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66)
“칠죄종을요?”
루카스의 제안은 상우가 전혀 예상치 못한 종류였다.
“예. 전 상우 씨와 함께 칠죄종의 상징을 모두 모으고 싶습니다. 아, 물론 제가 칠죄종의 상징을 얻으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그 위험한 유물들을 모두 상우 씨가 맡아두는 게 안전할 거 같거든요.”
“음···.”
“제가 보기보다 평화주의자라서. 하하하.”
상우는 자칭 ‘평화주의자’라는 루카스의 말이 신뢰가 안 갔다.
‘헌터로 재벌이 된 남자가 평화를 사랑한다라··· 웃기는군.’
물론 루카스는 헌터 활동과 더불어 탁월한 투자 감각과 사업수완을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모두 모으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이미 모든 칠죄종의 상징들이 어디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모두 알고 있거든요.”
모든 상징의 위치를 알고 있다니.
그렇다면 상우는 루카스와 손만 잡으면 손쉽게 상징들을 얻을 수 있을 거였다.
‘분신을 이용하면 상징이 펼치는 어떤 결계라도 모두 뚫을 수 있어.’
그런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더구나 능력치도 많이 오르고 금강불괴 스킬까지 얻은 지금은 더더욱 확신이 있었다.
“만약 상우 씨가 제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저는 정보를 제공해드리고 상우 씨는 얻기만 하면 되는 거죠. 자,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일해보시죠.”
상우는 루카스의 말에 혹하는 자신을 느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상우는 칠죄종을 얻어 힘을 키울 수 있고, 루카스는 그의 말대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근데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께름칙한 느낌이 선뜻 수락을 못하게 그를 막고 있었다.
상우는 문득 고개를 돌려 강준모를 쳐다보았다.
강준모도 상우를 쳐다봤다.
‘지금은 아닙니다. 신중히 결정하시죠.’
그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결론을 내린 상우는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루카스 씨, 정말 솔깃한 제안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죠. 너무 갑작스러워서 좀 당황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바로 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거 같아요.”
그 말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한 반응이라는 느낌이었다.
“이해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우시겠죠. 그럼 알겠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결정해주세요. 저야 언제든 열려 있으니까요.”
루카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참,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남은 칠죄종들은 다 주인이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였다.
“이미 상징을 얻은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요? 그러면 어떻게 얻으라는 건지···.”
“그래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죽여야 하거든요.”
루카스는 대놓고 살인을 언급했다.
상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음, 그건 곤란합니다. 살인이라뇨. 그건 범죄지 않습니까. 그냥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말은 칠죄종의 상징을 얻으라는 얘기지만, 그냥 살인 의뢰이지 않는가.
상우가 거절하는 순간.
루카스가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흉악무도한 범죄자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건···.”
범죄자들이라.
그 말을 듣자 순식간에 상황이 이해되었다.
칠죄종은 죄의 근원이자 씨앗.
그것을 얻는 순간 상징의 주인은 강렬한 욕망에 시달린다.
탐식은 식욕이, 나태는 게으름과 같은 형태로 말이다.
“예를 들면, 색욕의 상징을 얻은 한 남자는 지금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간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두고만 보실 겁니까?”
루카스가 책망하듯 물었다.
상우는 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제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전 루카스 씨가 힘이 있는데도 그런 사람을 두고만 보고 있다는 게 이상한데요?”
그가 반격했다.
루카스가 인정한다는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그들을 없앨 힘이 있죠. 하지만, 상징을 없애도 상징은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희생양을 찾게 되지요. 그래서 지금껏 방관하면서 그들의 활동을 억제하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그런데···.”
루카스의 눈이 상우를 바라보았다.
“그때 상우 씨가 나타난 거죠. 칠죄종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말이죠. 그래서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같이 칠죄종의 상징을 모아서 안전하게 통제하자는 거지요.”
잠시 상우의 반응을 보는 듯 뜸을 들인 루카스가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성공보수를 약속드리죠. 새로운 칠죄종을 얻을 때마다 10억 달러씩, 어떻습니까?”
10억 달러.
한화로 치면 1조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상우는 높은 금액에 솔깃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살인이라는 부분에 좀 꺼려졌다.
‘내가 이미 검성 패거리들을 죽이면서 살인을 저지르긴 했지만, 일부러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죽일 필요가 있나. 지금도 잘 사는데.’
손에 피를 묻히기 싫다는, 살인의 죄를 저지르기 싫다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물론 가슴 한켠으로는,
‘그래도 범죄자라잖아. 나쁜 놈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죄를 지르기 전에 없애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겸사겸사 내가 칠죄종 얻어서 강해지면 더 좋고. 보수도 어마어마하잖아.’
욕심도 좀 생겼다.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음···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예. 그러시죠. 참, 상징의 주인들이 범죄자라는 제 말이 믿겨지지 않으실 것도 같아서, 그 중 하나인 색욕의 상징을 얻은 남자의 만행에 대한 보고서를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한 번 읽어봐주세요.”
말을 마친 루카스는 고글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흠칫 놀랐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요. 전 가봐야겠습니다.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요. 그럼 상우 씨, 좋은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팟!
순식간에 루카스가 사라졌다.
휴게실에 남은 상우와 강준모, 분신 9호.
두 사람과 1기의 분신만 남은 휴게실은 정적이 흘렀다.
마치 폭탄을 맞은 기분이었다.
“허허··· 참나, 말로 한 대 맞은 기분이네요.”
“그러게요. 정신이 없습니다.”
강준모가 맞장구 쳤다.
겨우 대화만 오고 갔을 뿐인데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냥 치고 박고 싸우는 게 훨씬 편하겠네. 근데, 메일을 보냈다고?’ 상우는 루카스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고는 스마트 고글을 활성화하여 홀로그램 메뉴를 띄웠다.
익숙하게 어플리케이션을 눌러 메일함을 확인하자, 거기에는 발신인이 적히지 않은 한 통의 메일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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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Septem Peccata Capitales – Lust
보낸 사람: –
받는 사람: 정상우
첨부파일: Lust.pdf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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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는 파일을 다운 받아 열어보았다.
그리고 두 눈을 의심했다.
‘··· 이 사람이 색욕의 상징의 주인이라고?’
파일에 담겨 있는 인물은 충격적이었다.
해저드(Hazard: 위험)라는 별명을 지닌 남자.
일본의 S급 헌터 야마토 겐지가 바로 색욕의 상징을 얻었음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이 사람은 분명 일본의 S급 헌터였어. 방사능을 다룬다고 했지.’
야마토는 위험하다는 별명처럼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몸에서 극도의 방사능을 뿜어내는 능력이었다.
어떤 몬스터도 그의 방사능 앞에서는 한줌 핏물로 녹아내릴 뿐이었다.
그만큼 강력한 헌터였고, 일본이 자랑으로 여기는 대표적인 헌터였다.
‘일본에서 맨날 이 헌터 가지고 우리나라 놀려대곤 했지.’
그래서 한국에 S급 헌터가 없는 만큼, 일본이 비교대상으로 들먹이는 자국의 S급 헌터들 중 하나였기에 상우도 TV나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그 얼굴을 자주 보았다.
‘말도 안 돼. 이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상우는 차근차근 보고서 파일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극도의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걸 느꼈다.
“와, 이런 개···.”
야마토.
그가 저지른 짓은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세상 모든 욕으로 형용해도 모자랄 인간쓰레기 말종 같은 녀석이었다.
여자를 납치하여 강간하는 건 기본이고, 시체애호 성향이 있어서 그 여자들을 죽여서 성관계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자들을 일부러 죽이지 않더라도, 그와 성관계를 맺는 여자들은 야마토의 몸에서 조금씩 흘러나온 방사능으로 인해 질병과 돌연변이에 시달리며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보고서에는 야마토가 일 년 전 색욕의 상징을 얻은 이후로 수천 명의 여자들을 간살했다고 추정하고 있었다.
‘뭐? 정부에서도 암암리에 눈감아주고 있다고? 이런 미친···.’
게다가 일본 정부에서도 야마토의 범죄 행위를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해주고 있다고 한다.
상우는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당장 루카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야마토를 죽이러가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진짜인지 모르잖아. 후···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말자.’
다만, 상우는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 애썼다.
이런 파일 하나만 가지고 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렇기에 신중을 가하여 야마토에 대해서는 좀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굳이 그를 직접 죽이지 않더라도, 상우는 그의 정체를 세간에 까발려 죗값을 치르도록 만들고 싶어질 거 같았다.
모든 정보를 확인한 상우는 자신이 본 사실을 강준모에게도 알려줬다.
안색을 굳힌 채 가만히 듣던 강준모 역시 극대노했다.
“그게 정말인가요? 와, 이런 찢어죽일 새끼가.”
“그쵸? 진짜 언론이란 건 믿을 게 못되는 거 같아요. 일본에서 그토록 광고도 많이 찍고 언론에서 찬양하는 헌터의 실체가 이렇다니.”
“그러게 말이에요. 진짜 무서운 세상입니다···.” “뭐, 루카스가 보내준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말이죠. 아무튼 에이전트님. 그래서 말인데, 혹시 야마토에 대해 알아볼 수 없을까요?”
상우의 부탁에 강준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업체 통해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근데 이런 정보는 워낙 기밀급이라 아는 정보업체가 있을지··· 일단 찾아볼게요. 아, 뉴욕에 온 김에 여기서도 알아봐야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야마토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고 있을 때였다.
-[박원태]: 상우 씨, 미팅 끝났습니다. 올라오시죠.
-[상어]: 예.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박원태가 아리아와의 계약 미팅이 끝났음을 알려왔다.
상우 일행은 바로 꼭대기층 사무실로 향했다.
거대한 사무실에 아리아와 케이너스길드원들이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빨리 끝나셨네요.”
상우가 말을 걸며 소파에 앉았다.
강준모와 9호도 옆에 자리했다.
박원태가 대답했다.
“아,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견적을 내놓은 상태라서요. 싸인만 하면 됐습니다.”
상우는 이번 계약에 있어서 별도의 수당은 요구하지 않았다.
‘이미 5000억원이나 받았으니까.’
그래서 이번 의뢰 건 역시 기존 오딘의 탑 건 계약대로 출입시 1억원을 받기로 하였다.
“역시 한국은 일처리가 빨라서 좋네요. 그 ‘빨리빨리’ 문화 때문인가요?”
아리아가 웃으며 얘기했다.
그녀가 웃자 사방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하하, 그렇죠. 뭐. 한국인들의 종특이랄까요?”
“종특이요? 종특이 뭐죠?”
“종족 특성이요.”
“에? 말이 재밌네요. 하하하하.”
아리아가 좀 털털하게 웃었지만, 그 모습마저도 싱그러웠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미팅을 잘 마무리짓고, 케이너스 길드원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상우 씨, 아리아 씨에게 협조 좀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아공간 스킬 스크롤을 제작할 때까지 사용자인 상우만 있으면 되었다.
때문에 상우는 며칠 간 이곳에 머물면서 아리아가 필요할 때마다 협조하기로 했다.
“헌터님, 저도 그 부탁하신 것 좀 알아보러 가겠습니다.”
“예.”
사실 여기까지 강준모가 올 필요도 없었지만, ‘정상우 헌터님 서포트해드릴 매니저 필요하시잖아요’라며 매니저를 자청하며 따라온 거였다.
이제 중요 일정이 끝나고 할 일이 없어진 강준모는 야마토에 대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케이너스 길드원들을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모두가 떠나가고 이제 사무실에는 상우와 9호, 그리고 아리아만 남게 되었다.
9호가 있긴 하지만, 거의 단 둘이 있게 된 셈이라 그런지 약간 어색한 공기가 사무실에 맴돌았다.
상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리아 씨, 뭐부터 하면 될까요?”
아리아가 상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금안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리곤 탐스러운 앵두 같은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일단 몸부터 확인할까요?”
상우와 아리아는 자리를 이동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리아의 개인 작업 공간이었다.
지하 제작실과는 다르게 새하얀 공간이 마치 연구소 같았다.
‘여기 우현이 작업공간과 비슷한데?’
물론 아리아의 작업공간이 훨씬 컸다.
한쪽에는 마치 도서관처럼 이미 제작 완료된 스킬구와 스킬 스크롤들이 차곡차곡 정렬되어 놓여있었다.
“이야, 이게 다 스킬구인가요?”
“네. 맞아요. 처음 제작된 프로토타입 위주로 보관하고 있죠.”
아마도 여기서 연구하여 최초 제작된 물품들만 기념품으로 모으고 있던 거 같았다.
그 공간을 지나 아리아는 상우를 스캔실로 이끌었다.
상우의 몸을 스캔하기 위함이었다.
스캔실은 거대한 유리관으로 된 캡슐 모양의 시설이 있었다.
“여기 들어가서 제가 신호할 때까지 기다려주시면 되겠어요.”
“네.”
상우는 스캔 장치 안에 들어갔다.
그냥 멀뚱히 서있을 무렵.
주변의 마나가 상우의 몸에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 후.
-끝났습니다. 나오세요.
스캔 장치에서 아리아의 음성이 울렸다.
상우는 지시에 따라 스캔 장치에서 나왔다.
아리아한테 가니, 그녀는 홀로그램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특이사항 없죠?”
상우가 물었다.
아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음, 생각보다 마법내성이 높으시군요. 이거 좀 까다롭겠어요.”
상우의 높은 마법내성 수치로 인해 스킬 스크롤로 통해 발동되는 마나의 움직임이 상우의 몸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게 아리아의 설명이었다.
“음··· 마법 내성이 높아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럴 때는 안 좋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버프 계열도 튕겨낼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그리고 마법내성이 높다고 해서 마법에 완전 면역인 것도 아니죠. 물리력을 행사하는 마법, 예를 들면 바위를 소환하여 떨어트린다든지 그런 공격에는 피해를 입을 거예요. 폭발로 인해 압력에 밀려나는 것
도 마찬가지구요.”
“그렇군요. 그럼 아공간 스킬 제작에 차질이 빚어지나요?”
상우가 걱정이 되는 듯 물었다.
아리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그저 상우 씨의 체질에 맞춰서 스킬의 마나 출력을 좀 더 높이면 되니까요.”
“아하. 다행이네요.”
“네. 이제 바로 제작하면 될 거 같아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전 이제 가면 되나요?”
상우가 가도 되는지 물었다.
아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가셔도 되시긴 하는데, 있어주면 좋죠. 근데 잠시만요, 상우 씨.”
“예?”
“부탁이 있어요.”
베르샤엘 씨가 부탁이라니. 상우는 가슴이 뛰었다.
“네, 어떤 부탁인가요?”
“그 분신, 혹시 연구 좀 해봐도 될까요?”
“분신이요?”
상우는 맥이 풀렸다.
‘하긴 나한테 관심이 생겼을 리가 없지.’
그래도 상우는 아리아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음, 뭐, 닳는 것도 아니니까 연구하셔도 상관없을 거 같아요. 근데 어떤 연구하시게요?”
“음, 먼저 분신과 상우 씨가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 건지, 분신이 어떻게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요. 그리고 분신을 연구하면 제가 연구 중인 도플갱어의 탄생 원리도 알아낼 수 있을 거 같거든요.”
“도플갱어요?”
“예. 상대방의 모습을 카피하고, 능력마저 복사하는 까다로운 몬스터죠. 도플갱어는 다른 몬스터들과 달리 형체가 일정하지 않고, 계속 변하기 때문에 매우 신비한 속성을 지니고 있어요. 사체는 다른 몬스터들과 달리 잿빛 액체 같은 게 남는데, 그 성질이 매우 놀랍죠.
어떤 생물로든 변할 수 있는 모든 생명의 근원적인 줄기세포랄까요? 역시 다른 몬스터들에 비해 많은 신비를 품고 있어서 연구 가치로써 매우 훌륭한데, 이걸 연구하면······.”
아리아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열띤 목소리로 설명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가 매우 즐거운 모습이었다.
상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쳐주었다.
“그러니까 분신도 도플갱어와 비슷한 속성이 있어서 연구하고 싶다는 거네요.”
“네, 맞아요.”
“이야, 그렇게 많은 연구를 하고 계시다니 대단하시네요. 놀랍습니다.”
칭찬 때문인지, 아리아가 손을 저으며 풋 웃었다.
“에이, 아니에요.”
“저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대단해요.”
“나이가요? 설마요. 제가 상우 씨보다 훨씬 많을 거예요.”
“정말요? 실례가 안된다면 몇 살이신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러자 아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실례가 되네요. 숙녀에게 나이를 묻지 마세요.”
“아,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상우의 모습에 아리아가 장난이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 일이 있겠죠? 아무튼 분신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
“좋습니다. 그럼 분신은 맡겨둘게요. 9호야, 베르샤엘 씨 말씀 잘 들어. 이상한 명령은 따르지 말고.”
좀 두루뭉술한 명령이긴 했지만, 9호의 통제권을 아리아에게 맡겼다.
“이제 명령하시면 따를 거예요.”
“정말요? 그럼 테스트 해볼게요. 흠흠, 9호 씨, 이리 오세요.”
아리아의 명령에 9호가 아리아의 옆에 와서 섰다.
그녀는 분신의 반응에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놀랍군요. 명령이 구체적이지도 않음에도 이 정도 수행 능력이라니. 자체적인 판단 능력이 있는 건가요?”
“어느 정도는요? 근데 거의 로봇과 비슷해요.”
요즘 글러트니의 행태를 보면 점차 개성이 생기는 것 같기는 하지만.
상우는 굳이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신기하네요. 알았어요. 일단 분신 데리고 아공간 입력부분 제작해볼게요. 주변 구경하고 계세요.”
“옙.”
아리아는 9호를 데리고 작업실 안쪽으로 향했다.
남겨진 상우는 찬찬히 주변을 구경했다.
주로 구경하게 된 건 선반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프로토타입의 스킬구들이었다.
스킬구들 앞에는 이름이 붙어있었는데, 상우는 그것들을 살폈다.
‘이야, 스킬구 진짜 많네. 헐, 이건 레비테이션 스킬이네. 이것만 있으면 공중부양은 아무것도 아닌데. 어? 이건 그래비티다. 대박. 이것도 엄청 좋다던데.’
프로토타입의 스킬들 중에는 유명 헌터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능력이 스킬구로 있을 정도로 다양했다. 상우는 그 스킬구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졌다.
‘와, 염력 스킬도 있어. 가만 있자. 이거 익히면 회풍참도 그냥 사용하겠는데?’
회풍참부터는 기의 원격제어가 필수적이었다.
멀리서 기를 끌어당길 줄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돌풍참으로 회오리를 날리고, 회풍참으로 끌어당기는 게 기본이랬지. 더 나아가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멀리서 바람을 일으켜 끌어당기는 거고.’
만약 염력 스킬이 더해진다면 기의 제어가 더 쉬워질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편법이긴 하지만 스톰브링어 검법 6단계 달성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염력 스킬 사가지고 가야겠다.’
그렇게 쇼핑 목록에 갖고 싶은 스킬도 추가해가면서 구경하고 있을 무렵.
상우의 눈을 사로잡은 하나의 스킬구가 있었다.
이름표가 아무것도 안 붙어 있는 스킬구였다.
‘이건 뭐지?’
호기심이 생겨 상우는 스킬구의 손을 올리곤 감정 스킬을 사용해보았다.
하지만,
[감정 스킬의 레벨이 부족하여 감정할 수 없습니다.]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만 떠올랐다.
‘엄청 좋은 스킬인가?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스킬구를 뒤로 하고 둘러보던 상우.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근데, 스킬구를 복사한 뒤에 복사한 스킬구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상우는 분신으로 장비를 복사할 수 있었다.
만약 분신을 소환할 때 장비 대신 스킬구를 복사한다면?
‘왠지 될 거 같은데?’
그렇게 된다면 비싼 스킬구도 거의 공짜로 습득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지금 돈이 없는 게 아니라서 사도 되긴 하지만, 아공간 스킬 같이 엄청 비싼 건 꿈도 못 꾸니까.’
상우는 비싼 스킬구를 한번 복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일 듀베르 씨 장비 복사하는 거 보여줄 때 스킬구 비싼 거 갖다달라고 할까? 그래, 한 번 부탁해보자.’
그는 곧장 아리아를 찾아 작업실 안쪽으로 향했다.
“저, 아리아 씨?”
작업실은 놀라운 광경에 휩싸여 있었다.
샤아아아아-
수정구슬 같은 걸 든 아리아의 손을 통해 굵은 마나줄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 밀집한 마나줄기는 유형의 모습을 띈 상태라 육안에 보이고 있었다.
그 마나줄기는 흩어지지 않고 분신을 향했는데, 분신의 몸으로 스며들어간 마나는 다시 분신의 몸을 나와 허공을 휘돌며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내고 있었다.
스스스스스-
그 형이상학적인 마법진은 한 개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마법진이 서로 엉키며 확장과 수축을 반복했다.
위이이잉-
동시에 그 마법진의 한 가운데에서 공간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공간이 갈라졌다.
아공간이 열린 거였다. “와···.”
상우는 그 모습을 감탄하면서 바라보았다.
아공간의 형상은 박유나와 펼친 것과 비슷해보였다.
다른 점이라면 마법진의 유무 정도랄까.
아리아는 손을 저었다.
그러자, 작업실 한쪽에 있던 스킬구 하나가 둥실 떠오르더니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이후 마법진은 이전까지와는 반대로, 역순으로 돌며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닫히기 시작하는 아공간.
위이이잉···
아공간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동시에 작업실 사방에 자리한 채 빛을 뿜어내던 기계장치 역시 작동을 멈추었다.
그리곤 작업실에 울려퍼지는 기계적인 음성.
-레코딩 완료.
그 소리를 들으며 아리아가 손에 든 수정구슬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그때서야 아리아는 상우를 발견했다.
“상우 씨, 언제 왔어요?”
“아, 얼마 안됐어요. 마법진이 아공간 열 때부터?”
“보고 계셨구나. 지금 막 아공간 입력부 알고리즘만 기록해봤어요. 상우 씨, 앉으세요.”
아리아가 자리를 권했다.
작업실 한쪽에 간이 의자가 있었다.
상우가 그곳에 앉자, 옆자리에 아리아도 조신하게 앉았다.
상우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스킬 스크롤 제작하는 거 진짜 신기하네요. 그 마나가 그려낸 마법진 같은 게 정말 대단해보였어요. 생전 처음 봅니다.”
“마법진을요? 하긴, 요샌 시스템이 있으니까 마법을 직접 쓰는 일이 없겠죠.”
아리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격변 이전에는 세상 사람들이 마법이란 게 있는지도 몰랐잖아요. 신기하죠. 이런 비현실적인 게 있을 줄이야.”
“비현실이라···.”
아리아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후 침묵이 흘렀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아리아의 얼굴을 보면서 상우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느꼈다.
“아, 물론 마법은 이제 현실이죠. 마법이나 스킬 모르는 사람들이 없으니까요. 사업도 활발하기도 하고.”
“그렇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우 받고 있는 거니까.”
그녀는 싱긋 웃었다.
상우는 그 모습을 보며 대화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아리아 씨 여쭤볼 게 있어요. 혹시 스킬구들 가격대 좀 알 수 있을까요?”
“스킬구요? 왜요?”
아리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사실 제가 분신으로 장비를 복사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김에 비싼 스킬구 하나 복사해보고 싶어서··· 뭐, 그렇습니다. 안될까요?”
상우는 솔직하게 말했다.
물건 파는 주인 입장에서는 시식만 하고 가겠다는 의미지만, 왠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중하는 그들이라면 이해해줄 거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반응은 상우가 예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어? 그렇겠네요. 그럼 아공간 스킬이나 텔레포트 스킬 같이 좋은 스킬구를 복사해서 사용하실 계획이시군요.”
“네, 맞아요.”
“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스킬 스크롤 제작도 필요 없겠는데요? 아공간 스킬구를 그냥 복사해버리면 되니까요.” 아리아는 재밌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상우는 그 긍정적인 반응에 내심 기대가 생겼다.
‘왠지 들어줄 거 같은데?’
그리고 대답도 역시 오케이였다.
“좋아요. 상우 씨가 분신도 빌려주셨으니까 저도 도움을 드릴게요.”
“오, 감사합니다.”
상우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하지만 아리아가 거기에 제동을 걸어왔다.
“대신. 분신 한 번 빌려줬으니까 저도 스킬구 딱 하나만 빌려드릴게요. 그럼 되죠?”
“예?”
상우는 당황했다.
그의 계획은 아리아가 수락한다면 며칠 간 머물면서 여러 가지 스킬구를 복사하고 싶었으니까.
그는 협상을 시도했다.
“에이, 베르샤엘 씨. 그러지 말고 몇 개 더 빌려주세요. 대신 분신 오래 빌려드릴게요.”
상우가 협상을 시도했다.
그 말에 아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상우 씨가 분신을 빌려주는 건 잠깐이잖아요. 그리고 스킬구 빌려드려서 상우 씨가 스킬 가지면 영원히 지속되구요. 제가 손해에요.”
“음···.”
아리아의 말이 맞았다.
스킬구를 빌리기에는 분신 대여는 대가로 좀 부족했다.
‘방법이 없나.’
스킬구를 더 얻어내기 위해 상우가 머리를 굴릴 때였다.
아리아의 말이 이어졌다.
“대신 분신 말고 다른 건 어때요.”
“어떤 거요?”
“제 부탁 하나를 들어주는 거예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