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흑혈도
이제 오색 무지개처럼 변한 보호막은 바깥의 붉은 기운이 아무리 몰아쳐도 암석처럼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한립이 펼친 진법이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것임을 직감했다.
반대로 허공에서 붉은 기운을 내려다보며 몇 번이나 보호막을 부수려 시도해 보던 황제는 일이 틀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곤 검붉은 기운을 거둬들였다. 사방에 퍼져 있던 검은 기운이 홍수처럼 밀려들어 그를 둘러쌌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종적을 감추려 했다. 그 속도가 빨라 한립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빨리 날아간 만큼 돌아오는 것도 빨랐다. 뜻밖에도 허공을 한 바퀴 돈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이제 그의 얼굴에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립은 냉소를 지었고 송몽를 비롯한 다른 사제들은 멍하니 할 말을 잃었다.
그들에게 전도오행진(顚倒五行陣)을 설명해줄 생각이 없는 한립은 바로 백린순과 구각법기로 몸을 보호하고는 한쪽에 주저앉았다.
“부보가 있다면 이 기회에 모두 발동해야 합니다. 저 자가 진법에 갇혀 한 동안은 달아나지 못할 테니 단번에 공격해 처리하죠.”
푸른 부적을 꺼내 가부좌를 튼 한립을 보더니 진교천과 종위랑도 바로 붉은 색과 노란 색의 부보를 꺼내 가부좌를 틀었다.
남아 있는 진교천의 사형과 송몽 만이 쓴 웃음을 지으며 서로 눈을 마주쳤는데 그들은 사용할 부보가 없었기에 그저 한립과 진교천, 종위랑의 곁을 지키며 호법을 서야 했다.
이제 하늘에 갇혀 있던 황제도 동분서주만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는지 멈춰서 꼼짝 않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잠시 후 고개를 든 그가 머리에 얹어둔 금관을 벗어 던지며 흑발을 바람에 날렸다. 흉악한 표정을 머리카락이 반절쯤 가려주었는데도 요괴와 같은 분위기는 숨길 수가 없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신 그는 돌연 날카로운 손톱으로 자신의 양 팔뚝을 그어 많은 피를 뿜어냈다.
그것들이 주위의 기운과 녹아 들자 검붉던 기운이 더욱 어두워지며 암홍색으로 변해버렸다.
이젠 짙은 피비린내가 멀리 떨어진 송몽과 진교천의 사형에게까지 감지될 정도였다.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자가 술법을 펼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의 기운이 달라진 것을 확인하자 황제가 입을 벌려 붉은 기운을 팔뚝으로 쏘아 보냈다.
무슨 요상한 사술을 부렸는지 깊게 파여 있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의 혈색은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그는 품을 뒤져 새까만 칼자루를 꺼냈는데 광채도 없는 것이 오래된 고물 같아 보였다. 그러나 황제가 그것을 다루는데 어찌나 섬세하게 만지작거리는지 위험한 물건을 다루는 느낌이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무언가 주술을 외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에 천천히 읊조리고 있었지만 드문드문 들리는 소리가 상고시대의 언어 같았다.
“뭐 하는 거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대단한 법술을 펼치려는 듯 하오.”
곁에서 듣고 있던 송몽과 반려 사제는 걱정스런 기색으로 이야기했다.
적의 의도는 모르나 피비린내 나는 기운이나 궁지에 몰린 황제의 처지를 생각했을 때 무언가 필사적인 한 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송몽 등이 좌불안석하고 있을 때 황제의 주술이 점차 빨라졌고 그의 얼굴에 떠오른 괴로운 기색도 짙어졌다. 그자가 두 눈을 떴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칼자루에서 돌연 검은 기운이 치솟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황제는 경건한 얼굴로 수결을 맺었고 그의 몸을 두르고 있던 암홍색 기운에서 핏줄기가 실처럼 가늘게 만들어져 그 칼자루를 향해 날아올랐다.
처음에는 몇 가닥에 불과했던 것이 수십 수백 가닥이 되어 거무튀튀한 칼자루를 감쌌다. 그리고 그것들이 검은 기운에 스며들어 하나가 되니 피 웅덩이 같은 모양이 되었다.
그 안을 자세히 바라보니 핏빛이 도는 것이 보는 사람의 혼이라도 뽑아 먹을 듯한 요사한 기운을 내뿜었다. 황제는 이것을 보고는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꼼짝 않던 검붉은 기운이 불안정하게 요동치자 황제의 얼굴에는 도리어 공포가 어렸다.
그가 서둘러 피 웅덩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결심을 한 듯 조용히 주술을 외우며 자신의 혀를 깨물어 피를 뱉어내 칼자루로 보냈다.
이에 피 웅덩이가 그것을 흡수하고는 겨우 동요를 멈추고 요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황제가 신속히 십여 개의 법술을 더 외우자 검은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황제는 맑은 피를 토해낸 탓에 십여 년은 늙어버린 듯했다.
황제는 연이어 바로 주술을 재개했다. 다만 방금 혀를 깨문 탓에 그의 주문은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주술이 진행됨에 따라 피 웅덩이는 완전한 장도를 드러냈는데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이제야 황제의 얼굴에 광인의 미소가 어렸다. 주저 없이 장도를 쥔 그는 몇 번 그것을 휘둘러보곤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본 그는 장도와 함께 한 줄기 붉은 빛이 되어 죽림을 향해 돌진했다. 그것을 주시하던 송몽 등은 한껏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한립도 두 눈을 뜨더니 차분히 이쪽으로 덮쳐오는 핏빛을 응시했다.
그는 부보를 구동하는 중이었지만 의식을 이용해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무튀튀한 장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 주위를 배회하던 한립의 의식이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식 일부를 잡아먹으려는 흡입력에 대경실색한 한립이 서둘러 정신을 집중해 의식을 회수했다.
다행히 이런 작용은 검 자체의 효과였고 황제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기에 손쉽게 의식을 빼내올 수 있었다.
한립의 등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의식을 흡수당하면 어떤 두려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도 장도의 위력이 엄청날 것임은 알았으나 그만큼 전도오행진에 대한 믿음도 대단했다.
어쨌든 결단기 수사인 뢰만학이 일전의 전도오행진을 두고 쉽게 처리하기 힘들다 했으니 이미 개선을 거쳐 위력이 더욱 강해진 진법을 일개 축기기 후기의 수사가 단번에 깰 순 없었다.
그래서 상황을 지켜보고자 두 눈을 뜨긴 했으나 마음속에 불안감은 없었다. 한립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벌써 당도한 황제를 오채색의 장막이 막아섰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기에 그저 교활한 웃음을 지은 그는 바로 흑혈도(黑血刀)를 휘둘렀다.
날카로운 소음이 퍼지며 검은 기운이 번쩍이더니 놀랍게도 열 장이 넘는 길이의 검은 칼날이 전도오행진을 파고 들어 일장은 될 법한 통로를 만들어냈다!
황제가 웃음을 흘리며 바로 뛰어드니 정말 방어막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엇! 큰일났습니다!”
송몽이 자연히 놀라 소리쳤다. 다른 동문도 말은 없었지만 초조한 것만은 분명했다.
“겨우 한 층을 돌파한 것뿐이니 당황하지 마십쇼. 이 진법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귓가에 한립의 목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러나 부보를 구동하느라 정신이 없을 한립이 전음까지 보내니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오색 방어막을 따라 십여 장이나 내려온 황제는 황풍곡 제자들이 부보를 준비하는 광경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는 냉소를 짓고는 한립이 있는 곳 위에서 흑혈도를 휘둘렀다.
* * *
송몽과 다른동문이 황제가 한립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방금 흑혈도의 위력을 보았기에 그들이 막을 수 없을 것은 알았으나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부적을 이용해 화구와 맷돌 크기의 돌들을 쏘아 보냈다.
아쉽게도 이 공격은 거대한 도에 닿기도 전에 위력에 눌려 사라져 버렸다. 장도가 악랄한 기세로 한립을 갈라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표정 변화도 없이 입 꼬리를 슬쩍 올렸다.
황제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흑혈도가 상대에게 도달했다.
도가 내려쳐짐과 동시에 눈앞이 뿌옇게 변한 황제는 순식간에 공중에 도달해 있었다.
그가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놀랍게도 아까 몇 번이나 상공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던 그곳이었고 발밑에는 여전히 오색의 방어구가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원상복귀 된 것이다!
폭삭 늙어버린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이를 악물고 다시 방어구로 뛰어든 그는 같은 과정을 거쳐 가부좌를 한 한립의 위에 도착했다.
이번엔 경솔하게 바로 뛰어들지 않고 몸을 둘러싼 붉은 기운을 쏘아 보내고 흑혈도가 그 뒤를 이어 공격하게 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차분히 이후의 상황을 살피던 그는 그제야 모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붉은 기운은 한립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에 삼켜진 듯 사라지더니 자신을 원래 있던 곳으로 이동시켜 버렸던 것이다.
놀란 그가 뒤이어 보낸 장도조차 공격에 성공하지 못하고 방어막 바깥으로 이동했다. 이제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이젠 아래에 있는 것들을 공격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흑혈요도를 휘두르며 반월 모양의 검기를 곳곳으로 흩뿌렸다. 진법의 약점을 찾아 탈출할 생각이었다.
그 결과 호기롭게 날아간 검기들이 튕겨져 그에게 돌아오니 허둥지둥 겨우 그것들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진법에 갇힌 것을 깨달았을 땐 소소한 환술이 걸린 진이라 여겨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공이라면 깨고 나가면 그만이라 여겼다. 그러나 놀랍게도 자신을 순간이동 시켜버리는 데다가 엄청난 공격을 그대로 튕겨내는 것을 보고는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았다.
이런 효과는 금단대진(禁斷大陣)은 되어야 가능한 것이었으니 무슨 소소한 진법이란 말인가!
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아래에서 강대한 영기가 다가오는 것이 감지되었다. 놀란 그가 검은 도를 꽉 쥐자 몸을 두르고 있던 검붉은 기운이 그를 완전히 덮어 보호했다.
이어서 앞에 것과 뒤지지 않는 강대한 영력을 뿜어내는 물체 두 개가 웅웅 거리며 아래에서 솟아올랐다.
오색 방어막에 사람이 드나들만한 공간이 열리며 촘촘한 푸른 자들 수백 개가 폭풍우처럼 황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한립의 부보였다.
수백개의 푸른 자들이 지나간 후 불타는 듯한 소검과 노란 수정구슬 역시 방어막을 빠져 나왔다. 소검은 곧 엄청나게 몸집을 키웠고 노란 구슬은 눈부신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진교천과 종위랑의 부보도 조종에 따라 각기 다른 방향에서 황제를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세 종류의 부보가 자신을 덮치는 모습에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 황제는 미친 듯이 흑혈도를 휘둘러 거대한 검기 일곱 줄기를 방출했다.
‘파바파팍파팍’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한립의 푸른 자들이 박살났다.
아래에서 자들을 조종하던 한립의 얼굴이 미미하게 창백해졌다. 의식을 연결해 그것들을 조종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폭발에 심리적 반사충격을 겪은 것이다.
흑혈도의 위력은 엄청났지만 다행히 그가 홀로 맞설 필요는 없었다. 지금 가장 필사적인 것은 어차피 황제였다.
그는 마지막 발악을 하며 흑혈도로 푸른 자와 붉은 검 그리고 수정 구슬을 막게 하고는 자신은 다시 검붉은 기운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어서 거대한 핏빛을 가운데 두고 삼색의 빛들이 요동을 치니, 흑혈도를 상대로 한립 등의 부보가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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