 다시 책상 위로 쓰러졌다. 많이 피곤한가, 원래 성격이 그런가. 작품 내에서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잠시 후 드라마내에서 기획사 사장, 감독, 연기선생님 등의 역할을 맡은 중년의 조연배우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아는 얼굴이든 모르는 얼굴이든 유명은 항상 일어나서 큰 소리로 인사했다.
“신인연기자 신유명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