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167)
비스마르크 공작.
레이븐 공작가가 검을 숭상하는 가문이었다면, 비스마르크 공작가는 이와 반대로 마법을 숭상하는 가문이었다.
그들은 대대로 제국의 수호검 자리를 도맡던 레이븐 공작가와 달리, 황실 궁정마법사 자리나 재상의 자리를 도맡았다.
무가와 문가의 차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자주 비교되곤 했다.
검과 마법은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분야였으니까.
물론 당시에 사람들의 대부분은 직접 맞붙으면 레이븐이 우세하다고 점치곤 했다.
스톰브링어라는 희대의 무구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그랜드 마스터인 레이븐의 힘이 더해지면, 그야말로 무쌍이었으니까.
역대 제국의 수호검 출신의 레이븐 공작들은 마법을 칼로 베고 다니면서 ‘매지션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항상 근소하게 레이븐 공작가의 평판이나 위상이 제국 최고의 가문으로 여겨지던 지난 날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 지금은 비스마르크 공작이 실세를 잡은 채였고, 레이븐 공작가는 변방으로 내쫓긴 상황이었다.
-다 부족한 저 때문이지요….
나이젤이 자책하듯 말했다.
사실 차기 공작으로 레이븐 공작이 된 나이젤.
그는 뛰어난 행정 능력과 경영 능력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형처럼 검술에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모두가 쉬쉬하지만 이는 검술로 유명한 가문의 힘을 약화시킨 원인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검술명가들이 뛰어난 검사의 명성을 보고 인재들이 몰려와 힘이 되어주곤 했으니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내가 없었어도 우리 가문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는데 말이다.
레이븐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도 그럴 게, 그랜드 마스터이자 가주였던 레이븐을 제외하고도 레이븐 공작가에는 수많은 터들이 상주해있었으니까.
허나 레이븐의 질문에 나이젤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모두 다 떠났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더냐.
-대부분 다른 가문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지금 남은 건 정말 충심을 지킨 몇몇 뿐이구요.
-…길리도 떠난 것이냐.
-예….
-설마 다이론도 떠난 건 아니겠지?
-…그도 떠난 지 오래입니다.
-허어….
레이븐 공작의 기둥들이었던 기사들.
평생을 그들 공작가에 충성을 맹세할 것 같았던 그들이 모두 떠났다는 이야기에 레이븐은 맥이 풀렸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구나. 수백 년을 함께 해왔는데, 이렇게 쉽게 떠나버리다니.
따로 일가를 이뤄도 될 정도로 활의 달인이었던 길리.
거기에 거구에 특유의 방패술로 이름을 떨쳤던 철벽의 기사 다이론까지.
웬만한 소드마스터들은 모두 혼자서 씹어 먹을 만한 레이븐 공작가의 대표적인 가신들이 모두가 떠나버렸다.
레이븐 그가 건재할 당시에만 해도 거의 형제처럼, 가족처럼 지내왔던 이들이기에 충격이 더 컸다.
-그들도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렇겠지….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나이젤이 두둔하자 레이븐 역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형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는 나이젤.
‘…그 이유는 이곳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레이븐이 사라진 뒤 황실 내에서 발언권이 크게 약해진 레이븐 공작가.
그들은 귀족들 간의 정치 싸움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하나둘 이권을 잃어갔다.
모두가 레이븐 공작가가 이제 미래가 없다고 여겼는지 한날 한시에 등을 돌렸고, 그렇게 레이븐 공작가는 밀리고, 또 밀려났다.
결국, 레이븐 공작령은 황실과 가까웠던 본래의 공작령 위치를 빼앗기고 지금의 샤르드방 지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오랜 전쟁으로 인한 황실 재정 악화에 따른 영지 회수.
본래 귀족들의 영지는 모두 황실의 소유이기에 가능한 법이긴 했지만, 역사적으로 지급한 영지를 결격 사유 없이 회수한 적은 없었다.
결격 사유는 대부분 반역이었고 말이다.
헌데 대대로 충성을 바쳐온 가문의 영지를 대놓고 빼앗을 줄이야.
허나 황실에는 더 이상 레이븐 공작가의 편이 없었다.
사실 항상 최고의 자리만을 영위하던 레이븐 공작가를 시샘하던 무리들.
즉, 레이븐 공작가는 적들이 매우 많았던 거였다.
그리고 때마침 그들이 약해진 틈을 타 모두가 등을 돌려버렸다.
결국 변방으로 밀려난 레이븐 공작가.
겉표면으로는 비옥한 곡창지대인 샤르드방 지역을 하사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과거의 영광일 뿐.
현재는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끔찍한 지역이었다.
드래곤의 결계 때문에 몬스터들로부터 괜찮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드래곤의 결계 역시 한계가 명확했으니까.
자체적으로 마력을 수급하는지 거의 반영구적으로 유지되고는 있지만, 몬스터들의 공격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힘을 잃게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다 결국 결계가 뚫리게 되고, 이때 몬스터 난입이 발생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결계를 수비하는 것이었다.
결계가 뚫리면 그들의 목숨이, 그리고 자신들의 가족들이 위험하니까.
이 때문에 수없이 많은 군수 자원들이 보급을 위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이는 레이븐 공작가를 거의 파산 직전으로 몰아넣었다.
레이븐 공작가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최정점에 자리하면서 모았던 그 많은 재산들 역시 금세 바닥난 지 오래.
그리고 이런 지옥 같은 지역을 경험한 병사들과 기사들.
그들 모두가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아마도 충실한 가신이었던 길리와 다이론이라고 다른 게 없었을 터.
‘허나 이제 달라질 것이다.’
나이젤은 속으로 씁쓸해하면서도 한편 희망이 샘솟는 걸 느꼈다.
바로 그 이유는 자신의 형, 레이븐이 돌아왔으니까.
그의 팽팽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제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나이젤의 눈빛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븐.
-걱정 말거라. 이제 내가 다 해결해주마.
형의 그 담담한 목소리가 그렇게 믿음직할 줄이야.
나이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믿습니다. 형님.
-우는 게냐? 나이가 들더니 눈물이 많아졌구나.
-하하, 제가 손주들만 벌써 셋입니다. 그럴 나이는 훌쩍 지났지요.
나이젤이 눈물이 고이려던 눈을 슬쩍 훔치며 말했다.
-으흠…. 벌써 그렇게 된 건가.
삼십년이라는 세월이 젊은 동생을 노인으로 만들어버렸다.
눈가에 자글자글 박힌 주름은 그동안의 고생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레이븐은 그게 못내 안타까웠다.
그렇게 그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말이 없던 그때였다.
저벅- 저벅- 저벅-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기척이 상우와 레이븐의 기감에 잡혔다.
이미 그들은 성내에 상주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은 대부분 느끼고 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하지만, 이는 성 밖에서 들어온 새로운 인물의 기척.
그렇기에 그 움직임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
그 인물은 곧장 일직선으로 접객실로 향하더니, 접객실의 낡은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이익-
삐걱거리며 열리는 문.
거기서 나타난 건 전신에 철갑주를 둘러싼 채 얼굴만 드러낸 한 명의 여기사였다.
얼굴만 봤을 때 은발의 머리칼과 은빛 눈동자를 지닌 빼어난 미인.
‘이쁘네.’
여자친구가 있는 상우마저도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전 가주님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한 마음에 무례를 범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가주님.”
여기사는 나이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유렌시아 제국의 예법대로 예를 표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혀를 차는 나이젤.
-거참 할애비에게 그리 예를 갖출 필요가 없다고 했거늘…. 일어나거라, 카이린.
아마도 여기사가 나이젤의 손녀였던 모양.
상우는 놀랐다.
‘손녀라고? 헐….’
나이젤의 나이가 레이븐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긴 했지만, 저 카이린이라는 여기사를 손녀로 둘 정도로 늙어보이지는 않았으니까.
할아버지라는 느낌보다는 잘생긴 중년 느낌에 가까웠다.
게다가 저 여기사는 단순히 10대로 봐주기에는 꽤나 성숙해보였고 말이다.
‘손녀가 2, 30대라는 건 몇 살에 자식을 낳은 거지?’
상우가 갑자기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렸을 무렵.
카이린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전 가주,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전 가주이십니까?”
상우가 알아들을 수 없는 유렌시아 제국어.
허나 거기서 느껴지는 의미심장한 어투에 그 역시 상념을 깨고 카이린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내가 카이젤 레이븐이니라. 네가 손녀구나. 반갑다.
동생의 손녀이니 레이븐에게 있어서 손녀나 마찬가지.
그렇기에 레이븐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허나, 카이린의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심각한 상황.
“당신이 스톰브링어 검법의 계승자이십니까?”
-그렇다.
“그럼 제게 스톰브링어 검법을 가르쳐주십시오.”
-흐음?
보자마자 검법을 가르쳐 달라니.
레이븐도 살짝 당황했는지 얼떨떨해 할 무렵.
카이린이 다시 예의를 갖추며 머리를 숙였다.
“당신의… 아니, 전 가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음….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말이 없던 레이븐.
그런 그가 오히려 카이린에게 되물었다.
-왜 스톰브링어 검법을 배우고 싶으냐.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카이린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레이븐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
“…그래야 스톰브링어의 맥이 끊길 일이 없을 테니까요.”
살짝 원망이 담긴 듯한 도전적인 목소리.
거기에는 레이븐에 대한 책망이 담겨있었다.
그렇다.
바람의 무구 스톰브링어를 다루는 스톰브링어 검법.
레이븐 공작가의 가주만이 대대로 익히고 사용했던 그 검법은 따로 검법서가 없이 구두로 전해졌기에 당대 가주와 소가주가 아니고서야 다른 사람들은 절대 배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비밀리에 전해지던 가문의 비전이었던 셈.
혹여나 검법의 사용자가 죽기라도 하면 곧바로 맥이 끊겨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전수방식이었다.
‘위험하지 않다. 세상 그 누구가 스톰브링어 검법의 사용자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그랜드 마스터로 이끄는 희대의 검법.
거기에 엘리멘탈 소드 중 하나인 마법검 스톰브링어까지.
사실상 국가적 전략무기나 다름없는 역대 레이븐 공작들을 죽인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세상에 영원하고 절대적인 건 없다는 게 진리였을까.
그 영원할 것 같았던 스톰브링어 검법의 계승자마저, 검은 금요일을 맞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렸다.
격전지에 남아있던 건 버려진 마법검 스톰브링어 뿐.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레이븐 공작이 죽었다고, 스톰브링어 검법의 맥이 끊겼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그때까지 레이븐에게는 정식 제자, 즉 소가주가 없었으니까.
이는 그가 오랜 세월 전쟁을 치르느라 바쁜 탓에 결혼을 못하여 자식이 없던 이유가 컸다.
대부분 소가주의 자리, 즉 스톰브링어 검법의 제자는 가주의 아들이 맡아왔으니까.
그렇기에 최고의 신붓감을 맞이하여 좋은 자손을 보아 자식에게 검법을 전수해왔던 것.
그러나 그 영원할 것 같았던 스톰브링어의 명맥이 한순간에 끊어져버리고.
레이븐 공작가는 거의 몰락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카이린의 도전적인 눈빛.
거기에는,
왜 미리 제자를 만들지 않았는지.
왜 미리 스톰브링어 검법을 전수하지 않았는지.
왜 가문을 내팽개치고 사라졌다가 이제야 나타났는지.
그런 책망들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요구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렇게 사라질 바에, 미리 검법은 전수하고 가십시오.’
자신이 검법을 직접 익혀 가문의 맥을 잇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런 카이린의 책망을 그녀의 말속에서 읽어낸 레이븐.
마치 눈싸움을 하듯 한참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던 레이븐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지만 안 되겠구나.
“…안되다니요. 왜… 도대체 왜 안 되는 겁니까.”
설마 거절할 줄 몰랐다는 듯이 카이린의 어조가 조금 높아졌다.
“설마 제가 여자라서 안되는 겁니까?”
그리고 덧붙여지는 카이린의 말.
자신이 여자라서 안 되는 거냐는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묻어났다.
신체적으로 남자보다 약한 여성의 몸.
그렇기에 많은 이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된 자신.
그 과정에서 겪었던 험난함들과 차별들.
그 모든 설움과 불만들이 말이다.
하지만 레이븐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단다. 네가 여자라서 거절하는 게 아니다. 단지, 내가 이미 제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레이븐에 상우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카이린이 상우를 쳐다보았다.
병풍인 줄 알았던 네가 레이븐의 제자였냐고 하는 듯한 놀란 눈빛.
그리고 상우는 그저 당황했다.
‘아니 뭐야. 왜 나를 쳐다봐.’
카이린이 하는 말은 유렌시아 제국어라서 상우는 그녀가 하는 말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대충 제자 뭐시기 하는 얘기를 통해 제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걸로 추측하고 있을 뿐.
‘저 사람이 제자라고?’
상우가 제자라고 콕 집어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레이븐의 눈빛만 봤을 때 분명 상우가 제자라는 걸 카이린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찬찬히 상우의 모습을 살폈다.
낡은 소파에 조용히 앉아 손을 깍지 낀 채 경청하고 있는 상우의 모습.
제국에서 볼 수 없는 몸에 딱 들러붙는 검은색 복장(전투용 슈트)을 입은 그의 몸은 앉아있음에도 상당히 커보였고, 근육이 울룩불룩했다.
꽤나 단련된 육체였다.
허나, 겉모습만으로는 그 사람의 강함을 전부 가늠하기란 어려웠다.
체내의 오러를 대기 중으로 퍼트려 기감을 파악하는 건 진정한 고수만 가능했기에 지금의 카이린의 실력으론 어림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카이린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당신이 레이븐 전 가주님의 제자입니까?”
그리고 자신을 향한 그 말에 멀뚱멀뚱 쳐다보던 상우.
그는 그녀의 말을 한 마디도 못 알아 들었다.
그렇기에 잠시 멍해 있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정상우입니다.”
그리고 상우의 말을 역시 이해 못한 카이린.
‘뭐라는 거지.’
허나 그녀는 자신의 할 말을 전했다.
“당신과 겨뤄보고 싶습니다.”
그와 겨뤄서 실력을 가늠해보고 싶었다.
그가 진정 스톰브링어 검법의 계승자로 적합한 인물인지 자신이 직접 알아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역시 말을 이해 못한 상우.
“아,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